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 우리의 문화와 가치를 보존하고 사회를 발전시켜온 원동력임을 사회사와 문화사로써 증명하다 !
이 책은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이 기획한 두 차례의 학술대회를 통해서, ‘한글의 사회사’와 ‘한글의 문화사’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11편의 글 모음집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글은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한국의 문화와 가치를 보존하고 사회를 발전시켜온 ‘원동력’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 지식인들이 한글을 연구하며 민본(民本) 사상을 더욱 확고히 해왔다. 한말ㆍ일제 강점기에 한글 운동은 곧 민족국가 건설운동이자 근대 시민의 형성과정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산업화, 세계화의 문화 동력은 곧 ‘한글’의 힘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남북분단을 넘어서는 민족 화해의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 책의 필진으로는 국문학자, 국어학자들과 더불어 역사학자, 사회학자들이 함께 참여하였다. 서로 다른 학술 전통을 지닌 네 분과의 학자들이 모여 함께 토론하면서 각 분과에 닫혀있던 한계를 넘어서서 서로 소통하면서 나온 결과물이 이 책이다.
책에 따르면, 세종은 백성이 쉽게 익힐 수 있는 한글(언문)을 창제하여 법률을 이해하고 교화가 실현되기를 기대하였다. 세종은 양반층의 전유물인 한문을 대신해서 백성들이 사용할 수 있는 문자를 창제하였는데, 훈민정음은 이른바 언문의 탄생 곧 입으로 하는 말(口語)과 문자로 쓰여진 글(文語)이 일치하도록 한 것이다. 세종은 한글을 창제함으로써 백성들이 문자 생활을 통해 생각하고 사고하며 도덕적인 자각 능력을 함양하는 길을 열었던 것이다.
조선후기 들어 소론(少論) 지식인들 중심으로 한글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그중 최석정의 「경세정운」은 한자음을 한글로 일목요연하게 표기ㆍ발음하게 하려는 운도(韻圖)로서 기획되어, 조선을 중심에 둔 한자음 이해, 조선을 중심에 둔 성운학의 체계화 작업을 시행하였다. 또한 유희의 「언문지」는 한글이 한자보다 우수한 문자이며, ‘부녀’ 계층의 문자로만 쓰이는 현실을 벗어나야 한다는 의식 아래 한글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규범을 담은 규범서의 성격을 지녔다.
한말ㆍ일제강점하 위기에 처한 한글의 도약을 이룬 것은 개신교를 중심한 기독교였다. ‘남녀노소 상하귀천’ 가림 없이 모두가 믿음의 발판이자 잣대인 성경을 직접 읽어야 한다고 가르친 개신교의 지침은 신분에 따라 갈려 있던 문자 생활의 이중성과 계층화를 허물어뜨릴 수 있는 이념과 행동 지향성 그리고 조직의 힘을 제공하였다. 개신교는 소통의 신분 장벽을 무너뜨린 탈신분의 길로 들어서 소통의 평등 문화를 만들었다. 「독립신문」과 독립협회 운동은 이러한 국문 중심의 소통 문화 세력을 등에 업고 백성이 공공의 일에 당당하게 참여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의식을 널리 펼쳤다.
이 시기 주시경은 오늘 우리가 누리는 한글의 세계, 곧 말과 글의 일치, 한글 전용, 가로(풀어)쓰기, 형태주의 문법 이론을 핵심으로 하는 한글 혁명을 만드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이었다. 요절한 주시경과 그의 제자 김두봉, 최현배가 만난 1910년과 1914년 사이의 5년은 한글 운동 더 나아가 우리 민족의 언어생활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기간 만들어진 스승과 제자의 한글 사랑이 오늘날의 한글 전용, 가로쓰기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언어 혁명이 식민지 조선에서 싹이 터 해방 공간에서 꽃을 피울 수 있었다. 또한 한말 이후 소리글자가 일종의 세계 표준이라는 논리가 ‘국문’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 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리고 이때의 국문론이 호출하는 주체는 중세적 가치와 결별한, 그리하여 합리적인 생활습속을 영유하는 근대적 생활인으로서의 한국인이었다.
이 책은 이런 한글의 사회사 흐름 외에, 국어 어휘 연구의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여 준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 받아온 유희의 「물명고(物名考)」의 국어사, 생태사, 민속사적 가치를 분석하고, 정약용이 아동용 한자학습서로 편찬한 「아학편(兒學編)」이 이후 100여년이 지난 20세기 초 지석영과 전용규에 의해 일본어와 영어를 더해 4개국 외국어 어휘 학습 책으로 새로이 편찬되었음을 밝히고, 당시 어린이들에게 외국인의 언어에 눈을 뜨게 해주며 외국어를 학습하도록 함으로써 어린이들이 미래에 국제적 역량을 갖춘 동량으로 나가길 의도했음을 강조한다.
아울러, 조선후기 저명한 여성지식인인 빙허각 이씨의 한글본 「청규박물지」의 의의, 한자 ‘曰’의 쓰임 변화를 「숙향전」, 「유씨삼대록」, 「남원고사」 등의 고소설에서 찾아 ‘말하다’란 발화동사로 나아가는 역사성을 찾아보고, 한말의 「제국신문」이 한글로 된 독자들의 글을 게재함으로써 국문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형성해 나가는 데 일조했을 뿐 아니라 국문 신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음을 밝혔다. 또 1920~1940년까지 간행된 「동아일보」 사설 전체를 대상으로 현대적 국한혼용문이 처음 출현한 시기를 특정함으로써 신문 사설에서의 문체 현대화의 출발점을 확인하고, 이후 21년간의 사설에서 현대적 국한혼용문이 사용된 비율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분석하여 현대적 국한혼용문의 확산 양상을 분석하였다.
이와 같이, 필자들은 전통시대에서 근현대까지 한글의 사회적 의미를 밝히고, 한글의 문화적 의미가 어떻게 확장되고 다양한 방법에서 모색되었는지를 포착하였다. 그 결과 ‘한글’이 한국 사회문화의 성격 형성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해하고, 앞으로 한국 사회문화 발전의 방향을 한글과의 연관성 속에서 전망하는 데에 많은 시사점을 제시해 주었다. 특히 본 단행본에서는 한글 연구 시기를 확장하고 있으며, 여태까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한글 관련 주요 텍스트를 학술적 분석 자료로 부각시킨 성과도 확인할 수 있다. 향후 한글 연구에 있어서 본 단행본을 초석으로한 새로운 시도가 이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