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요한 7,40-53
그때에 40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군중 가운데 어떤 이들은, “저분은 참으로 그 예언자시다.” 하고, 41 어떤 이들은 “저분은 메시아시다.”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42 성경에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그리고 다윗이 살았던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43 이렇게 군중 가운데에서 예수님 때문에 논란이 일어났다. 44 그들 가운데 몇몇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45 성전 경비병들이 돌아오자,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왜 그 사람을 끌고 오지 않았느냐?” 하고 그들에게 물었다.
46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고 성전 경비병들이 대답하자, 47 바리사이들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도 속은 것이 아니냐? 48 최고 의회 의원들이나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그를 믿더냐? 49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
50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전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51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52 그러자 그들이 니코데모에게 대답하였다.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53 그들은 저마다 집으로 돌아갔다.
어제 인천교구에는 큰 분이 주님께로 가셨습니다. 성가책 39번 ‘하나 되게 하소서’의 작곡자이시며, 동시에 신학교에서 윤리신학을 가르치셨던 정인상(베드로) 신부님께서 지병으로 선종하셨어요. 어제 밤, 판공성사를 마치고 도화동 성당에 가서 미사를 봉헌하는데 옛 생각이 참 많이 났습니다. 초등학교 복사를 섰을 때 보좌신부님으로서의 만남, 신학생이 되어 성소국장 신부님으로서의 만남, 그리고 신부가 되어서는 좋은 선배신부님으로서의 만남…….
그 어떤 만남도 나쁜 만남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신부님께서는 항상 좋은 모습을 보여주셨고, 예수님처럼 낮은 모습 겸손한 모습으로 사셨던 것이지요. 그래서 신부님을 뵐 때면 또 다른 예수님을 가까이서 뵙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신부님을 이제는 살아서 더 이상 뵐 수가 없다고 하니 너무나도 서운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 신앙 안에서는 ‘죽음이 더 이상 죽음이 아니다’라고 말하지요.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새로운 삶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부님의 모습을 기억하며 이제는 슬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정인상(베드로) 신부님의 주님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기도하며, 오늘 새벽을 열며 묵상 글 시작합니다.
얼마 전, 어떤 신부님으로부터 책 추천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내용이 좋고,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인터넷을 통해서 책을 주문했고, 책이 오자마자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요? 이 책은 보면 볼수록 지루했습니다. 그래서 한참 동안 책을 읽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도 다 읽지 못한 상태이지요.
사실 저는 책이 많고, 또 많이 읽습니다. 그런데 어떤 책은 잘 읽히는 반면, 또 어떤 책은 잘 읽혀지지를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관심의 차이입니다. 관심 있는 내용으로 구성된 책은 잘 읽혀지고, 또한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메모도 많이 합니다. 하지만 관심 없는 내용으로 구성된 책은 읽혀지지도 않고, 결국은 다 읽지도 못한 채 책꽂이의 한구석을 차지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모두에게 관심이 없는 내용일까요? 아닙니다. 앞서 어떤 신부님께서 너무나도 좋았다는 그 책이 저에게는 최악의 책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마다 갖는 관심사는 이렇게 다른 법입니다. 바로 이 점을 기억하면서 우리들의 신앙에 차이를 보이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바로 내 안에 주님께 대한 관심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주님께 뜨거운 관심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매 순간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갈 것이며, 주님께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은 세상의 흐름에 젖어 들면서 대충 대충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과 대립하고 있는 유다인들 역시 주님께 관심을 두고 살기 보다는 율법이라는 형식과 틀에 매어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형식주의에 빠져서 주님과 대립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관심사가 바로 주님이 되어야 합니다.
희망은 인간이 견디는 모든 병고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치료제다(카울리).
가장 힘들 때 얻은 교훈(짐 코리건, ‘스티브 잡스 이야기’ 중에서)
1980년대 말과 1990년 초까지 스티브 잡스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다. 야심만만하게 시작한 두 회사는 무너지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의 성공을 운이 좋아서 이룬 것이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이 우울한 시기에 스티브는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
그는 완벽한 컴퓨터를 만들겠다는 야망을 포기하고 회사들의 고유 강점을 살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넥스트는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회사로, 픽사는 그래픽 컴퓨터를 파는 회사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회사로 전환했다. 그러자 넥스트는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스티브가 애플로 복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픽사도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디즈니의 관심을 끌었고 스티브를 억만장자로 만들어 주었다. 아이팟을 개발할 때도, 애플 제품에는 애플의 기술자들이 설계하고 개발한 부품만 이용한다는 전통을 깨고 다른 기업에서 제조한 부품을 포함시켰다. 이런 융통성 있는 판단은 애플의 MP3 플레이어가 소비자들에게 더 빨리 파고들고 시장을 선점하게 하는 발판이 되었다.
스티브가 애플에서 일했던 햇병어리 시절에는 컴퓨터를 통해 세상을 바꾸길 원했고 그 목표를 추구하는 데 무자비할 정도로 자신의 에너지를 쏟았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서 스티브의 가치관도 점차 변했다.
“젊은 시절에는 기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태어나서 잠깐 살다가 죽습니다. 기술은 이런 현실을 바꿀 수 없습니다. 아이들 아빠가 되고 나서야 그걸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