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6장)
“ 하나님과 동행한 노아 ”
노아의 홍수 사건에 등장하는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것이고 이 홍수사건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인 복음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물’ 혹은 ‘바다’하면 무엇을 상징할까요?
그것은 죄, 죽음, 저주, 심판 등을 상징합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물, 바다, 홍수는 그 죄악 된 세상에 부어지는 하나님의 심판 혹은 저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물, 홍수에 빠지면 모두 하나님의 저주의 심판 아래 영원한 죽음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방주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방주라고 번역이 된 히브리어 ‘테바’는 사실 배가 아닙니다.
노아의 방주는 길이 135m X 폭 22 m X 높이 13m 직육면체 상자입니다. 물, 바다, 홍수는 인간의 죄악과 그 죄악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오병이어의 사건에서는 그것이 백성들의 굶주림으로 그려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모두가 빠져 죽어야 할 그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물에서 당신의 제자들을 구해내셨습니다. 주님께서 물을 밟으시고 당신의 백성들을 구해내시는 사건은 이미 구약에 여러 모양
으로 예언이 되어 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이 세상의 자랑이나 육신의 정욕의 충족이 아닙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 봐도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행복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은혜로
영생을 주시겠다는 예수를 원하지 않습니다.
영생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영생을 안중에도 두지 않습니다. 그저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만을 충족시켜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자들에게 ‘너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실체로 받아들이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왜 자꾸 눈에 보이는 것을 나에게서 원하느냐?’
하고 나무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기독교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자들은 이 땅에서 떵떵거리며 자신을 증명하며 살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고 그렇게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행복이 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현실의 삶을 바라보면 도저히 빠져나갈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이실 때도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빠져나갈 길이 없다’‘돌파구가 없다’고 외치고 계신 분들이 이 자리에 계실 것입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도가 자신의 행복을 찾아갈 수 있는 길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만이 길입니다. 주님 이외에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