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독誤讀
이 홍사
책이 나왔다.
별로 내고 싶지 않았던 책을 낸 것이다.
미얀마에서 코로나 19 때문에 비행기가 끊겨 예정대로 들어오지 못했다. 예고도, 연락도 없이 비행기가 어느 날 갑자기 끊긴 것이다. 이유는 코로나 19 때문에 승객이 줄어 적자 운영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가 막혔다. 항공사로 전화를 해서 욕을 한들 무슨 소용이랴. 한 달 반을 인터넷을 뒤적이다 한국으로 의료장비를 실으러 오는 특별기가 뜬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 비행기를 비싸게 주고 타고 들어왔다. 한 달 반이란 엄청 지겨운 시간이었다. 언제 들어올지 기약도 없이 기다리는 일이란 정말이지 고역이었다. 한국으로 들어와도 편한 게 아니었다. 2주간의 자가격리를 해야지만 풀려날 수가 있었다. 핸드폰으로 아침, 저녁으로 몸 상태를 보건소에 보고해야만 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모바일로 체크를 해서 보고하지 않으면 반드시 보건소에서 먼저 전화가 온다. 바쁜 공무원들을 그렇게 성가시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미리미리 체크를 해서 보고를 했다.
어느 놈은 하도 지겨워서 전화기를 집에 두고 낚시를 갔다가 구속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2주간은 집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가려고 해도 반기는 곳이 없었다. 전화하면 자가격리가 풀리면 보자고 했다. 모두가 다 그랬다. 그래도 상가주택이라 다행이지 아파트는 문도 못 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지도 못한다고 했다. 생지옥이다. 하지만 나는 이 층의 사무실에 내려오고 마당까지 내려가 심심하면 세차라도 할 수가 있었으니 그나마 구속감은 덜했다.
기약 없는 한 달 반, 미얀마에서 내 집이 있었으니 다행이었지 여행을 갔다가 그 지경이 되면 그런 낭패가 없을 것이다. 애초에 준비한 혈압약과 공황장애에 먹는 안정제는 떨어지고, 비행기는 끊기고, 공수받을 방법이 없어 미얀마 현지에서 약을 구해서 먹으며 버텼다. 하노이에서 갈아타는 비행기는 베트남에서 경유를 막았고 방콕에서 환승을 하는 비행기는 태국 외교부에서 막았다. 순전히 코로나 때문이었다. 모든 나라가 차단막을 치고 있었다. 돌아올 방법도, 약을 받을 방법도 없었다. 완전히 고립되었다.
더 처참한 일은 미얀마에 지은 집이 팔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투자 초기에 그렇게 치솟던 집값이 아웅산수찌가 정권을 잡고, 룸메이트인 우 띤조를 대통령으로 추대하면서 경제를 개방하고 자유시장 경제를 도입하여 달러가 폭등을 하고 설상가상 주택 가격은, 과잉 공급으로 오히려 떨어졌으니 이중으로 손해가 나는 꼴이다. 투자 초기에 전혀 예측하지 못한 부분이었고 전 재산의 반이 미얀마에 가 있는데 나로서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결국, 미얀마 재산은 투자 금액의 반 토막으로 만들어 놓았다.
생각하면 가슴이 시린 일이다.
순전히 인력에만 의존하는 미얀마의 공사는 어지간히 끝이 났다. 마무리공사와 준공검사가 남았지만, 지주와 공동 개발한 건에 대해서는 지주에게 할당량을 주고, 작고 싼 집은 준공검사를 받아 몇 채 팔아서 밀린 공사비를 주고 아직 한 푼도 회수하지 못했는데, 한 달은 미얀마에서 거주하고 한 달은 한국에서 생활하니 예상치 못한 경비와 관리비가 만만한 게 아니었다.
계륵이라고 했던가?
닭 갈비. 뜯어 먹을 것은 없는데 버리기는 아까운 것이다. 마음과 달리 어느 쪽도 이 지경에서는 팽개치지 못하는 상황이라 이래저래 곤혹스러운데 미얀마에서 예정보다 한 달 반이나 더 잡혀 있었으니 한국의 일이 보통으로 꼬이는 게 아니었다.
막상 들어오면 그렇게 설칠 일은 없는데 내가 없으면 일에 표시가 난다. 여동생이 사무실에서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내 지시대로 한다고 하지만, 없는 표시는 나게 마련이다. 노가다 업종에, 그것도 중장비 임대가 주업이니 여동생의 한계가 보이는 것이다. 발로 뛰면서 다음 공정에 투입될 장비를 미리 계산해야 하는데 여동생은 앉아서 하는지라 그걸 예측하는 안목이 없이 전화만 받고 장비를 배차하는 수준이다.
들어와서 또 보름간 발이 묶였으니 돌아볼 곳이 많고 마음만 바쁜 가운데 책이 나왔다.
그 바쁜 와중에 출판사에서는 내가 한국에 들어온 걸 알고 계속 서문을 보내 달라는 독촉 전화가 빗발쳤다. 대충 끄적여 쓴 글이라 책을 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출판사는 장사치가 분명했다. 나는 문학성의 잣대로 재고 출판사는 경제적 논리로 따진다. 그 장편 소설의 원고는 설을 쇠고 미얀마로 나가기 전에, 책을 내면서 인사치레로 검토하라고 출판사로 보냈으니 출판사에서는 상당히 오래 묵힌 셈이다. 출판사에서 원고를 보고 출간이 결정 났다는 소리를 들은 지가 오래되었다. 핸드폰이나 유튜브에 밀려 책이 읽히지 않는 시대라 출판사 사정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출판사는 책을 내야지만 현상유지라도 하는 모양이다.
서문을 보내고 표지는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밑그림을 그려서 보냈는데 일주일이 안 되어 원고가 책으로 변해서 도착했다.
책이 이렇게 빨리 나왔어?
계약한 만큼의 저자 몫 책이 도착했다. 책을 받은 날, 그때는 무슨 일로 현장을 나갔다가 들어오니 책이 든 상자가 택배로 사무실에 와 있었다. 책을 받고 보니 한 해에 읽히지도 않는 소설을 두 권이나 내는 이상한 놈이 되어 있었다.
책이 나오면 가장 먼저 보내는 곳이 있다.
바로 집안의 최고 어르신인 숙부님께 보내야 한다. 숙부님께서는 중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하시면서 사십 년이 넘게 붓글씨를 쓰신 분이다. 지금은 아흔을 바라보고 계시지만 국전 대상 작가이면서 아직도 서실을 열어놓고 늘 붓을 쥐는 현역이시다. 숙부님의 서실에는 친구분들이나 서예를 배우거나 연습하는 사람들이 항상 몰린다.
표지를 훑어보고 있는데 마침 아들 녀석이 인터넷으로 산, 티셔츠를 배달하러 택배기사가 왔다. 택배 기사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책을 훑어볼 사이도 없이 열다섯 권을 택배로 받은 그 종이상자를 찢어서 얼렁뚱땅 포장해서 보냈다. 숙부님께선 서예도 서예이지만 한학에 조예가 깊다. 책을 무지하게 좋아하시는 분이다. 내가 책을 내면 가장 좋아하시는 분이 바로 숙부님이시다. 심지어 듣기 민망한, 집안의 영광이라는 말씀도 서슴지 않는다.
항상 그랬듯이 열댓 권을 보내드리고 나서 다른 작가들에게 책을 보낼 곳을 적는다. 숙부님께선 책을 받으시면 서실에 자주 놀러 오시는 친구분이나 서실을 이용하시는 분들에게 자랑하면서 파시는 모양이다. 따지자면 일종의 강매지만 책을 받자마자 책값은 항상 먼저 보내주신다. 아무리 그러시지 말라고 해도 그게 안 된다. 아흔이 다 된 노인에게 전화로 계좌번호를 불러 주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구미에서 택배로 보낸 책은 대구의 숙부님께 하루 만에 들어간다. 우리나라 택배의 신속성과 정확성은 가공할 정도다.
숙부님의 전화를 받은 것은 다음날 오후였다. 꼭 보내야 할 작가나 시인들의 주소를 찾아서 적고 있다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으니 호통부터 날아왔다.
“넌 어디서 이런 걸 배웠노?”
그 말을 들으면서 뭐가 잘못되어나, 의심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책에 전화번호가 없다는 것이다. 앞뒤 어디를 찾아봐도 저자의 전화번호가 없다는 것이었다. 숙부님께서 알고 계시는 건 사무실 전화번호다. 사무실로 전화를 하면 여동생의 핸드폰으로 착신이 된다. 또 동생에게 내 핸드폰 번호를 물어서 전화하신 것이다.
책을 살 사람이 전화번호가 없으면 어떻게 사라고 책에다 전화번호를 적지 않는 거냐는 것이었다. 기가 막혔다. 숙부님도 문집을 두 권이나 내신 분이다. 물론 자비 출간이고 여태 쓰신 글을 사진으로 찍어서 거액을 들여 문집을 두 번 발간하신 것이다. 그런 책에는 전화번호가 필요한 것이지 판권이 출판사에 있는 현대 소설에 무슨 저자의 전화번호가 필요하랴? 그러나 숙부님께선 그것을 모르신다. 그걸 설명하자면 길다.
“작은아버지! 소설책은 저자의 전화번호를 원래 넣지 않습니다. 만약 조선의 백정에 대해서 욕을 하거나 비하했는데 식육점을 하는 사람들이 항의 전화가 오면 곤란합니다. 책은 출판사에서 파는 것이니 저자의 전화번호가 필요 없는.......”
한참을 설명하니 알겠다고 하시면서 몇 번째 책이냐고 묻고는 집안의 영광이라고 극찬을 빼놓지 않고 하시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산소에 책을 가지고 가서 고하라고 하시고는 계좌번호를 물으셨다. 그러시지 말라고 해도 안 된다. 막무가내다. 계좌번호를 알려드리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아흔을 바라보는 노인께 정확해야할 열네 자리 숫자의 배열은 상당히 긴 것이다. 계좌번호가 정확하게 전달되고 숙부님께선 또 산소에 가서 고하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숙부님은 책을 내는데 거액의 경비가 들어가시는 줄 알고 계신다. 당신께서 자비 출간으로 양장본으로 된 서첩을 내 보셨으니 그 정도의 경비가 지출되는 것으로 알고 계신다. 꼭 책을 보내 드려야 할 작가들이나 선생님들께 주소를 찾아서 쓰다가 숙부님의 전화를 받았고, 말씀대로 책을 한 권 들고 선산으로 가서 할아버지 산소와 아버지 산소에 책이 나왔음을 고하고 문운이 있게 해 달라고 고했다.
정말이지 나는 문운이 필요한 인간이다. 신춘문예에 칠전팔기를 넘어 구전십기로 당선이 되었다. 최종심에 오른 것만 열네 번, 한 후배 녀석은 이름 대신에 최종심이라고 부르는 녀석도 있었다. 나처럼 어렵게 등단한 작가도 없을 것이라 문운이 절실했다. 진정으로 문운이 있게 해달라고 고했다.
산소에서 내려오면서 받은 문자 메시지로 숙부님께서 책값이 얼마가 들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숙부님께선 계좌번호를 받고 바로 입금을 하신 것이다. 그런 돈이야 다음 설날에, 세배를 올린 적에 세뱃돈이라며 돌려드리면 간단한 일이라 마음 쓰지 않아도 된다.
주소를 묻고 찾아 책을 보내보면 항상 그렇지만 꼭 보내야 할 곳이 한두 군데 빠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보내는 곳을 메모해 두어야 한다. 누구에게 보냈나? 빠진 곳은 없나 생각하지만, 나중에 보면 꼭 보내야 할 분에게 빠진 곳이 있다. 그래서 우체국을 두세 번은 가야만 책을 낸 숙제가 끝이 난다. 책을 먼저 보내고 내가 낸 책을 꼼꼼히 훑어본다. 혹 오자나 탈자가 있나 확인을 하며 객관적인 눈으로 다시 보는 것이다.
책을 보내고 한 사나흘이 지나면 문자가 메시지가 날아오거나 카카오톡으로 책을 잘 받았다는 연락들이 온다. 전화를 직접 하는 시인도 있다. 가장 먼저 전화를 받은 곳이 오리할배였다.
오리할배는 시인이다.
수척한 서정시인인데 인근의 중등학교 교장을 두루 섭렵하고 명예퇴직을 하여 지금 대구에 살고 있다. 오리할배로 말하자면 나의 문학 은사다. 그 옛날 구미가 문학의 불모지라고 불릴 적에 구미로 발령을 받아와서 구미에 문학의 텃밭을 일구신 분이다. 등단을 꿈꾸던 습작 시절에 줄기차게 따라다니며 술을 많이 얻어먹은 대상인데 일흔을 코앞에 두고 있다. 그러고 보니 세월은 엄청 빨리 흘렀다. 오리할배를 만난 지 사십 년이 되어 간다.
“얘야! 너 이게 몇 번째 책이고?”
“아홉 번째 책입니다.”
“지난번 책이 언제 나왔노?”
“올 일 월달에 나왔습니다.”
“한 해에 소설 두 권을 내기가 힘 드는데 큰일 했다.”
“올해 한 권 더 낼 건데요? 환갑 기념으로.”
“네가 벌써 환갑이가? 나이는 나만 먹는 게 아니구나. 그리해라! 기대하마.”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아마도 읽지 않고 책을 받고 바로 전화를 하신 모양이다. 이번에 낸 장편 소설은 회사에 다니다가 명퇴한 주인공이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을 누비는 허구의 기행 소설이라 제목을 신 돈키호테전으로 달았다. 돈키호테를 흉내 내는 주인공의 심리를 그대로 묘사한 소설인데 구체적으로 그렸다. 돈키호테는 당나귀를 타고 다니지만, 소설의 주인공은 할리데이비슨에서 나온 미제 중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것으로 설정을 했다.
오리할배의 전화를 끊고 나자 숙부님께서 또 전화하셨다. 이번에는 내 핸드폰으로 바로 전화를 하신 것이다.
해령이에게 책을 많이 팔라고 전화를 해두었으니 그리 알라는 요지였다. 해령이는 숙부님의 큰딸인데 나에겐 사촌 여동생이다. 도서관에 근무하다가 지금은 대구의 어느 시립 도서관, 관장님이 되었다. 나와는 두 살 터울인데 그 여동생과는 각별해서 수시로 연락을 하는 사이다. 아직 인터넷에 올라오지 않을 것 같아 연락을 미루고 있었는데 숙부님께서 얘기했다는 것이다. 숙부님 내심 자랑하시고 싶은 것이겠지.
숙부님의 전화를 끊고 좀 있으니 해령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책을 냈다는 소식을 아버지를 통해서 들어야 하는 일이냐고 따졌다. 이건 말투가 좀 모진 데가 있는 할머니다. 외손자가 기어 다니는 나이가 되었으니 분명히 할머니인데 말투가 모질다. 아니다. 어쩌면 나에게만 투정으로 그러는지도 모른다. 아직 인터넷 판매가 시작되지 않았을 거 같아서 연락을 미루고 있고 했더니 제목이 뭐냐면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서 다른 도서관 구매 담당에게 부탁하겠노라 했다. 책 제목을 알려주고 책의 표지를 사진으로 찍어서 날려주었다. 지난번에 나온 소설집도 그런 방법을 통해서 도서관에 많이 들어간 줄 알고 있다. 해령이에게 표지 사진을 날려주고 인터넷으로 들어가 내 이름을 검색하니 신간이라며 책이 쇼핑몰에 떠 있었다.
다음날 오리할배에게 또 전화를 받았다.
“아그야! 로시난테가 뭐고?”
“예 그건 돈키호테가 타고 다니던 당나귀의 이름입니다.”
“그래? 이야기가 재미있게 풀린다?”
“유능한 소설가는 이야기를 그렇게 푼답니다.”
“알았다. 당나귀 자지 같은 씨방새야!”
전화는 또 그렇게 끊겼다. 당나귀 자지 같은 씨방새, 라는 말은 소설 속 주인공이 아내와 오토바이를 샀다고 싸우는 과정에서 나온 소설 속의 욕인데 오리할배는 그 욕을 그대로 따라 했다.
오리할배가 드디어 책을 읽기 시작하신 모양이다. 그사이 나도 책을 다 훑어보았다. 내 눈에는 오자나 탈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 책을 다 훑어보았을 때 출판사의 윤 사장이 직접 전화를 했다. 전국 서점과 인터넷에 다 깔았다면서 이번에는 재판을 찍어보자고 했다. 재판? 재판을 찍는다는 말이 생소하게 들렸다. 출판사나 나의 희망 사항이지 그러기는 책이 너무 안 읽히는 시대다. 웃으면서 그러자고 했다.
오리할배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당나귀 자지 같은 소설가야
당나귀 자지 같은 시인, 이종성에게 책 한 권 보내라*
이렇게 적은 문자 뒤에 이종성 시인의 주소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날아온 주소를 보니 시내에 살다가 대구 변두리의 새 아파트로 이사를 한 모양이었다.
아! 꼭 보내야 할 분인데 빠졌다. 항상 이런 식이다. 지난번에 나온 책도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두 권을 보냈다. 아마도 오리할배가 이 시인에게 전화해서 내 소설에 관해서 무슨 이야기했었던 모양이다. 우체국으로 가면서 조금 의심을 했다. 한문학 박사고 한문학 교수에게 현대 소설이 감흥 있게 읽힐까? 모르겠다. 그건 독자의 몫이고 나는 보내면 된다. 만화를 보듯이 술술 읽으시겠지.
그 사이 여러 군데서 전화를 받고 카톡을 받았다. 돈키호테처럼 호탕하게 읽고 있다는 소식들이었다. 심지어 내가 만들어서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직접 후기를 올리는 지인도 있었다. 그런 전화들을 받고 비로소 책을 잘 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고가 쌓이면 숙제처럼 여겨진다. 책을 내고 털어버리는 게 상책이다. 정치색을 지니지 않았으니 한문학 교수라도 토를 달지는 못할 것이다. 한문과 논설만 보는 시인이 엄혹하고 암울한 시대에 정치색을 완전히 배제한 소설을 만화처럼 보는 일도 청량제 구실을 하겠지.
오리할배의 전화를 다시 받은 것은 그 날 밤 꽤 늦은 시간이었다. 잠자리에 들어 정치의 실상을 씹는 유튜브를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아그야, 보월정이 새끼를 치냐?”
대뜸 그렇게 물었다. 보월정이란 소설 속의 주인공이 낡은 오토바이를 의인화하여 지어준 이름이라는 것을 기억했다.
“새끼를 치면 어쩌시려구요?”
“한 마리 분양을 받을까 싶다.”
오리할배는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그렇게 떠돌고 싶은 거다. 눈치로 미루어 소설을 반쯤 읽으신 모양이다. 소설을 읽으시다가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그날 밤늦었지만, 통화를 좀 길게 했다. 소설 이야기에서 그 지역 문인협회에서 회원문집을 발간하면서 석연찮은 경비 문제로 티격태격해졌다는 얘기까지 했다. 그 사실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오리할배가 그 지역 문인협회 회장을 맡아서 기강을 바로 세우고 싶다는 요지였다. 처음에는 등이 떠밀렸는데 파고들어서 보니 분명히 맡아서 바로 잡아야 하겠노라고 했다. 나는 찬성이라고 했다. 미약하지만, 알고 있는 그 지역 문인들에게 전화해서 지원 사격을 하겠다는 영양가 없는 약속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지역 문인들은 모두가 오리할배가 더 잘 알고 계실 것인데 그런 약속을 했다. 이미 시들해진 유튜브를 끄고 잠자리에 들어서 생각하니 회장으로는 오리할배가 적임자다.
다음날 점심 때쯤 오리할배가 또 전화했다.
“이 양반이 웬 전화가 이렇게 잦아?”
평소에 안부 전화를 자주 하는 편이지만 책을 내고 나니 전화가 부쩍 잦았다. 뜬금없이 늑대와 춤을, 이라는 영화를 보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영화를 보지 못했다. 그 영화를 보면 인디언들이 이름을 어떻게 짓는지 알 수가 있다고 인터넷으로 찾아서 보라고 했다. 작가가 명명법에 취약해서는 안 된다고 하며 그 영화를 보면 작중 인물의 이름을 짓는데 상당한 영감을 얻을 것이라 했다. 그때는 사무실에 견적을 받으러 온 손님이 있어서 짧게 통화를 하고 끊었다.
늑대와 춤을.
언제 시간이 되면 꼭 영화를 찾아서 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숙부님의 전화를 받은 것은 그날 밤이었다. 잠자리에 들어서 살짝 잠이 들었다가 잠결에 전화를 받는 것이었다.
책을 다 읽었다는 요지였다.
그런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역정을 내셨다. 목소리로 미루어 분명히 역정이었다. 달콤한 잠이 확 달아났다. 독자가 책을 다 읽었는데 재미가 없으니 책값을 돌려달라는 것처럼 황당했고, 타인은 지옥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타인은 지옥! 언젠가 숙부님께서 문집을 내실 적에 내가 써 드린 발문의 한 토막이다. 결국, 인간은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산다는 말인데, 그 발문이 생각났다. 인정받지 못하는구나, 잠이 들다가 깼는데 모래를 씹은 기분이 들었다. 역시 타인은 지옥이구나, 숙부님께선 책을 꼼꼼하게 읽으시는 분이다. 재작년인가 화장실을 다녀오시다가 넘어지셔서 어깨에 탈골이 되신 적이 있다. 그때 병문안을 갔더니 병실 침대에서 내가 예전에 낸 책을 읽고 계셨다. 연필로 밑줄을 그어가며 앞뒤의 논리가 맞아 점검하고 계셨다.
소설을 그 정도로 꼼꼼하게 읽으시는 분인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황당한 순간에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잠결에 일어나서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전화를 들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다음부터는 알아듣도록 쓰라, 그 말씀을 하셨지 싶은데 제대로 듣지는 못했고 전화는 끊어졌다. 아무튼, 어디서 뭐가 잘못되었나, 편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잠자리가 뒤숭숭했다. 가문의 영광이라고 여기신다던 분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역정을 내시다니, 자고 일어나서도 기분이 상큼하지 못했다.
새벽에 사무실에 내려와 내가 낸 책을 다시 들추어 보았다.
신 톤키호테전?
제목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개구리가 나왔다.
첫 문장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흔 밑자리를 깔아놓은 한학자에게 무슨 말을 써야지 알아듣기 쉬운 걸까?
고심에 빠졌다.
로시난테, 산초판자, 할리데이비슨, 그 오토바이 중에서 883이라고 불리는 오래된 기종, 그리고 요즘 젊은이들이 즐겨 쓰는 은어, 책을 훑어보며 짚어보니 숙부님께서 확실히 이해하시기 무리인 단어나 문장들이 많았다. 역정을 내신 건 아무래도 어젯밤에 약주를 한잔 자신 기분이실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역정을 내실 수가 없는 문제다. 전화를 해보는 게 마땅하다 싶었다.
시계를 보니 그런 일로 전화를 드리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집으로 올라가서 아침을 먹는데 입맛조차 없었다. 그래도 아내에게 표를 내지 않고 꾸역꾸역 밥을 먹고 내려와 숙부님께 전화를 드렸다.
“작은아버지 아침 자셨습니까?”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다.”
“어제저녁에 소설을 하나도 이해하시지 못하시겠다고 하셨지요. 요즘 소설은 그렇게 써야지 젊은 사람들에게 읽힙니다. 인터넷이고. 독자들이고 반응이 다른 책보다 뜨겁고, 굉장히 좋습니다.”
“그러나? 돈키호테가 사람의 이름이지?”
“예. 세르반테스의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입니다.”
“세르반테스는 누구고?”
기가 막혔다. 논어와 맹자를 논해야 했었다.
“스페인의 소설가인데 삼백 년 전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소설이 네가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이야기가 맞재?”
숙부님은 작중 화자와 주인공, 그리고 작가를 구분하지 못하고 계셨다.
“예 맞습니다.”
“돈키호테가 사람의 이름이라면 이해가 간다만 오토바이는 위험하니 그렇게 돌아다니지 마라. 책 잘 읽었다. 집안의 영광이다. 열심히 쓰라.”
말문이 막혔다.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알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지난밤에는 왜 그렇게 역정을 내셨을까?
전화를 끊고 생각하니 어제저녁에 전화하실 적에는 약주를 한잔 자신 것이 자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다소 풀렸다. 그런데 중등학교 국어교사를 사십 년 하신 분이, 세르반테스는 그렇다 치고 돈키호테를 모르시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국전 대상 작가이시면서 국전의 심사위원을 역임하신 분인데 기억이 희미해지신 것인가?
걱정되었다.
연세는 속일 수가 없는 것인가?
종일 우울했다.
그나마 우울증을 달래준 것은 오리할배의 전화였다.
오리할배가 전화를 한 것은 점심나절이었다. 점심을 먹고 골동품 경매장에 구경을 가려고 챙기고 있던 무렵이었다.
탁월하다는 수식어를 앞세웠다.
“아그야! 너 정말 탁월하다.”
“뭐가 탁월해요?”
“오대 적멸보궁을 돌아보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구나. 종교적인 차원에서 그렇게 돌아다니는 것도 수행이지. 주변머리 없는 이야기를 슬슬 돌리다가 독자의 파고드는 게 탁월했어. 나는 수행이 되었다.”
“수행으로 쓴 글이 아닌데요.”
“정말 유쾌하게 잘 읽었다. 오랜만에 만난 유쾌한 소설이었어. 탁월해. 그런데 정선에 송아지 한 마리를 가지러 가야지?”
송아지? 송아지라면 작중에 쌍둥이 송아지를 낳아서 한 마리를 언제 가지러 가겠다고 약속하는 소설 속, 주인공의 작중 이야기다.
“그래야겠죠?”
“너는 대단한 역마살을 지녔다. 몽골로 미얀마로 돌아다니다가 앉아서 삼천리를 돌아다니는 역마살까지 지녔구나.”
“정말 그러네요. 선거 사무실은 차리실 건가요?”
“그래 그렇지 않아도 지금 시내에 선거 사무실 할 자리를 빌리러 나가려는 참이야. 이거 끼어드니 보통 일이 아니구나. 너 미얀마는 언제 들어갈 거니?”
“아직 계획이 없어요. 비행기도 없구요. 그 나라에 가더라도 3주간 호텔이나 집으로 못가고 학교에 칸막이를 쳐놓은 격실에 격리되어야 한답니다. 아무래도 올해 안에는 힘들 것 같아요.”
“그래? 세계가 난리구나.”
통화는 대충 그렇게 끝이 났다. 숙부님께 마음의 상처를 받았는데 조금 상쇄되는 기분이었다. 현대 소설로 따지면 숙부님보다는 오리할배의 안목이 더 정확하리라.
어제저녁에 숙부님께 그런 전화를 받아서 그런지 오늘은 글을 쓸 기분이 아니었다. 내 글을 객관적인 시각, 아니 숙부님의 시각으로 재검토할 시간을 가지는 것도 중요한 과정일 것이다.
그건 기분 전환으로 골동품 경매장에 다녀와서 들추어 보자는 심산으로 골동품 경매장으로 갔다. 골동품 경매장은 그리 먼 게 아니다. 차로 십오 분이 걸리는 부상고개에 있는데 매주 토요일 오후에 개장하기에 별일이 없으면 자주 가는 편이다.
골동품 경매를 보고 있으면 진귀한 물건들이 나와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처음 보는 물건도 있지만, 저 물건이 어디서 나왔기에, 어떻게 저런 가격에 팔릴 수가 있을까 싶을 때도 있다. 골동품이 엄청 싼 가격에 낙찰이 되고 어떤 것은 내 눈에는 별로인데 엄청 높은 가격에 낙찰되기도 하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몇 번을 다녔지만 물건을 보는 안목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장식용으로 될 만한 것을 몇 점 사다 두었지만 그림이나 도자기에 대해서는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보고 있으면 재미가 있다.
가끔 경매사가 물건 보는 안목에 관해서 설명하기도 하는데 그것을 듣는 재미도 보통이 아니다. 가면 뭐든지 한두 점은 나도 낙찰을 받는다. 내가 사는 것은 겨우 옛날 재떨이라든가, 장식용 화병, 근대의 도자기가 고작이지만, 사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다.
한참 경매를 구경하고 있는데 숙부님께서 전화하셨다.
경매장 안이 시끄러워, 잠시만요, 하고는 전화를 끊지 않고 경매장 밖으로 나왔다.
“너? 김원학 박사 알지? 왜 우리 아이들 주례를 섰던 김원학 박사?”
“예! 어떤 분인지 압니다.”
김 박사는 현대문학의 대가로서 대학에서 국문학을 강의하시다가 정년 퇴임을 하고 지금은 대구에서 발행하는 모 신문사의 일간지 객원 칼럼을 쓰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그분의 칼럼을 즐겨 읽는다.
“그 양반이 며칠 전에 왔길래 네 책을 한 권 팔았다.”
“아, 그러셨어요,”
“그런데 그 양반이 조금 전에 전화가 왔는데, 네 소설을 아주 잘 읽었다면서 보기 드문 수작이라고 하더구나. 아주 감동 있게 잘 읽었다는 거야. 내가 현대문학에 대해서 뭘 아니? 그 양반이 이주 호평을 하더구나. 그 양반이 수작이라면 수작이야. 내가 잘못 읽은 모양이구나. 현대 소설에 관해서 내가 뭘 아나? 네 소설을 오독誤讀한 것이지. 열심히 쓰라. 집안의 영광이다. 내가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 봐야 하겠다. 아무튼, 열심히 쓰라.”
“예! 알겠습니다.”
대답을 시원하게 했다. 오독이 명작을 낳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은 하지 않았다. 딱히 뭔가 이름할 수 없지만 막혀있던 무엇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오독誤讀이라. 오독.
경매장으로 들어서니 경매사가 자그마한 백자 항아리를 하나 들고, 도자기 아가리에 대해서 뭔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조선백자 같은데 얼마에 낙찰될지 모르겠다. 한번 찍어나 볼까? 얼마를 찍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귀에서 이명처럼 오독이라는 말이 울리기 시작했다.
오독, 오독, 오독.
하마터면, 도자기 아가리를 설명하는 경매사에게 오독이라고 소리를 칠 뻔했다. 가까스로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경매장을 나왔다. 거기에 있으면 아무래도 엉뚱한 소리를 해서 사고를 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럴 땐 빨리 자리를 뜨는 게 상책이다. 오독, 오독, 오독 차를 끌고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차 안에서 마음껏 소리를 질렀다. 뭔지 모르지만 후련했다. 한참 공을 들여 도자기를 설명하는 경매사에게 오독이라고 소리를 질렀다가는 따귀가 온전치 못했으리라. 오독이 명작을 낳는다고 했는데, 그 백자 항아리는 얼마에 낙찰이 되었을까? 사무실로 돌아와 새로 나온 책을 펼쳐 들고 앉았는데 그게 심히 궁금했다.
크기도 빛깔도 만만한 백자였는데.
참으로, 아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