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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유산에서 발생하는) 이자는 다섯 등분하여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화학 분야에서 중요한 발견이나 개발을 한 사람, 생리학 또는 의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한 사람, 문학 분야에서 이상주의적인 가장 뛰어난 작품을 쓴 사람, 국가간의 우호와 군대의 폐지 또는 삭감과 평화 회의의 개최 혹은 추진을 위해 가장 헌신한 사람에게 준다.
─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 中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물리학, 화학, 경제학), 스웨덴 아카데미(문학), 카롤린스카 의학연구소(생리학/의학), 노르웨이 노벨위원회(평화)에서 매년 인류의 문명 발달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상이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으로 만들어졌다.
2. 탄생 배경
1888년 노벨의 형 루드비그 노벨(Ludvig Emmanuel Nobel/Лю́двиг Эммануи́лович Нобе́ль)이 사망했을 때 한 신문에서 실수로 알프레드 노벨이 사망했다고 기사를 실었는데, 그 기사에 노벨을 '죽음의 상인'이라 지칭했다. 안 그래도 다이너마이트가 군사적으로 이용되는 걸 싫어했던 그는 후에 유언으로 유산의 94%(약 440만 달러)를 기부, 노벨상을 설립하게 되었다.
어마어마한 알프레드 노벨의 재산을 대부분 기부하려하자 친척들이 죽기살기로 반대하며 서로 먹으려고 발악했다. 게다가 노벨은 유언장에서 국적에 상관없이 이 상을 줄 것을 당부했는데, 이것 때문에 세기말의 국수주의에 휩싸여있던 스웨덴 내 여론과 스웨덴 국왕까지도 노벨을 비난했다고 한다. 게다가 평화상 수상을 당시 스웨덴 식민지인 노르웨이에 넘겼으니 더더욱 그럴밖에 없었다.
그러나 유언 집행인 랑나르 솔만(Ragnar Sohlman,1870~1948)의 결단으로 노벨의 재산은 안전한 유가증권으로 남게되었고, 지금의 노벨상의 위상을 봤을 때 참 훈훈하게 탄생했을것 같은 상이지만 실제로는 참 우여곡절 끝에 탄생된 상이다. 솔만은 상을 제정하며 가진 인터뷰에서 '욕을 그리도 많이 먹어보는지 참 재미있더군요'라며 노벨의 친척들이 벌인 온갖 방해공작이나 욕설,명예훼손을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노벨경제학상의 경우 1968년, 즉 노벨상이 제정되고 난 뒤로도 한 참 후에, 노벨의 유언과는 상관없이 따로 생긴 상이다. 노벨 경제학상은 노벨재단에서 수상하는 상이 아니므로 노벨 재단에서 상금을 주지는 않는다. 스웨덴 중앙은행 설립 300주년을 기념해 제정한 상으로서, 상의 정식 명칭은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경제학 분야의 스웨덴 중앙은행상'(The Sveriges Riksbank Prize in Economic Sciences in Memory of Alfred Nobel)이다. 노벨의 유언에 의해 제정된 나머지 5개 분야 노벨상은 정식 명칭은 Nobel Prize로 시작되는 데 반해, 노벨 경제학상은 The Sveriges Riksbank Prize로 시작된다는 점을 보아도, 노벨경제학상은 노벨상이 아니라, 스웨덴중앙은행상인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경제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는 물리학상, 화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곳이며, 수상식에 다른 분야의 수상자들과 함께 참석하고 상금 또한 동일하다. 스웨덴에서 달리 할 이유가 없기 때문. 참고로 노벨이 노벨상에 대한 유언을 남길 당시에는 경제학이 체계적인 분과 학문으로 발전하기 전이어서 노벨이 경제학을 시상 분야의 하나로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했던 때였다. 물론 노벨의 생전에 경제학이 하나의 체계적인 학문으로 성장해서 존재하고 있었더라도, 노벨이 경제학을 시상 분야로 지정했을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시상 초기에는 지금처럼 권위있게 여겨지지 않았다고 하지만, 곧 세계적인 명성을 갖춘 상이 되었다. 상의 수준을 높여가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지금의 노벨상을 있게 했다고 할 수 있다.
3. 시상 분야
노벨상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학·의학상
문학상
평화상
경제학상
노벨상의 시상 분야는 '물리학', '화학', '생리학 또는 의학', '문학', '평화', '경제학'이다. 다만, 노벨 경제학상은 엄밀히 말하면 노벨상이 아니라, 스웨덴중앙은행상이다. 상의 영문 정식 명칭도 다른 분야 노벨상이 Nobel Prize로 표기되는 데 반해, 노벨 경제학상은 The Sveriges Riksbank Prize로 표기된다.
'생리학 또는 의학' 분야에 시상되는 노벨상의 정식 명칭은 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인데, 이에 대한 한국어 번역은 <노벨 생리학 또는 의학상>, <노벨 생리학 및 의학상>, <노벨 생리학·의학상>, <노벨 생리의학상>, <노벨 의학상> 등 각양각색이다. 이 많은 용어 중에서 과거 우리 언론에선 노벨 의학상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였다. 그 때문인지 의학뿐만 아니라 생리학도 이 상의 시상 분야라는 사실을 아는 일반인들은 드물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생리학은 사전적 의미의 생리학뿐만 아니라, 노벨이 유언을 남길 당시의 시대적 이유로 인하여 사실상 생물학의 여러 분야를 통칭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어서, 이 상은 사실상 노벨 생물학·의학상처럼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한편 최근 언론에서는 노벨 의학상이라는 용어보다는 노벨 생리의학상이라는 용어를 주로 쓰는 편인데, 이 용어 역시 일반인들로서는 "<생리의학>이라는 의학 분야가 있나보다. 그리고 그 분야에 대한 상인가보다."라고 생각할 수 있어, 이 상의 시상 분야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와줄 수 있는 번역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수학상은 없는데 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노벨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예스타 미타그레플레르라는 수학자가 노벨 수학상을 받는 꼴을 보기 싫었기 때문이라는 설, 미타그레플레르와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는데 그가 워낙 수학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보니 수상의 공정성이 떨어질까봐 제외했다는 설, 흠모했던 여인이 수학자를 선택하는 바람에 사랑이 쫑나서라는 설 등. 근데 다 별 근거는 없는 이야기다(관련 반론). 공학도 출신 실업가였던 노벨이 수학 배워서 어디다 써? 수학은 실용학문이 아니라서 노벨상의 취지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만들지 않았고 이에 분노한 수학자들이 위와 같은 소문을 꾸며냈다는 해석도 있다. 또한 수학상은 필즈상과 아벨상이 존재하는데, 이 상의 권위는 노벨상과 동급이라고 볼 정도로 높다.
자연과학의 5가지 분야(물리학/화학/생물학/지구과학/천문학) 중 물리학과 화학을 제외한 나머지 분야와 노벨상의 관계를 살펴보면, 우선 생물학은 노벨 생리학·의학상에서 말하는 생리학이 사실상 생물학의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시상 분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생태학의 경우는 생물학의 한 분야이기는 하나, 생리학에는 포함된다고 보기는 어려워, 생태학 연구로는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이 적다. 하지만 넓은 의미의 생태학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는 동물행동학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사례가 있다. 즉, 꿀벌의 춤을 연구한 카를 폰 프리슈와 거위와 오리의 각인을 밝혀낸 콘라트 로렌츠, 리차드 도킨스의 스승인 조류학자 겸 동물행동학자 니콜라스 틴베르헌 등이 1973년에 동물행동학에 대한 연구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한 바가 있다. 그리고 식물학의 경우엔, 먼저 리하르트 마르틴 빌슈테터가 엽록소를 비롯한 식물 색소의 연구로 1915년 노벨화학상을 수상, 한스 피셔도 엽록소 연구로 1930년에 노벨화학상을 수상했고 1947년엔 로버트 로빈슨 경이 알칼로이드 연구로 역시 노벨화학상 수상, 옥수수 유전학에 대한 독보적 존재인 여성 생물학자 바버라 매클린톡이 1983년도에 '이동성 유전 요소의 발견'에 관한 식물유전학 연구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또한 천문학은 물리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천문학 분야의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은 물리학상을 수상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천체물리학은 물리학의 한 분야이지만, 천문학의 한 분야이기도 하므로, 천체물리학 관련 업적으로 인한 노벨 물리학상 수상은 천문학 분야의 업적으로 수상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반면 지구과학(지질학, 기상학, 해양학)은 노벨상의 시상 분야에서 빠져 있다. 더욱이 지구과학 분야는 수학의 필즈상이나 아벨상처럼 노벨상과 동급의 권위를 가진 상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지구과학이 노벨상 시상 분야에서 빠져 있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특히 지질학은 지구과학의 근본 학문으로서 물리학, 화학, 생물학 & 의학 등에 비해 결코 중요성이 떨어지지 않는 분야이기에 권위있는 상을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다만, 지질학의 세부 분야인 지구물리학, 지구화학 그리고 기상학의 세부 분야인 대기역학, 대기화학, 해양학의 세부 분야인 해양물리학 분야의 업적으로 물리학상이나 화학상을 수상할 가능성은 있다.
과학분야의 경우 초창기에는 실용과학에 더 비중을 두었다. 특히 노벨물리학상은 초창기엔 실험물리학자나 발명가가 수상했으며 1918년 막스 플랑크가 양자론으로 상을 받기까지 이론물리학은 찬밥신세였다. 현대에 들어서도 청색 LED를 발명한 팀이 물리학상을 수상하고 각종 현미경을 발명한 팀이 화학상을 수상하는 등 발명 분야에서 완전히 손을 떼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것은 노벨의 유언과 관련이 있다. 노벨은 물리학상은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에게 수여하라고 유언하였기 때문에, 발명도 중요하게 취급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4. 수상 자격
국적은 일체 불문하고 가장 적합한 수상자를 선정한다.
한 상에 대해서 최대 3명에게 수상하고, 생존자만이 수상할 수 있다. 이걸 못 받고 사망한 대표적인 사례는 주기율표를 만드는 데 큰 공로를 한 드미트리 멘델레예프, 제1차 세계 대전의 갈리폴리 전투에서 사망한 헨리 귄 제프리스 모즐리, 한국 국적 소지자로는 이휘소 박사가 있다. 예외로는 1961년 콩고 내전을 중재하러 가던 도중에 북로디지아(현재 잠비아)에서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고, 같은 해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제2대 UN 사무총장 다그 함마르셸드가 있다.
예외적으로 사후 수상한 사례가 있는데 2011년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자 가운데 한 명인 랠프 스타인먼 박사가 수상자 발표 3일 전에 사망한 걸 노벨위원회가 알지 못하고 명단에 올리는 바람에 문제가 생겼으나 수상자 목록은 그대로 유지시키기로 했다. 이유는 수상자 명단에 올리고 내리고 하는 기준은 심사위원회가 수상자가 사망했음을 인지한 것이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즉, 심사가 끝나고 수상자가 결정된 이후인지는 수상자 변동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판단.
또한 수상자로 결정되고 나서 시상식까지 수상자가 사망한다고 해서 무효처리되진 않지만, 1년 이내에 상을 받지 않으면 수상을 거절한 걸로 간주한다고 한다. 그리고 수상자는 6개월 이내에 수락 강연을 해야 한다. 즉, 노벨상 시상일이 매년 12월 10일이므로 다음해 6월 10일까지가 기한. 수락 강연을 하지 않으면 상금이 수여되지 않는다. 강연 형태는 정해진 게 없으므로 일반적인 형태의 강연은 물론이고, 연설, 동영상이나 녹음, 공연, 노래 등의 형태도 가능하다고 한다.
해마다 노벨상 시즌이 되면 누가 후보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지만 노벨상 후보는 비공개가 원칙이며, 노벨상 최종후보자가 공개되려면 무조건 50년이 지나야지만 가능하다. 흔히 언론에서 누가 후보라 카더라는 영국의 도박사이트 래드브록스의 배당률을 참고한 것.
래드브록스는 2006년 터키 소설가 오르한 파무크와 2015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수상을 맞힌 이력이 있다. 2011년 스웨덴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의 수상이 발표되기 직전 래드브록스에서 그의 배당률이 급격히 떨어져 수상자 정보가 유출됐다는 의혹도 있었으나, 의혹제기 직후 스웨덴 검찰이 수사에 나설 정도로 후보나 수상자 정보에 대해서는 철통보안이 이뤄지고 있다. 참고로 수상 과정에 대한 정보는 수상 이후 50년간 무조건 비공개며, 50년이 경과했다 하더라도 적합한 심사를 거쳐야 공개할 수 있다.
노벨상 수상자 발표 직전에는 수상자에게 연락해 알려 주는데, 상술한 바와 같이 철저히 비밀로 하다 보니 전화를 받고 장난 전화로 의심한 수상자도 있었다고 한다. 영어를 잘 못 알아들어서 스웨덴에 노벨상이랑 이름이 비슷한 무슨 상이 있구나 하고 생각한 수상자도 있다. 한편 시차로 인해 새벽에 전화를 받고 왜 자는데 깨우냐고 역정을 낸 사람도 있다. '무슨 몰카 찍는 건가' 착각한 사람도 있다.
한국 입장에서 불편한 사례는 러일전쟁을 중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받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잘 알다시피 러일전쟁에 뒤따른 포츠머스 조약에 의해 을사조약의 조건이 사실상 완비되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그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니 얽힐 건 없지만 이것도 한국인 입장에서는...
이 출처에 따르면 노벨상 수상자의 아이큐는 평균 145라고 한다. 관련 항목
한편 노벨상의 수상자의 공식 기록에선 수상자의 출생지와 (사망했을 경우) 사망지만 기록한다. 이는 국적 문제가 상당히 복잡하기 때문이다. 국가마다 국적을 결정하는 원칙이 속지주의/속인주의부터 시작해서 제각기 다르고, 수상자가 활동 기간 동안 국적이 바뀌는 사례도 빈번하다. 이중국적, 미승인국 문제, 수상자 본인의 국가 정체성, 종주국-식민지 관계 문제까지 들어가면 정말 카오스가 따로 없다. 그래서 출생지로 구분을 하는 것.
아주 쉬운 예가 바로 마리 스크워도프스카 퀴리이다. 마리가 노벨상을 수상할 당시(1903년 노벨물리학상, 1911년 노벨화학상) 국적은 프랑스였다. 프랑스 출신인 피에르 퀴리와 결혼을 하면서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리 본인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고 마리 자신이 폴란드인임을 결코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 폴란드는 독립 국가가 아니라 제정 러시아의 점령 하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3자의 입장인 노벨위원회가 함부로 국적을 결정하기도 어렵다.
이 출생지의 원칙 때문에 재미있는 사례도 있다. 가령 1987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찰스 존 피더슨은 공식 국적이 미국이지만 출생지가 한국으로 설정되어 있다. 피더슨은 아버지가 노르웨이인이고 어머니가 일본계인데 부산에서 태어났다. 이후 부모의 직장인 평안도 운산군 금광 근처에서 생활했다.
1965년에 학술인용분석 및 과학계량학의 기초를 닦은 유진 가필드(E.Garfield)는 초기 노벨상 수상자들이 동료 연구자들에 비해 5배 더 많은 논문을 출판했고, 피인용수는 30~50배 가량 더 높으며, 그 분야에서의 피인용수 상위 0.1%에 속하는 걸작급의 논문을 한 편 이상 저술한 바 있음을 발견하였다. 오늘날에도 2,000회 이상 인용된 논문의 저자들을 중심으로 노벨상 수상을 예측하기 위한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5. 시상 장소 및 시간
매년 12월 10일, 노벨의 기일에 수상한다. 수상자들은 수상식 약 두 달 전인 10월 초에 발표된다. 평화상만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수상식이 열리며, 나머지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수상식이 끝나면 기념 만찬이 열리며 스웨덴에선 TV로 중계된다.
6.1. 문학상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선 매년 문학상 후보로 언론에서 주도적으로 설레발만 치면서 고은을 거론했는데, 그 이유로 드는 게 한국어권(수상자 없음)/비주류 언어권/동양-한자 문화권 출신자인 점 그리고 그동안 시인 수상자가 많지 않았던 점, 민주화운동 경력이 노벨 위원회의 성격과 고은의 행적이 부합하며, 알베르 카뮈 이후 문학상이 일단 '환갑은 넘겨야 받는 상'이 되어버렸는데 동아시아권의 권위있는 원로는 하루키와 고은, 황석영 등 많지 않으니 지역안배 차원에서 수상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이유였다. 객관적인 업적으로 냉정하게 평가하는 과학, 경제학상과 달리 달리 문학상과 평화상은 지역 안배를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1년에 스웨덴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2012년에 중국의 소설가 모옌이 수상하면서 향후 10년 안으로 다시 한자 문화권 시인에게 상이 돌아갈 가능성이 낮아졌다. 그 이전에 고은이 노벨상을 받을 만한 능력이 있는 작가인가는 질문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그러다가 2018년 그가 과거에 저지른 사건으로 인해 평가가 나락으로 떨어졌고, 문학과 행실을 별개로 보려고 해도 도저히 노벨 문학상 후보에 들만한 작가라곤 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80년대 3S 정책 중 하나로 노벨문학상을 노려 군부 정권 독재에 대한 불만을 덮고 정권 찬양에 쓰고자 당시 한국소설들을 마구잡이로 번역하여 내놓던 적도 있었다. 이때 언론이 엄청 설레발을 떨었기에 김동리 작가는 살아 생전 자신의 소설 사반의 십자가가 노벨문학상에 근접했다느니 뭐니라는 말을 지겹게 듣어서 늘그막에 이걸 비판했다.
최근에는 2016년에 소설가 한강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맨부커상을 수상하면서 노벨 문학상 수상에 대한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상은 2005년에 생겼으며 역사도 매우 짧고 권위도 상대적으로 부족해서 노벨 문학상 가능성은 고은보다도 더 떨어지는 현실이다. 특히 옆 동네의 진짜배기 문학계 거성인 무라카미 하루키도 번번히 물먹는 현실을 보면...
6.2. 과학 분야
노벨상이 세계적으로도 높은 권위와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으니만큼 당연히 한국에서도 노벨상 수상자 발표 시즌이 되면, 늘 우리는 언제쯤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지를 얘기하는 특집 기사가 나오곤 한다.
그런데 한국은 기초과학으로의 투자를 198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수준으로 그 역사가 아주 일천하다. 이런 연구일수록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드는데, 투자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누적 투자 총액이 크지 않고, 노벨상을 수상할만한 큰 결과물도 아직 충분히 나오지 않은 것이다.
한국이 과학 연구를 할 만한 상황이 된 지가 그나마 1990년대 중후반이고, 학문의 발전 양상을 보면 1세대는 교육, 2세대는 연구를, 3세대는 세계 수준의 연구를 하는데 한국은 주류 교수들이 아직 2세대 ~ 2.5세대 정도다. 따라서 노벨상 수상자가 아직 나오기 힘든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한국은 정부가 수립된 지 70년밖에 되지 않았고, 70년대까지만 해도 의식주의 해결 자체가 고민거리였던 나라다. 따라서 초기의 한국의 과학자들은 아예 국가안보와 경제 건설에 즉각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양성되고 동원되었다.
그런 기억들을 고스란히 가진 중노년층이 아직은 사회 전반에 있어 많은 영향력을 지니다 보니, 당장의 결과에 집착하게 되고, 전반적인 교육 방향도 그런 가시적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쪽으로 이루어지는 편이다. 노벨상을 받기 위해 필요한 가치관과는 아직 거리가 먼 셈. 한국이 과학 분야의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좀 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여유로운 사고가 먼저 사회 전반에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그나마 몇몇 경우에 있어 조금씩 성과가 나타나고 있어 다행이라면 다행.
국내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몇 년 안에 수상이 가능한지 물어본 설문조사 결과, 6~10년 안에 수상할 것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 그리고 가장 유력한 한국인 후보로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좌교수(겸 IBS 연구단장)가 선정됐다.
물리학상의 경우는 최근 몇 년 수상 경향을 보면 대형 물리학 실험(ex: LHC, 라이고 등)이나 신분야 개척자에 수상이 많은데 한국은 그런 연구를 주도해서 한 경험이 적다. 다만, 그런 대형 연구 프로젝트는 여러 나라의 정부, 단체들이 공동으로 지원하고, 다양한 국적의 학자들이 협동하여 진행하는 경우가 많고, 우리나라 학자들도 국제적 공동 대형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으므로, 꼭 우리나라가 연구를 주도해야하는 것만은 아니다.
한때 그래핀 분야의 권위자인 김필립 교수가 수상후보로 언급되었지만 2010년에 김 교수가 업적을 남긴 그래핀 연구로 러시아 출신의 두 과학자가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고, 상을 받은 업적에 노벨상을 다시 줄 가능성은 드물기 때문에 앞으로 새로운 업적을 발견하지 않는 한 현재로선 수상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다. 이 당시 네이쳐에 그의 수상 실패 문제를 비롯해, 보도자료의 허술함 등을 신랄하게 디스하는 기고문이 올라왔다.
화학상 분야 후보로는 2014년부터 톰슨로이터에서 노벨상 후보자로 예측한 기능성 메조나노다공성 탄소물질과 제올라이트 분야의 개척자인 유룡 카이스트 교수가 노벨화학상 후보로 거론된 적이 있으며, 이 분야는 아직 연구 중이고 해당 분야의 업적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는 없어서 현재 수상 가능성이 있기는 있다. 2017년에는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Clarivate Analytics·구 톰슨로이터) 에서 화학공학자 박남규 성균관대 교수를 노벨 화학상 후보 중의 한명으로 꼽기도 하였다.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를 태양전지에 적용한 업적을 인정받았다.
화학상의 경우, 기업 연구원 출신이자, 역사상 유일한 학사 출신 수상자인 다나카 고이치와 같은 수상 사례도 있고, 화학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자, 자동차, 조선, 제약 등 우리나라의 주력산업과도 연관성이 높아 정부 차원에서도 많은 지원을 받고 있기에, 한국 출신 수상자가 배출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과학 분야라고 볼 수 있다. 톰슨로이터에서 주관하는 수상자 예측에서 다른 과학상에서는 한국 출신 후보자가 나온 적이 단 한번도 없었으나 화학상에서는 벌써 두 명이나 나왔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생리의학상 분야는 CT, MRI, PET의 대가로 인정받는 세계적 전자공학자 조장희 교수가 양전자 단층촬영기(PET)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업적으로 유력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다. 그는 1975-76년 원형 (circular type) PET을 세계최초로 개발하였고 이듬해 BGO 양전자 검출기를 개발하였다. 이를 토대로 1980년 Skanditronik과 1985년 GE에서 최초로 상업적인 양산형 원형PET을 개발하게 되었으며 현재 모든 PET은 그가 개발한 원형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CT와 MRI에서 이미 노벨상이 수여된 것으로 보아 PET 분야에 대한 노벨상 수여도 기대할 수 있으며 PET 노벨상은 PET의 최초 개발자이자 현재 PET의 표준을 만든 조장희 교수가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된다. 그리고 microRNA 연구의 권위자인 김빛내리 교수(서울대 생명과학부), tRNA의 구조를 밝혀낸 김성호 교수(UC 버클리 화학과) 등 생각보다 많은 한국출신의 과학자가 생물학 분야에 우수한 업적을 남기고 있어, 이 분야의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다.
한국인은 아니지만 한국계 출신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을게 거의 확실시 되었던 물리학자는 핵물리학의 재규격화와 게이지 이론 등을 연구한 벤자민. W. 리(이휘소) 박사가 있다. 미국 국적을 취득한 이후 노벨상 후보로 강력하게 노미네이트 되던 도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해 생을 마감했다.
그와 같은 연구를 함께 진행한 스티븐 와인버그나 셸던 그래쇼, 헤라드뤼스 엇호프트 같은 인물이 훗날 해당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는 것을 보았을 때 리 박사가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인류의 물리학 발전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었을 것뿐만 아니라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있었을 것으로 보아 과학계의 많은 아쉬움을 자아냈다. 애당초 그는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이기 때문에 수상했더라도 그게 한국에 있어서 별 의미는 없지만... 다만 중국 양전닝의 사례처럼 정부가 이휘소 박사로 하여금 다시 한국 국적을 회복하도록 애를 써서 성공했다면 노벨상 수상자 보유국은 될 수 있었을지도.
6.3. 경제학상
그나마 수상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고 서서히 수상 후보가 나오기 시작하는 과학계와는 달리 경제학계에서는 그나마 수상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후보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동아시아에서의 경제학상 수상자는 전무하고 인도 출신의 아마르티야 센이 아시아 출신으로는 유일하다. 아시아에서 노벨상을 가장 많이 받은 일본 역시 수상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는 분야가 바로 경제학상이다.
현재 세계 경제의 중심인 미국 등 서방 선진 국가에서는 국가 발전을 위해 새로운 시스템을 연구하게 되고 이것이 새로운 경제학의 발견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과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경제 성장을 통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에 급급했던 한국에서는 선진국의 경제 시스템을 도입해 경제 성장에 초점을 맞춰왔으며, 자연스럽게 서방 선진 국가들처럼 새로운 경제학을 연구할 만한 여건이 되기 어렵다.
2001년경 한 기사에 의하면, 한국 국적의 경제학자 중 가장 업적이 뛰어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일리노이대 '조인구' 석좌교수를 뽑았으며 2013년에도 꾸준히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7. 논란
노벨상은 평화상과 문학상을 제외하면 특정한 나라 출신이 더 받기 쉽다고 비판받는 경우가 있다. 사실 문학상이 그나마 낫고, 나머지는 과학 연구 시설, 자금 문제, 홍보 등 여러 가지로 제1세계에 속한 출신 인물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냉전 기간이었던 1950~1990년 기간 사이에 제2세계(공산권) 인물이 수상한 노벨상과 제1세계 수상을 비교하면 제1세계가 수십 배 많다.
이는 냉전 시기의 제 1세계와 제 2세계의 과학 기술 격차를 고려하면 이상할 것도 없다. 물론 2세계 대장 국가였던 러시아와 중국의 경우는 1세계 국가들도 강대국들을 제외하고 해내지 못한 티타늄 추출에 성공하는 둥 다른 2세계 국가들에 비해 특출난 편이었다. 괜히 강대국으로 분류된 게 아니다. 반면 평화상이나 문학상은 지역 안배/배려를 하는 경향이 좀 있다. 실제로 동아시아 지역의 문학상의 경우 10년 정도 주기로 준다는 속설도 있다. 그리고 과학 분야는 미국이 독보적으로 앞서가고 있고, 서유럽이나 일본 정도에서 국적별로 몇년에 한두 명 정도씩 수상자가 나오고 있다.
다만 문학상은 국적과 사용 언어에 따라 불리점이 있다는 데 어느 정도 동의가 있는 편이다. 문학작품의 주목도가 높은 나라에 살고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서방 국가에서 인지도를 얻기 유리한 언어를 사용하는 작가가 노벨상 수상 위원회의 인지에 들고 작품성을 평가받기 쉽다는 주장이다. 출판업계에서는 관심이 적은 나라의 작품보다는 많은 나라의 작품을 번역하여 소개하려 하고, 번역 작품의 작품성을 잘 살릴 수 있는 유능한 번역가도 잘 알려지지 않은 언어 분야에는 적기 때문이다.
8. 기록
8.1. 2회 이상 수상한 단체
• 국제적십자(단체) - 평화상 3회 수상. 그런데, 1901년에 '장 앙리 뒤낭'이 적십자사 설립과 제네바 협약에 대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4번이나 수상했다고 봐도 틀리지 않다.
• UN 난민기구 (UNHCR) - 평화상 2회: 1954년에는 난민들에 대한 정지적 법적 보호, 1981년에는 난민들의 이주와 정착 및 처우 개선에 이바지한 공로로 수상했다.
8.2. 2회 이상 수상한 사람
• 라이너스 폴링(미국) - 화학상, 평화상: 세계에서 유일하게 과학상과 평화상을 모두 받은 인물이다. 반핵운동 때문에 당시 매카시즘 광풍이 불고 있던 미국정부에 출국금지조치를 받는 바람에 DNA의 X선 사진을 보지 못했고 DNA의 잘못된 구조를 내놓는 바람에 왓슨-크릭에게 생리의학상을 내줬다. 최상의 시나리오의 경우 3회 수상까지 가능했을지도... 타 복수 수상자와 달리 폴링은 2회 모두 단독 수상했다.
• 마리 스쿼도프스카 퀴리(프랑스) - 물리학상, 화학상: 사상 최초로 2번이나 노벨상을 받았다. 남편 피에르 퀴리 역시 1903년에 그녀와 공동으로 물리학상을 받았고, 첫째 딸과 사위는 1935년에 화학상을 받았으며, 둘째 사위는 1965년에 유니세프를 대표하여 평화상을 받았다. 둘째 딸인 이브는 이에 대해 "저는 우리 집안의 수치입니다."라는 농담을 했는데, 이는 아버지, 어머니, 언니, 형부, 그리고 그녀의 남편까지도 노벨상을 탔는데 자신만 못 탔다는 이유라고. 사실 그녀도 베스트셀러 작가로 여러 상과 훈장을 받았으니 그야말로 가족들 모두가 능력자.
• 존 바딘(미국) - 물리학상 2회: 1956년에는 반도체 연구와 트랜지스터의 발명, 1972년에는 초전도 현상의 연구 공로로 수상했다.
• 프레더릭 생어(영국) - 화학상 2회: 1958년에는 인슐린의 구조, 1980년에는 핵산의 염기 서열에 대한 연구 공로로 수상했다.
8.3. 가족 수상
• 부부
◦ 피에르 퀴리·마리 퀴리 부부(1903년 물리학상 공동 수상)
◦ 프레데리크 졸리오 퀴리·이렌 졸리오 퀴리 부부(1935년 화학상 공동 수상) - 위의 퀴리 부부의 사위·딸이다.
◦ 칼 페르디난트 코리·거티 테리사 코리 부부 (1947년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
◦ 군다르 뮈르달(1974년 노벨 경제학상)와 알바 뮈르달(1982년 노벨 평화상) 부부
◦ 에드바르드 모세르·마이브리트 모세르 부부(2014년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
• 부자
◦ 조지프 존 톰슨 (아버지, 1906년 물리학상)과 조지 패짓 톰슨(아들, 1937년 물리학상)
◦ 윌리엄 헨리 브래그(아버지)와 윌리엄 로런스 브래그(아들), 1915년 물리학상 공동 수상 : 수상 당시 아들 브래그의 나이는 겨우 25세로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노벨상을 딸 때까지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였다.
◦ 닐스 보어(아버지, 1922년 물리학상)와 오게 닐스 보어(아들, 1975년 물리학상)
◦ 칼 만네 예오리 시그반(아버지, 1924년 물리학상)과 카이 만네 뵈리에 시그반(아들, 1981년 물리학상)
◦ 한스 폰 오일러켈핀 (아버지, 1929년 화학상)과 울프 폰 오일러(아들, 1970년 생리의학상)
◦ 아서 콘버그(아버지, 1959년 생리의학상), 로저 콘버그(아들, 2006년 화학상)
• 형제
◦ 얀 틴베르헌(형, 1969년 경제학상), 니콜라스 틴베르헌(동생, 1973년 생리의학상) - 니콜라스 틴베르헌은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인 동물행동학자 리차드 도킨스의 스승이다.
8.4. 최고령/최연소 수상자
• 최고령 수상자: 아서 애쉬킨 (만 96세 3개월 8일, 2018년 노벨물리학상)
• 최연소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 (만 17세 5개월 1일, 2014년 노벨평화상)
8.5. 수상을 거부한 사람들
• 장 폴 사르트르 - 1964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수상을 거부했다.
• 레득토 - 북베트남 외교부장. 베트남 전쟁 종전에 기여한 공로로 헨리 키신저 당시 미국 국무장관과 함께 1973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공동 선정되었으나 수상을 거부했다.
• 니콜라 테슬라 - 교류 전기를 상용화한 사람으로 에디슨과 공동으로 받을 수 있었으나 공동으로 받을 바에는 받지 않겠다(...) 며 수상을 거부.
8.6. 수상을 거부하려다 결국 받은 사람들
• 조지 버나드 쇼 - 1925년 노벨문학상. 본인은 처음엔 받지 않으려고 했다가 받은 뒤 인간의 탈을 쓴 악마만이 노벨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고 매우 대차게 깠다고 한다.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 1950년에 닥터 지바고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러시아 혁명을 비판한 내용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소련 정부와 작가 동맹으로부터 압력을 받게 되자 수상을 거부했다. 하지만, 노벨상 주최 측에서는 이를 거부한 것이라 판단하지 않아서 수상 보류로 남겨 두었다. 결국 그의 사후 소련에서도 닥터 지바고가 출판되는 등 그 업적이 공식적으로 인정 받고 난 뒤, 그의 아들이 노벨 문학상을 대리수상했다. 고로 받긴 받았다.
• 리처드 파인만 - 유명해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아 수상을 거부하려 했으나 "그런 짓(=노벨상 수상을 거절하는 것)을 하면 더 유명해질걸요."라는 기자의 말을 듣고 받기로 결정했다.
• 밥 딜런 - 2016년 가수로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는데 수상자 발표가 난 이후로 한동안 그는 전혀 이에 대해서 연락을 받지도 않았고, 별다른 의견을 발표하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수상을 거부하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 나왔다. 그러다가, 침묵을 깨고 노벨상을 수락한다고 발표했다. 다만, 본인이 시상식에 직접 참석하지는 않았으며 주스웨덴 미국 대사가 참석해 밥 딜런의 수락 연설문을 대독한 다음 노벨상을 대리 수상했다.
아무리 노벨이 많은 돈을 남겼다지만, 상금을 계속 지급하기에 그 예산이 영원할 수는 없는 법이다. 노벨재단에서는 노벨의 유산을 토대로 여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행히도 노벨상 위원회는 지속적으로 투자를 하여 지속적으로 상금을 줄 예산을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노벨상 위원회의 투자도 경기 불황을 비켜갈 수 없는지, 1949년에 인당 지급하는 상금을 한번 줄였다가 그 이후 지속적으로 상금을 높여서 인당 140만 불(2015년 기준으로 약 16억 원)까지 지급했으며 2012년 글로벌 경기 불황으로 다시 인당 110만 불(2015년 기준으로 약 13억 원)로 줄였다고 한다. 관련 기사
그래도 노벨상만 받아도 엄청난 명예와 각계 각층의 각종 지원이 따르기 때문에 상금은 부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별 수상자 수 기록(2017년 12월 기준)
• 전관왕 달성 국가(총 11개국): 노르웨이, 독일, 러시아, 미국, 스웨덴, 영국,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폴란드, 프랑스, 캐나다
• 전관왕 후보 국가(5분야 수상, 총 9개국) - 이하는 해당 국가가 아직 수상하지 못한 분야.
◦ 평화상: 헝가리, 호주
◦ 경제학상: 덴마크, 벨기에, 스위스, 일본
◦ 생리의학상: 이스라엘
◦ 물리학상: 핀란드
◦ 문학상: 네덜란드
• 총 수상자 수 1위 국가: 미국(362명) - 1943년부터 매년 수상자를 배출하는 천조국의 기상을 보여주고 있다.
• 공식적 인구 대비 노벨상 수상자 1위 국가: 영국(121명) - 인구 대비로 따진다면 미국의 두 배 가까이 된다. 뒤집어 말하자면 미국 인구가 영국의 6배 가까이 된다는 이야기.
• 문학상 최다 수상국: 프랑스(15명)
◦ 차석: 미국(12명) - 2017년 12월 기준으로는 영국과 공동차석.
• 문학상 최다 수상 언어: 영어(30명) - 2017년 12월 기준으로 31명
◦ 언어 차석: 프랑스어(15명) - 3위는 독일어(13명), 4위는 스페인어(11명). 수상지 모국어인 스웨덴어만 해도 6명으로 이탈아리어와 동일하다. 즉, 사실상 년당 1명만 배출하는 문학상의 특성상 문학상은 반 초과가 영어 및 유럽어에 몰려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물리학상 최다 수상국 : 미국(104명)
• 화학상 최다 수상국 : 미국(70명)
• 생리학·의학상 최다 수상국: 미국(102명)
• 경제학상 최다 수상국 : 미국(50명)
• 평화상 최다 수상국 : 미국(24명)
실질적으로 인구당 수상자 수가 가장 많은 나라는 이름도 생소한 세인트 루시아(경제학상, 문학상에서 각각 1명씩 배출). 그 다음은 룩셈부르크, 스위스, 오스트리아 순이다.
유럽의 라이벌인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 경제-과학분야 노벨상에서 영국이 거의 3배로 앞서고 있다. 그래봤자 천조국에 이은 만년2등 반면 노벨문학상은 프랑스가 최다수상이고 난 한곳만 판다. 영국은 여기서도 콩등 수학상인 필즈상에서도 프랑스가 더 앞선다.
한국 수상자는 2018년 기준으로 2000년 12월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10. 트리비아
노벨상 상금은 대한민국 국적자가 받으면 소득세법 시행령 18조 2항에 따라 세금 없이 실수령할 수 있다. 그것도 법 조항 자체에 노벨상이라고 정확하게 적혀 있다. 정확히는 소득세법시행령 제18조 2항 노벨상 또는 외국정부·국제기관·국제단체 기타 외국의 단체나 기금으로부터 받는 상의 수상자가 받는 상금과 부상이다.(국가법령정보센터 출처) 노벨경제학상은 노벨상인지 아닌지 논란이 있으나 스웨덴 중앙은행이 외국 정부 내지는 기타 외국의 단체에 포함되기에 마찬가지다.
그 외에도 올림픽 메달, FIFA 월드컵 참가비(32강에서 1분만 뛰어도 지급됨)도 같은 법령에 의해 실물에 대한 소득세가 면제된다. IOC, FIFA가 국제기관이기 때문. 관세와 체육연금은 각각 타 법령에 의해 소득세 면제.
11. 관련 상
• 폴라음악상: 스웨덴 왕립음악원에서 주관하는 가장 큰 규모의 음악상이다. 노벨상과 같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스웨덴의 국왕이 직접 시상한다는 상징성과 권위로 음악의 노벨상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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