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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ng and them
The untold story of the palace’s role behind the collapse of Thai democracy
태국 민주주의 몰락의 배후에 왕실이 맡았던 역할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
THAILAND’S tourism business, its export industries and its reputation have been wrecked by recent events. Crowds of royalists have occupied the government’s offices for months and then seized Bangkok’s airports. The police refused to evict them. The army refused to help. This week the siege was ended after the courts disbanded three parties in the ruling coalition. But the parties plan to re-form under new names and continue governing, so fresh strife threatens. It is as if a thin veneer of modernity, applied during the boom of the 1980s and early 1990s, has peeled away. Until recently a beacon of Asian pluralism, Thailand is sliding into anarchy.
태국의 관광 산업과 수출 산업 그리고 국가 이미지가 최근 사태들로 인하여 추락하고 있다. 왕정주의자들이 몇 달 동안 정부기관 건물을 점령하더니 이제는 방콕 공항을 점거하였다. 경찰은 이들을 퇴거시키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군대도 (이러한 상황을) 돕기를 거부했다. 이러한 점거 상황은 이번 주에 법원이 지배 연합 여당의 세 정당들을 해산토록 명령하면서 일단락됐다. 그러나 (해산을 명령받은) 정당들이 새 이름으로 재결성하여 지배를 계속할 계획을 세우자 다시 새로운 투쟁이 시작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는 마치 얇은 모더니티의 막 -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붐이었던 - 이 벗겨져 버린 것 같다. 최근까지 아시아에서 다원주의의 지표/상징이었던 태국은 무정부상태에 돌입하고 있다.
The conflict began three years ago as peaceful rallies against corruption and abuse of power in the government of Thaksin Shinawatra. The protesters, wearing royal-yellow shirts and accusing Mr Thaksin of being a closet republican, got their way when royalist generals removed him in the coup of 2006. But on democracy’s restoration last year, Thais elected a coalition led by Mr Thaksin’s allies. The yellow-shirts of the inaptly named People’s Alliance for Democracy (PAD) revived their protests and adopted increasingly thuggish tactics, prompting Mr Thaksin’s supporters to don red shirts and fight back.
이 갈등은 삼년 전 탁신 시나와트라 정부의 부패와 권력 남용에 반대하는 평화 시위로부터 시작됐다. 왕실을 상징하는 노란 셔츠를 입고 탁신이 closet republican(공화주의자...?)이 되는 것을 규탄하는 시위자들은 2006년 왕정주의 군인들이 탁신을 쿠데타로 몰아냈을 때 자신들의 주장대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작년 민주주의가 다시 재건되면서, 태국인들은 탁신의 동료들이 이끄는 연합 정당을 선출했다. PAD라는 부적합한 명칭이 주어진, 노란 셔츠를 입은 사람들(즉 탁신 반대주의자들)은 다시 반대시위에 나섰고 갈수록 폭력적인 전략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탁신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붉은 셔츠를 입고 그에 맞서도록 자극했다.
Speak it not 그것에 대해 말하지 마시오.
Throughout this conflict, the great unmentionable, not just for the Thai press but also for most foreign reporters, has been the role of King Bhumibol, his family and their closest courtiers. The world’s most ferociously enforced law against lèse-majesté (offending the crown) prevents even the mildest discussion of the palace’s role in Thai public life. Such laws are mostly in disuse elsewhere, but Thailand’s was harshened in the 1970s. Absurdly, anyone can bring a lèse-majesté suit. The police have to take seriously the most trivial complaints. All this makes the law a useful tool for politicians and others seeking a way to damage their foes. Often, the press is not allowed to explain the nature of any supposed offence against the crown, so Thais have no way to tell whether it really was so disrespectful.
이러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태국 언론은 물론 대부분의 국외 언론들도 태국의 왕 Buhmibol과 그의 가족 그리고 가까운 조신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왕실에 대한 불경죄lèse-majesté 덕에 태국의 공적인 상황에 대한 왕실의 역할/입장에 대해서는 아무리 단순한 수준일지라도 논의하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법률은 다른 나라에서는 대개 더 이상 무효화되고 있는데, 태국에서는 1970년대에 오히려 강화되었다. 심하게 말해서, 누구라도 불경죄로 소송을 걸 수 있다. 경찰은 아주 사소한 불만일지라도 (불경죄를) 매우 심각하게 다뤄야 한다. 이 모든 상황들로 인해 정치가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은 이 법을 자신의 적을 공격하는데 유용히 활용하고 있다. 언론이 왕실에 대한 모든 종류의 공격에 대해 그 성격/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태국인들은 그러한 공격(이라 불렸던 것)들이 정말로 그렇게 불경한 것이었는지의 여부를 판단할 방도가 없다.
The lèse-majesté law is an outrage in itself. It should not be enforced in any country with democratic pretensions. Worse is that the law hides from Thais some of the reasons for their chronic political woes. For what the king himself calls the “mess” Thailand is in stems in many ways from his own meddling in politics during his 62-year reign (see article). In part, the strife also reflects jockeying for power ahead of the succession. With the king celebrating his 81st birthday on December 5th, that event looms ever larger.
(그러나) 불경죄 법은 그 자체가 불법적이다. 민주주의를 채택한 국가라면 불경죄 법이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더 나쁜 것은 이 법이 태국인들로부터 정치적으로 불행한 사태에 대한 어떤 특정한 이유들을 감춘다는 것이다. 국왕 자신이 “엉망”이라고 부르는 그러한 것들은 그의 62년 재임기간 동안 국왕 자신이 정치에 끼어들었던 것으로부터 기인한 것이 상당수이다. 부분적으로, 지금의 투쟁은 권력 승계에 앞서 벌어지는 권력 간의 다툼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12월 5일 국왕의 81번째 생일을 맞이하면서 사건은 보다 더 확대되고 있다.
Much of the story of how the king’s actions have hurt his country’s politics is unfamiliar because Thais have not been allowed to hear it. Some may find our criticisms upsetting, but we do not make them gratuitously. Thailand needs open debate if it is to prepare for the time when a less revered monarch ascends the throne. It cannot be good for a country to subscribe to a fairy-tale version of its own history in which the king never does wrong, stays above politics and only ever intervenes on the side of democracy. None of that is true.
국왕이 태국의 정치에 어떤 해를 입혔는지에 대한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태국인들에게 생소한데, 왜냐하면 그들은 그러한 것에 대해 듣지 못하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우리의 (국왕에 대한) 비판을 접하고 분노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없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태국이 앞으로 덜 존경받는 왕실이 승계 받을 때(즉 왕실의 권위가 떨어질 때라는 뜻인듯)를 대비하려면 (왕실에 대한) 논의를 공개적으로 벌일 필요가 있다. 한 국가에 있어 자신의 역사를, 국왕은 전혀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정치에는 개입하지 않으며 단지 민주주의의 차원에서만 개입한다는 식의 동화 같은 버전으로만 인식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그러한 것들은 절대 진실이 될 수 없다.
The official version of Thai history dwells on episodes such as the events of 1992, when Bhumibol forced the resignation of a bloodstained dictator and set his country on course for democracy. But many less creditable royal interventions have gone underreported and are seldom discussed. In 1976, paranoid about the communist threat, the king appeared to condone the growth of the right-wing vigilante movement whose members later took part in the slaughter of unarmed student protesters. In the cold war America saw Bhumibol as a staunch ally and helped finance his image-making machine. This long-standing alliance and the fierce lèse-majesté law have led Western diplomats, academics and journalists to bite their tongues and refrain from criticism.
태국의 공식적인 역사는 1992년 Bhumibol 국왕이 피로 얼룩진 독재자로 하여금 사임하도록 압박을 가하여 국가를 민주주의의 궤도에 올린 사건과 같은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그러나 왕실의 개입은 대개 보도되지 않으며 거의 논의되지 않는다. 1976년 공산주의의 위협이 극에 달했을 시절, 국왕은 후에 비무장한 학생 시위대들을 무참히 살해하는데 참여한 우익 자경단체 움직임이 커져가는 것을 묵인했던 것으로 보인다. 냉전 기간 중 미국은 국왕을 굳건한 우방으로 간주하고 그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자금문제를 도와주었다. 이러한 오랜 기간의 동맹과 단호한 불경죄 법으로, 서구 외교관들과 학계, 언론인들은 입을 다문 채 비판을 삼갔던 것이다.
After the 2006 coup, the 15th in Bhumibol’s reign, officials tried to tell foreigners that protocol obliged the king to accept the generals’ seizure of power. Thais got the opposite message. The king quickly granted the coupmakers an audience, and newspapers splashed pictures of it, sending Thais the message that he approved of them. In truth the king has always been capable of showing his displeasure at coups when it suited him, by rallying troops or by dragging his feet in accepting their outcome. And he exerts power in other ways. Since 2006, when he told judges to take action on the political crisis, the courts seem to have interpreted his wishes by pushing through cases against Mr Thaksin and his allies—most recently with this week’s banning of the parties in the government.
국왕 재임 15년째인 2006년 쿠데타가 발생한 후, 태국 관리들은 외국인들에게 조약protocol이 국왕으로 하여금 장군의 권력 강탈을 받아들이도록 했다고 이야기를 하려 했다. (그러나) 태국인들은 그 반대의 메시지를 들었다. 국왕은 재빠르게 쿠데타 세력을 알현했고 신문은 그 장면을 찍은 사진들을 퍼뜨림으로써 태국인들에게 국왕이 쿠데타 세력을 인정했다는 메시지를 주었다. 사실 국왕은 언제나 쿠데타에 대한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군대를 모으거나 쿠데타의 결과를 받아들이는데 늑장을 부리는 등을 통해 나타내 보일 수 있었다(그런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 국왕은 또한 다른 방식으로도 권력을 사용한다. 2006년 국왕이 판사들에게 정치적 위기에 대한 액션을 취하라고 이야기한 이래, 법원은 그의 바램을 탁신과 그의 동료들에 반대하는 케이스들을 밀고 나가는 것 - 가장 최근의 경우 이번 주에 탁신의 정당을 정부에서 금한 것 - 으로서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No fairy-tale future 미래에는 동화가 없다
In the imagination of Thai royalists their country is like Bhutan, whose charismatic new king is adored by a tiny population that prefers royal rule to democracy. In reality, with public anger at the queen’s support for the thuggish PAD and the unsuitability of Bhumibol’s heir simmering, Thailand risks the recent fate of Nepal, which has suffered a bitter civil war and whose meddling king is now a commoner in a republic. The PAD was nurtured by the palace and now threatens to engulf it. An enduring image of the past few days is that of PAD toughs shooting at government supporters while holding up the king’s portrait. The monarchy is now, more clearly than ever, part of the problem. It sits at the apex of a horrendously hierarchical and unequal society. You do not have to be a republican to agree that this needs to be discussed.
태국 왕실은 태국을, 민주주의보다는 왕실의 법칙을 선호하는 적은 수의 국민들로부터 국왕이 사랑받는 부탄과 같은 나라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민들이 여왕이 잔혹한 PAD를 지지한 것에 분노하고 있고 국왕의 부적절한 후계자 문제로 들끓고 있는 태국은 참혹한 내전으로 고통 받고 있고 국왕이 공화국의 평범한 국민이 된 최근의 네팔의 운명을 무릅쓰고 있는 형편이다. PAD는 왕실의 지원을 받았고 이제는 왕실을 집어 삼키려는 위협을 가하고 있다. 지난 며칠간의 이미지는 PAD가 국왕의 초상화를 들고서 정부 지지자들을 향해 총탄 세례를 퍼붓는 것이었다. 왕실은 이제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명백하게 문제의 한 부분이 되었다. 왕실은 끔찍하게 위계적이고 불평등한 사회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 상황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기 위해 공화주의자일 필요도 없다. (너무나 당연히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것)
As The Economist went to press, on the eve of the king's birthday, he was reported to be unwell, and unable to deliver his usual annual speech to the nation. So he had still not repudiated the yellow-shirts' claims to be acting in his name. His long silence has done great damage to the rule of law in Thailand. He could still help, by demanding, as no one else can, the abolition of the archaic lèse-majesté law and the language in the current charter that supports it, and so enable Thais to have a proper debate about their future. He made a half-hearted stab at this in 2005, saying he should not be above criticism. But nothing short of the law’s complete repeal will do. Thailand’s friends should tell it so.
이코노미스트지가 국왕 탄생일의 이브에 출간되었을 때, 국왕은 건강이 좋지 않아 매년 해왔던 연설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보도되었다. 즉 그는 여전히 노란 셔츠 입은 집단이 그의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것을 거절/부인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왕의 긴 침묵은 태국 법의 원칙에 커다란 해를 입히고 있다. 국왕에게는 케케묵은 불경죄 법 및 그것이 근거하고 있는 헌장의 폐지를 주장함으로써 아직 (이 상황을) 도울 수 있는 여지가 있는데, 이는 오직 국왕만이 할 수 있는 일이며 또한 태국인들로 하여금 태국의 미래에 대해 적절한 논의를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국왕은 2005년에 자신이 비판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서는 안된다고 언급하면서 어느 정도 이 문제에 대한 가능성을 열었다. 그러나 불경죄 법의 완전한 폐지만이 해답이다. 태국의 친구라면 그렇다고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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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Thais got the opposite message. 반대의 메세지인지, 여당의 메세지인지 헷갈리네요 ㅠㅠ 알려주세요
제가 해석하기로는 외부에 알려진 메시지(국왕이 어쩔 수 없이 쿠데타 세력을 승인했다는 것)에 반대되는 메시지(즉 국왕이 바로 쿠데타를 승인했다는 것)라고 생각됩니다.
He made a half-hearted stab at this in 2005, saying he should not be above criticism. -> 2005년에 '이를(this)' 시도해봤었다. 그가 비난의 여지의 주인공일 거라면서. 라고 해도 되나요?
문장을 의역해보면 2005년에 태국 국왕이 왕이라고 해서 비판의 무풍지대(?)에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언급을 함으로써, 어느 정도 왕실불경죄 폐지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의미인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this란 abolition of the archaic l?se-majest? law and the language in the current charter that supports it 일 것이고 "he should not be above criticism"이라는 국왕의 코멘트는 자신도 개방적으로 미디어나 여론의 비판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push through cases against~ -> 탁신의 유죄를 입증할만한 증거를 밀고 나가다, 통과시키려하다....이렇게 해석하면 되나요? 아님 소송을 제기하다는 뜻인지..그냥 직역하면 정확한 의미를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