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의 보행권을 보장하라!”
시각장애인 유도블록 미설치 차별진정
일시 : 2021년 12월 23(목) 11:00 / 장소 : 국가인권위원회 앞
진정단체 : 동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 요구사항
1. 서울교통공사 지하철5호선 상일역5번출구에서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 가는 길(아파트 단지내 최단거리)에 유도블록 설치
2. 사유지라도 복지관이나 공공기관 등을 공공성을 띤 장소 등으로 통하는 경로(길)에 시각장애인 이동에 필요한 경우 유도블록 등의 편의시설 설치가 가능도록 법적(법령, 조례, 지침 등) 근거를 해당 기관(강동구청, 복지부)에 만들 수 있도록 요청
■ 내용
1. 귀 언론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2. 서울시 강동구의 한 주공아파트가 낡아 단지를 허물고 2020년 민영건설사에 의해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문제는 기존의 주공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르는 시각장애인 유도블록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기존에 유도블록이 있었던 길목은 이 아파트를 지나 시각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각장애인복지관으로 가는 길목이었습니다. 차별진정을 하는 피해자 중 한 명은 복지관에 가기 위하여 20여년 가까이 오가던 길이 었습니다.
3. 시각장애인들이 가는 복지관은 점자도서, 체육시설 등 시각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복지관이라 그 길을 통과해야하는데 지금은 유도블록이 사라져 혼자서는 아파트를 통과하기 어렵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그 길을 같이 통과하거나 아니면 빙 돌아가느라 평소보다 3배 이상의 거리를 흰 지팡이에 의지해 가야 합니다.
4. 피해자인 시각장애인이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2020년 강동구청에 민원을 넣었습니다. 민원을 수령한 구청은 실사를 하고나서는 사유지라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 전까지 시각장애인들이 복지관을 가기 위하여 오가던 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건설사가 주공아파트에 살고 있던 장애인들의 여론을 충분히 반영을 해야 했습니다.
5. 2019년 경 피해자가 아파트를 시공하기 위하여 설립된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재건축조합)에 아파트를 지을 경우 시각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게 유도블록을 설치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완공된 후 보니 승강기의 앞이나 아파트 진입 앞에만 점자블록이 있고 복지관으로 가는 길에는 점자블록이 없었습니다.
6. 시각장애인 몇이 현재 신축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제기하는 길목은 20여년가까이 이용한 시각장애인이 있는 등 시각장애인들이 복지관에 가기 위하여 습관적으로 이용하던 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재건축조합은 시각장애인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여 건설사에 전달했어야하고, 건설사는 시각장애인의 편의를 위하여 유도블록을 설치해야 했습니다. 이는 해당 구청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영아파트라 사유지이기는 하지만 시각장애인의 민원을 사유지라는 이유로 반려할 것이 아니라 시각장애인들이 관행적으로 이용하던 길목이고, 복지관을 이용하기 위하여 필요한 길이라면 공익적인 측면에서 검토를 했어야 했습니다.
7. 하지만 주택조합이나 건설사, 해당 구청이 시각장애인의 이동권 측면을 고려하지 못한 조치 때문에 복지관을 이용하는 시각장애인들이 불편을 겪는 등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8. 이에 주택조합, 건설사, 해당 구청을 차별진정하며 시각장애인 유도블록 설치를 요구하는 것은 물론 유사한 사례를 막기 위한 법적, 정책적 마련을 조치를 요구하고 있사오니 시각장애인의 이동권을 위하여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피해자(시각장애인)의 말
저는 강동구 상일동 000 재건축조합원으로 2020년 2월 말 입주를 했습니다. 입주 전인 2020년 1월 11일에서 13일까지 아파트 사전점검을 했습니다. 그 때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고 몹시 당혹스러웠습니다. 재건축이 되기 이전에 주공아파트 시절 3단지 아파트 중앙을 남북으로 길게 가로지르던 유도블록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저는 중도에 실명한 1급 시각장애인입니다. 20년 세월을 이 유도블록을 따라 아파트 단지를 자유롭게 왕래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유도블록이 저에게는 눈이요, 손이요, 발이었던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내에서 이동하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재건축이 된 이후에 이 유도블록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4천세대가 넘는 넓은 광장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어떤 이정표도 없었습니다. 사막에 홀로 선 느낌이었습니다. 방향을 잡을 수 없습니다. 위치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집을 찾아갈 수도 없습니다. 제 말이 의심스럽습니까? 그러시다면 담당자가 안대를 끼고 직접 집을 찾아 가는 실험을 한 번 해보시지요.
저는 이 아파트가 재건축되면서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준공이 되고, 입주하면 이전보다 훨씬 더 편리하고, 자유롭게 보행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저에게는 헛된 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곳 상일동에 주공 아파트가 재건축되기 전에 장애인이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아파트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유도블럭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 동안 사회적 약자와 장애인들을 위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많이 발전하고, 진보했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 이미 수 십년 전에 설치되었던 장애인을 위한 편의 시설을 오히려 걷어 치워버렸습니다. 이것이 선진화된 복지정책입니까? 건물이 화려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조경을 아름답게 꾸민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안에 사는 주민이 자기 집도 찾아갈 수 없다면 개발이라는 것이 껍데기만 갈아 치운 전시행정에 불과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방식으로 현 정부가 추구하는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아파트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중앙로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 3단지 주민 이외에도 5단지, 6단지, 7단지 주민이 함께 이용합니다. 이 단지들 안에는 저 말고도 여러 명의 시각장애인이 살고 있습니다. 또 이 길은 상일역에서 상일동 주민센터, 고덕사회체육관 그리고 한국시각장애복지관을 직선으로 연결하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니까 상일동에서 이 길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함께 더불어 이용하는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통로입니다. 물론 이 길이 사유지라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 길은 위치상으로나, 유동성으로 보거나 상일동에서 공용도로 못지않게 가장 중요한 이동경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지역에 유도블록과 같은 편의시설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사회적 약자의 이동권과 접근성이 어떻게 보장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사라져버린 유도블록 때문에 지난 해 초 구청에 민원도 넣었습니다. 민원을 받고 온 구청은 어이가 없게도 사유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했습니다. 아무리 사유지라도 저와 같이 오랜 세월을 이 길을 이용했던 시각장애인이 있고, 아파트에 시각장애인이 살고 있다면 공익적 차원에서 판단을 해야 함에도 사유지라는 이름 하나로 민원을 종결하는 것을 보고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지금의 문제는 등록된 시각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시각장애인의 범위가 날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황반부 변성(망막에 상이 맺히는 중심부에 문제가 생기는 질환으로 시각장애 발생의 원인 가운데 하나)과 같은 노인성 질환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경희대학병원의 한 조사에 의하면 지난 9년간 이런 노인성 질환으로 인한 시력장애 현상이 8배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시력장애로 인해 보행에 지장을 받는 인구가 그만큼 더 많아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니겠습니까? 소형아파트로 시작한 이 단지는 어느 지역보다도 노인인구가 많습니다. 이런 지역에 노란색깔을 띤 유도블록은 그들에게 필수불가결한 편의 시설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취지로 차별진정에 피해자로 나섭니다. 저와 같이 사유지라는 이유로 이동권에 제약을 받는 시각장애인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사유지이건 공유지이건 시각장애인들의 자유로운 이동권을 위하여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는 인식하에 차별진정에 참여합니다. 이러한 취지에서 많은 분들의 관심을 당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