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를 돌보는 성도들(마태복음 25:34~46)
2024년 12월 15일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설교: 김성현 감독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5:34~4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오늘 우리가 믿는 자로서 또 성도로서 마땅히 해야 될 일들과 자세들에 대해 분명하게 한번 명시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말씀을 엽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구원이라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가 그리스도 교회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 더 포괄적으로 또 더 사랑으로, 배려로 많이 열어서 받아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이 세상 살다가 교회로 오기도 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가기도 하는데, 이런 모습들이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 믿는 것은 되게 쉽구나, 구원은 되게 쉽구나.’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쉽지 않거든요?
많은 사람이 구원의 요소가 뭐냐고 할 때 ‘예수 믿는 것이다. 내 마음에 믿으면 된다. 시인하면 된다. 지적인 동의가 있으면 된다.’ 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성경에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나 몇몇 부분에서 혈통으로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의 생각을 깨기 위해, 그들의 닫힌 생각이 아니라 진정한 하나님의 생각을 풀어주기 위해서 구원에 필요한 자격을 그런 식으로 설명했는데, 그 의도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에 있다’ 하는 데 있습니다. ‘구원은 혈통이 아니라 너의 심령에 있다. 만인이 공통적으로 주님을 순종하고 따르는 데 있다. 구원이 어떤 혈통이라든지, 태어날 때부터 민족적으로 자격이 부여된 거 아니다.’ 한 것입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어! 믿음, 끝!” 하고 모든 것을 쉽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만 강조하다가 잘못된 신앙으로 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오직 믿음’이라는 이단도 있습니다. 균형이 없이 마냥 가면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이 무엇이냐? 여러 가지 다른 식으로 설명되겠지만, ‘난 더이상 타락한 나의 인간성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행하며 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신 요구대로 의를 행하며 의를 위해 살겠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된 것은 구원에 대한 결과입니다. 구원은 뭐냐? ‘다시는 세상적으로 살지 않겠습니다. 나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해 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인데, 그렇다면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마귀가 꽉 잡고 있어서 인간은 절대로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귀의 손에서 인간은 신기하리만큼 무지해집니다. 영적으로는 굉장히 어두워집니다. 우리를 붙들고 그 족쇄를, 원수의 손을 끊어서 자유하게 하는 것이 하나의 구원입니다. 성경의 어느 부분에서는 이를 ‘속량’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죄의 값을 치러주고 그 사람을 사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하여 예수께 속하게 됩니다.
구원은 그 자체로 완성된 것입니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아무도 할 수 없는, 영원무궁토록 유일한 그분만이 할 수 있는, 그것도 그분의 목숨을 내주어서 할 수 있는 그것을 그가 이루셨습니다. 이것은 구원입니다. 구원이 곧 천국행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쓰는 구원이라는 말이 또 있는데, 죗값을 갚아주는, 그래서 사주시는 것 말고, 그야말로 몸에서, 이 땅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천국까지 가야 하는 것인데, 그것도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천국에 이르기 위해 정진하라. 그것을 위해 열심히 달리자.’ 하는 것이 신약성서의 사도 바울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기자나 야고보같은 사람이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았다고 천국행이 확정된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날부터 구원에 이르기까지 일해야 합니다. 구원은 마귀의 손에서 나를 끊어준 것입니다.
구원받은 그날부터는 의를 행해야 합니다. 그동안은 의가 아니라 삶 가운데 형벌거리만 쌓고 있었습니다. 마치 범죄자에게 전과가 늘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원수의 손을 끊어서, 우리에게서 전과가 딱 지워진 것입니다.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도록 원수의 손을 우리에게서 끊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우리는 원수로부터 자유해진 것인데, 우리 교회는 자유하다는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으로 오해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는 자유해~” 하는 가사의 찬양도 부르기 조심스럽습니다. 사람들이 자유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게 오해한 자들이 교회를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말 구원받았다 하면서 악한 행실을 계속 일삼고, 주인의 몸과 같은 교회를 참으로 사랑함으로 자기의 피와 땀으로, 자기의 옥합으로 교회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상대로 싸우고, 갉아먹고, 세상에서 살던 사람들처럼 눈속임으로 자기의 유익을 취하려고 하는 그 이기심에 질려버렸습니다. 이런 자들은 앞서 언급한 첫번째 구원이 안 된 것입니다. ‘나 구원받았다.’ 하는 것은 나는 원수의 손에서 빠져나왔다는 의미입니다. ‘난 다시는 저렇게 살지 않겠다.’라고 다짐한 것입니다.
물론 원수의 손에서 빠져나왔다고 해서 죄의 면죄부를 받은 것도 아니고 죄를 못 짓는 것도 아닙니다. 여전히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합니다. 다만 그럴 때마다 “날 다시 일으켜 세워주십시오. 넘어져도 다시 세워주십시오.” 하고 회개합니다. 우리 모두 넘어졌다 또 회개하고 또 손잡고 용기를 주고, 눈물을 흘리다가 다시 기쁨으로 같이 어울리고 해서 나아가는 것이거든요? 근데 본질적으로 교회를 이용해 먹으려고 하고, 교회에 복수를 하겠다라든지, 또 교회를 통해 계속 자기 욕망을 채우려 하는 것은 구원이 안 된 것입니다. 구원받았다고 주장하지만, 그 과정을 돌이켜보면 구원이 안 됐을 것 같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마태복음 5장에 묘사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 마음이 아픈 자, 울고 있는 자들, 다 회개하는 자들입니다. 세상과 맞지 않는 자들입니다. 다만 그들은 하나님 의에 영원토록 자기를 겁니다. ‘내가 내 삶에서 의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시다는 것이다. 그가 내 아픔도 다 기억하실 것이다. 나는 예수만을 의지하고 간다.’ 원수, 악한 자에게서 자기를 본질적으로 끊은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으셨으니 그에게 속한 나도 죽은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부활하셨다. 그가 부활하신 사실은 이후의 나의 부활을 보증한다. 내가 주안에 속해 있기 때문에 나의 부활도 약속된 것이다.’ 그리고 이 약속을 믿고 ‘내가 오늘부터 의롭게 삽니다.’ 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런데 어떤 자들은 신앙의 문제를 이 세상에서 돌아가는 일처럼 다룹니다. “나 구원받았어.” “어떻게 받았어요?” “나 마음으로 믿고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잖아. ‘난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 봐. 나 그리스도인이지. 나 믿어. 진짜 마음으로 믿어.” 하지만 그 마음은 원수가 여전히 붙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구원됐다 합니까? 구원 안 된 것입니다. 이처럼 겉모습은 갖췄는데 내용은 없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교회는 이 세상에 주어진 사명을 해 나가야 되기 때문에 일일이 돌아보지 못하고 그냥 가는 것입니다. 그나마 우리나라라 이렇게라도 하는 것이지, 다른 나라에서는 그리스도 교회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저 예수의 이름이라도 말하면 박수를 쳐주어야 할 것입니다. 핍박받고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어쨌든 많은 소위 신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진짜 신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구원의 개념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약간 이 점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구원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다 완성됐다고 합니다. 믿음은 동전의 한 면일 뿐입니다. 그 반대쪽 면은 원수에게서 구원된 것입니다. 우리가 주기도문 할 때도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하는데, 원어로는 “악한 자에게서 구하여 주십시오” 입니다. 악한 자, 사단을 말하는 것입니다. 원수에게 잡혀 있으면 구원도 안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침례 받을 때 어땠습니까? 보통은 빨리 신자가 되게 하기 위해 빨리 침례받는 데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다지 이상적인 모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침례받는 사람은 침례 받을 때 다 통곡했어야 합니다. “당신, 진짜로 주 예수와 같이 천국에 갈 거예요? 아니면 지옥에 갈 거예요? 오늘 결정하세요. 지옥에 간다고 하면, 그냥 보내 줄게요.” 이렇게 압력을 바짝 주든지 했어야 합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얘기하고.
구원받은 자는 그날부터 의를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누구누구가 가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 서신이나 여러 가지 성경의 근거에 의해 약속을 받았다고, ‘천국 갈 수 있으리라’고 또 그날에 부르심을 받으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데살로니가서에 보면 나옵니다. 그러나 “나 원래 깡패거든? 근데 엊그제 교회 가니까 나 구원받았대. 헤헤헤. 나 천국 간다~” 한다면, 구원이 안 된 것입니다. 오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에서 한 부분적인 것들을 여기 저기 갖다 붙이는 일이 많았습니다. 빨리 부흥해야 되는 시대에 그렇게 해서 초기 우리의 신앙은 기반이 좀 약했습니다. 믿는 사람은 많은데 진실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정보가 공유되는 시스템이 많이 발달되어서 사람들이 신학적으로도 굉장히 수준 높아졌습니다. 이제는 옛날처럼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구원받았으면 그때부터 구원의 열매가 나와야 합니다. 증거가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 열매일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의 어떤 모습을 좋게 보시고 우리를 천국으로 이끌어 가실까요? 어떻게 해야 그가 우리를 합당하게 보실까요? 우리가 선한 모습, 착한 모습을 나타낼 때입니다. “오우, 선! 도덕!” 이 덕 때문이 아닙니다. 먼저 우리가 원수와 다르고 하나님처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선을 행한 그 자의 마음이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마음과 같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주의 교회를 도울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합당히 여기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사도 요한에게 일을 맡기셨습니다. 그가 부활하신 이후에는 그 사명을 제자들에게 맡겼는데, 어떤 일을 맡기셨습니까? 전도의 사명을, 그리고 교회를 맡겼습니다. 전도한 후에 “예수 믿어요? 그래요, 그럼 끝! 이제 마음대로 하시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천국에 갈 때까지 돌봐줘야 합니다. ‘그때까지 원수를 끊고 거룩하게 지내라.’ 우리의 할 일은 주를, 주의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자기 욕심 차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이 나오는 것은 구원받은 날부터 자기를 새롭게 재정비하지 않은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그때부터 자기가 죄인이었을 때 어떤 특징이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무슨 특징입니까? 바로 이기심입니다.
“다같이 예배 드립시다. 아~전능하신 주여~” 하고 기도를 멋지게 하고 성실합니다. 그런데 그 안에 이기심 가득합니다. 마귀에게서 나오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 사람들이 여전히 장로, 안수집사, 권사라 해서 높임 받은 것을 좋아합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 교회에서 없어져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무언가 훌륭하게 해 내면 계급이 높아지지만,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절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는데도 그 말씀은 무시하면서 계속 그런 태도를 버리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대인들이 이렇게 대접을 받는데, 너희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바, 큰 자가 오히려 섬겨야 된다. 너희의 주 된 나, 너희 목자 된 나는 너희를 위해 죽으러 왔다. 난 너희를 섬기려 온 것이다.’ 엄청 충격적인 일입니다. 이를 그저 “와, 참 훌륭한 모습이네요!“ 하고 넘어갈 수 없습니다. 주님은 목숨을 내주었습니다. 그리스도 교회의 신앙이 이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교회의 신앙은 세상의 아이디어와 계속 경쟁을 하면서 섞여서 석화질 돼서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 챙기는 데에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육신은 다 이기심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꾸준히 제 이기심을 제어합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남이 갖는 데 대해서 저는 기쁘게 생각합니다. 항상 그렇진 않지만, 이 정도 내가 양보하고 했으면 하고 싶습니다. 남들도 그렇게 하면서 살기를 행복해합니다. 나보다 더 순수하고 더 훌륭한 사람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발견한 바로는 우리 교회에서 마음을 멍지게 하고 슬프게 하는 자들은 다 이기심 있는 자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삶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구원받은 자가 아닌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구원받은 자’라는 그 개념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나쁜 모델로 기여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자는 주의 일을, 교회의 일을 도와야 합니다. 우리가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하나요? 나에게 유익한 일을 계속 구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예수를 믿지 말았어 합니다. 믿고 난 후가 전과 무엇이 다릅니까? 교회에 온 것은 계속 내 원래의 삶에 신앙적 도움을 추가로 받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나의 삶을 포기하고 완전히 이제부터는 하늘의 삶에 맞춰야 하늘에 합당한 삶이 됩니다. 세상의 삶, 하늘의 삶, 양쪽을 다 얻지 못합니다. 이 땅의 삶은 완전히 박살나고 깨져서 ‘나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를 위해 나를 다 드려야 합니다. 주님 앞에서 나도 옥합을 다 깨야 합니다. 그의 인생이 잘 안 풀리고, 앞이 밝아보이지 않지만, 이 사람은 천국에 가장 먼저 갈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겉 듣고 넘어가지 마세요. 우리 교회는 말씀을 많이 겉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는 마귀의 손에서 벗어난 자들이다. 이제 마귀처럼 거짓말하지 않고 마귀의 행사를 따라가지 않는 자들이다. 주 예수가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다.’라고 했지만, 우리는 ‘예수가 오신 것은 마귀를 멸하려 하심이라.’ 하는 부분만 가지고 나머지는 다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옛날 습관, 이기심을 제어하셔서 자기 신앙이 참으로 구원받은 신앙인 것을 견고히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처럼 우리도 씨를 심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마귀에게 말씀을 싹 뺏앗기기도 하고, 그냥 넋 놓고 있다가 뺏기기도 하고, 세상의 염려가 가득해서 말씀이 가시덤불 안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고 그냥 막혀 버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소수라도 그 마음에 다른 건 다 빼앗겨도 주님의 말씀만은 빼앗기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세상적으로는 잘 안 될지 몰라도, 천국에는 합당한 자들입니다. “어떤 의미에서요? 뭐 했는데요?” “이 사람은 의를 행했을 것입니다.” “아, 도덕적이어서요?!” “그래서가 아니라, 주님의 교회를 위해 애썼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에 나와 있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이다(빌 2:1~5).[1]’
사랑은 그자체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면도 있지만 사랑이 중요한 이유는 그렇게 해서 주의 교회가 보호가 되고,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끊어지게 됩니다. 원수는 너만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쓰러뜨리고 너만 잘 챙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렇게 하셨다면 우리는 살아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주님으로 인해 살아난 사람입니다.
우리가 일생 동안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 무엇을 위해 일해야 할까요? 자신을 챙기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도 점점 더 겸손하고, 더 사랑하고 하는 의의 길을 갑니다. 어떤 자는 주님께 특별히 한 일이 없는 것 같고, 교회에서 특별히 높은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마지막 날 주님은 그를 향해 ‘그러나 너는 나를 섬겼느니라. 너는 꾸준히 교회를 섬겼느니라.’라고 할 것입니다. 주님은 공적인 어떤 덕목 자체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사랑해 주는, 그가 우리에게 맡기신 우리의 본분, 의를 위한 우리 삶을 충실하게 해 주길 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랑과 선행을 행하며 내 교회를 돌보아라. 이렇게 주께서 너의 죄를 사하셨으니 이제는 네가 마음을 깨끗게 하여 완전히 변화되어 주를 섬기라(히 10:19~25).[2]’고 했습니다. 또 고린도전서 12장에서는 ‘서로 돌아보아라(고전 12:25~27).[3]’라고 했습니다.
시편에 보면 속이 악한 자들이 나옵니다(시 52:1~5)[4]. 그들이 말로는 하나님께 가까운데 하는 일은 하나님으로부터 멉니다. 그런 자를 하나님이 모르지 않습니다.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고 사실 악을 사랑한다는 것을 하나님도 다 아십니다. 그래서 그런 자를 뿌리 뽑으실 것이라 했습니다(시 52:5). 다윗은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회개합니다. ‘내 죄에서 나를 돌이키게 하옵소서. 내 속에 깨끗한 마음,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혼을 새롭게 하옵소서. 그리고 부디 나를 버리지 마옵소서.[5]’ 합니다. 이런 자가 구원받은 자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을 오해하지 말고, 신앙을 겉넘어서 생각하지 말고 교회 섬기는 여러분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인생을 낭비하지 마세요. 전에 갖고 있던 생각에 계속 머물러 있으려 하지 말고, 오늘 여러분께 선포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새롭게 여러분을 세워나가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평생 동안 교회를 섬기고, 사랑하고, 아끼고 돌봐주는 여러분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받아 주시옵소서. 우리가 연약하고 무지하여 때로는 잘못된 길도 가지만, 이제는 정말 구원받은 자 되길 원합니다. 원수에게서 떨어져 나가고, 이제부터는 의를 행하는 자가 되되, 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께서 우리를 섬겼듯이 나도 주의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 내 인생이 누가 보더라도 세상의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어떤 개념으로 확인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는 것으로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주여, 우리를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다같이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들은 우리 교회 모든 성도를 도와주시고, 신앙의 문제를,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아무렇게나 결론 내리는 자가 아닌 주님의 말씀에 근거하여서 자기가 원수로부터 해방이 되고, 그리스도에게 속하여서 이젠 그리스도가 내 속에서 당신의 일을 하실 수 있는, 이미 옥합을 깨듯이 그에게 드려진 내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의로운 마음으로 주님의 교회 잘 섬기고, 약한 자 돌보고, 슬픈 자 위로하고, 아픈 자를 또 치료하고, 함께 기쁘게, 함께 교회를 위하여 희생하고 돕는 자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주님이 보시기에 하늘에 합당한 자, 영원한 하나님의 기업에 참여하는 자 다 되는 인정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녹취: 성락교회 성락선교센터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1~5)
[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19~25)
[3]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5~27)
[4] 강포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 (셀라) 간사한 혀여 네가 잡아 먹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그런즉 하나님이 영영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취하여 네 장막에서 뽑아내며 생존하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셀라) 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며 또 저를 비웃어 말하기를(시 52:1~5)
[5]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 51:9~11)
[출처] 20241215 교회를 돌보는 성도들(마태복음 25:34~46)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김성현 감독|작성자 이기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