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은 국가를 통치하는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이자 왕실 가족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수도에서 가장 중요한
곳에 위치했다. 조선은 풍수지리상에 기반하여 북쪽 백악산을 주산으로 목면산, 타락산, 인왕산으로 둘러싸인
한양을 수도로 정했고 백악산을 뒤로 하여 법궁인 경복궁을 세웠다.
동궐도
조선시대 법궁인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 창덕궁과 창경궁을 상세하게 그린 궁중회화다.
용무늬 천장 장식
보개는 정전이나, 편전,진전 등 당가가 설치되는 건물의 천장에 설치되었던 장식물이다. 용은 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상상의 동물로 왕의 공간을 장식하므로써 왕의 신성과 위엄을 강조했다.
경회루 연못 출토 청동 용
경회루의 건축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경회루전도>에 따르면 경회루는 주역의 원리를 반영하여 세부형태를 지었으며,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동으로 만든 용 두 마리를 연못의 북쪽에 넣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실제로 1997년 11월 경복궁 경회루 연못 준설 작업 도중에북쪽 하향정 앞 연못 바닥에서 청동용 하나가 발견되었다.
창덕궁 연경당에 걸었던 주련과 임금의 지침을 적은 주련
"맑은 홍은 솟아오르려는 달보다 높고, 깊은 정은 개봉하려는 술독에 비할 만큼 넘치네"라는 뜻으로 서로 대련을이루면 현재 창덕궁 연경당에 같은 글씨의 주련이 걸려 있다.
또 하나의 주련은 규장각에 걸었던 임금의 지침을 적은 주련으로 "규장각 전입자가 아니면 함부로 들어오지도
말고, 손님이 찾아와도 그 자리를 떠나지 말라"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수水자를 새긴 육각형 은판
경복궁 근정전 중수 공사 도중에 발견된 육각현의 은판에는 모서리마다 '수(水)'자를 새겼다. 육각형을 서로
붙이면 '수'자가 3개 모여 '묘(淼)'자가 된다. 이는 한없이 넓은 물의 모양을 나타낸 것으로, 화재가 나지 않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
화재를 막기 위한 '수水'자 부적
화재를 막기 위한 용도로 '용(龍)' 1,000여자로 '수(水)'자를 메워 쓴 부적이다.
조선왕실의 복식
왕실의 복식은 의례복과 일상복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의례 시 착용하는 복식은 유교의 예를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로 길례,흉례, 군례, 빈례, 가례 등 의례의 격식에 맞는 복식을 갖추었다.
영친왕 곤룡포와 자적용포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곤룡포를 복제한 것으로, 곤룡포는 왕과 황태가 집무할 때 입었던 평상복
으로 가슴과 등, 양어깨에 오조룡보를 달았다.
자적용포는 발톱이 넷인 용을 금박한 사조룡보가 달린 옷으로 자적용포는 왕세자나 왕세손이 평소에 착용하던
겉옷으로 성년식 전까지 입었다.
영친왕 옥대
가죽으로 만든 띠에 비단을 씌우고 옥으로 장식해 만든 옥대로 조선시대에는 왕, 왕세자, 왕비만 두를 수
있었으며, 왕과 왕세자는 조복과 상복, 제복 등을 입을 때 허리에 찼다.
망건과 망전
망건은 말총을 세밀하게 엮어 짠 남성용 쓰개의 하나로 평소 집 안에서 쓰거나 외출할 때
갓 아래 받쳐 썼으며, 망전은 상투 튼 머리의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두르는 물건
이다.
영친왕비 당의와 남색대란 치마
당의는 궁중에서 왕실 여성의 소례복으로 크고 작은 예식과 명절, 사시사철 문안에의
복식으로 착용했다. 왕비난 빈의 당의에는 꽃무늬와 박쥐무늬, 수, 복 등의 글자를 금직
이나 금박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스란치마는 왕실 여성이 예복 차림을 할 때 하의로 갖추어 입는 치마로 각종 무늬를 금직
또는 금박으로 장식한 단으로, 스란을 한 단 더한 것은 스란치마, 두 단을 더한 것은 대란
치마다.
영친왕비 적의
적의는 조선시대 여성 최고 신분의 복식으로, 조선 말기까지 궁중 대례복으로 사용되었으며, 적의에 장식된
문양 역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친애와 해로를 상징하는 꿩 문양에 사용된 청, 백, 홍, 흑, 황의 다섯
색은 각각 인, 의,예,지 신을 의미한다.
영친왕비 적의
비녀
궁중의 비빈과 외명부들은 어염족두리를 쓴 다음 가체를 땋아 얹고 비녀와 떨잠으로 장식하는 어여머리를
하였다. 머리에 장식하는 장신구로는 비녀, 뒤꽃이, 떨잠이 있다.
후봉잠
수식품(首飾品)의 일종으로 ‘계(笄)’, ‘잠(簪)’, ‘채(釵)’ 등으로 불린다. 쪽진 머리나 관(冠) 등 머리 형태를
고정하거나 장식하기 위해 꽂는 도구이다. 왕실 여성들은 계절에 맞추어 다양한 형태의 비녀로 치장하였다.
영친왕비 첩지머리와 드림댕기
첩지는 조선시대 왕비를 비롯한 내외명부가 머리를 치장하던 장신구로 궁중에서는 첩지를 통해 왕실 여성이
신분을 구별했다. 또한 드림 댕기는 예장용의 하나로 긴 봉황 장식 비녀를 꽃은 후 그 봉잠의 좌우에 둘러
양쪽으로 늘어뜨려 사용한다.
영친왕비 대삼작 노리개
노리개는 치마허리나 저고리 고름 등에 차는 장신구로 본래 왕실의 비빈과 공주, 옹주, 왕자군 외 양반 부녀자들에게는 착용을 제한하였다. 왕실에서 찬 대삼작노리개는 노리개 가운데 가장 크고 화려하였으며, 궁중에서 대례복에 사용하였다.
화소첩
빗을 넣어 두는 화소첩과 참빗이다.
궁궐 침전 내부 공간
조선시대 궁궐의 왕과 왕비의 침전은 넓은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이 배치되고, 그 주변으로 퇴가 둘러
싸여 있다. 내부의 방들은 장지문으로 연결해 공간의 면적과 형태를 가변적으로 사용했다.
화각삼층장
왕실용 가구는 일반 사가에 비해 크기가 크고가구 표면에 붉은 색으로 칠한 것이 많으며
붉은 주칠 외에도 검은 흑칠과 노란 황칠이 사용되었으며 나전으로 여러가지 문양을
박아 넣거나 그림을 그리는 화각 기법으로 정교하게 장식하기도 하였다.
화각함
투명한 쇠뿔을 얇게 펴고 뒷면에 여러 가지 문양을 그린 다음 나무에 붙여서 만든 함이다.
쇠뿔로 사각형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십장생 등의 길상문양과 호랑이, 잉어 등의 민화적
소재를 그려 넣었다.
임금님 수라상
수라상을 차릴 때에는 대원반·곁반·책상반 등 모두 3개의 상을 쓴다. 각 상에 올리는 내용물은 대원반의 경우는
은수저 1벌·은입사시 1벌·흰밥·미역국·간장류·김치류·찬품류·토구 등이며, 곁반의 경우 기미용 은입사시 1벌·금테 를 한 상아저 1벌·팥밥·곰국·찬품류·빈 그릇 1개·빈 접시 2개·냉수대접(여름에는 사기대접, 겨울에는 은대접)
등이다. 또한, 책상반에는 퇴선간에서 끓인 조치·전골, 찜과 더운 음식을 받았다가 원반으로 올린다.
명성황후 한글 편지와 시전
순종황제와 순정효황후의 어차
1897년 조선 26대 왕 고종은 황제의 나라, 대한제국을 선포하였다.
고종황제 어새와 함
고종황제가 친서에 사용한 대한제국 국세와 이것을 담은 함으로 손잡이는 거북이 형태이며 '황제어세'라고
새겨져 있다.
고종·명성황후 가례도감의 궤
고종과 명성황후 혼례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대한제국 문무관 복식
고종황제의 어진
상이 이르기를, "…지금 국호를 '대한大韓'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될 것이 없다. 또한 매번
각 국의 문자를 보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韓'이라 하였다. 이는 아마 미리 징표를 보이고
오늘이 있기를 기다린 것이니, 세상에 공표하지 않아도 세상이 모두 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
고종실록 권36, 고종 34년(1897년)10월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