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9장 18-24 난폭한 사울 왕이 왜 예언자로 둔갑했을까?
골리앗을 물리친 후 여성들의 노래에 분노한 사울 왕은 2회에 걸쳐 수금을 연주하고 있는 다윗에게 창을 던졌다. 실패하자 다윗을 천부장으로 강등시켜 변방 장수로 좌천시켰다. 그리고 사울은 첫째 딸 메랍 공주를 다윗에게 주면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라”고 격려하면서도 속으로는 적군에 의해 죽길 원했다. 하지만 다윗이 전쟁 중에 죽지 않자 결혼 직전에 딸을 다른 남자[아드리엘]에게 아내로 주었다. 결혼으로 사기를 쳤다. 사울의 다른 딸 미갈 공주가 다윗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결혼 조건으로 블레셋 군인 포피 100개를 원했다. 포피를 얻는 과정에서 적군과 싸우다가 죽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다윗은 죽지 않고 200개의 포피를 가져왔다. 사울의 계획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자 사울은 요나단 왕자와 신하들에게도 다윗을 죽이라고 공개적으로 명령했다. 그러나 요나단의 도움으로 다윗은 살아났다. 하지만 사울은 다윗의 성공에 분노하여 또다시 수금을 연주하는 다윗에게 단창을 던졌고, 이에 실패하자 살수들에게 집을 포위하고 있다가 다음날 바로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사울의 딸이자 다윗의 아내인 미갈의 지혜로 다윗은 그 밤에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모든 것을 잃었다. 아내, 직장, 집 등. 처음엔 집으로 곧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울이 살아 있는 한 아예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도 생겼을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모를 도망자의 삶이 시작되었다. 다윗은 오갈 데 없는 나그네 신세가 되고 말았다. 고향 집으로 갈 수도 없었다. 사울의 눈이 그곳을 예의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의 몸은 매우 피곤했을 것이고, 그의 마음은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것이다. 아버지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도시락을 건네주러 갔다가 전쟁터에서 골리앗을 물리쳤고, 이를 계기로 사울의 신하가 되었고,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얻었지만, 결국 사울 왕의 표적이 되어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 ‘차라리 골리앗을 물리치지 말았어야 했는데, 사울이 신하로 삼을 때 거절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가 밀려왔을 수도 있었고, 심부름을 보낸 아버지나 노래를 부른 여인들을 탓할 수도 있고, 악독한 사울 왕을 비방할 수도 있었다. 양을 치던 시절이 그리웠을지도 모른다. 혈혈단신이 되어버린 다윗은 이 밤에 어디로 가야 할까? 여러분이라면 어디로 가고 싶은가? 그가 도망간 곳은 사무엘 선지자가 사는 라마였다. 기브아 궁에서 3.2km 떨어진 곳이다.
여러분은 다윗의 선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곳은 사울 왕을 대적할 만한 장수도 군인들도 없었다. 다윗이 찾아간 사무엘은 선지자이지 용맹한 장수가 아니다. 싸움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왜 다윗은 그곳을 선택했을까? 다윗은 사울이 행한 모든 일을 말했다. 고자질? 불평? 아니다. 상황 설명이다. 그러자 사무엘 선지자는 다윗을 데리고 가까운 나욧으로 갔다. 나욧은 어떤 곳인가? 사울을 대적할 만한 곳일까? 군인양성소일까요? 사울의 원수를 갚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모인 곳일까? 아니다. 그곳엔 어떤 군인도 없었다. 그곳은 선지자들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자 기숙사였다. 전쟁과 거리가 먼 곳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사울과 그 군인들이 들이닥친다면 그대로 다윗은 잡힐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다윗이 숨어야 할 곳은 어디일까? 사울에게 반감을 품은 강력한 세력이 모인 곳이나, 기브아 궁전과 멀리 떨어진 깊은 산속이나 인적이 아예 없는 먼 광야의 큰 바위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왜 다윗은 라마 나욧으로 갔을까?
아무리 사울이 악랄해도 하나님이 세우신 사무엘 선지자를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다윗은 판단했다. 모든 사람들도 사무엘을 선지자로 존경하고 있었다. 선지자가 있는 곳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신령한 곳, 즉 성역(聖域)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린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준 분이 사무엘 선지자였다. 다윗에게 사무엘은 영적 스승이자 멘토였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왜 사울이 저러는지 등을 묻고 선지자의 고견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도 다윗처럼 도망자의 삶을 살 때가 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이때 어떻게 해야 할까? 다윗이 라마[나욧]를 찾아간 것처럼 우리도 마음껏 기도하고 예배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교회를 찾길 바란다. 그리고 다윗이 라마의 사무엘 선지자를 찾았던 것처럼 여러분도 하나님의 뜻을 전해주는 목회자를 찾길 바란다. 교회와 목회자는 여러분이 곤고하고 세상 어디에도 기댈 수 없을 때 힘이 되어 줄 때가 많다. 말씀을 듣다가 깨닫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위를 받기도 하고, 다시 살 소망이 생기기도 한다.
히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한다는 뜻은 하나님께 제대로 보고해야 할 사람이므로 정신을 바짝 차려 그릇된 행동을 하지 않도록 타일러 깨우친다는 뜻이다.
그러나 다윗의 예상을 깨고 사울 왕은 다윗을 잡기 위해 전령들을 라마 나욧으로 급파했다. 그들을 맞서 싸울 군인들과 무기가 라마 나욧엔 없었다. 따라서 다윗이 잡히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사울이 보낸 전령들이 라마 나욧에 도착했을 때, 사무엘 선지자의 지도하에 선지자[목회자] 후보생들이 예언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예언은 성령에 감동되어 신령한 계시를 받아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노래]을 말한다. 이 노래[예언]가 군인들을 막을 수 있을까? 이런 예언을 한다고 군인들이 다윗을 잡을 수 없을까? 잡을 수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울이 보낸 전령들은 잡아야 할 다윗은 잡지 않고 그 광경을 보자마자 함께 동화되어 예언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다윗을 잡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져 버렸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의 영이 사울의 전령들에게 임했기 때문이다(20). 첩자가 이 사실을 사울에게 보고했다. 그랬더니 사울은 다른 전령을 보냈다. 그런데 이들도 다윗을 잡지 않고 빠르게 흡수되어 예언을 했고, 세 번째 다시 전령을 보냈는데도 그들 또한 함께 어우러져 예언을 했다(21). 하나님의 영이 그들을 무장 해제시켜 버렸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래서 사울 왕은 직접 갔다. 자기가 가면 다윗을 체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령들에게 일어난 일보다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울은 라마에 있는 세구 지역 우물에서부터 다윗이 숨어있는 라마 나욧까지 걸어가면서 계속 예언이 터졌다. 처음엔 다윗을 잡으려는 생각이 컸지만 시간이 지나자 다윗을 잡으려는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계속 신령한 노래를 불렀고[예언했고],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자마자 그 예언은 더욱 강력해져서 몸을 후끈후끈 달아오르게 했고, 너무 더워서 사울은 왕복을 벗고 예언하기 시작했다. 춤까지 추었을지도 모른다. 멈추고 싶어도 멈춰지지 않았다. 다윗을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었고, 잡고 싶은 마음도 기운도 없었다. 이제는 멈춰지지 않는 이 예언이라도 멈춰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루 종일 예언의 노래를 온몸이 달아오르도록 불렀으니 얼마나 지쳤겠는가! 그래서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누워 있었다.(23,24) 왜 이런 희한(稀罕)한 현상이 일어났을까?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도 임했기 때문이다(23). 하나님은 다윗을 체포해야겠다는 사울의 악랄한 의지를 꺾어버렸다. 다윗은 이 틈을 타서 도망갈 수 있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다윗을 사울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사무엘 선지자와 선지자 후보생들은 예언의 노래를 했고, 사울의 전령들과 심지어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까지 동화되어 예언하도록 하셨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동시에 사울과 그 전령들을 오직 하나님의 힘 하나로 무력화시키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번에도 다윗이 한 일은 하나도 없었다. 하나님이 하셨다.
하나님을 예배와 기도로 열심히 찾고, 그 말씀대로 살다보면,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도우신다. 대적을 막아주신다. 궁지에서 구해주신다.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 왕이 침공했을 때,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대하 32:8)고 외쳐 백성들을 안심시켰고, 선지자 이사야와 더불어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어 기도했을 때,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과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지휘관들을 멸하셨다(3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