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한 마리 뒤집혀져 있다. 바닥을 기던 여섯 개의 다리는 낯선 허공을 휘젓고 있다. 벌레는 누운 채 이제 닿지 않는 짚어지지도 않는 이 새로운 바닥과 놀고 있다. 다리들은 구부렸다 폈다 하며 제각기 다른 그림을 그린다.
그는 허공의 포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허공의 만삭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거기에 그림을 그린다. --------------------------------------------------------------------------- 일차적으로는 기어가던 벌레가 뒤집어져 버둥거리는 모습. 벌레 다리 허공을 휘젓고 있으니 허공은 새로운 바닥. 다리 노는 곳에는 당연 바닥이라는 말이 불려 와야 하는 것. 그럼 벌레 그는 제 수개의 다리로 새로운 바닥 허공에다 다른 그림(시 또는 삶)을 그리게 되는 것. 창조작업에 대한 열망과 욕망이 벌레를 빌려 인식의 뒤집기를 했다. 기존 세상의 상투성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창조정신은 두려움이 없지만, 한편 두려운 것이기도 한지 허공의 포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허공의 만삭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거꾸로 고백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