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차를 달이면서
우리 집 앞 베란다 뒤 베란다 시렁에는 바구니 몇 개와 종이박스가 놓여 있다. 그 안에는 각기 내용물이 다른 것들로 채워져 있다. 이들은 모두 내가 산과 들을 누비면서 채집해 온 것들이다. 한방 재료를 파는 건재상에서 구해 왔다면 그 비용이 제법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것들을 채집해 온 장소는 여러 군데다. 그 시기도 내용물 따라 철이 달라 특정한 때가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해 연말 밀양 지인 농장을 방문했다가 구지뽕나무 뿌리를 잘라왔더랬다. 그때 지인은 몇 해 동안 무성한 텃밭 잡초를 감당하지 못해 굴삭기 기사를 불러 밭이랑을 새로 일구었다. 마침 내가 방문했을 때가 그 무렵이었다. 굴삭기가 일군 밭에서 이랑을 짓는 일손을 돕고 구지뽕나무 뿌리가 여러 갈래 드러나 있어 잘라왔다. 뿌리만이 아니라 억샌 가시가 붙은 가지도 몇 줌 보탰다.
연초 겨울방학 때 북면 지인 농장을 찾아갔었다. 겨울이라 지인은 농장에서 하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묵어둔 개와 풀어 키우는 닭에게 사료를 주는 정도였다. 매실과 대봉 가지치기를 끝내고 이웃한 단감과수원 전지를 도왔다. 지인은 밭둑에 튼실하게 자란 엄나무를 잘라 박스 몇 개에 담아 놓았더랬다. 나는 지인에게 동의를 구해 잘라둔 그 엄나무 가지 일부를 집으로 가져왔다.
김해지역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던 대학 동기가 있다. 동기는 올가을 시내로 옮겨왔다. 지난 봄방학 때였다. 칡을 캐러 가고 싶다고 해서 내가 아주 수월하게 캘 수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그곳은 창원터널 너머 장유계곡이다. 불모산 송신소로 오르는 약수산장 인근에서 우리 들은 커다란 칡뿌리를 손쉽게 캤다. 그 칡은 동기가 대부분 가져가 칡즙을 내고 나는 조금만 잘라 말렸다.
내가 봄날 주말이면 근교 산자락으로 올라 산나물을 마련하느라 바쁘다. 여름이면 그보다 더 깊숙한 산기슭으로 들어 영지버섯을 찾아낸다. 참나무 숲에서 삭은 나무둥치를 만나야 한다. 올여름은 강수량이 적어 영지 생육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래도 부지런히 발품을 판 덕에 영지버섯을 좀 구했다. 베란다에 말려 형제와 몇몇 지인들에게 나누었다. 그 나머지 부스리가 아직 남았다.
가을 들어서는 몇 차례 산행에서 참나무 상황버섯과 말굽버섯과 운지버섯을 마련했다. 늦여름에서 초가을 산행에서 독버섯을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내 역시 버섯 전문가가 아닌지라 독버섯을 다 가려내지 못한다. 그래도 참나무 등걸에서 핀 버섯은 식용 아니면 약용이었다. 여름철엔 영지버섯을 땄고 가을에는 그리 많은 양은 아니지만 상황과 말굽과 운지를 찾아내 베란다에 두었다.
지나간 가을이었다. 내가 가끔 가는 서북산 임도를 걸으면서 가을에 핀 야생화들을 완상하였다. 노란 이고들빼기와 하얀 취꽃을 만났다. 연보라 쑥부쟁이와 하얀 구절초는 군락으로 피어 장관이었다. 그 가운데 노란 산국도 피어났다. 지역 소주 업체에선 그 꽃잎으로 국화 소주를 빚어 시판한다. 나는 산국 꽃잎을 몇 줌 따 와 말렸다. 한림 강둑에선 산국 사촌쯤 되는 감국꽃잎도 따왔다.
나는 이러한 나뭇가지나 버섯이나 풀뿌리들이 우리 몸 어디에 좋은지 잘 모른다. 다만 독성은 없으리라 보고 꾸준히 차로 끓여 먹고 있다. 올해만이 아니라 수 년에 걸쳐 계속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건재들은 나는 마음만 먹으면 산과 들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자연인에 머문다. 주변에 내같은 사람만 있다만 한방 건재상이나 한의원은 영업 수지가 맞지 않을 것이다.
이런 차를 음용하고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내 생이 부지되는 그날까지 건강했으면 한다. 아직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고, 이후에도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을 정도 건강은 유지하고 싶다. 그런 사명감 때문 닷새나 일주 사이 한 차례 새벽에 일어나 약차를 달이고 있다. 칡뿌리, 구지뽕나무, 엄나무, 영지버섯, 상황버섯, 말굽버섯, 운지버섯, 감국이다. 여기다 대추 몇 알. 17.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