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의 겨울은 추운 날씨보다 더 혹독한 소식이 있다. 마을 사람 중에 누군가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소식이다.
평소에 건강하여 일도 잘하고 술도 잘 마시던 사람이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동네사람들과 사람 일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쓰러진 사람의 안부를 묻다보면 이런저런 뒷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평소에 술을 너무 마셨다' '가지 말라는 상갓집에 잘못 가서 액운이 왔다' 이렇게 당사자를 탓하는 이야기부터 '아무도 모실 사람이 없어 요양원에 들어갔다' '결국 깨어나지 못하고 먼길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소식에 이르기까지 겨울은 이래저래 뒤숭숭한 계절이다.
인생은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마치 세상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부리고 막 살다가 갑자기 마주하는 위기를 만나 이도 저도 방법이 없을 때는 이미 후회해도 늦은 때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소식은 쓰러지고 나서 아들과 며느리가 옆에서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여조금씩 차도가 있다는 소식이나, 미리 들어놓은 보험 때문에 비싼 치료비 걱정 안하고 치료할 수 있다는 소식이다. 위기가 오기 전에 대비책을 세워놓은 사람의 이야기다.
인간은 누구나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난다. 일명 돌발변수(contingensy)다. 누구도 미래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우연히 발생하는 돌발변수는 인생의 큰 위기다. 갑작스런 퇴직, 부부 관계의 파탄에서부터 중병이 걸려 입원하는 건강문제에 이르기까지 인생을 뒤흔드는 돌발변수는 늘 예상해야 할 일이다. 미국에서 부동산 거래를 할 대도 반드시 돌발변수를 예상하고 계약서를 쓴다고 하니, 인간 일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위기는 언제든지 우리 삶에 끼어들어 우리를 위협할 수 있다. 그래서 평소에 건강할 때 더욱 조심하고, 돈이 있을 때는 더욱 아껴야 한다. 높은 자리에 있을 때는 지위를 잃었을 때를 준비해야 하고, 일이 잘 풀릴 때는 갑작스러운 변수에 대비해야 한다. 세상일은 마음먹은 대로 마냥 잘 풀리지만은 않고, 건강은 기대대로 좋을 수만은 없다. 그래서 평소에 돌발변수에 대비하여 플랜 B를 예상하고 준비해야 한다. 플랜 B도 믿을 수 없으면 플랜 C도 만들어야 한다. 고추농사가 잘되어 수확이 많다고 기뻐할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가격이 떨어질 것을 예상하고 저장시설을 늘리든 준비해야 한다.
'손자병법'에서는 돌발상황에 대비해 새로운 대안을 도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臨機應變이라고 한다. 갑작스러운 상황(機)에 임(臨)하여 변화(變)의 방법으로 대응(應)하는 능력이다.
똑똑한 토끼는 어려움에 대비해 은신처 동굴 세개를 준비하며 산다는 狡兎三窟의 고사가 있다. 전국시대 제나라의 정치가였던 孟嘗君(맹상군)의 식객 중에 馮驩(풍환)이란 사람이 자신을 인정해 주었던 주군을 위하여 위기상황에 대비해 대안을 마련하였다며 한 말이다. 인생을 살면서 위기는 누구나 만나게 된다. 기대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서 만나는 돌발변수에 나는 어떤 임기응변의 은신처를 갖고 있는지 질문해 본다. 통장의 돈, 좋은 인간관계, 준비된 체력 등은 돌발변수에 대응하는 좋은 은신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답을 찾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포기만 하지 않으면 답은 있기 때문이다.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