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년 1월 3일(토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탐진치 삼독, 깨달음의 시작”
법우 여러분, 오늘은 새해 첫 주말 토요일이며 보름인등기도 법회를 봉행하는 날입니다. 이 뜻 깊은 날에 “탐진치 삼독, 깨달음의 시작”이라는 주제로 법문을 나누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새해의 수행은 멀리 있는 이상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마음속에서 가장 자주 일어나는 문제를 바로 보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괴로움의 뿌리를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이 세 가지 마음의 독에서 찾으셨습니다. 탐은 더 가지려는 마음이고, 진은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일어나는 성냄이며, 치는 그 마음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채 끌려다니는 상태입니다. 이 삼독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상 속에서 날마다 반복해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흔히 삼독을 나쁜 마음, 없애야 할 마음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탐욕이 올라오면 부끄러워하고, 성냄이 일어나면 스스로를 책망하며, 어리석은 선택을 하면 수행이 안 된다고 단정해 버립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삼독이 일어나는 그 자리를 수행의 시작으로 삼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삼독이 없어진 다음에 수행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삼독을 알아차리는 순간부터 수행은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탐욕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는 더 잘되고 싶고, 더 인정받고 싶고, 더 편안해지고 싶은 마음을 갖고 살아갑니다. 이 마음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 탐욕이 마음을 가득 채워 다른 사람의 상황을 보지 못하게 하고,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지 못하게 만들며, 끝없는 비교로 자신을 괴롭힐 때입니다. 이때 수행자는 ‘탐을 없애야겠다.’고 애쓰기보다, ‘아, 지금 내 마음에 더 가지려는 욕심이 일어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이 알아차림 하나가 탐의 힘을 약하게 만듭니다.
성냄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사람이 내 기대에 어긋날 때, 몸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을 때 성냄은 자연스럽게 올라옵니다. 우리는 이 성냄을 부끄러워하거나 억누르려 하지만, 억누른 성냄은 다른 모습으로 다시 튀어나옵니다. 부처님께서는 성냄이 올라올 때 그것을 적으로 대하지 말고, ‘지금 내 마음이 아파하고 있구나’ 하고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성냄을 알아차리는 그 순간, 우리는 이미 성냄과 거리를 두고 서 있게 됩니다.
어리석음은 탐과 진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바탕입니다. 어리석음이란 지식이 부족한 상태가 아니라, 자기 마음을 보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탐이 일어나고 성냄이 일어나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우리는 그 마음에 끌려 말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무엇보다 먼저 마음을 보는 눈, 즉 알아차림을 기르라고 하셨습니다. 알아차림이 없는 상태가 바로 치이며, 알아차림이 생기는 순간 치는 이미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오늘 보름인등기도의 의미는 이 삼독을 없애겠다는 결심에 있지 않습니다. 등불을 켠다고 해서 어둠과 싸우는 것이 아니듯이, 수행자는 삼독과 싸우지 않습니다. 다만 마음의 등불을 켜서 비출 뿐입니다. 탐이 일어나면 탐을 비추고, 진이 일어나면 진을 비추며, 치가 작동하고 있음을 알게 되면 그 자리에서 다시 마음을 세웁니다. 이 비춤이 반복될수록 삼독은 점점 힘을 잃습니다.
법우 여러분, 새해에 삼독이 줄어들지 않으면 수행이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삼독을 더 빨리 알아차리게 되었다면, 그것이 바로 수행이 깊어졌다는 증거입니다. 예전에는 화를 내고 나서야 후회했다면, 이제는 화가 올라오는 순간을 느끼게 되고, 예전에는 욕심에 끌려가고 나서야 알아차렸다면, 이제는 욕심이 일어나는 초입을 보게 됩니다. 이 변화가 바로 깨달음의 시작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번뇌를 떠나 따로 깨달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삼독이 일어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지혜가 자라고, 그 지혜가 다시 삼독을 비춥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삼독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삼독을 알아차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오늘 이 법문을 통해 법우 여러분께서 자신의 마음을 책망하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수행자의 자세를 다시 한 번 세우시기를 바랍니다.
법우 여러분, 앞선 말씀에서 살펴본 것처럼 탐진치 삼독은 특별한 사람이 지닌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가장 자주 만나는 마음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삼독을 이해한다는 것은 교리를 배우는 차원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일과 직결됩니다. 이제부터는 삼독이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그 순간마다 수행자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탐욕을 다시 들여다보겠습니다. 탐은 단순히 물질을 더 가지려는 마음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인정받고 싶고, 남보다 앞서고 싶고, 손해 보지 않으려는 마음까지 모두 탐의 영역에 들어갑니다. 새해가 되면 특히 이 탐은 더 미묘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올해는 꼭 잘돼야 한다.’, ‘이번에는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고, 그 조급함이 하루를 불안으로 채웁니다. 이때 수행자는 이 생각을 밀어내거나 부정하지 않고, ‘지금 내 마음이 앞서가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이 알아차림이 탐의 속도를 늦추고, 마음을 현재로 되돌려 놓습니다.
다음으로 성냄을 살펴보겠습니다. 성냄은 늘 큰 분노의 형태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짜증, 불평, 냉소, 마음속의 날카로운 말들도 모두 성냄의 다른 얼굴입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성냄은 더 쉽게 드러납니다. 기대가 크기 때문입니다. 수행자는 이때 상대를 바꾸려 하거나 자신을 억누르려 하지 않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거칠어졌구나.’, ‘지금 내 마음이 상처를 느끼고 있구나.’ 하고 먼저 자신의 마음을 살핍니다. 성냄의 밑바탕에는 대개 상처와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성냄은 이미 한 발짝 물러서게 됩니다.
어리석음은 탐과 진을 더 오래 지속시키는 힘입니다. 어리석음이란 판단력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른 채 반응해 버리는 상태를 말합니다. 화가 나면 화가 난 줄도 모른 채 말을 내뱉고, 욕심이 생기면 욕심에 끌려간 뒤에야 후회하는 상태가 바로 어리석음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수행의 첫걸음으로 늘 알아차림을 강조하셨습니다. 알아차림은 삼독을 즉시 없애주지는 않지만, 삼독이 마음을 완전히 지배하지 못하도록 지켜주는 울타리가 됩니다.
법우 여러분, 수행은 삼독이 일어나지 않게 만드는 훈련이 아닙니다. 수행은 삼독이 일어날 때마다 그 자리를 놓치지 않는 연습입니다. 하루를 살다 보면 탐이 몇 번이나 일어나는지, 진이 얼마나 자주 고개를 드는지, 치가 얼마나 쉽게 마음을 흐리게 하는지 보게 됩니다. 이 횟수가 많아졌다고 해서 수행이 안 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만큼 마음을 더 세밀하게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보름인등기도의 의미를 다시 떠올려 봅니다. 어둠은 갑자기 사라지지 않지만, 등불이 켜지면 더 이상 어둠이 전부를 차지하지 못합니다. 삼독도 마찬가지입니다. 탐이 사라지지 않아도, 진이 여전히 올라와도, 치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아도, 마음의 등불이 켜져 있으면 우리는 그 삼독과 거리를 두고 설 수 있습니다. 이 거리가 바로 수행자의 자리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삼독을 다루는 태도에 조급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해 초에 ‘이제는 화를 내지 말아야지’, ‘욕심을 버려야지’ 하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면, 그 마음 자체가 또 다른 탐과 진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수행이란 서두르지 않는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삼독을 줄이겠다는 목표보다, 삼독을 보겠다는 마음이 먼저입니다. 보는 힘이 길러지면, 삼독은 자연스럽게 약해집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하루를 돌아보십시오. 탐(貪)이 일어났던 순간, 진(瞋)이 올라왔던 장면, 치(痴)에 끌려가 버린 선택들이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그 장면을 떠올리며 자신을 책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신 ‘아, 저때 내가 마음을 보지 못했구나.’ 하고 조용히 인정해 보십시오. 이 인정이 바로 수행이며, 이 인정이 다음 순간을 바꿉니다.
부처님께서는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이 수행의 시작”이라고 하셨습니다. 삼독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을 비난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일입니다. 이 정직함 위에서 지혜는 자라고, 그 지혜가 다시 삼독을 비춥니다. 그래서 삼독은 깨달음의 장애물이 아니라,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문이 됩니다.
법우 여러분, 이제 오늘 법문 “탐진치 삼독, 깨달음의 시작”이라는 이 주제가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수행으로 완성되어 가는지를 차분히 정리하고자 합니다. 삼독은 부처님께서 제거해야 할 적으로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반드시 넘어야 할 문이자, 지혜가 자라는 자리로 분명히 가르쳐 주신 대상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이 번뇌가 사라진 뒤에 나타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번뇌를 바로 보았을 때, 그 자리에서 지혜가 싹튼다고 하셨습니다. 탐욕이 일어났을 때 그 탐욕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힘, 성냄이 치밀어 오를 때 그 성냄에 휩쓸리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는 힘, 어리석음에 끌려가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힘, 이 힘이 바로 수행의 열매이며 깨달음의 시작입니다.
삼독은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길들여야 할 대상입니다. 길들인다는 것은 통제하거나 억압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 마음이 어떻게 일어나고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을 주인처럼 대하지 말고, 손님처럼 대하라고 하셨습니다. 탐이 찾아오면 탐이 온 줄 알고, 진이 찾아오면 진이 온 줄 알고, 치가 작동하면 치가 작동하고 있음을 알면 됩니다. 손님은 알아차리면 머물지 못하고, 주인은 모르면 끌려다니게 됩니다.
보름인등기도의 의미를 이 지점에서 다시 되새겨 봅니다. 등불은 어둠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다만 스스로 빛을 내어 어둠을 드러낼 뿐입니다. 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삼독을 공격하고 없애려 애쓸수록 마음은 더 거칠어지고 긴장됩니다. 그러나 알아차림이라는 등불을 켜면, 삼독은 더 이상 마음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삼독은 그대로 있을지라도, 우리는 그 안에 갇히지 않게 됩니다.
법우 여러분, 수행의 길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나는 왜 아직도 이 모양일까”라는 자책을 내려놓는 순간입니다. 삼독이 여전히 일어난다는 사실은 수행이 안 된다는 증거가 아니라, 수행이 계속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예전에는 탐에 끌려가고도 몰랐고, 화를 내고도 정당화했으며,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하면서도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마음을 보고, 느끼고, 돌아볼 수 있습니다. 이 변화야말로 깨달음의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을 아는 자가 세상을 이긴다.”고 하셨습니다. 삼독을 이긴다는 것은 삼독을 없앤다는 뜻이 아니라, 삼독에 끌려가지 않는 자유를 얻는다는 뜻입니다. 탐이 일어나도 반드시 따라가지 않아도 되는 자유, 성냄이 올라와도 반드시 말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도 되는 자유, 어리석음이 작동해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자유, 이 자유가 수행자의 삶을 단단하게 만듭니다.
새해 첫 주말, 그리고 보름인등기도를 봉행하는 오늘, 우리는 이 자유를 서원으로 삼아야 합니다. ‘나는 삼독이 없는 사람이 되겠다.’가 아니라, ‘나는 삼독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되겠다.’는 서원이 더 현실적이며 더 깊은 수행입니다. 이 서원이 서는 순간, 삼독은 더 이상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마음을 점검해 주는 스승이 됩니다.
법우 여러분, 일 년을 살아가다 보면 마음은 수없이 흔들릴 것입니다. 어떤 날은 탐이 하루 종일 마음을 채우기도 하고, 어떤 날은 성냄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수도 있으며, 어떤 날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조차 모를 만큼 어리석음에 빠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오늘 법문의 이 말씀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아, 지금 내 수행이 시작되고 있구나.’, ‘아, 지금 마음을 비출 기회가 왔구나.’. 이렇게 마음을 돌이킬 수 있다면, 그 하루는 이미 헛되지 않은 수행의 하루가 됩니다.
삼독은 우리 삶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삼독이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열어 주신 길이며, 이 길 위에서 우리는 조금씩 더 부드러워지고, 조금씩 더 지혜로워지며, 조금씩 더 자유로워집니다. 이 변화는 소리 없이 일어나지만, 분명히 삶의 방향을 바꿉니다.
오늘 이 법문을 회향하며 법우 여러분께 한 가지를 권해 드립니다. 삼독을 줄이려 애쓰기보다, 삼독을 알아차리는 횟수를 늘려보시기 바랍니다. 그 횟수가 늘어날수록 마음은 점점 밝아지고, 그 밝음이 바로 수행의 빛이 됩니다. 이 빛이 오늘 보름인등기도의 등불과 함께, 법우 여러분의 삶을 오래도록 비추기를 간절히 발원드립니다.
탐진치 삼독은 깨달음의 장애물이 아니라, 깨달음의 출발점입니다. 이 사실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오늘 하루를 수행으로 살고, 이 수행을 내일로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부처님의 가피가 늘 법우 여러분의 삶 위에 함께하시기를 기원드리며, 이 말씀으로 오늘 법문을 회향합니다.
첫댓글 나무 관세음보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