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97] 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
컴퓨터를 끄고
냄비를 불에서 내리고
설겆이를 하다 말고
내가 텔레비전 앞에 앉을 때,
지구 반대편에 사는
어느 소년도 총을 내려놓고
휘슬이 울리기를 기다린다
우리의 몸은 서로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놀며 사랑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
그들의 경기는 유리처럼 투명하다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어느 선수가 심판을 속였는지,
수천만의 눈이 지켜보는
운동장에는 위선이 숨을 구석이 없다(…)
-최영미 (1961~)
2005년에 출간한 시집 ‘돼지들에게’에 실린 시. 이 시를 쓸 무렵 나는 혈기왕성한 사십대였고, 길을 가다 공이 내 앞에 굴러오면 공을 차고 싶어 발이 근질거렸고, 자기들끼리만 공을 주고받는 문단 권력에 대해 분노했다. 지금은 그때처럼 정의에 민감하지 않고, 적대감을 느낄지라도 적당히 감추는 법을 알며, 설거지를 하다 말고 축구를 보러 텔레비전 앞으로 뛰어가지도 않는다.
축구장에선 오프사이드 판정이 나면 골이 취소되는 게 정의다. 상대방에게 심한 태클을 하면 노란색 카드를 받고, 노란색 카드를 두 번 받으면 퇴장해야 한다. 팔꿈치를 써서 상대를 가격해도 심판에서 들키지 않으면 경고를 받지 않지만, 심판은 속일지언정 관중을 다 속일 수는 없다. 축구장에서의 정의는 간단하다. 카타르 월드컵에선 기계가 ‘신의 손’이 되어 오프사이드 판정을 번복하기도 한다. 오심이 줄었고 재미도 줄었다.
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 (시 원문)
컴퓨터를 끄고
냄비를 불에서 내리고
설겆이를 하다 말고
내가 텔레비전 앞에 앉을 때,
지구 반대편에 사는 어느 소년도 총을 내려놓고
휘슬이 울리기를 기다린다
우리의 몸은 서로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놀며 사랑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
그들의 경기는 유리처럼 투명하다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어느 선수가 심판을 속였는지,
수천만의 눈이 지켜보는
운동장에서는 위선이 숨을 구석이 없다
하늘이 내려다보는 푸른 잔디 위에
너희들의 기쁨과 슬픔을 묻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