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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화 명견만리 2권 ⑥ 중국, 방안에 들어온 코끼리
6장 방안에 들어온 코끼리를 어떻게 할까
세계는 지금 ‘유커’ 유치 전쟁 중
허드슨강 변의 춘절 불꽃놀이
2015년 초봄, 뉴욕 허드슨강 변에서 성대한 불꽃놀이가 벌어졌다.
장장 20분에 걸쳐 진행된 이 화려한 축젯날은 미국의 독립기념일도, 그 어떤 기념일도 아니었다. 때는 음력 1월 1일, 축제 이름은 ‘화미중화(和美中華)’. 즉 아름답고 화목한 중국이라는 주제로 중국인 관광객 ‘유커(遊客)’들을 위해 벌인 잔치였다. 중국의 춘절에는 매우 긴 연휴가 이어지는데, 이 기간에 엄청난 수의 중국인이 전 세계 여행지를 찾는다. 이 불꽃놀이는 바로 유커들의 발길을 뉴욕으로 불러 모으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만이 아니다. 중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100년 전통을 깬 곳도 있다. 프랑스는 휴일에 노동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최근 ‘우리가 휴일에 일하지 않으면 유커들이 런던으로 달려갈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샹젤리제 거리를 중심으로 상점을 열기 시작했다.
콧대 높은 영국도 자존심을 꺾었다. 영어의 본고장이자 자국어에 대한 자부심 높은 영국도 유커들을 위해 관광지에 중국어를 도입했다. 런던의 대표적인 관광명소 ‘빅 벤(Big Ben)’의 표지판에 큰 종을 뜻하는 중국어 ‘다벤종(大本鐘)’을, ‘스톤헨지(Stonehenge)’ 유적에는 ‘주시첸(巨石群)’이라는 중국식 이름을 병기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 북한도 이 흐름에 합류했다. 중국 관광객을 위한 전세기를 띄우고, 개인 자가용으로 관광할 수 있는 유커 전용 상품까지 만들어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여행을 아주 즐긴다. 중국 내 관광지 어디를 가든 자국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거기에 더해 소득이 증가하면서 많은 중국인들이 해외 관광에 나서기 시작했다. 급격하게 늘어난 중국인 관광객으로 인해 지금 세계 관광지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한국도 유커가 가장 많이 찾는 해외 관광지 중 하나다. 유커에게 받는 영향이 가장 큰 곳이기도 하다.
부산의 감천문화마을은 2009년 ‘마을 문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환경 정비와 벽화 사업이 이루어지면서 재탄생한 곳이다. 좁은 골목길과 아기자기한 주택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전국적인 명소가 됐다. 관광객이 조금씩 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조용한 동네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갑자기 관광버스가 여덟 대씩, 열 대씩 몰려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관광버스 주차장이 준비가 안 돼 있었어요. 그 많은 차들이 도로에 주차를 하니 난리가 났죠.” 감천마을에서 50여 년간 살고 있는 손판암 할아버지는 갑작스러웠던 그날을 격앙된 어조로 전했다.
관광버스에서 쏟아져 내린 유커들이 순식간에 작은 마을을 점령했다. 이들은 마을 곳곳을 가득 메웠고, 분식점·카페 등을 드나들며 마을의 모든 것을 즐겼다. 이 엄청난 관광 붐 뒤에는 한류 예능의 힘이 있었다. 중국인이 좋아하는 한 예능 프로그램을 감천문화마을에서 촬영했고, 그 프로그램이 방영된 뒤 중국인들의 관심이 마을 여행으로 이어진 것이다.
2014년에만 주민의 열 배가 넘는 7만 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마을을 찾았다. 이에 발맞추어 마을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관광객을 위한 기반 시설이 확충됐고, 매점, 카페 등 점포도 대폭 증가했다. 마을 주민들의 반응은 엇갈리지만, 이곳에서 장사하는 주민들은 반긴다. 상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중국 분들이 마을을 찾아주시니까 좋지요. 저희 마을도 알려지고, 부산도 많이 알려지고요.” “중국 관광객들이 친절하고 또 많은 사람이 오기 때문에 기분 좋게 장사하고 있습니다.”
이곳만이 아니다. 이제 설 연휴가 되면 부산의 광복로와 국제시장에는 귀성객이 아닌 중국인 관광객으로 떠들썩하다. 유커가 많이 찾는 관광지 곳곳에서는 풍물놀이, 댄스 공연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노점상과 시장 상인의 열렬한 환대 속에서 유커들은 부산을 즐긴다. 황금연휴도 반납하고 점포를 지킨 시민들은 ‘춘절 대목’이란 말을 톡톡히 실감한다. 특히 부산시의 경우, 해마다 줄어드는 일본 관광객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유커는 반드시 잡아야 하는 기회다. 유커를 잡기 위한 온갖 프로젝트에 민관이 협심하고 있다.
부산만이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유커는 오랜 경기침체에 빠진 우리나라에 ‘가뭄에 단비’와 같았다. 유커들의 소비는 얼어붙은 내수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 때문에 지자체는 지자체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사활을 걸고 유커 유치에 나선다. 신문 지상에서는 연일 유커 방한이 가져다줄 천문학적 액수의 경제 파급효과를 알리고, 교통방송에서도 수천 명 단위로 방문하는 유커로 인한 교통혼잡을 안내한다. ‘삼계탕 파티’, ‘치맥 파티’ 등 유커를 사로잡기 위한 마케팅도 치열하다.
세계를 휩쓰는 유커 쓰나미,
위기인가 기회인가
이처럼 세계 어느 곳이나 중국인 관광객의 영향력이 대단하다. 마치 거대한 쓰나미가 덮친 것처럼, 유커가 훑고 간 자리마다 커다란 변화가 생겨난다. 유커 쓰나미는 세계를 움직이는 하나의 흐름이 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2015년 한 해에만 1억 2000만 명이 넘는 유커들이 해외 관광에 나섰고, 이들이 지출한 금액만 무려 1조 위안(약 170조 원)에 달한다. 분명 유커들의 통 큰 소비는 침체의 늪에 빠진 세계 경제에 커다란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제 유커로 인한 전 세계적 변화는 불가피하며, 그 속도 또한 중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더욱 빨라질 것이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의 변화는 더욱 불가피해 보인다. 우리나라는 가깝고 친절하고 깨끗하고, 쇼핑하기에도 좋아서 중국인 관광객이 선호하는 여행지다. 이를 반영하듯 해마다 유커 방한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10년에 100만 명 남짓이던 관광객이 2014년에는 600만 명을 훌쩍 넘어섰고, 2015년 메르스 사태로 잠시 주춤하다가 다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의 소비 파워 또한 만만치 않고, 그 증가율도 가파르다. 2008년에 1인당 130만 원에서 크게 늘어 2014년에는 무려 236만 원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을 사용했다. 2014년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 쓴 돈 가운데 절반이 유커에게서 나왔을 정도다. 유커가 일으킨 경제 유발 효과는 2015년 한 해에만 27조 원에 이른다. 이 유커 소비 파워는 심지어 서울 전역의 상권마저 흔들고 있다.
문화예술의 거리인 서울 홍익대 앞은 2010년대 들어 젊은 예술가들이 공연하던 카페와 오래된 상가가 하나둘씩 사라지더니, 화장품 가게와 프랜차이즈 상점들이 거리를 메워가고 있다. 홍대 거리를 찾은 유커의 발걸음이 많아질수록 화장품 판매장의 증가 속도 또한 빨라졌다. 100미터 남짓한 거리에 무려 일곱 개의 화장품 매장이 영업 중인 곳도 있고, 매장마다 유커들을 잡기 위한 세일 경쟁이 한창이다.
이것은 홍익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유커들이 많이 찾는 명동, 부산의 광복동 거리에는 중국인이 좋아하는 브랜드의 옷 가게나 화장품 가게가 압도적으로 많다.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그 변화가 더욱 놀랍다.
서울 상권의 화장품 가게와 숙박시설 분포를 살펴보면, 2005년까지만 해도 명동과 강남에만 상점들이 있고 마포구에는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불과 10년 동안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특히 마포구의 변화가 상전벽해다. 홍익대 앞을 비롯해 그 인근의 상수동, 연남동으로 상권이 넓어졌다. 강남구도 극적인 성장을 했다. 가로수길을 비롯해 이 지역에는 수많은 성형외과, 피부과, 백화점 등이 있어서 유커들에게 핫플레이스로 알려진 곳이다.
유커의 소비 덕분에 계속 적자이던 화장품 무역수지는 2014년 처음 흑자로 돌아섰다. 실제 중국 관광객이 한국에 방문하면 빼놓지 않고 구매하는 품목이 화장품이다. 오로지 화장품을 사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유커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로 인해 지역마다 가지고 있던 고유한 정체성이 사라지고 획일화되는 문제가 생겨났다. 홍대 인근에서 15년째 살고 있는 가수 정문식 씨에게 홍대 거리는 삶의 터전이자 꿈을 키워온 특별한 공간이었다.
“아주 오래된 라이브 클럽이 있었어요. 저도 거기서 공연했었는데 지금은 문을 닫았죠. 또 소극장이었던 곳이 무슨 전시장으로 바뀌었고요. 홍대 문화를 상징하던 공간들이 자꾸 없어져서 무척 아쉽습니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정현준 씨에게도 지금의 변화가 딜레마다. “화장품 가게가 많으면 그만큼 많은 유커를 끌어들일 수 있으니 저에게는 상당히 좋아요. 하지만 그것 때문에 홍대의 고유한 문화가 없어지는 것은 저에게도 딜레마입니다. 홍대 거리가 서울 어디에나 흔한 화장품 가게와 쇼핑점들로만 채워진다면 홍대만의 특별한 문화와 색채가 사라질 테고, 이게 곧 유커의 실망과 관광객 감소를 이어질 테니까요.”
제주도에 들이닥친
차이나 머니의 두 얼굴
유커 쓰나미는 과연 위기일까 기회일까? 중국은 우리에게 어떤 미래인가? 유커 쓰나미가 우리 사회에 몰고 올 변화는 가치판단에 따라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고, 그 속도도 점점 빨라질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러한 변화를 제대로 직시하고, 그로 인해 파생될 문제들을 정확히 인지하고 대비하는 것이다.
차이나 쓰나미의 양면성을 잘 보여주는 제주도의 변화 사례는 작금의 현실을 직시하는데 훌륭한 자료가 될 것이다.
유커 쓰나미를 등에 업고 2013년 ‘제주 관광 천만 시대’를 화려하게 연 제주도. 바람, 돌, 여자가 많아 삼다도라 불리던 제주도에 최근 중국인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사다도(四多島)’라는 별명이 생겼다.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 관광객들이 불편해할 정도로 제주도는 중국인들로 넘쳐난다. 제주도를 찾는 유커 관광객의 수는 매년 증가를 거듭해 2004년에는 280만 명에 이르렀으며, 2015년에도 224만 명이 제주도를 찾았다. 덕분에 제주도 경제는 어느 지역보다도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막상 제주도 주민들은 유커의 방문에 우려를 표한다. 제주도의회가 제주도민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68퍼센트의 제주도민이 유커가 제주 발전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유커 파워가 주는 막대한 경제효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제주 관광 천만 시대의 1등 공신은 유커였다. 대형 크루즈에서 쏟아져 나온 중국 관광객들이 제주도 곳곳을 누볐고, 제주도 주민들은 엄청난 기회라 여겼다. 하지만 중국 여행사들이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 상황이 순식간에 역전됐다. 관광 수입 역외 유출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한국은행 제주본부에 따르면, 도내 관광업계의 영업이익 55퍼센트가 역외로 유출되었고, 호텔업도 61퍼센트가 넘는 돈이 역외로 나갔다. 심지어 유커 특수를 최고로 누린 제주 면세점도 외국 브랜드가 많아 50퍼센트 이상이 역외로 나가는 실정이다.
제주도에서 15년째 여행사를 운영하는 김은진 씨는 유커들이 제주도에 몰려오고 있지만 제주도민에게까지 그 이익이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유커가 갑자기 300만 가까이, 정말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바람에 제주의 관광 인프라가 많이 부족했어요. 그런 부분들을 정비하는 사이에 중국 자본이 진출했죠. 자본이 워낙 막대하다 보니 지금 거의 95퍼센트 가까이 장악한 상태예요. 그리고 중국 관광객 대부분이 이런 대형 중국 여행사를 통해 들어오고, 중국 버스회사의 차를 타고, 중국에서 온 가이드와 함께 중국인이 경영하는 관광지를 돌다가 또 중국인이 운영하는 호텔에 가서 쉬어요. 이러니 저희 같은 토속 관광업자들은 굉장히 한가하죠.”
물론 이런 현실에 제주도가 손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민관이 협심하여 제주를 제주답게 관광할 수 있는 콘텐츠와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제주도의 새로운 명물 황금버스는 이러한 고민의 일환으로 생겨났다. 제주도 내 20개 관광지를 운행하는 이 순환형 도시 관광버스는 중국인이 좋아하는 숫자 ‘8’로 번호판을 달고, 부를 상징하는 황금색으로 꾸몄다. 버스 내부는 물론이고 승무원들의 옷과 의자 시트까지 번쩍이는 황금색으로 맞춘 모습에서 유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제주의 노력이 느껴진다.
그런데 문제는 제주도의 고민이 관광 수입 역외 유출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세게 부는 중국인의 부동산 투자 열풍 또한 제주의 고민거리다. 제주도는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2010년 국내 최초로 ‘부동산 투자 이민제도’를 도입했다. 5억 원 이상 부동산에 투자한 외국인에게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가능한 거주 비자를 주고, 5년 이상 유지하면 영주권을 주는 이 제도는 2013년까지 한시적으로 시행된다.
문제는 이 제도 시행 이후 중국인 투자자들이 대거 제주도에 몰려들면서 불거졌다. 이들을 겨냥한 고급 콘도가 여기저기 건설되기 시작했고, 중국인의 제주도 땅 매입 역시 급증했다. 그 결과 2015년 기준 외국인 소유 토지 면적은 제주도 전체 면적의 1.1퍼센트에 달했고, 그 가운데 44.4퍼센트가 중국인 소유다. 또한 거주 비자를 받은 1300명 중 무려 98퍼센트가 중국인이다.
이로 인해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고, 무분별한 개발이 이어지면서 천혜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제주도 자연이 훼손되고 있다. 게다가 높지 않은 산 사이 지역의 난개발로 지하수 오염마저 우려되고 있다.
결국 제주도는 자연이 난개발되고 밀려드는 중국 자본이 무분별하게 투자되는 것을 막고자, 기존 제주 전역에 해당하던 투자이민 대상 지역을 지정된 관광지로 제한했다. 외국자본의 투자가 부동산 일변도로 흐르는 것을 막고, 신재생 에너지 · 교육 · 의료 등 다방면으로 자본을 균형 있게 유치하고자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 때문에 투자 활기가 급감했다는 지적이 벌써 나온다. 투자가 갑자기 줄어들어 경기가 급랭하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이다. 투자 거품이 꺼지는 것도, 계속 커지는 것도 문제인 제주의 고민은 깊어 가고 있다.
현재 부동산 투자이민제도를 도입한 지역은 제주도를 포함해 전남 여수, 부산, 인천, 경기 파주, 강원도 등 상당수다. 물론 아직까지 투자가 제주도에 편중되고 있기는 하지만, 여타 지역들도 제주도에서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결국 제주도가 지금 겪는 문제와 고민은 제주도만의 고민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그렇다면 투자이민제도처럼 해외 자본이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정책과 사업을 시행하려 할 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선 세계 각국의 사례를 치밀하고 정확하게 조사해서 벤치마킹해야 한다. 어떤 나라에서 어느 해에 어떤 정책을 시행했더니 어떤 부작용이 있었고 또 어떤 경제적 효과가 있었는지, 깊은 연구와 토론이 필요하다.
다음으로는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합의를 마련해야 한다. 해외자본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용할 것인지는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한 문제다. 이러한 과정 없이 각 영역의 경제주체들이 서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윤을 취하려 중구난방으로 다투다 보면 전체적으로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일례로 이미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지자체들이 벌이는 출혈경쟁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지 않으나. 그런 상황이 닥치지 않도록 사전에 이 기회이자 위기를 사회 전체적 관점에서 공론화하고 조율하고 합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와 같은 노력은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 필요하다.
사실 차이나 머니로 인한 긴장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미국 등 세계 어디에나 차이나 머니의 손길이 뻗쳐 있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문제들이 양산되고 있다. 캐나다의 밴쿠버 또한 막대한 차이나 머니로 인해 심각한 갈등을 겪는 지역 중 하나다. 밴쿠버의 사례는 무분별한 중국인 투자 유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그 미래를 보여준다.
전 세계를 휩쓴 차이나 머니가
사들이는 것은?
캐나다 밴쿠버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거의 없어 따뜻하고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힌다. 밴쿠버에서도 국제 공항이 자리해 있는 리치먼드는 중국계 이민자 거주율이 50퍼센트가 넘는다. 이곳의 한 마을은 모든 집이 판매 중이다. 집집마다 부동산 매매를 광고하는 팻말로 가득하다. 내걸린 팻말에는 대부분 중국인 부동산 업자의 연락처가 적혀있다. 옛집들은 개조되어 크고 화려하게 변하고 있다.
4대째 리치먼드에 살고 있는 캐리 씨는 이웃이 하나둘 고향을 떠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오랫동안 함께한 이웃의 집을 판다는 표지판을 보았죠. 그런데 시장에 나온 지 하루 만에 148만 달러에 팔리더라고요. 아마도 그 집은 300만 달러짜리 집으로 바뀔 거예요.”
밴쿠버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다. 부유한 중국인들과 함께 유입된 막대한 차이나 머니가 밴쿠버의 소도시였던 리치먼드를 급격히 개발시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캐나다에는 주정부에 80만 캐나다달러(약 7억 원)를 투자할 경우 이민 비자를 발급하는 투자이민제도(IIP)가 있었다. 그런데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이 제도를 통해 이민 온 중국인들이 밴쿠버의 고급 주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앤드류 씨는 중국인 고객들은 차원이 다르다고 말한다. “저희 중국인 고객 중에서는 정기적으로 일등석을 타고 오는 분들이 많아요. 또 몇몇은 개인 비행기를 이용하기도 하죠. 우리랑 삶의 방식이 달라요. 자신의 집에서 단 몇 주나 몇 달, 몇 년 정도만 살기도 합니다.”
벤쿠버와 같이 상대적으로 작은 도시에, 단기간에 수천 명의 백만장자가 들어오다 보니 그 영향력이 막강하다. 1년간 밴쿠버의 부동산 가치는 12~15퍼센트 급성장했고, 밴쿠버는 세계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도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문제는 치솟은 집값을 감당하지 못한 수많은 원주민이 도시를 떠나고 있다는 점이다. 각계각층에서 투자이민제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일부 시민들은 이 제도에 반대하는 단체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해마다 집 마련이 어려워지고 젊은 인력의 유출도 심해졌기 때문이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실시된 투자이민제도는 분명 캐나다의 경제발전에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7~8년 전부터 부유한 중국인들이 급격히 몰려들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차이나 머니가 다양한 산업 분야에 투자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오로지 부동산 분야로만 쏠린 것이다. 결국 대규모 차이나 머니로 부동산 시장만 과열되어, 밴쿠버는 뉴욕보다 집을 구하기 힘든 도시가 되어버렸다. 이로써 정작 집이 필요한 캐나다 사람들은 집을 구하지 못해 계속해서 외곽으로 밀려나는 등 수많은 부작용을 겪어야 했다. 결국 2014년 2월 영주권 구입 수단으로 전락한 투자이민제도가 폐지되고, 좀 더 강력한 조건을 갖춘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었다.
차이나 쇼크? 차이나 찬스?
세계 경제의 위기는 중국의 기회라는 말이 있다. 2009년 심각한 재정 위기를 겪은 그리스는 지중해 물류 중심지인 아테네 항의 부두 운영권을 중국에 팔아야 했다. 막대한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지만 재정 부족으로 개발을 못 하고 있던 페루의 광산 채굴권도 중국에 팔렸다. 또한 차이나 머니는 뉴욕이나 영국의 상징이 되는 랜드마크 건물들을 수조 원을 들여 매입하는 등 차원이 다른 파워를 보여주기도 했다. 중국은 이 막대한 자본력으로 세계의 판도를 바꿔나가고 있다.
물론 중국 자본의 투자에 위험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차이나 머니는 우리 경제에 반드시 필요하며, 긍정적인 효과도 상당하다.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과 지자체는 해외 투자자본이 절실한 상황이다. 서울 DMC 랜드마크나 부산 해운대 엘시티처럼 자본이 부족해서 건설이 중단되었다가 중국인 투자가 이뤄지면서 비로소 재개된 곳이 꽤 많다.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 등 이로 인한 경제효과는 막대하다. 하지만 그 영향력이 거대한 만큼 또 다른 이면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당장 외국 자금이 들어와서 경제가 좋아진다고 긴장의 끈을 놓아버리면, 우리도 캐나다의 밴쿠버의 전철을 밟게 될지 모른다.
‘방 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라는 말이 있다. 명백한 문제임에도 무시하거나 언급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을 이를 때 쓰는 말이다. 어느 날 방 안에 작은 코끼리 한 마리가 들어왔다. 그런데 그 코끼리가 예쁘다고 그냥 놔두다 보면, 코끼리는 점점 커져서 결국 방 주인을 내쫓고 만다. 우리 방 안에 지금 중국이라는 코끼리가 들어와 있다. 그리고 틀림없이 몸집을 불릴 것이다. 이 중국발 코끼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세계의 수많은 전문가들은 2022년이 되면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경제 최강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중국의 비상은 이제 막 시작됐다. 중국이 중심이 되는 세계 경제가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중국과 서해바다를 맞대고 있는 우리는 중국발 쓰나미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쓰나미는 오지 말라고 소리친다 해서 오지 않는 게 아니다. 이미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내는 전략이 필요하다. 물론 국가 차원에서 차이나 쇼크가 불러올 부정적인 측면을 극복하고 긍정적인 측면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총체적으로 세워야 한다. 하지만 사회 각 분야, 산업 각 분야에서 각자 나름의 전략으로 각개전투를 해야 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외국인 관광객이 찾지 않아 고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눈떠보니 유커 쓰나미 현상이 생겨났다. 찾아오지 않던 나라에서 찾아오는 나라가 된 것이다. 우리가 진짜 고민해야 할 문제는 어떻게 하면 차이나 머니에 휩쓸리지 않을 것인가가 아니라, 이것을 어떻게 하면 분명한 기회로 만들어낼 수 있느냐다.
한국은 지금 내수시장의 성장이 둔화된 시점에 있다.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이 필수적이다. 특히 우리는 거대한 소비시장인 중국과 바로 이웃해 있다.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변모한 중국의 성장은 우리나라 기업에 굉장히 큰 기회다. 아모레퍼시픽 그룹처럼 중국 진출에 적극적인 기업들은 중국 시장을 수출국 중의 하나로 보지 않는다. 중국을 제2의 내수시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전략 아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기회를 엿보고 있다.
하지만 중국 소비자들은 광활한 영토의 크기가 방대한 인구수만큼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그들도 좋아할 것’이라는 안일한 전략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 글로벌 기업의 무덤이라는 중국에서 쾌거를 이룬 기업들은 하나같이 중국과 우리가 비슷할 거라는 어설픈 기대부터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방 안의 코끼리에 밟히지 않기 위해서는 코끼리를 올라타야 한다. ‘위기(危機)’란 ‘위험’과 ‘기회’가 합쳐진 말이라고 한다. 우리가 이 코끼리 위에서 그들보다 더 거시적인 시각을 가지고 그들의 강점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은 강대국 중국 옆에서 3000년을 살았다. 그 속에서도 독자적인 역사를 만들어왔다. 지금 다시 불어온 슈퍼 차이나의 시대, 우리는 어떤 위험과 기회를 맞이할 것인가.
(요지경 생각 : 명견만리 3부 중국은 6장, 7장, 8장으로 되어 있다. 7년 전에 발행된 책이지만 지금의 현실과 비교해보면 세상이 너무 많이 변했다. 그냥 옮기기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래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꽤 많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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