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이 사는 세상
유영숙
새벽이 커튼 사이로 걸어 들어오면
그녀의 이불이 들썩인다
잠귀가 밝은 그녀는
어스름 그림자를 눈꺼풀로 누르고
나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죽상을 하고 다시 눕던 그녀 벌떡 일어난다
내 몸에 붉게 둥굴게
거칠게 판화를 새기던 오늘이다
나는 네모반듯한 하얀 정장을 한
그녀 방을 지키는 보초병
어둠과 고요에 강하다
마주 한 사진 속 그녀 충만한 미소 여전하고
삼 년째 토슈즈를 묶고 있는
발레복 입은 소녀 불만 없이 그대로다
무료한 불평은 벽 속 깊이 밀어 넣고 못을 박았다
한 달의 마지막 날이면 달거리 하듯
벅벅 찢기는 아픔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가끔 머리칼에 베어든 취기가
옷길을 구기는 날에는
커튼 밖 세상은 어떠한지
늦은시간 그녀가 들어와
홍조 가득한 얼굴로 내 몸에 알 수 없는 문자를 새기고 화장을 지운다
“행복을 찾아서”를 켜고 그녀는 곧 잠이 들것이고
나는 벌써 다섯 번째 관람 중이다
이 방을 지키는 문지기 보수로 충분하지,
커튼 밖 세상 궁금하지 않다
삼겹살 먹는 날
아픈 바람
어깨 깊숙이 숨어들고
시린 무릎 두두둑 요란을 떨어
방 닦기를 포기한 날
병원 약보다는 삼겹살이 급 처방이라는
친구와 마주한다
수박씨 만큼이나 커진 눈 밑 주근깨
눈꼬리 깊은 고랑의 서글픔이
불판을 달군다
달려드는 세월에 부딪치며 얻어낸 훈장
낮달 속살 같은 상추쌈에 얹어
서로에게 건네면
몸통만 남은 겨울 가로수처럼
자극에 흔들림 없던 감성들
미끈한 유분기에 춤출 준비를 한다
싹 틔울 어린 속잎 겹겹이 껴안아 지켜냈으니
온몸으로 읽어내는 세월가는 소리쯤은
묶은 지에 버무려 시원하게 삼켜버리자
어릴 적 고래 한 마리
싹 틔울 어린 속잎 겹겹이 껴안아 지켜냈으니
온몸으로 읽어내는 세월 가는 소리쯤은
묶은 지에 버무려 시원하게 삼켜버리자
어릴 적 고래 한 마리
마주 앉은 친구 볼우물에서
뼈 없는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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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이 사는 세상 / 유영숙
김명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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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25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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