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춘천시 영서로 2663 (근화동 8-1)
033-240-1695
이용시간 : [성수기 3월~10월] 10:00-21:00 [비수기 11월~2월] 10:00-18:00
입장료 : 2,000원 (춘천사랑상품권 제공)
춘천사랑상품권 : 춘천시 닭갈비, 막국수, 전통시장, 스카이워크 주변상가 등 사용가능
주차장은 주변 공영주차장을 이용하거나 임시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입장료 전액 감면 대상자 (신분증 및 확인서 증명 시)
- 국가유공자, 장애인, 경로우대(65세이상), 6세이하 어린이, 춘천시민
- 그밖에 시장이 공공의 목적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전액감면
어머니를 신분증을 제시하고 무료입장하시고... 아내와 나는 4,000원을 지불하고 춘천사랑상품권 4,000원을 건네받았다.
무료입장객 외 요금은 동일하다. 인당 2,000원
덕분에 춘천사랑상품권도 사용할 겸 닭갈비와 막국수를 먹고 서울에 가기로 했다.
반드시 덧신을 신고 들어가야 한다.
하이힐 종류의 구두는 슬리퍼로 갈아신고 입장하여야 한다.
우리만 있을 줄 알았는데 오고가는 사람들이 꽤 있다.
자 이제 덧신을 신발위에 덮어 씌우고 스카이워크를 향해 걸어간다.
강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묘한 긴장감이 살짝 맴돌고...
2016년에 개장한 소양강스카이워크는 강 위로 시원하게 뻗은 전체길이 174m이고,
그 중 바닥이 투명 강화유리로 된 구간이 156m에 이른다.
소양강은 인제군 서화면 무산에서 발원하여 양구군을 통과하여 남서류한 한 후, 춘천에서 북한강과 합규하는 강이다.
1973년 대규모 다목적댐인 소양강댐이 완성되어 춘천에서 양구와 인제가지 뱃길로 왕래가 가능하게 되었다.
소양강은 원래 밝은 소(昭) 볕 양(陽) 밝은 볕에 봐야하는데... 소양강처년 노래 때문에 해질무렵에 소양강을 많이 찾는다.
겁많은 박여사는 살짝 오른쪽으로 마치 지지대 위를 걷듯이 걸어가고...
용감하신 어머니는 밑이 강물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가운데로 당당히 발을 내딪으시고...
2016년 개장할 때는 국내 최장 스카이워크였지만 송도 스카이워크 365m 그리고 최근 포항 해상스카이워크 463m 까지...
이제 174m는 명함도 못내밀게 되었다.
중간에 32m 높이의 주탑을 세우고 상판과 케이블로 연결한 사장교 형태다.
스카이워크 교량 끝 전망광장은 4개의 기둥 위에 양 날개를 갖춘 반원 모습으로 설치되어 있다.
디딤판 역할을 하는 유리 두께는 4cm이다.
국내 특수유리 전문기업이 주문 생산한 것으로 1.2cm짜리를 세장 겹대고
그 사이에 특수접착물질로 강도를 높인 강화유리이다.
폭 1.2m 길이 2m의 특수유리 270여장이 사용되었다.
작품평 : 자연의 생명 [소양강 쏘가리]
작가 : 박종재
설치일 : 2006년 8월 30일
재질 : 스테일리스 스틸 [높이 18m, 무게 22.7t]
좌대 : 폐 교각 (1940년 전후 일제가 대륙 침략을 위한 에너지원으로 화천댐을 건설할 당시
춘천역에서 화천까지 건설자재를 운반하던 케이블카 교각의 일부임)
소양강 처녀 노래 발상지 관광 명소화를 위한 물고기 창작 조형물 공모전 당선작이다.
물에서 튀어 오르는 소양호의 쏘가리를 사실적 기법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생명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신비함 및 물의 생태학적 자연미를 표현한 작품이다.
소양강 쏘가리가 물좀 뱉어주면 좋았을 걸... 소양강 쏘가리 분수 운영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것 같다.
쏘가리가 혹시 물을 내뱉을까 잠시 기다려봤지만 운이 없어서 못 보는 걸로...
오른쪽 출구로 나가니 배우 장근석의 핸드프린팅이 있고...
핸드프링팅 왼편으로 다양한 포토존들이 마련되어 있다.
낚시꾼 캐릭터와 함께 사진도 찍고... 소양강에는 쏘가리가 많이 잡히는 모양인데... 이 물고기는 뭐지?
트릭아트로 춘천의 캐릭터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둘 다 바람머리를 하고있는데... 오른쪽은 소양강처녀의 분위기인거 같고... 왼쪽은 뭐지?
신당동 떡볶이집 허리케인 박인가? 이거 혹시 리듬타는 사람 있을지도...
오늘 춘천에서 먹을 메뉴는 닭갈비와 막국수... 니들 각오해~
아마도 여기가 메인 포토존인듯...
소양강스카이워크 로고 앞으로 트릭아트가 그려져 있다.
어머니는 여기서 앉아 쉬시기로 하고... 아내와 나는 소양강처녀상쪽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소양강스카이워크 나가는 곳에서 약180m정도 떨어져 있다.
가는 도중에 소양강 쏘가리의 정체도 알게되고...
소양강처녀
반야월 작사
이호 작곡
김태희(1951년생 본명 박영옥) 노래
처음에는 제목을 춘천 처녀라고 하려 했으나, 어감이 더 괜찮은 소양강 처녀라고 지었다고 한다.
1970년 발표이후 1990년대 초반 가수 김재희, 한서경이 잇따라 리메이크하여 발표하였다.
이 노래에 등장하는 소양강 처녀의 모델이 된 인물은 1969년 당시 가수지망생이었던 윤기순(1953년 생)이라는 실존 인물이다.
윤기순 씨는 춘천에서 서울로 상경하여 명동 근처에 있던 한국가요반세기가요작가동지회 사무실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7남매(2남5녀)의 맏딸으로 돈 많이 벌어서 동생들 학비나 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상경을 했다.
애초에는 전화 교환원을 꿈꾸었다고 한다.
[나무위키]
서울에 도착한 직후 그녀는 전화 교환원을 양성하는 통신학원에 다녔으나
전화 교환원 월급으로 가족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새로운 일거리를 찾기 위해 한달 만에 통신학원을 그만뒀다.
그리고 가수가 되면 좋아하는 노래도 할 수 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무작정 김종한 작곡사무실을 찾아갔다고 한다.
김씨는 작곡가 박시춘, 작사가 반야월 선생이 소속돼 있는 서울 가요작가 동지회 사무실을 소개해줬고,
그녀는 가요작가 동지회에서 일하게 되었다. 전화도 받고, 심부름도 하고, 노래도 배웠다.
이후 1968년 6월 어느 날
소양강 상류에서 민물고기잡이를 하는 아버지가 사는 춘천의 고향집으로 자신이 일하던 사무실 사람들을 초청하였고,
회장인 반야월 선생을 비롯해 작사가 고명기·류노완·월견초 선생 등 가요 작가 사무실 일행 10여 명이 초청에 응했다.
이 때 얻은 시상을 반야월이 노랫말로 옮겨서, 작곡 작업과 음반 녹음 작업을 거쳐
1970년에 발표한 노래가 "소양강 처녀"이다.
실제로도 가요작가 사무실 동지회 사람들 사이에서 윤기순 씨의 별명이 소양강 처녀였다고 한다.
노래는 크게 히트했지만 정작 주인공인 윤기순 씨는 잊혔다.
1970년에 음반을 발표하기는 했지만 별 소리 소문 없이 묻혔고, 그 이후 전국을 돌며 밤무대 가수를 했다고 한다.
혼인도 하지 않았다.
노래를 너무 불러서 목이 상해 성대결절수술을 두 번이나 받기도 하고,
돈을 모아 아버지께 젖소를 사드렸지만 우유 파동으로 목장이 망하는 등 상당히 험난한 삶을 살았다.
그렇게 잊힌 실제 소양강 처녀는
1995년 노래비를 세울 때 작사가 반야월이 직접 밝힌 뒷이야기로 말미암아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춘천시가 경찰청의 협조로 윤기순 씨를 찾아냈을 당시 고향을 떠나 광주에 살고 있었다.
그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서 밤무대 가수로 한동안 활동하다가,
2006년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춘천시 사북면 지암리 집다리골에서 ‘풍전가든’이란 민박을 겸하는 음식점을 경영한다.
춘천시에서는 온 국민에게 사랑받는 애창곡인 소양강 처녀를 기념하기 위해
2005년, 5억 5천만 원을 들여 소양강 강변에 기념비를 세웠다.
또 다른 소양강 처녀의 주인공으로는
1967년 3월, 당시 18세로 춘천여자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경희 씨(1950년 생)라는 얘기도 있다.
박경희 씨는 춘천시 소양1교 인근에서 호수여관과 선박업을 운영하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당시 반야월 선생은 이 여관에 1달 가량 머무르며 곡을 썼고, 소양강 상류 작은 섬인 고산이라는 곳을 자주 찾았다.
이때 박경희 씨는 반야월을 섬까지 한두 차례 배로 데려다 줬다고 한다.
반야월은 여관을 떠날 때, 박경희에게
“네 사연을 노랫말로 썼으니 나중에 레코드가 만들어지면 춘천에 와서 전해 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호수여관을 떠났다고 한다.
반야월은 생전에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소양강 처녀는 어느 특정 인물의 얘기를 쓴 게 아니라
소양강 인근에 살던 모든 처녀를 주제로 한 것”이라고 밝힌 사실도 있다.
박경희씨는 소양강 처녀 노래를 자주 듣지는 않는다고 한다.
노래를 듣게 되면 그 시절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시기상으로도 가사를 지은 것이 두 사람을 모두 만난 후의 일이어서
두 사람 다 반야월의 작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강원도청과 춘천시청에서는 두 사람 모두 소양강 처녀의 주인공으로 인정한다.
[나무위키]
소양강 처녀의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는 노래를 듣고 싶어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처음 알게되었다.
사실 내가 기억하는 소양강처녀는 구슬픈 노래가 아니라 오티, 엠티, 체육대회 응원가로 신나게 따라 부르는 노래였다.
내게 춘천하면 떠오르는 노래는 <춘천가는 기차> 김현철 작사/작곡/노래 1989년
조금은 지쳐 있었나봐
쫓기는 듯한 내 생활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몸을 부대어 보며
힘들게 올라 탄 기차는
어딘고 하니 춘천행
지난 일이 생각나
차라리 혼자도 좋겠네
춘천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오월의 내 사랑이 숨쉬는 곳
지금은 눈이 내린 끝없는 철길위에
초라한 내 모습만 이 길을 따라가네
그리운 사람
차창가득 뽀얗게 서린
입김을 닦아내 보니
흘러가는 한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고
그곳에 도착하게 되면
술 한잔 마시고 싶어
저녁때 돌아오는
내 취한 모습도 좋겠네
춘천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오월의 내 사랑이 숨쉬는 곳
지금은 눈이 내린 끝없는 철길위에
초라한 내 모습만 이 길을 따라가네
그리운 사람 그리운 모습
노래의 힘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노래를 듣자마자 수십년된 잊고 살았던 기억들이 마구마구 생생하게 떠오른다.
인간은 역시 추억의 동물인듯...
자 이제 춘천사랑상품권 4,000원도 사용할 겸 닭갈비와 막국수를 먹으러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