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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계획은 '심방마을 → 흰데미산(백석산) → 양각산 → 시코봉 → 신선봉 → 수도산 → 수도산 동봉 → 구곡령 → 심방마을' 11.8km, 5시간의 환종주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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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각산[兩角山]
높이: 1,150m
위치: 경남 거창군 웅양면
양각산의 주봉은 북봉으로 1,150m이며 최고봉은 1,166봉이다. 양각이란 두 개의 소뿔을 의미한다. 화강암 지반을 갖고 높이 솟은 두 봉우리는 동서쪽으로 벼랑을 수반하고 소뿔 형상의 암, 수 자웅 형태로 솟은 두 봉우리 중에 북봉이 정상이다.
양각산의 옛 이름은 금광산(金光山)이며 북쪽 수도산 신성봉을 기점으로 남진하는 줄기 4km 지점에 있다. 정상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거창 두메가 되는 가북면 중촌리 소재 심방소가 안기고 서쪽으로 웅양 댐 위에 자리한 금광마을을 품고 있다.
정상에 서면, 북쪽으로는 대덕산 너머 민주지산, 황악산이, 시곗바늘 방향으로 수도산~단지봉이 펼쳐지고 사야산(? 가야산?), 두무산, 오도산, 기백산, 금원산, 남덕유산, 무룡산 등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산의 특징은 재나 골짜기, 마을 명이 모두 소에 인연하여 빚어진 이름이 많다. 김천시로 넘는 소머리 고개인 우두령을 비롯하여 소구 시를 뜻하는 구수마을, 쇠불알을 뜻하는 우랑마을 등이 있다.
산행은 거창군 웅양면을 기점으로 오르는 코스 외에도 김천시 증산면의 수도사를 기점으로 수도산~양각산을 잇는 코스도 있다. 대중교통을 보면 웅양면을 들머리로 하는 코스가 편리한 편. 그러나 승용차나 전세 차량을 이용한다면 수도산에서 출발해 양각산을 이어 흰데미산을 지나 웅양면으로 내리는 코스도 당일 산행으로 가능하다. 7㎞ 정도에 5시간 정도 소요된다.
수도산
높이: 1,317m, (단지봉: 1326.7m)
위치: 경북 김천시 증산면
가야산 북서쪽 경북 김천과 경남 거창의 경계에 우뚝 솟은 해발 1,317m의 준봉인 수도산(修道山)은 불령산, 선령산이라고도 한다. 참선 수도장으로 유명한 신라말 때의 수도암이 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수도산 동남 능선을 따라가면 단지봉(1,327m)과 목통령을 거쳐 가야산에 이른다. 청암사와 해인사를 잇는 수도산~ 민봉산 ~ 가야산 능선 종주는 평균 고도 1천2백m 고원에 수림과 초원, 바윗길이 어울려 흡사 지리산을 종주하는 느낌이다.
정상 부근에는 억새, 싸리 등 잡초가 무성하고 진달래 군락이 있으며, 정상은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도산에는 청암사, 영남 제일의 선원 수도사, 백련암, 극락암, 수도암 등의 사찰과 암자가 있다. 수도산 북쪽 기슭의 골짜기를 불령동천이라 하는데 심산유곡을 따라 울창한 수목과 옥류가 어우러진 불령동천의 그윽한 풍치는 비경이다. 수도산의 산행은 바로 이 청암사 입구인 평촌리에서 시작한다. - 한국의 산하
2012년 높은 혈압을 낮추기 위해 주말 산행을 다시 시작한 이후 줄기차게 서울 근교 산을 찾아다녔다. 북한산은 가보지 않은 계곡, 봉우리, 능선이 없을 정도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거의 20여 년 만에 지리산 종주 산행 이후,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산이 전국에 즐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인터넷에서 선배 산꾼의 산행기와 각 지역의 교통 상황을 고려해 산행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당연히 계획을 세우는 데 있어 기준이 필요해, 인터넷에서 우연히 찾은 '한국의 산하' 사이트의 300대 산과 해발 1,000m가 넘는 산을 참고했다. 그리고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무박 산행을 당연시하고, 야영을 두려워하지 않던 시절이라 무박 또는 1박 2일로 20km가 넘는 구간을 달리는 산행 위주로 계획을 세웠다.
당연히 그 무박 산행 중에는 '수도암 → 수도산 → 구곡령 → 단지봉 → 좌일곡령 → 목통령 → 분계령 → 두리봉 → 부박령 → 가야산(우두봉/칠불봉) → 서성재 → 백운동'의 24.3km를 달리는 수도산~가야산 연계 산행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 무박 산행 코스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서는 불가능하고 현지에서 1박 또는 산행 중 야영을 해야만 가능한 산행이었다. 해서 수도산~가야산 연계 산행기를 찾아 그들은 어떻게 무박 산행을 했는지 연구하다가 안내 산악회라는 게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들머리까지 데려주고 날머리에서 데려오는 안내 산악회, 내가 찾던 솔루션이다! 이후 각 안내 산악회 사이트를 찾아다니며 산행 계획을 유심히 살폈다. 내가 원하는 건 어떤 산이든 무박으로 20여 킬로미터를 달리는 산행이었다. 당일 산행은 굳이 산악회를 이용하지 않아도 대중교통으로 가능한 산이 많아 눈길도 주지 않았었다.
내가 원하는 무박산행은 안내 산악회에서 찾을 수 없었음에도, 무박산행기는 계속 올라왔다. 해서 그 산행기를 연구하다가 안내 산악회가 진행한 산행이 아니라 회원제의 폐쇄 산악회에서 진행한 산행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고 회원제 산악회에 가입하고 싶지는 않아, 안내 산악회가 진행하는 무박산행이 공지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매주 거의 15km 내외의 산행을 하다 보니 20km가 넘는 무박 산행이란 게 어쩌다 한 번이지 자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최소 1년에 3번은 지리산에 오르니, 1년에 세 번은 무박산행을 하고 있어, 무박산행을 더 늘리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체력적으로나, 산행 기회라는 면에서 더 이상의 무박산행은 어렵다는 판단에 기존에 세워뒀던 무박산행 계획을 두 구간으로 나누어 다니는 거로 변경했다.
그럼에도 수도산~가야산 연계 무박산행 만큼은 진행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기회가 오지 않아 이 산행 계획도 가야산과 수도산으로 나누었다. 그러자 각 안내 산악회에서 진행하는 국립공원인 가야산행은 거의 매달 진행할 만큼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서 가야산[산행기]과 남산제일봉[산행기]을 다녀올 수 있었지만, 수도산 만큼은 진행하는 산악회가 거의 없어 각 산악회 공지만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오지 산행을 자주 기획하는 산악회에서 11월 14일 수도산행을 계획한 걸 발견하고 바로 신청했다. 그게 10월 5일로 이미 4명이 신청했고 내가 다섯 번째 신청자였다. 그리고 산행 하루 전인 11월 13일 현재 41명이 신청해 거의 만원이다.
이번 산행도 단독 산행이고 BPL 취지에 맞게 점심은 산에서 간편한 간식으로 때우거나, 날머리에 식당이 있다면, 빨리 하산해 식당에서 먹을 예정이다. 물론 비상용 버너와 코펠, 라면은 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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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경 기상해 볼일을 보며 산악회 상태를 확인했다. 먼저, 신청 상황을 확인했다. 어제저녁만 해도 몇 자리 남아 있었지만, 없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 환종주라 들머리와 날머리가 같은데, 워낙 오지라 식당은커녕 가게 하나 없다는 거다! 고로 굳이 달려서 하산을 서둘 이유가 없었고, 점심을 산에서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예정에 없던 "영양밥"을 전자레인지로 돌려 보온밥통에 넣으려고 보니, 밥통이 안 보여 영양밥 봉지째 수건으로 둘둘 감아서 디팩에 넣었다. 산에서 차가운 밥 먹는 건 고역이라 차라리 굶는 게 낫기 때문이다.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고 디팩을 배낭에 넣고 집을 나선 시각이 6시 5분경이다.
새벽에 도로를 청소하는 모습에 감사를 표하고 과거 동명탕이 있던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5분가량 기다려, 마을버스를 타고 불광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7시 정각에 개찰구를 나와 신사역 4번 출구로 나갔다. 4번 출구에는 각지로 떠나는 등산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코로나 이전의 시절로 완벽하게 복귀했다. 아무리 그 위험성에 관해 떠들어봐야 코로나가 생활 일부라고 국민 대부분이 인정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그 인파 중에 의외의 인물을 발견했다. 상욱과 같이 있는 흥수다! 특히 상욱은 지난 지리산 도장골 산행 시 세석 정상에서 우연히 만난 이후 두 번째다[산행기]. 둘은 월출산을 간다고. 셋이 코로나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인파에 놀라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각 산악회 버스가 속속 도착했다.
먼저 상욱과 흥수가 월출산행 버스에 타고, 나도 뒤에 대기하고 있던 수도산행 버스 짐칸에 배낭을 넣고 독서와 음악 감상용 패드와 카메라를 들고 버스에 탔다. 짙은 안개를 뚫고 버스는 달려 정신을 차려보니 9시 15분경 인삼랜드 휴게소로 들어가고 있었다. 역시 시간 보내는 데는 책 읽는 거만큼 좋은 게 없다. 신사역에서 미처 해결하지 못한 걸 해결하고 추워서 바로 버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다시 들머리를 향해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지도를 나눠준 후 산행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내게 중요한 건 산행 시작 시각과 마감 시간인데, 11시경 들머리 도착 예정에 마감 시각 17시라고 했다. 고로 주어진 시간은 6시간인데, 어차피 조기 하산한다고 해도 할 일도 없어, 다른 건 다 무시하고 주요 봉우리 도착 시각만 확인했다. 흰데미산 11:50, 양각산 1:00, 시코봉 2:00, 수도산 3:00, 이 시각에 맞춰 움직일 생각이다.
예정보다 5분 늦은 11시 5분에 들머리이자 날머리인 심방마을에 도착했다. 이미 도착 10여 분 전 버스에서 산행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버스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게 "반달가슴곰 출현 주의" 경고 입간판이다. 수도산에 출몰하는 곰은 빠삐용 오삼이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놈이라 한 번쯤 보기를 원했지만, 수도산을 떠나 금오산에 갔다는데 다시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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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7분경 선두 그룹과 함께 산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오지 산행이 대부분 그렇듯이 시작부터 낙엽 쌓인 급경사에 관목지대라 산행이 쉽지 않았다. 특히 작은 계곡을 따라 난 길이라 간간이 너덜도 있어 더 어려웠다. 시간 계획상 11시 50분까지 들머리에서 1.6km에 불과한 첫 번째 산이자, 봉우리인 흰데미산(흰더미, 백석산)까지 가면 되는 거라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천천히 올라가며 뒤에서 따라오는 등산객에게 길을 양보했다. 그리고 11시 27분에 첫 고비인 '아홉사리고개'에 도착했다. 달릴 등산객은 이미 앞서갔고 별로 급한 거 없는 등산객만 뒤에 유유자적하며 따라왔다. 유유자적에 바람이 찼음에도 경사가 워낙 심해 비 오듯 땀이 내려 두꺼운 바람막이를 벗어 배낭에 넣었다. 과거라면 배낭에 걸쳤겠지만, 지난 도장골 산행에서 아끼던 옷을 분실한 경험[산행기]이 있어 넣었다가 꺼냈다가 하는 게 귀찮지만, 배낭에 넣는 습관을 들이는 중이다.
이 급경사에 상여를 메고 온 모두에게 경의를 표하며 돌로 담을 쌓은 묘를 지날 때, '급경사를 마다치 않고 후손이 성묘는 올까?'라는 쓸데없는 고민을 하기도 했다. 전혀 쓸모없는 고민을 하며 헉헉대고 올라 정확히 11시 51분에 흰대미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석에는'흰덤이산'이라고 음각되어 있는데, 왜? 흰대미산이라 부를까? "덤이"는 표준어 "대미"는 사투리가 아닐까? 그런데 사전을 찾아보면 '덤이'가 아니라 '더미'가 표준어고, 사투리는 '데미'가 맞다! 고로 지역에 맞게 '흰데미산'이라 부르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럼 정상석도 바꿔야 한다. 어쨌든 나라도 똑바로 쓰기로 했다.
줄 서서 인증을 남기는 등산객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요청하기가 어려워 인증은 포기하고 정상석만 사진으로 남겼다. 물론 늘 배낭 옆 주머니에 들어 있던 삼각대가 있었으면, 인증을 남겼겠지만, 배낭을 버스 짐칸에 넣는 순간 삼각대가 빠진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흰데미산 정상부터 저 멀리 보이는 수도산까지는 탁 트인 능선이라 조망이 훌륭했다.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날이 흐려 멀리까지 보이지 않는다는 거! 앞에 보이는 소머리에 솟은 두 뿔을 보니 정확히 '양각산'이라는 이름이 맞다. 기왕이면 '소뿔산'이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양각산 뒤로 보이는 봉우리가 수도산이 맞아 보이는데, 산악회에서 나눠 준 지도에 의하면 흰데미산에서 수도산까지가 5.5km로 거리가 좀 되는데, 보이는 건 그렇지 않아, '쭉 뻗은 능선이 좌로 꺾어 달린 후 우뚝 솟은 봉우리가 '수도산'이 아닐까?' 혼자 생각하며 양각산을 향해 갔다.
양각산은 두 개의 뿔이라는 의미고 정상이 북봉, 그보다 낮은 좌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두 뿔 사이의 거리는 400m다! 12시 36분에 좌봉에 도착했다. 뿔 답게 정상은 암봉으로, 짧지만 암봉을 기어오르는 재미도 있었다. 그리고 400m를 더 가 12시 51분에 북봉인 양각산 정상에 도착했다. 산악회 시간 계획보다 9분 빠르지만, 어쨌든 비슷한 시간에 맞춰 움직이고 있다. 정상에는 사진을 찍는 등산객이 줄을 서 있었다. 역시 인증은 포기하고 정상석만 사진으로 남기고 다음 목표인 시코봉으로 향하기 전에 앞에 펼쳐진 능선과 좌, 우, 앞, 뒤 산세를 감상했다. 정확한 위치와 모양으로 산이름을 구분할 수는 없지만, 이 중에는 대덕산, 민주지산[산행기], 황악산[산행기], 수도산, 단지봉, 가야산[산행기], 두무산, 오도산, 기백산[산행기], 금원산[산행기], 남덕유산[산행기], 무룡산[산행기], 황매산[산행기] 등이 있을 거다.
1시가 가까워 점심시간이 지났고, 배도 고파 다음 목표인 시코봉에 도착하기 전에 적당한 장소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해서 길을 가며 식당을 물색했지만, 가끔 작은 암봉을 제외하면 흙산답게 바위를 찾기 힘들어 주저앉아 밥 먹을 만한 장소가 없었다. 다른 등산객은 쌓인 낙엽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지만, 그러기는 싫어 바위를 찾아 계속 갔다. 그러다 누군가 '양각지맥'이라는 이정표를 만들어 정상임을 알린 작은 봉우리를 넘자 급경사 내리막길 옆으로 바위가 있어 그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디팩을 꺼내 김치를 꺼내고 수건으로 둘둘 말아서 가져온 영양밥을 꺼내고 보니 아직 따뜻했다. 급조한 보온 장치가 효과가 있었다. 따뜻한 생강차와 함께 영양밥으로 점심을 먹고 1시 20분경 내가 있었다는 모든 흔적을 인멸하고 그 자리를 떠나 시코봉으로 향했다.
시코봉으로 향해 가며 저 멀리 우뚝 솟은 봉우리를 보니 '가야산'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산이 허허벌판에 홀로 우뚝 솟은 모양새라 내가 아는 가야산과는 달라 혹시 황매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해서 폰의 등산 앱 지도로 확인해 보니 가야산이 맞았다. 다만, 그동안 봤던 가야산이 앞면이라면 지금 보고 있는 건, 뒷면이라 달리 보였던 거였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고 있는 능선이 가야산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몇 년 전 꿈꾸었던 수도산~가야산 종주 능선이다! 물론 흰데미에서 시작해도 되겠지만. 시코봉으로 향하는 능선상에는 암봉이 몇 개 있어 그 위로 기어오르는 재미가 쏠쏠했다. 물론, 암벽을 무서워하는 등산객을 위해 우회하는 등산로가 있었지만, 남아도는 게 시간인데 우회할 까닭이 없었다. 그리고 그 암봉에 오르면 주변 산세가 더욱 잘 보여, 날이 흐려 시야가 좁은 걸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시코봉임에 틀림없는데 정상에 하얀 물체가 보였다. 그게 뭘까 궁금해하며 올라, 정상에 도착해서 확인한바 정상석이었다. 그 시각이 1시 59분으로 산악회 계획 시각 2시보다 1분 빠르게 도착했다. 그런데 내가 원한 바는 아니었지만, 시코봉 전에서 점심을 먹고 유유자적 시코봉으로 향하는 동안 나를 추월했던 대부분 등산객을 다시 추월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정확히는 그들이 푸짐한 점심을 먹느라 시간을 지체한 까닭으로 정상 주변에는 인적이 없어 이정표에 카메라를 거치하고 이번 산행 처음으로 인증을 남겼다. 처음 산행 계획을 보고 수도산의 일개 봉우리에 불과한데 왜 의미를 두는지 이해가 안 됐지만, 정상석 뒤의 글을 읽고 나서 주요 봉우리란 걸 알게 됐다. 과거 백두대간 황석산을 오르기 위해 올랐던 우두령으로 이어지는 길목이자, 수도지맥과 양각지맥이 분기하는 봉우리다. 주변을 사진으로 남기고 최종 목표인 수도산으로 향했다. 수도산 정상까지는 1.4km가 남았고, 산악회 시간 계획에 따르면 한 시간이 걸린다. 아니, 한 시간이 걸려서 가면 된다!
수도산 정상을 향해 갈수록 가야산이 가까워졌고, 가야산으로 향하는 꿈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내가 흰데미산 정상에서 수도산 정상이 아닐까 했던 봉우리는 수도산 정상보다 높은 수도산 단지봉이었다. 그리고 정상에는 선두그룹이 사진을 찍고 있는 게 보였다. 이번 산행 최고 높이인 1,317m의 수도산 정상은 당연히 암봉이었고, 그 암봉에는 안전장치로 밧줄과 목책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번 산행 코스에서는 처음 보는 목책과 밧줄이다. 그 최고봉을 헉헉대고 오르자 몇몇 등산객이 인증을 찍고 있었는데, 그들은 시코봉 이후 내가 유유자적하는 동안 나를 추월했던 두 쌍의 부부다. 그래도 최고봉이라 인증을 남겨볼까 했지만, 한 부부가 서로를 찍어주는 장수만 장난이 아니었고, 다음 부부도 그 못지않을 거라는 생각에 인증은 포기하고 자리바꿈하는 틈을 노려 정상석을 찍고, 흰데미산에서 부터 시작된 능선도 사진으로 남기고 재빨리 다음 봉우리로 향했다.
수도산 정상에서 70여 미터 떨어진 곳에는 수도암과 단지봉으로 향하는 능선 갈림길이 있다. 수도산~가야산 종주의 사실상 출발점이다. 그 갈림길에서 단지봉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낮은 봉우리에 올라야 하는데 그 봉우리가 수도산 동봉이다. 수도산 동봉은 암봉으로 등산객 한 명이 쉬고 있었다. 분위기를 보니 나처럼 번잡한 정상을 피해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은 거 같았다. 그가 자리 잡은 곳을 우로 돌아 바위 정상에 올라가 배낭을 벗고 편한 자세로 주변을 둘러봤다. 내가 지나온 능선과 지금 앉아 있는 동봉에서 가야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저 멀리 덕유산, 황매산 등이 보였다. 정확히 어느 산이 황매고 덕유인지 구분은 할 수 없었다. 다만 어림짐작할 뿐! 그리고 거의 한 달이 넘게 가지고 다니던 구운 달걀을 꺼내 뜨거운 생강차와 간식으로 먹으며 앞에 보이는 수도산 정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구경했다.
얼추 산악회 시간 계획에 맞춰 3시 5분경 동봉을 떠나 단지봉으로 향하는 능선을 따라갔다. 이번 산행 후 봉 감독과 수도산에 관한 얘기를 나누다가 내년(2021년) 봄에 수도산~가야산 능선 종주를 시도하자고 얘기했으니, 내년 5월 이 길을 다시 달릴 수도있지만,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기껏 올라왔다가 내려가서 다시 올라가는 건 이 코스라고 다르지 않아 벌써 무섭기까지 하다. 수도산 정상보다 단지봉이 더 높다! 당시만 해도 종주할 계획이 없어, 종주한다면 쉽지 않겠다는 생각만 하며 길을 가 3시 33분에 들머리이자 날머리인 심방으로 하산하는 구곡령에 도착했다. 산악회 계획에 따르면 3시 40분까지 도착하면 된다. 7분 빠르다! 마감 시각보다 10분 정도 일찍 도착하는 게 예의니, 시간은 잘 맞추고 있었다.
급경사의 조림지역을 10분여 내려가니 대도시 근교를 제외하고 대한민국 깊은 산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검은 튜브(고로쇠 수액 수탈용)가 지나가는 작은 계곡을 만났다. 이번 산행 처음으로 만난 물이 흐르는 계곡이다. 거창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씻을 곳도 마땅치 않다고 얘기했었지만, 이 물을 보니 탁족하는 건 무리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계속 내려가자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우렁차게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요란했다. 구곡령에서 1km를 내려오면 임도를 만나는데 그 임도는 계곡을 지나야 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계곡에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물이 흐르고 있었다. 계곡이라 등산로라고 부를 것도 없었지만, 어쨌든 길 비슷한 곳에서 10여 미터 상류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아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계곡에 담갔다. 역시 예상대로 10초를 견디기 힘들었다. 그리고 대부분 산에서 행하는 신성한 의식으로 머그에 계곡물을 담아 한잔!
시작이 어렵지, 누군가가 시작하면 다 따라 하는 게 심리라고, 탁족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계곡을 지나던 등산객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씻기 시작했다. 유유자적 계곡에서 노닥거리고 있는데 산행 인솔 대장이 후미 그룹을 인도하여 계곡을 건넜다. 그럼 이제 일어날 시간이란 얘기다. 해서 새 양말을 꺼내 신고 배낭을 둘러메고 계곡을 건너 임도로 향하는 길에 들어섰다가 뭔가 이상해 이것저것 확인해 보니 선글라스가 없었다. 와이프가 사준 지 3달도 안 된 거다. 해서 어디서 잃어버렸나 생각해보니 탁족하기 전 물에 빠진 걸 건져 바위에 둔 게 기억났다. 해서 배낭을 벗어 두고 돌아가 바위에 얌전히 있는 선글라스를 들고 돌아왔다. 그러느라 다 내려가고 제일 후미가 됐다.
4시 10분에 임도에 도착했다. 임도 시작 지점에서 버스가 기다리는 심방마을 버스정류장까지는 2.8km 그럼 늦어도 4시 50분까지는 도착한다. 문제는 내 뒤에 아무도 없다는 거! 해서 남들이 민폐라 생각하기 전에 도착하기 위해 속도를 냈다. 시속 4km 정도. 계곡을 따라 임도가 있었는데, 산 쪽에서 물소리가 나 살펴보니, 산사태가 났지만, 나무가 버티고 있고 구멍이 뚫린 곳에 물이 떨어지고 있었고, 누군가 냄비로 그 물을 받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지나치면 雲峰이 아니라 한 모금하기 위해 냄비를 꺼냈다. 그런데 냄비를 둔 지 오래됐는지 바닥에 침전물이 쌓여 있었다. 흙이나, 산삼, 도라지, 살무사 썩은 건 괜찮지만, 지렁이는 아니라 한 모금을 포기하고 원위치시키고 갈 길을 갔다.
그렇게 내려가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 화장실이 있었고, 나에 앞서 내려갔던 예닐곱 명의 남녀가 볼일을 보고 다시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임도 끝 지점이 아스팔트 포장도로의 시작으로 버스정류장까지는 아직 1.5km 정도가 남았다. 그들을 보자 최소한 내가 꼴찌는 아니라는 생각에 안심하고 그들을 추월해 지금까지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갔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그 모두에게 다시 추월당했다. 그들이 걷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서두르거나 뛴다는 느낌 없이 아주 편하게 가고 있었는데, 나를 추월했고 갈수록 거리가 멀어졌다. 해서 그들의 속도가 궁금해 폰의 등산 앱으로 현재 내 속도를 확인해 봤다. 4.5km/h! 그럼 그들은 최소한 5km/h 이상이라는 얘기다! 그들로부터 멀어지지 않게, 거의 달리다시피 따라가 4시 40분에 버스가 기다리는 곳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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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시각보다 16분 빠른 4시 44분에 버스에 도착했다.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한 산행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가 걸어오는 걸 본 인솔 대장이 “아직 두 명이 도착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장 말에 따르면 좀 전에 전화가 왔는데 이제 막 임도에 도착했다는 거다. 나보다 늦은 등산객이 있다는 거에 놀랐고, 이제 임도라면 빨라야 5시 반경 도착인데, 그때까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다가 배낭을 벗어 짐칸에 싣고 신발을 갈아 신은 후 버스 자리에 앉아 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다시 버스에서 내려 주변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5시 7분경 산 쪽에서 하얀 승용차가 우리 쪽으로 오고 있었다. 속으로 '나라면 저 차를 얻어 타고 왔을 거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람은 다 똑같다고 그 차가 버스 옆에 정차하더니 등산객 두 명이 내렸다.
늦은 부부 등산객의 순발력 덕분에 많이 늦지 않은 5시 9분에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불을 끈 상태에서 패드로 책을 읽고 있는데 옆자리 등산객이 너무 밝은데 좀 어둡게 해 줄 수 없냐고 부탁해 패드를 끄고 나도 잠을 청했다. 한 10분가량, 잔 거 같은데, 버스가 휴게소를 들어갔다. 천안삼거리휴게소다. 그럼 서울이 멀지 않다는 얘기다. 버스에서 내려 볼일을 보고 편의점에서 식혜를 하나 사 마시고 버스에 탔다. 다시 출발한 버스는 8시 47분에 출발지인 신사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9시 30분경 집에 도착하는 거로 이번 수도산행을 마쳤다. 물론 하산주는 빨갱이를 반주로!
예정대로 산악회 계획 A 코스인 '심방마을 → 흰데미산(백석산) → 양각산 → 시코봉 → 신선봉 → 수도산 → 수도산 동봉 → 구곡령 → 심방마을'의 12.56km(트랭글 기준), 5시간 40분의 흰데미산부터 수도산 정상에 이르는 탁 트인 능선을 달렸다. 이동 5시 13분, 휴식 27분!
크게 기대하지 않은 산행이었는데, 꼭 한번은 걸어야 하는 능선이었다. 새로운 산을 찾지 못하면 다시 갈 수도!
가능하면 날씨를 확인하고 탐방하기를 권한다. 경상도의 오지 산을 한눈에 살펴볼 좋은 기회다!
해발 1,000m 넘는 남한의 산에 오르기 시작해 100번째 산에 수도산을 올렸다. 물론 한국의 산하 기준!
첫댓글 서두르지 않고 주어진 시간을 여유 있게 다 활용해서인지, 오늘 몸 상태가 최근 산행 다음 날 중 최고!
그리고 무음주 산행에 하산주도 반주 정도만 해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