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사는 일을 벗어나는 길
유머가 많은 사람이 건강하다고 합니다.
유머러스한 사람은 남을 잘 웃기고 이맛살 찡그리는 일은 안 하거든요.
자기 마음이 쾌활한 사람이라야
남을 웃기지 자기 마음이 찌그러진 사람은 남을 잘 웃기지 못하거든요.
이것도 다 마음이 하는 것입니다.
안 좋은 기분으로 살다 보면 항상 이마가 찡그려지고 얼굴에 주름살도 는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정신과 모든 힘이 위축되어 결국 활력을 잃게 되고 빨리 죽게 마련입니다.
중생계에는 재앙 등 장애가 많습니다.
불심이 깊고 경험이 많은 분들은 재앙에 슬기롭게 대처하는데
그렇지 못한 분들은 앞뒤가 막혀서 혼미에 빠집니다.
그래서 그런 일들을 잘 피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밝아야 하는데 지혜가 밝으면 그런 묘미가 생깁니다.
그야말로 죽지도 살지도 않은 그런 경계까지 밝혀서 잘 실행이 된다는 것이지요.
불교에서는 생사를 초월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죽는 일에도 걸리지 않고 사는 일에도 걸리지 않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것은 육체를 중심으로 사는 것이지 육체를 떠난 입장에서는 생사의 구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생의 처지에서는 죽고 사는 것이 분명히 있는데 어떻게 그것을 초월하느냐 하는 생각이 들지요.
그러나 사람은 육체를 중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중심으로 사는 것인데,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죽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가 죽고 사는 것이고, 육체가 사는 것이지 마음 자체는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산다고 해서 별스럽게 더해지는 것도 아니고, 죽는다고 해서 감해지고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육체라고 하는 것은 지수화풍 사대로 형성된다고 합니다.
인연 따라 모였다가 흩어진다고 하지요.
뼈는 흙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흙으로 간다고 합니다.
또 모든 액체, 소변이나 피, 고름은 물에서 왔기 때문에 물로 가고,
체온은 자연물의 에너지를 취한 것이기 때문에 그 자리로 돌아갑니다.
또 움직이는 동작은 바람에 속하는데,
그것 역시 바람으로 돌아가고 네 가지가 다 돌아가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는 허망하다고 하는 겁니다.
육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섞여 형성되었기에 그것을 고정된 실체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들은 육체처럼 깨끗한 것이 없고 육체처럼 더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몸 말고도 아무 물건도 없다 해서 몸을 제일로 여기고,
조금이라도 상할까 봐 애를 쓰고 좋다는 약은 다 먹고 도움이 된다고 하면 무엇이든지 다 하지요,
그러나 육체는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늙고 병들어 죽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육체는 무상하다고 합니다.
반면 이면의 자기 마음자리라고 하는 것은 언제든지 그대로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다음 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도리에 확신을 드리고자 합니다.
옛날, 등은봉-이라는 스님이 주석하시는 큰절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대중도 많았습니다.
그러니 공양주 소임이 바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 공양주 소임을 맡은 한 스님이 불을 지피다 잘못 하여 옷에 불이 붙는 바람에 타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스님이 죽는 순간에 든 생각이
‘내가 공양주를 안 했으면 타 죽는 일이 없을 텐데’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공양주 소임을 맡긴 등은봉 스님을 얼마나 원망했겠습니까.
사람이 일단 죽으면 염라대왕을 한번 거친다고 합니다.
염라대왕이 그 사람이 생전에 복 짓는 일을 많이 했나, 복을 감하는 일을 많이 했나를 살피는 것이지요.
복 짓는 일을 많이 한 사람은 좋은 곳으로 안내해 사람으로 또 태어나게 한다든지,
아니면 도인으로 태어나게 한다든지 하는 조사나 재판하는 셈입니다.
어쨌든 불에 타 죽은 공양주 스님이 염라대왕 앞에 갔는데 염라대왕이 “너는 생전에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지요.
그래서 불에 타죽은 것을 억울하게 여기고 있는 터라 마음대로 이야기길 했어요.
등은봉은 스님이 억지로 공양주를 시켜 밥을 짓다 옷에 불이 붙어 타 죽었으니,
마음이 편하지 않고 그 스님이 원망스럽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그 스님을 잡아 왔으면 좋겠다는 말도 보탰어요.
염라대왕도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럴듯해 등은봉 스님을 데리고 오라고 저승사자를 보냈습니다.
절에 가면 가람신이 있는데 가람신은 도량 전체를 살피는 일을 합니다.
가람신이 저승사자에게 어딜 가느냐고 물었어요.
등은봉 스님을 데리러 왔다고 했더니, 찾아보라고 하면서,
12년을 여기 있었어도 등은봉-이란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그래요,
역시 가람신이 말한 대로 아무리 찾아도 없자 그냥 돌아가서 그대로 염라대왕에게 보고했어요.
그러자 불에 타 죽은 공양주는 발을 구르면서 거기 가면 있는데 못 찾고 왔다고 하더란 말이에요.
염라대왕은 그럼 네가 가서 데리고 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가보니 스님이 마당에 있었어요. 가서 붙잡고 염라대왕에게 가자고 했더니
“무슨 이유로 나를 오라 하느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불만을 털어놓자,
스님은 한마디만 하고 가자면서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사람이고 짐승이고 자기의 성품과 마음자리는 본래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자리라고 하는 것은 능히 불로도 태우지 못하고 능히 물로도 빠뜨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게 와서 이러는 걸 보면 죽지 않은 모양이구나!” 하는 거예요.
듣고 보니 납득(納得)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자기가 생각해 봐도 죽으면 아무것도 없을 텐데,
이 스님을 원망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데 생각이 미치는 순간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깨닫고 나니까 스님을 원망한 것도 부질없고, 염라대왕에게 다시 갈 필요도 없게 되었답니다.
이렇듯 자기 마음을 깨달으면 모든 게 해결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선 여러분들은 중생의 몸을 가지고 세상살이도 해야 하고 자녀도 키워야 하고
사업도 해야 하고 자기 몸도 가꿔야 하고 좋은 것도 사서 발라야겠고 좋은 옷도 입어야 하겠지요.
이것이 중생의 본모습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것들은 찰나에 무너지고 말 것들입니다.
성불과는 더욱 거리가 멀지요.
그런데 그런 이치를 모르니까 자꾸 거기에 치중하고 그 야단치다 인연이 다해 죽으면 그만-인 것입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다 소용없는 것이죠.
육체에 치중해 봐야 허망하고 허사라는 걸 깊이 깨닫고 나면 알뜰히 먹고 입으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연히 그런 생각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저 굶주리지 않을 정도로 먹으면 그만이고 적당히 입으면 그만이지,
좋은 것 갖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불교 믿는 분들은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말은 쉽지만, 실제 행동에 있어서는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차츰차츰 익히고 배워야 한다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 월하 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