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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06일, 주현 후 제5주
[*. 성경, 찬송가를 준비합니다.]
*. 예배의 부름: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2022년 2월 06일, 주현 후 제5주 주일입니다. 함께 인사 나누고 예배 시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
예수님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 ~
성령님 안녕하세요, 평안합니다. ~
*. 다 함께 조용한 기도를 함으로 주현 후 제5주 주일예배를 시작합니다.
온전하신 하나님, 지난 한 주간 주님의 은혜 가운데 지켜 주시고, 오늘 거룩한 주일 맞이하여 예배 가운데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 우리의 온 몸과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주님 기뻐 받으실 신령과 진정의 예배 되기를 소원합니다. 예배 가운데 임재하셔서 영광 받아 주시고, 예배에 참여한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죄와 허물이 사함을 얻게 하시고,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힘과 능력과 위로와 소망을 얻게 하옵소서. 예배의 처음부터 나중까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홀로 영광 받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하였습니다. 아멘.
*. 경배찬송(일어서서):
찬송가 21장 (다찬양하여라)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 성시교독(일어서서):
시편138:1~8입니다. 한 절씩 교독합니다. (성경)
1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송하리이다
2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
3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
4 여호와여 세상의 모든 왕들이 주께 감사할 것은 그들이 주의 입의 말씀을 들음이오며
5 그들이 여호와의 도를 노래할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크심이니이다
6 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심이니이다
7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8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보상해 주시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
*. 대표기도:《뉴질랜드 기도서》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우리가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께 죄를 범했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구주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뉘우칩니다.
주의 자비로 과거에 행한 일을 용서해주시고
지금 우리의 행위를 고치도록 도와주시고
미래의 삶을 인도하소서.
그래서 우리가 주의 뜻을 기뻐하며
주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말씀: 누가복음5:1~11 (성경)
1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 특별찬양:
88장 (내진정사모하는)을찬송합니다.
*. 말씀선포: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1. 들어가는 말
오늘은 주현 후 제5주 주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시몬 베드로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등 함께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좇아 제자(그리스도인)가 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 때로 믿는 그리스도인과 좇는 그리스도인을 구별하기도 합니다 만은, 정도의 차이일 뿐, 모두 그리스도를 믿고 좇고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믿기, 좇기, 닮기가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그리스도를 믿기도 하고, 좇기도 하고, 닮기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 인간상(人間像)을 그리면서 공자는 군자를, 노자-장자는 도인을, 석가모니는 붓다를, 그리고 플라톤은 철인을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참 인간상으로 ‘하나님의 자녀’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자신도 하나님의 아들이라 자리매김하십니다. 참 사람, 곧 ‘참 사람의 아들-딸(人子)’이 곧 ‘하나님의 아들-딸(神子)’이 되는 것입니다. 이 가르침이 예수님의 가르침, 기독교의 가르침의 핵심이고, 복된 소식, 복음(福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인간이시며,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기도 하고, 좇기도 하고, 닮아 가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을 통칭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는 과정을 살펴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인, 그리스도를 믿고, 좇고, 닮아가는 ‘참-사람,’ ‘하나님의 자녀’에 자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 등 갈릴리의 어부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갈릴리 바닷가 작은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지 못하고 낙담한 채로 그물을 씻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배에 오르시고 이러저러한 말씀을 들려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르침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아마도 고기를 잡지못하고 허탕을 친 베드로를 포함한 고기를 잡던 사람들의 낙담하는 모습이 예수님의 눈에 밟히셨을 것입니다.
어린아이 시절에는 구슬, 딱지 등을 좋아합니다. 조금 크면 유치해지죠.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어머니 출근 시간에 맞추어서 저도 학교에 나가야했습니다. 항상 일찍 가게 되었죠. 이런 이유로 학교 교실 열쇠를 담임 선생님께서 제게 맡기셨습니다. 어느 날, 열쇠를 잃어버렸는데, 저는 하늘이 무너진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저 때문에 교실 문을 못 열고 결국은 반 학생들 전체가 교실에 못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너무 고민을 하다가 결국 학교를 빼먹고 아현동에서 구로동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 알고 보면 별 것 아닌데 말입니다. 사춘기가 되면 떨어지는 낙엽에도 울컥하고는 하죠. 조금 지나면 ‘왜 그랬나~’ 하면서 쓴 웃음을 짓습니다. 별 일이 아니니 말입니다. 사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별일 아닌 것이 대부분입니다. 따지고 보면 인생에 별 일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조금만 아프거나, 실망스러운 일이 있거나, 힘들면, 곧장 마치 죽을 것처럼 마음을 빼앗기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별 일도 아닌데 별 일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얕은 물가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합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에 있다는 주님의 말씀에서 회개하라(메타노이아, meta-noia)는 말은 생각을 초월하라는, 바꾸라는 말입니다. 얕은 곳, 찰랑이는 곳에 머물지 말고 조금 깊은 곳으로 가 보라는 것입니다. 조금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려보라는 것입니다. 핑크 빛을 좋아하고 구슬 딱지에 집착하는 유년기에서, 떨어지는 낙엽에도 눈물 글썽이는 청소년에서, 조그마한 작은 일에도 금방 마음 빼앗기는 어린아이 같은 어른으로부터 조금씩 더 (more and more) 깊은 곳으로 나아가 보라는 것입니다.
3.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립니다. 베드로 이야기의 핵심은 내 생각과 경험으로 밤새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지 못했으나,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내가 그물을 내리겠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세 가지의 지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씀, 나(베드로), 그물입니다. 말씀에 의지해서 내가 그물을 내리겠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말씀이 빠졌습니다. 내가 그물을 내린 것입니다. 우리 삶은 늘 세 가지 지평이 잘 지내야 평화롭고, 건강하고, 행복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지평입니다. 삼위가 일체로 화(和)할 때 모든 문제가 풀립니다.
동아시아의 삼재(三才), 천지인(天地人)이나, 서양의 지정의(知情意), 진선미(眞善美) 등이 세 지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몸이라는 측면에서 허준은 그의 저서 <동의보감>에서 신기정(神氣精) 세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허준이 처음으로 신기정을 이야기 한 것은 아닙니다 만은) 제가 즐겨 말씀 드리는 머리-가슴-팔다리도 이 세 지평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놀이로 하는 ‘가위바위보’도 이 세 지평을 보여줍니다. 기독교 교리로 말하면 성부성자성령 삼위의 지평이 됩니다. 이 셋의 조화(調和)속에 모든 문제의 해법이 들어 있습니다. 말씀이 성부하나님의 지평이고, 나(베드로)는 성령의 지평, 그물은 성자의 지평이 됩니다.
[*. 여기서, 성부하나님의 지평은, 천지인의 천(天), 지정의의 지(知), 진선미의 진(眞), 신기정의 신(神), 그리고 가위바위보의 보에 해당합니다. 성자하나님의 지평은 천지인의 지(地), 지정의의 의(意), 진선미의 선(善), 신기정의 정(精), 그리고 가위바위보의 바위에 해당합니다. 성령하나님의 지평은 천지인의 인(人), 지정의의 정(情), 진선미의 미(美), 신기정의 기(氣), 그리고 가위바위보의 가위에 해당합니다. 이 세 지평이 서로서로 잘 지내면 평화입니다. 천지인(天地人), 지정의(知情意), 진선미(眞善美), 신기정(神氣精), 가위바위보 등은 서로서로 지평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공명합니다.]
예를 들면 신기정의 신(神)은 자율적인 힘입니다. 모든 것을 풀어 놓는 가위바위보의 보에 해당합니다. 신기정의 기(氣)는 파동적인 힘입니다. 하늘과 땅을 향해 손가락을 편 가위바위보의 가위입니다. 신기정의 정(精)은 맺히거나 뭉치는 힘입니다. 가위바위보의 바위입니다. 가위바위보에서 둘이 만나면 갈등이 생깁니다. 이기거나 지거나 할 뿐이죠. 가위바위보 셋이 모여 조화를 이루면 못이길 것도 한 다리 건너 이기기도 하고 이길 것도 한 다리 건너 지기도 합니다. 나와 다른 것(사람)과 화(和)를 이루는 길이 열립니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에서 ‘철인’이라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을 그리고 있는데, 철인 교육의 마지막 과목이 화성학입니다. 곧 (소리의) 화(和)인 것입니다. [*. 철인 교육에는 다섯 가지 과목이 있습니다. 산수, 평면기하학, 입체기하학, 천문학, 그리고 화성학입니다.] 평화는 나와 다른 것과 잘 지내는 것입니다. 화성학에 있어, 예를 들면, 도미솔과 솔시레 각 세 음이 화(和)하여 아름다운 화음, 곧 씨코드와 지코드의 음을 내죠. 플라톤이 화성학을 이야기 한 것은, 음의 조화뿐 아니라 사람 삶의 조화, 평화를 염두에 두고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어떻게 하면 이 세 지평이 잘 지낼 수 있을까요? 근본 원리를 알려드립니다. ‘가위바위보’로 이해하면 쉽습니다. 보는 천이고, 주먹은 땅이고 사람은 가위입니다. 사람(가위)이 땅(바위)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사람(가위)은 땅(바위)을 이길 수 있는 하늘(보)을 움직여야 합니다. [*.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은 하나님을 늘 이겨왔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져 주신 것이지요.) 먹지 말라는 열매도 먹고, 하지 말라는 일도 서슴없이 해 대고, 하라는 일은 하지도 않는… 세상에 그런 피조물은 오직 사람 밖에 없습니다. 가위와 보의 관계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길 생각을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네가 이겼다’하고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은 야곱처럼 말입니다. [*. 창세기 32: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베드로는 가위입니다. 물고기와 그물 등의 물(物)은 바위입니다. 가위는 바위를 이기지 못합니다. 가위가 바위를 이기는 방법은 보 곧 말씀을 불러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물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리면 안되고, 말씀에 의지해서 내가 그물을 내려야 합니다. 말씀(보)을 의지해서 내가(가위) 그물을 던지니 비로소 고기가 잡히는 것입니다(이기는 것입니다.)
4.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렸더니 고기가 엄청 많이 잡혔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있던 사람들은 고기가 엄청 잡히는 것을 보고는 ‘횡재했네~’하면서 기뻐할 것 같은데, 베드로는 뜻밖의 고백을 합니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합니다. 말씀에 의지해서 내가 그물을 내리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런데 문제 해결은 ‘내가 당면했던 그 문제(고기를 못 잡음)가 사실 문제가 아님’을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 삶의 대부분의 문제가 그렇습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문제 자체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문제아님을 알아채어, 문제가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문제가 소멸되어버립니다. 욥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ref. 욥기 38~42, 42:5~6,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물고기가 잡히는 모습을 보고 놀란 베드로는 주님 앞에 서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진짜 자신의 문제를 돌아보게 됩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몸이 아파서 절망 가운데 있습니다. 얕은 곳에 있지 말고,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고, 깊은 곳에 네 마음 줘 보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의지해서 깊은 곳에 마음을 쏟자, 문제가 풀립니다. 몸이 회복됩니다. 그런데 그 문제(몸이 아픈 것)는 사실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히려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절대자 신(神) 앞에 선, 빛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에서 ‘동굴의 비유’를 들려줍니다. 사람들이 모두 묶인 채로 동굴에서 한쪽 면만 보고 살아갑니다. 뒤에는 불빛이 있어서 불빛에 비쳐진 그림자 모습의 앞만 보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것이 삶인 줄 압니다. ‘인생’을 동굴 속에서 묶인 채 한 쪽만 바라보며 사는 모습에 비유한 것입니다. 어쩌다 밧줄이 풀려 동굴 밖으로 나온 사람은 빛을 봅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오랫동안 동굴 속에 살아 온 탓에) 눈이 부셔서 눈을 뜨고 보지 못합니다. 두렵고 괴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죄인이니 나를 떠나소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다메섹으로 가던 바울이 보지 못하게 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 사도행전 9:3~9입니다.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우리는 베드로보다 무려 2천 년이나 더 살았습니다. 삶의 경험이 그만큼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이미 주님을 알고(믿고) 복음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어서 오십시오. 주님, 오늘 제가 주님을 뵙습니다’ 해야 합니다. 변화산에서 주님을 뵙던 엘리야나 모세처럼 말입니다.
[*. 마태복음 17:1~8입니다.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6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5.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예수님 앞에서, 빛 앞에서, 두려워하여 눈을 뜨지 못하는, 그래서 ‘나는 죄인이니 나를 떠나소서’라고 말하는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무서워하지 말라’라는 주님의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억해 두어야 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날 때 무서움과 두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실 복음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만은.
이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향할 때, 세상과 천국의 중간 지, 혹은 중간의 시간을 누구나 맞이합니다. ‘바르도’라고 하는데 중간계(中間界)의 시간입니다. 빛 앞에 서는 시간입니다. 누구나 한번은 겪을 것인데 그때에 지금의 베드로처럼 ‘저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라고 말하면 안됩니다. 그러나 빛 앞에서 자신 있게 설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저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라고 베드로처럼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때, 주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너는 참-사람이라, 하나님의 자녀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그렇게 그 빛 앞에 자신 있게 나가야 합니다. 죄인을 품어 주시는 것은 이 세상의 삶을 사는 동안만 입니다. 세상을 떠날 때는 (성부 하나님의 지평인) ‘보’하면서 손가락을 다 펴야 하는 것입니다. [*. 세상에 올 때는 누구나 주먹을 쥐고 ‘바위’로 옵니다. 그리고 삶을 사는 동안은 하늘과 땅을 오가는 ‘가위’로 삽니다. 세상을 떠날 때는 ‘보’하면서 펴는 것입니다.]
‘사람을 취한다는 것’은 그가 참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된 사람만이 사람을 취할 수 있습니다. 평화의 사람만이 평화하기 마련입니다. 사랑의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것이지 사랑이 아닌 사람이 사랑을 나누면 일종의 위선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취한 다는 것은 사람이 된다는 곧 ‘참-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일컬어 인자(人子)라 하셨는데 사람의 아들, 곧 ‘참-사람’이라는 뜻입니다.
6.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아갑니다. 보물을 발견하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그 보물을 손에 넣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44~46입니다.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문제는 보물이 보물인 줄 모르는 데 있습니다. ‘참-사람’이 된다는 것, 그래서 ‘참-사람’을 취하게 된다는 주님의 말씀이 보물처럼 느껴집니까? 여전히 구슬이나 딱지가 보물처럼 느껴지지는 않습니까? 여전히 물고기가 많이 잡힌 것을 보물로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마태복음 6:21입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여러분의 보물, 여러분이 보물처럼 여기는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곳에 여러분의 마음도 함께 있을 것입니다. 바라기는 많은 물고기보다도 ‘참 사람이 되는 것, ‘참-사람을 취하게 되는 것’을 보물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좇고, 닮아가는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말입니다.
7. 나가는 말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좇고,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길은 1)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물을 내린다는 것은 삶을 꾸려간다는 뜻입니다.) 2) 말씀에 의지해서 내가 그물을 내리는 것입니다. 말씀, 나, 그물 이라는 삼위의 화(和)입니다. 3) ‘저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라는 말보다, ‘주님 환영합니다. 마라나타! 주님 어서 오소서.” 하고 (변화 산의 엘리야나 모세처럼) 주님을 환영해야 합니다. 혹 ‘저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라는 고백이 먼저 나오면 다음 주님의 말씀을 잘 새겨 들어야 합니다. 4)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라는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두려움을 떨치고 ‘참 사람,’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해야 합니다. 빛 앞에서 눈부심 없이 서야 합니다. 5) 그렇다면, 이제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좇는 제자로서의 그리스도인 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백성으로 그리스도인이고, 그리스도를 좇음으로 제자로서 그리스도인이고, 그리스도를 닮아감으로 자녀로서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고, 제자이고,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온전히 세워가며 누려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찬송:
찬송가 302장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 봉헌찬송(일어서서):
찬송가 50장 3절 부르며 봉헌합니다. (찬송가)
*. 봉헌기도(일어서서):
예배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 우리의 예물을 정성껏 모아 주님 앞에 드립니다. 이 땅 위에 주의 나라 세워가는 거룩한 사역을 위해서 온전하고, 아름답게 쓰이는 예물 되게 하시고, 귀한 열매 맺어 주님의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예물에 담긴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헤아려 살펴 주셔서, 주님의 뜻 가운데 응답 받게 하옵소서. 힘들고 어려운 시간 속에서도, 주의 성령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저희 있는 곳곳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비-대면예배로 드릴 경우, 헌금은 따로 잘 보관했다가 교회에서 예배할 때 함께 봉헌합니다. 혹은 신협 131-019-734759 (주안대신교회)로 송금합니다.]
*. 교회소식:
*. 찬송(일어서서):
찬송가 205장 (주 예수 크신 사랑) 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 축도 혹은 주기도문(일어서서):
주님 가르쳐 주신 기도로 예배를 마칩니다.
##. 감사합니다. 행복한 한 주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