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3) - 무량수전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건물 가운데 두 번째로 오래된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지만 건물 규모나 구조 방식, 법식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는 무량수전에 비하여 다소 떨어진다. 그러므로 무량수전은 고대 불전 형식과 구조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기준이 되는 중요한 건물이다.
[원융국사비문]에 의하면 고려 현종 7년(1016) 원유국사가 무량수전을 중창하였다고 한다. 1916년 실시된 해체 공사 때 발견된 서북쪽 귀공포의 묵서에는 공민왕 7년(1358) 왜구에 의하여 건물이 불타서 우왕 2년 (1376)에 원응 국사가 중수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건축 양식이 고려 후기 건물과 많은 차이를 보이므로 원래 건물은 이보다 약 100년 정도 앞선 13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광해군 3년(1611)에 서까래를 깔고 단청을 하였고 1969년에는 번와 보수하였다.
무량수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인데 평면의 경우 건물 내부의 고주 사이에 형성된 내진 사방에 한 칸의 외진을 두른 형식을 취했다. 기둥 사이의 주칸 거리가 크고 기둥 높이도 높아 건물이 당당하고 안정감 있게 지어졌다. 지붕은 팔작 형식인데 지붕의 물매는 후대 건물에 비하여 완만하다. 예로부터 건물의 구조는 단면에 위치한 도리의 수를 셈하여 말하는데 이 집은 소위 9량집으로 외목을 제외한 도리가 9개나 되는 큰 건물이다.
면석과 갑석을 짜맞추어 만든 가구식 기단과 사갑석을 받치는 지대석이 돌출된 계단, 원형 주좌와 고막이를 가진 초석의 법식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의 기법을 계승한 것이다. 계단 동측면에 선각된 '충원적화면(忠原赤花面) 석수김애선'이라는 기록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안허리곡은 보통 건물 중앙보다 귀부분의 처마 끝이 더 튀어나오도록 처리한 것을 말하는데 기둥의 안쏠림과 관계가 있다. 안쏠림은 기둥 위쪽을 내부로 경사지게 세운 것이다. 무량수전에서는 안허리곡과 안쏠림이 공포와 벽면에까지 적용되어 마치 평면이 오목거울처럼 휘어 있다. 귀솟음은 건물 귀부분의 기둥 높이를 중앙보다 높게 처리하는 것인데 수평 부재의 끝부분이 아래로 처져 보이는 착시를 막아준다. 기둥의 배흘림 역시 기둥 머리가 넓어 보이는 착시 현상을 막기 위한 것인데 무량수전의 기둥은 강릉 객사문 다음으로 배흘림이 심하다.
무량수전의 공포 형식은 기둥 위에만 배치된 소위 주심포계인데 매우 건실하게 짜여졌다. 주두 위에서 공포의 짜임이 시작되고 벽면 방향의 첨차와 튀어나온 제공의 길이가 똑같은 전형적인 북방계통의 수법이다. 주두와 소로는 내반된 곡선의 굽을 가지고 있다. 또한 공포 사이 포벽에 뜬 소로를 가지고 있는 점은 이 집만의 특징이다. 무량수전 정면 중앙칸에 걸린 편액은 고려 공민왕의 글씨이다.
내부 서쪽에는 불단과 화려한 닫집을 만들어 고려시대에 조성한 소조 아미타여래 좌상(국보 제45호)를 모셨다. 협시보살 없이 독존으로만 동향하도록 모신 점이 특이한데 교리를 철저히 따른 관념적인 구상이라 하겠다.
대들보 위쪽으로는 후대 건물과는 달리 천장을 막지 않아 지붕 가구가 잘 보인다. 굵고 가늘고 길고 ?은 각각의 부재들이 서로 조화 있게 짜맞춰진 모습은 오랫동안 바라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이와 같은 무량수전의 천장 가구에서 고저장단의 운율을 느낄 수 있다고도 하였다.
원래 내부 바닥에는 푸른 유약을 바른 녹유전을 깔아서 매우 화려하였던 모양이다. {아미타경}을 보면 극락 세계의 바닥은 유리로 되었다고 하는데 녹유전은 이러한 이상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장엄 도구의 하나였던 것이다. (글 : http://www.pusoksa.org/ 에서 발췌)
정면 5칸 측면 3칸, 겹처마 팔작지붕, 주심포, 전후 퇴칸형 9량집 구조 보길이 : 38.20척 도리길이 : 61.90척 기둥높이 : 평주 : 10.86척 고주 : 14.56 ~ 15.00척
西측면.
뒷면
東측면
편액. 공민왕의 글씨
배흘림과 안쏠림
정자살 창호
들어열개문.
보수흔적
문지방 중앙의 철물 명칭은 원산. 무량수전의 원래의 바닥은 푸른유약을 바른 녹유전(綠油塼)이었다고 한다.
여닫이 문이 열려있는 이칸은 우측 협칸이다. 아미타불로 추정되는 소조여래좌상의 옆모습을 볼 수있다.
서쪽을 등지고 앉아 있다. 불자들이 서쪽의 서방정토를 향해 참배하도록 하기 위해.
겹처마의 헛첨차 없는 주심포.
신라형식으로 보이는 나지막한 석기단.
주두나 소로에 굽받침이 있다. 첨차의 양단은 쌍S형 문양을 초각. 평주두위에서 같은 모양의 소첨과 대첨을 十자로 짜올려 그 위에서 공포대 중방을 돌리고 이 위에 다시 첨차를 얹어 단장여와 주심도리를 받치고 있다.
귀공포
퇴량의 머리는 쇠서형으로 빠져 나와 보머리와 직교되는 행공첨차를 두어 1두3승식으로 소로를 놓고 단장여와 외목도리를 받쳤다.
활주
활주의 보수흔적.
고맥이 초석
하인방 밑에는 고맥이석으로 받쳤다.
기둥보수 흔적
붙박이 살창
뒷면에 있는 신방목. 뒷면 중앙칸에 신방(信枋)을 두어 2짝의 골판문을 달았다. <이미지 출처 : 한국의 미13/중앙일보 > 퇴칸의 가구 결구 모습.
고주와 고주사이의 대량결구. 보의 단면이 항아리 모양이다.
대량위에 종량 그리고 솟을합장과 대공이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고저장단의 운율을 느낄 수 있는 천장 가구. <이미지 출처 : 한국의 미13(사원건축)/중앙일보 > -------------------------------------------------------------------------------------------
평면도
정면도
배면도
측면도
횡단면도
종단면도(1)
종단면도(2)
앙시도
와복도
공포상세도
주두,소로 상세도
가구 상세도
도면출처 : 문화재청. |
출처: 나무과자 원문보기 글쓴이: 순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