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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강 창세기 9:1~17 내 무지개 1.03.20
26.09.12(토)
드디어 노아가 1년 17일 만에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그 방주는 흔히 세상 사람들이 오해하듯이 지상의 낙원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매일 1년 17일 동안 같은 사람을 보는 고통이 있었구요. 매일 똑같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 고통이 있었고
1년 17일 동안 제한된 공간 속에서 살아야 하는 고통이 있었고
그 속에 들어있는 수 없이 많은 새와 짐승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살아야 하는 고통이 있었고
그 많은 생물에게 매일 먹이를 가져다 주어야 되는 고통이 있었고
그것들의 오물을 치우고 그 냄새를 맡아야 하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그런 공간 속에 1년 17일 살다 보면 정신이상이 생길 수밖에 없는 혼돈과 혼란과 고통의 소용돌이었습니다.
하지만 노아 8식구 중에 1년 17일 동안 그 공간에서 정신 이상이 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 비결은 하나님께서 명령해 주셨던 방주의 구조에 있다고했죠.
그 방주 속에는 창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 창문이 벽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천정 한 중간에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그 방주는 세상을 볼 수 있는 창이 없었습니다.
만약에 8식구들이 1년 17일 동안 그 고통의 소용돌이 속에서 옛날 세상을 바라보고 옛날 세상을 그리워했더라면 8사람 중에 몇 사람 정도는 정신 이상이 되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위로 하늘을 향해 하나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왜 우리가 이곳에 있어야 하는가 왜 내가이 짓을 해야 하는가 내가 왜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이런 고욕을 시켜야 하는가 모든 해답이 다 하나님에게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 자신에 대해서 삶의 정황에 대해서 수많은 의문들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모든 의문은 해소됩니다.
하나님 안에 모든 답이 다 들어 있습니다.
왜 내가 오늘 이런 상황 속에서 살아야 하는지 왜 내가 이 터널을 거쳐야 하는지이 터널 끝에 무엇이 있을 것인지 그분에게는 모든 답이 다 있습니다.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주님의 음성을 듣고 밤새도록 빈 그물만 던지다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물을 던졌다가 그물이 찢어지도록 물고기를 건져 올리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들이 육지로 나갔을 때 주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조반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때 아무도 주님에게 당신이 누구시냐고 묻는 자가 없었습니다.
주님을 주님인 줄로 알아보는 순간에 그들의 모든 의문이 다 해소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기 때문만으로 인간의 중시조가 되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에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방주를 잘 지었다 할지라도 그 방주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을 갖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노아는 자신이 지은 그 방주 속에서 정신 이상자가 되었을런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40일 동안 이 땅에 비가 쏟아지게 하신 뒤에 인간을 다 멸하신 다음 노아 식구만을 구원하시기로 하신 그 목적이 끝났는데도 왜 빨리 물을 마르게 하시지 않고 열 달 이상 그 물이 땅에 있으므로 노아 식구로 하여금 방주 속에 거하게 하셨는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노아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고정시키게 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시선을 고정시키는 사람을 통해서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도 40년 요셉도 옥살이 종살이 하면서 다윗도 10년 동안 이리저리 쫓겨 다니면서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고정시키게 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새 역사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모든 일이 되는 것도 참 좋은 일일 수 있지만 그러나 우리의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더 큰 하나님의 은혜일 수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일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바라볼 수밖에 없고 그분을 향한 우리의 시선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침내 노아가 방주의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허락하에 나왔습니다. 1년 17일 만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그냥 17일이 아닙니다. 한 달 7일이 아닙니다. 1년 17일 만에 그 제한된 공간에서 이제 바깥 세상으로 나온 거여요.
그렇다면 노아가 얼마나 하고 싶은게 많겠습니까?
요즘 우리 같으면 제일 먼저 가서 사우나를 할 거라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강에 가서 목욕도 하고 싶을 것이고 1년 17일 동안 그 배속에서 정말 뭘 먹고 싶은 걸 먹었겠습니까? 먹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이고 가보고 싶은데도 많을 것 아니에요.
그런데 노아가 제일 먼저 뭘 했다고 했습니까?
하나님 앞에 단을 쌓았습니다. 예배드렸다는 말이죠. 제단이라고 하는 미츠베아라고 하는이 히브리 말이
짜바흐 잡는다. 죽인다. 희생시킨다라는 동사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생각을 해 보십시오 노아가 1년 17일만에 방주에서 나와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수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예배를 드렸다고 하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자기가 죽은 겁니다.
노아가 제단을 만들고 그 위에 제물을 하나님께 바쳐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 제물은 곧 제사드리는 당사자가 죽는 것이라고 그랬죠.
노아는 나오자마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수없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뜻대로 하고픈 자기가 하나님 앞에 먼저 죽었습니다.
여러분 예배는 우리가 죽는 거라고 그랬죠.
내 마음대로 살고 싶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죽는 시간이어야 됩니다.
그래서 주일 한 번만 예배를 드릴 때 우리가 정말 죽어도 죽은 나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그 하나님을 의지해서 우리는 하루라는 고비를 그분 한주라는 고비를 고개를 그분과 동행하면서 멋지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죠.
노아가 하나님께 제물을 바쳐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그 제물의 향기를 받으셨다고 성경이 증거합니다. 짐승을 태울 때는 절대로 향기가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역겨운 냄새가 나죠.
옛날 유대인들이 하나님 앞에 짐승을 잡아서 제물로 바쳐 드리고 그것을 태울 때 우리나라 갈비처럼 무슨 양념을 쳤겠습니까? 그러니 그 뭐 냄새 비리고 역겹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향기라고 하시고 그 향기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향기를 받으신 것이 아니라 1년 17일 만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자기를 하나님 앞에서 죽이는 그 노아의 중심을 하나님께서 향기로 기쁘시게 받으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노아는 드디어 인류의 두 번째 시조가 됩니다. 노아를 통해서 새로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는 거여요.
노아로 인해서 새로운 미래가 펼쳐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은 철저하게 어제의 결과라고 그랬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을 향하여 자기 시선을 강화시켰던 결과로 그는
새로운 미래의 실체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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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노아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던들 그 미래는 결코 주어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오늘부터라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어떤 경우에든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키고 강화시켜 나아가는 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미래와 희망의 실체를 우리 역시 우리의 삶 속에서 반드시 누릴 수 있을 것이고 그때 2008년도는 진정한 새해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9장 1절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아까 제가 말씀을 한 가지 잘 못 드린 것 같습니다.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만나서 주님께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신 곳에 그물을 던졌을 때 일백 쉰 세 마리가 잡혔는데도 그물이 안 찢어졌습니다.
베드로가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는 그물이 찢어졌는데 마지막 때는 안 찢어졌죠. 제가 말씀을 잘 못 드렸습니다.
9장 1절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여러분 노아 식구가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삶이 시작해요. 새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해주신 것이 무엇인가 복을 주시는 거여요. 여러분 태초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뒤에 무엇을 제일 먼저 하셨습니까? 사람에게 복을 제일 먼저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복속에서만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속에서만 우리는 사람다움을 지닐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지 아니하면 인간은 그 어떤 짐승보다도 더 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사실은요 하나님께서는 먼저 인간에게 복을 주신 다음 그 복을 갈무리를 잘 하고 복을 받을 만한 삶을 사는 자에게 계속 복을 주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더 도덕적이지도 못했고 더 윤리적이지도 못했는데 주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먼저 선택해 주셨다.
우리에게 먼저 복을 주신 거잖아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복을 우리에게 먼저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복을 받은 자로서 복 받은 자 답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복을 더 덧입혀 주시고 우리를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 가십니다.
그러나 내가 복을 받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받은 복과 역행할 때 하나님과 나는 무관한 관계가 되어 버리는 것이죠.
우리나라 옛 어른들 말씀이 참 옳습니다.
복 받을 짓을 해야 복받지 바로 그 말이어요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노아 식구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9장 1절을 다시 읽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복을 주시며 공표하고
이르시되 이르시되 거기에 공표하고 줄로 연결하십시다.
여러분 하나님의 복은 하나님의 말씀과 직결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그게 복이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내 귀로 들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복입니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삶을 통해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인카네이션 될 터인데 육화될터인데 말씀이 결실될 터인데 어떻게 그 삶이 복되지 않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내가 복된 사람이 되겠다. 그것은 소위 세상이 말하는 복된 사람이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복된 사람이 아니에요.
세상이 추구하는 복은 반드시 후유증을 낳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속에서만 인간은 후유증 없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씀의 내용이 무엇인가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여러분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사람이 있어요. 누구죠. 아담과 하와입니다. 처음 만들어진 사람이여요.
그들이 언제이 이야기를 들었습니까? 죄짓기 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하기 전의 아담과 하와에게 이 말씀을 하셨고 이제 1년 17일 동안 방주 속에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인류의 두 번째 시조라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는 노아 식구들에게 똑같은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당신의 역사를 이 땅에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지 못하는 사람이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면 어떻게 됩니까?
오늘날의 세상처럼 되는 것입니다. 불의한 세상이 됩니다. 악한 세상이 됩니다. 어두운 세상이 돼요.
여러분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자기 가정이 자식들이 자기가 행하는 일이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기를 원하는 겁니까?
그 자체가 목적입니까? 만약에 내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생육 번성 충만 그 자체만을 목적으로 삼을 때 내 일생 동안에 그 목적은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런데 그 결과를 한번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 여러분들 몇 대까지 여러분들이 다 알고 계세요.
10대 20대 몇 대까지 아십니까? 여러분들의 족보에 있는 그 어르신들의 성함만 아실 뿐이지 그 옆으로 퍼진 여러분들의 방계 조상들이 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십니까? 저희 어머님께서 살아계시면 올해로 98세 저희 아버님께서 살아계시면 99세입니다.
그런데 그 두 분 사이로부터 저희 형제가 6남매가 태어났는데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아버지 어머니의 자식 손자 증손자에 이르기까지 지금 50명이어요
여러분 한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서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한 100년 150년 살면요. 50명 100명 200명 이렇게 됩니다.
한 이 삼백년 살면 어떻게 될까요. 엄청난 수가 되겠죠. 여러분들 8촌 10촌 12촌 14촌 모르잖아요. 나라고 하는 한 인간이 이 땅을 거쳐 지나간 다음에 100년 200년 지나서 내 피를 이어받은 수 없이 많은 자손들이 생길 터인데 그 자식 중에 살인자가 안 나온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그 자식 중에 이완용이 같은 매국노가 안 나온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여러분 그 자식 중에 사기꾼이 안 나온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우리가 우리의 족보를 펴 놓고 족보는 성공한 사람들을 이름 위주로 나가니까? 다 잘난 조상들만 기억하죠.
우리 최초의 조상의 피를 이어받은 방계 조상 가운데 살인자가 왜 없었겠습니까? 사기꾼이 왜 없었겠어요. 비애국자가 왜 없었겠습니까?
여러분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갖지 못하고 생육번성 충만 그 자체만을 내가 이 짧은 세상을 사는 동안에 목적으로 해서 살다가 가족 관계가 뒤틀어지고 자식들이 등을 돌리고 그리고 3대 4대 5대 6대 7대를 거듭해 가면서 거기에서 온갖 범죄자가 다 나오고 난 물론 모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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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나님 나라 가서 그 사실을 확인하게 될 때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선조로 믿음의 조상으로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에게 있어서는 결과적으로 생육과 번성과 충만은 노아가 주님과 동행한 결과로 얻듯이 결과적으로 주어지는 것이지 이것이 결코 우리 삶의 목적일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 삶의 목적은 그분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때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까지도 주신다는 것이죠.
2절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의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이 땅의 모든 짐승 새 이것을 전부 이제 너희 손에 붙여줬다. 여기에서 손이라고 하는 건 야드 히브리말로 야드인데요.
그것을 비유로 사용할 때는 힘 권세 관할 능력 소관 이런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땅에 있는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물 자체를 너희의 관할하에 두겠다 이 말이어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코끼리보다도 사자보다도 호랑이보다도 형편없이 연약하지만 그러나 인간들은 지혜로 모든 짐승들을 다 다스려요.
왜 하나님께서 그 모든 짐승들 생물들을 인간의 손에 붙여 주셨는가
3절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시고 처음에 주신 양식이 뭐예요. 식물입니다.
채소여요 그런데 방주에서 나온 노아 가족들에게 내가 짐승과 새와 모든 생물을 너희 손에 붙여줬다. 이유는 바로 그 모든 것들을 채소처럼 너희들의 양식으로 삼게 해주기 위함이다.
왜 하나님께서 갑자기 육식을 하도록 하시는 거예요. 이유는 노아의 홍수로 인해서 생태계의 변화가 생겼다고 그랬습니다.
홍수 이전에는 궁창 위에 물이 있었죠. 대기권을 물이 덮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지상의 인간은 태양의 광선을 직접 몸에 받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 상황에서 온실 효과가 있는 그런 상황에서는 인간들이 수백년을 살 수 있다고 그랬죠. 그때는 수명도 길었습니다. 그때는 채소만 먹어도 돼 그런데 그 대기권 밖의 물이 다 땅에 쏟아졌습니다.
인간들이 직사광선에 노출된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금부터는 너희들이 육식을 해라 여러분 지금 노아 식구들은 대기권 밖의 모든 물들이 다 떨어져서 인간이 직사광선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육식을 해야 되는지 아닌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먼저 노아에게 바뀌어진 생태계에서 살아가기에 필요한 양식을 먼저 확보해 주신단 말이어요 여러분 이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입니다.
바로이 구절을 신약 성경으로 가서 신약 성경의 한 구절과 매치시킨다면 어떤 구절이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노아가 무엇을 먹어야 할 것인지까지도 일깨워 주실뿐만 아니라 실제로 육식을 행할 수 있도록 모든 짐승들을 인간의 손에 붙여 주시기까지 하신단 말이에요.
우리 하나님이 이런 분이심을 우리가 확실히 믿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직까지 내 신앙은 먹고 사는 수준에만 머물러 있는 것 아니냐 그 말이에요.
못 먹는 것은 아닌데 더 먹기 위해서 더 갖기 위해서 그 목적으로 내가 하나님을 믿고 있는 건 아니냐 그 말이어요
우리 신앙의 목적은 그분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것 바른 관계를 맺는 것 그것이 우리 신앙을 목표가 되어야죠.
오래전에 김좌진 장군의 부인이 인터뷰한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해방 이후에 참 가난하게 사셨더군요.
그래서 인터뷰 하는 분이 물었습니다. 아니 왜 이렇게 가난하게 사셨습니까? 왜 김좌진 장군 부인이라는 걸 밝히시고 정부나 주위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이렇게 가난하게 사셨습니까?
그 부인의 대답이 이렇습니다.
내 남편의 이름에 누를 끼칠까 봐요.
여러분 얼마나 멋진 내조자입니까?
내 남편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운동가입니다.
그런데 내가 못 먹고 못 입을 망정 죽지 않을 바에야 내가 더 잘 먹고 더 잘 입기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일생을 바친 내 남편의 이름에 누를 끼치는 짓은 죽어도 안 하겠다는 거예요.
내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하면서도 매일 내 삶이 먹고 사는 문제에 국한되어 있다면 나를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 삼위일체 하나님 그분의 이름에 누를 끼치는 거 아니겠어요.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죠. 여기에서 우리가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을 인간에게 식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돈을 받으셨습니까? 거저 주셨어요.
이것 주시는 대가로 노아에게 헌금 받으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냥 주셨어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고기도 생선도 채소도 다 돈 주고 사 먹어요. 그죠.
그건 무슨 값이어야 돼요. 수고한 분의 수고비입니다. 그 물고기를 잡은 분의 인건비 채소를 키우신 분의 인건비 그 소를 키우신 분의 인건비 그건 당연히 들어야죠. 그분이 수고하셨으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고 어떤 농부와 어떤 어부와 어떤 사람들이 수고하고 땀을 흘려서
인건비를 받고 판 그것을 중간에서 상인이 폭리를 취한다 범죄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먹거리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는 먹거리로 인해서 일어나는 범죄가 너무너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것을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폭리를 취하기 위해서 장난을 친다.
내가 아무리 교회를 열심히 다녀도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내가 만약에 그렇게 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꾸짖으시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4절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육식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육류를 피채 먹지는 말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되는 피째 먹지 말라 하나님께는 피가 생명이에요.
여러분 고기를 먹기 위해서 고기를 잡는데 어떻게 피가 안 흐릅니까? 피는 흐르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그 피는 먹지 말라는 거예요.
왜 하나님께서 이런 명령을 내리시는가 우리는 세 가지의 이유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상실하고 생명을 경홀히 여기지 아니하게끔 해 주시기 위해서
여러분 내가 육류를 즐겨 먹는다는 것과 짐승의 살생을 취미로 삼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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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육류를 먹는다고 해서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상실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내가 짐승을 죽이는 것 이것을 내 취미로 삼는다. 혹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짐승을 사냥하는 취미가 있는 분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한번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하나의 생명체를 살상하는 것을 취미로 삼고 내가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가질 수 있는가 그건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육류는 먹되 살생 자체를 목적으로 하거나 살생 자체를 취미로 하거나 생명을 경홀히 여기는 짓은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죠.
두 번째로 구약 시대에서 짐승의 피는 속죄의 효능을 갖고 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가서 제사를 드릴 때 짐승을 피를 뿌리잖아요. 짐승을 죽여서 그 대신 내가 죽는 거잖아요. 그죠.
그래서 속죄함을 받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느 짐승의 피를 내가 먹어 버렸다. 그러면 그 피로 인해서 속죄함을 받을 누군가가 속죄함을 못 받게 될 것 아니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이 속죄함을 은총을 바르게 각인시켜 주시기 위해서 피는 먹지마라
세 번째로 이 구약시대 짐승의 피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려주신 보혈의 예표잖아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피를 흘려 주셔서 우리가 다 새로운 생명을 얻었단 말이죠.
바로 우리를 위해서 흘려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절대성을 처음부터 우리에게 각인시켜 주시기 위해서 제물로도 쓰이는이 짐승의 피는 피째 절대로 먹지 말라 피는 생명이다.
주님께서 그렇게 정리해 주셨다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죠.
우리가 고린도전서 10장을 공부할 때 그때 이미 한번 짚어본 이야기입니다마는 그러면 선지국을 먹으면 안 되는가 어떻습니까? 먹으면 됩니까? 안 됩니까? 먹어도 되지요. 그죠.
사도 바울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나는 일주일에 선지국을 한번 먹어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이 사명을 내 바르게 감당할 수 있다. 그래야 힘이 난다 먹어야죠 먹고 열심히 하나님 위해서 충성해야죠.
지금은 구약의 제사의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은혜 속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으로 다 할 수 있다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갖도록 말씀하신 그 취지마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어요
어떤 경우에도 어떤 생명에 대해서도 외경심을 갖고서 살아야 된다는 것은 마음속에 명심할 필요가 있죠.
5절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너희의 피입니다. 너희가 누구예요. 노아의 노아 식구들
만약에 누가 너희들의 피를 흘리게 하면 너희들을 생명을 해치면 이 말이죠.
그러면 그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우리 성경에는 번역에 빠져 있습니다마는 히브리어 원문에는 여기에도 짐승에게서 찾고 동사가 들어 있습니다.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누구든지 너희들의 피를 흘리게 해서 너희들의 생명을 상하게 하면 그게 짐승이면 짐승 인간이면 그 인간에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라 만약에 네가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한다면 너 역시도 그 사람의 핏값 생명의 값을 치러야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생명의 피를 흘리게 하는 짓을 하지 말라는 것이죠.
그 이유가 뭔가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었음이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는데 내가 만약에 한 사람을 죽인다면 하나님의 형상을 내가 부정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형상을 부정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살해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사람의 생명을 해쳐서는 안 된다. 여러분 지금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이 말씀을 하시죠. 노아 식구에게.
노아가 홍수 이전에 세상 속에서 살 때 하신 말씀이 아니잖아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 심판하시고 노아로 하여금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하시는 시발점에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의 진의가 뭔지 알게 되죠.
너희 여덟 식구가 지금처럼 내가 너희들에게 심어준 나의 형상 하나님의 형상을 간직하고 사는 한 너희들을 반드시 내가 책임져 주겠다는 거야 너희 생명을 누가 해치든지 내가 그 대가를 치르게 한다.
내가 책임져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7절에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그러므로 너희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간직한 사람으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해라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을 해주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늘 내가 가진 것을 상대적으로 생각하잖아요. 저 사람은 나보다 더 많은데 저 사람은 나보다 더 큰 것 가졌는데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는 한 비록 내가 가진 것이 다른 사람보다 적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볼품없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절대적인 본성이에요. 절대적인 생육이요. 절대적인 충만임을 깨닫고 믿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그때에만 우리의 삶은 후유증이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대를 이어 받아가면서 누릴 수가 있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번성과 생육과 충만을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하나님의 형상 타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형상마저도 무시하고 짓밟을 때에 그 결과가 얼마나 비참하느냐 하는 것은 성경의 역사뿐만 아니라 인간의 역사도 아니 거창하게 인간의 역사할 필요도 없이 우리 주위에서도 얼마나 허다하게 볼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8절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자 여기 중요한 변화가 있습니다.
홍수가 시작되기 전에 홍수가 시작되어서 방주안으로 들어가고 할 때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얘기하셨나요. 노아에게만 얘기하셨습니다.
그런데 9장 1절 보십시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하나님께서는 이제는 노아에게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아들들에게도 함께 이야기해 주십니다.
8절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얼마나 은혜롭습니까? 이 아들들은 노아와 함께 노아 방주에서 1년 17일 동안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켰던 사람이에요.
여러분 노아라는 걸출한 신앙의 아버지로 인해서 그 자식들이 하나님에 대한 시선을 강화시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귀가 뚫렸습니다.
40:01
아버지의 믿음이 자식에게 유산으로 전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부자가 함께 한 자리에서 듣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9절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는 누구죠. 노아와 아들들이죠. 너희와 너희 후손과 노아의 믿음이 노아의 자식에게 물러졌는데 그 하나님의 은혜가 이제는 후손들에게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내가 먼저 믿음의 부모가 되고 나 혼자 믿고 행복하게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식들을 믿음의 자식으로 바로 세우는 것보다 내 자식에게 줄 수 있는 더 큰 선물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의 은혜가 그 후대에까지 유산으로 계속 된다는 것이죠.
9절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10절 너희와 함께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을 주시는데 노아와 그 아들 후손뿐만 아니라 방주에서 생명을 얻어서 다시 지상으로 나온 모든 짐승과 새에게까지도 당신의 언약을 주신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건 정말 중요한 얘기죠. 하나님께서는 이 피조세계 모든 피조물 가운데에 인간을 가장 사랑하시는 것이지 인간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다른 피조물은 미워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창조하신 다른 피조물도 역시 사랑하셔요.
그 가운데에서 인간을 가장 사랑하신 분이죠. 이 사실을 알 때 우리는이 우주 만물 속에서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 13절에 이렇게 증언합니다.
광야에서 40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고 들 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 들더라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 기도하실 때를 묘사한 내용입니다. 여러분 성경 기자가 성경을 기록할 때 불필요한 말은 절대 안 쓴다고 그랬죠.
불필요한 단어는 쓰지 않습니다. 여러분 유명한 소설가나 시인도 불필요한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에 두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금식기도 하셨다라고 끝낸 것이 아니라 그 40일 동안 들 짐승과 함께 계셨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들 짐승과 벗하며 계셨습니다. 또 그뿐만 아니에요.
골로새서 1장 19절에서 20절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간과만 화목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만물과도 화목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화목이라고 하는 것은 에이레네 화평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십자가는 이 세상 만물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화평한 관계 속에 바로 있게끔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의 효력이 새와 짐승에게까지 미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우리가 안다면 적어도 인간이 밟고 지나가는 곳이 지금처럼 황폐화되는 일은 적어도 그리스도인에
의해서는 일어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어디든지 인간이 있는 곳에는 자연이 황폐화됩니다. 이번에 태안에서 기름 유출로 온 자연이 오염되는 것 보십시오 정말 무서운 재앙 아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들 짐승과 벗하고 계셨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화평하게 되기를 원하신다면 여러분 내가 산길을 걸어갈 때 내가 그 산길을 걸음으로 인해서 그 산에 있는 초목들이 함께 기뻐할 수 있음을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다.
우리 집에 화분이 하나 있다 할지라도 그 화분이 우리 집에 왔기 때문에 더 아름답고 윤기 있게 피어날 수 있다 멋진 일이죠.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든 자연이 풍요로워져야 합니다. 만약에 내가 있는 곳에 자연이 황폐해 간다고 하면 나는 만물과 화평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아직도 바르게 분변치 못한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임을 스스로 의미하는 것이죠.
그 언약의 내용이 뭔가 11절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홍수로 인류를 심판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주시는 언약이 뭐냐 하면 앞으로 다시는 홍수를 전 인류를 심판하시는 심판의 도구로 쓰지 아니하시겠다는 것입니다.
12절 13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하나님께서 다시는 물로 인간을 심판하시지 않는다는 언약의 증거를 직접 주셨습니다.
그것이 내 무지개라는 거예요.
14절에서 17절입니다.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너와 너희와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네가 보고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니라 하셨더라
자 12절에 언약의 증거 우리 공표를 한번 해 보십시다. 13절에 언약의 증거 공표를 한번 해 보십시다.
17절에 언약의 증거
여러분 지금 노아가 방주에서 나왔잖아요. 그죠.
그런데 내가 다시는 물로 너를 심판하지 않겠다. 그리고 그 언약의 증거로 무지개를 준다.
지금 노아는 새로운 삶을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므로 너를 다시는 멸하지 않는 언약의 증표로 무지개를 준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무슨 말이에요.
이 무지개는 반드시 너를 살리고 구원하는 증표다 그 말이죠.
나와 바른 관계를 맺는 한 반드시 너를 살리는 증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언약의 증거라는 말을 세 번을 반복하셨다는 거예요.
여러분 증표는 누가 누구에게 주는 것입니까?
결혼하는 신랑 신부가 평생 나는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서약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서약이 진짜고 변함없다는 증표로 예물을 교환해요. 금반지를 준다든지 예물을 교환하지 않습니까? 서로 교환하지요. 왜 그래요. 결혼은 대등한 관계에서 하거든요. 그러니까 둘 다 증표를 주는 겁니다.
만약에 증표를 남자만 주고 여자는 안 준다. 여자는 줬는데 남자는 고개만 끄덕끄덕하고 안 준다. 큰 문제가 있는 부부가 되겠죠. 그죠.
50:02
결혼은 서로가 줄라면 서로가 줘야 돼 결혼을 제외하고 나면 누가 언약의 약속의 증표를 줍니까?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아쉬운 자가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에게 증거를 줍니다. 증표를 줘요.
여러분 돈 빌리는 사람이 증서를 써주지 돈 꿔주는 사람이 증서를 써 주나요. 하나님이 왜 인간에게 증표를 주실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안 주셔도 돼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는 절대로 너희들을 다시 물로 심판하지 않는다. 나와 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형상만 너희들이 지키는 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할 수 있도록 반드시 내가 너희들을 지키고 구원한다. 그 언약의 증표를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약속만 하시는 분이실뿐만 아니라 하나도 아쉬울 것이 없으신 그 강하심으로 강하시고 크신 분이 언약의 증표까지 주시는 분이세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 100세에 얻은 아들을 내게 번제물로 바치라 명령하시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은 자기가 복 받으려고 바친 거 아니죠.
하나님께서 내 자식에게 가나안 땅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므로 만약 이 아들을 죽이신다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안 죽이실 것이다.
그리고 이 아이가 설령 죽어도 다시 살려 주실 것이다. 당신의 말씀을 위해서 믿음으로 바치잖아요. 그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올라갔을 때 야야 이제 됐다 네믿음 봤다. 안 그러셨죠. 아이를 제단 위에 눕힐 때 됐다. 안 그러셨습니다. 칼을 뽑을 때 오케이 안 그러셨습니다.
칼을 뽑아서 내려 찍어서 바로 칼이 아이의 심장을 찍기 직전에 야 됐다 이제 내가네 믿음을 봤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22장 16절이에요.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르쳐 맹세하노니 내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셨습니다.
여러분 맹세는 작은 자가 큰 자한테 하는 거잖아요. 하나님께서 하잘 것 없는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시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14장 24절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셔요.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
당신의 모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시면서 하나님께서 내가 맹세해서 말하기를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약속의 증표를 주시는 분이시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맹세를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얼마나 우리가 당신의 말씀을 좇아 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면 이처럼 맹세하시고 증표를 주시겠어요. 사랑하시기 때문이죠.
그때에만 우리가 우리의 생을 영원히 건져 올릴 수 있기 때문이잖아요. 우리에게 맹세해 주시고 우리에게 증표까지 주시는이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우리가 깨닫 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그분과의 관계에서 매일매일 감동적인 삶을 살지 않을 도리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다시는 너희를 물로 멸하지 않는다. 내 너를 구원한다.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할 수 있도록 너를 지킨다. 그 증표를 왜 하필이면 무지개로 주셨는 무지개로 주셨느냐 하는 거예요.
다른 증표도 많이 있을 것 같은데 무지개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여러분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참 무지개를 보기가 어렵습니다마는 옛날에는 60년대까지만 해도 큰 비가 오고 나면 정말 무지개가 아름답게 걸리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무지개의 특징은 첫 번째로 아름답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언약은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내가 지금 죽어간다고 말을 가정해 보십시다.
내 아내가 내 사랑하는 자식들이 여보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 고백 정말 아름답죠.
그러나 그보다도 주님께서 야 재철아 내가 너 살려준다. 네 코 끝에서 호흡은 맞아도 나는 내 속에서 영원히 살 거야 내가 나를 구원해 줘서 그 구원의 언약보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더 아름다운 약속이 어디에 있습니까?
두 번째로 무지개는 일곱 색깔이에요.
신비로워요.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은 신비롭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있을 수 있다고 하는 것 제 과거를 되돌아 볼 때 신비스럽기 짝이없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 다 마찬가지일 거예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우리가 눈을 똑바로 뜨고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게 되기까지 우리 인생 길목 길목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손길을 보십시오 그 신비스러움을이 세상 누가 표현해 낼 수 있겠습니까?
그분이 앞으로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무지개 증표를 주셨습니다.
여러분 무지개는 커요. 무지개는 하늘 이 끝에서 이 끝까지 걸립니다. 그게 그냥 보기에 간단해서 그렇지 그것을 만약에 우리가 걸어간다 자동차를 타고 간다. 얼마나 큽니까?
여러분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은 큽니다. 그래서 나 같은 인간도 구원받는 거여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무지개는 인간이 자기 임의대로 헐거나 세우지 못합니다
인간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해요. 그래서 내가 구원할 수 없는 사람도 하나님은 구원해 내실 수 있습니다.
내가 포기한 사람도 그분의 뜻만 있으시면 그분 때가 될 때 사울을 세우시듯이 그분의 눈에서 비늘을 벗겨내시고 세우신 거여요.
무지개는 땅에 걸리지 않습니다. 무지개는 반드시 하늘에 걸려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위로 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인간이 요구해서가 아니어요 하나님께서 먼저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구원의 증표를 주신 이 무지개는 크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구원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지 않아요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무지개로 예수 그리스도로
당신의 구원의 언약의 증표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에게 남은 그 뭡니까?
믿는 것밖에 없습니다. 아주 이것을 세상적인 표현으로 한다면 믿어주는 일만 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게 뭐예요.
믿어 달라는 거예요. 믿어 드리면 돼요.
그런데 그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 그 구원의 언약을 믿지 못해서 내 인생을 허비한다면 그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말이에요.
우리가 노아 방주 이야기할 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막상 비가 왔을 때 그리고 이게 하루 이틀 오는 비가 아니라 정말 심판의 비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확인 했을 때 누가 가장 후회했을 거라고요.
1:00:02
노아로부터 일당 받고 그 안에 들어가서 망치노 배 지어준 사람 내 분명히 저기 들어가 있었거든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몰랐으면 모르되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이 분명한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의 증표까지 보고서도이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면 믿음의 삶을 살지 못한다면 우리 코 끝에서 호흡이 끝났을 때 하나님을 모르던 사람들이 후회를 더 하겠습니까? 우리가 더 후회하겠습니까?
말할 것도 없이 우리가 더 후회할 것이죠.
여러분 이 시간 우리의 심령 속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영적 무지개를 새기십시다 이 언약을 붙드십시다. 주님의 말씀을 좇으십시다.
그때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새로운 미래와 희망의 실체로서 새해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증표를 줍니다.
돈을 꾸는 자가 빌려주는 사람에게 증서를 써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증표를 요구 하시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구원의 언약의 증표를 주셨습니다. 아쉬운 사람이 필요한 사람에게 맹세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을 믿으면 반드시 구원해 주시고 책임져 주시마 맹세하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온전히 의탁해 드리지 못해서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서 수없이 새로운 달력을 맞았지만 그 모든 시간들이 묵은 시간 헛된 시간들로 산산조각 흩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더 늦기 전에 우리의 어리석음을 이 시간 또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적 무지개를 새길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노아처럼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자들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주시려는 새로운 미래와 희망의 실체를 누리는 진정한 새해가 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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