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2: 성자의 강생을 이끄시고 부활을 완성하시는 성령
이사 41,13-20; 마태 11,11-15
대림 제2주간 목요일; 2023.12.14
오늘은 주님의 빛인 신앙 진리의 세 번째 공리인 ‘삼위일체 하느님’의 두 번째 주제를 다룹니다. 어제는 광대무변한 우주의 별들을 움직이시고, 태양계 안에서만 보더라도 ‘창백한 푸른 점’(Carl Edward Sagan, 1934~1996)에 불과한 지구 별에 사는 사람들의 양심을 움직이시는 원리로서 성부 하느님의 힘이신 성령께 관한 묵상을 전해 드렸습니다. ‘거룩한 낭비’라고 불리울 만큼 인간은 물리적 차원과 규모면에서 과분한 배려를 받고 있는 셈입니다.
오늘은 성자 하느님을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잉태케 하시고 세례 때에 내려오시어 하느님 나라의 복음 선포 과정을 이끄셨으며 십자가 죽음으로 강생의 신비를 완성하신 후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으로 믿는 이들에게 내려오시어 부활의 신비를 온 누리에 퍼뜨리시어 새롭게 창조하시는 성령 하느님께 관하여 묵상한 바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오메가 포인트’(Theihard de Chardin, 1881~1955)로서 가장 진화된 존재를 성부 하느님의 힘이신 성령께서 인류 역사 안에 개입하시어 들여 보내신 것입니다. 우주 만물과 생명을 창조하시고 움직이시는 공력을 집중하신 ‘거룩한 낭비’의 이유와 배경이 성령께서 성자를 위해 하신 모든 배려에서 드러납니다. 과연 성자 하느님께서는 모든 인류가 기준이요 목표로 삼아야 할 삶을 보여주셨으니 믿음으로 방향 지워진 양심으로서, 이것이 우리가 구원 즉 행복과 평화를 위해 그분을 믿고 따라야 할 이유입니다.
“벌레 같은 야곱아,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아!”(이사 41,14).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가 전한 예언 말씀 중에서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향해 부르신 이름입니다. 특유의 집념으로 살아가던 야곱이 하느님의 천사와 겨루어 이긴 야뽁 나루 씨름 이후 그는 이스라엘이라고도 불리게 되었는데(창세 32,29), 이중의 이름을 부여한 이 기록을 통해서 창세기는 파란만장한 야곱 개인의 일생 안에 이스라엘 백성이 겪을 역시 만만치 않을 굴곡진 운명을 암시하는 듯 합니다.
본시 야곱은 아브라함의 손자요 이사악의 아들로서, 아브라함에게 하느님께서 주셨던 자손 번성의 축복을 처음으로 실현한 인물입니다. 무려 네 명의 아내에게서 아들 열둘과 딸 하나를 얻었고, 그 중 늦둥이인 요셉이 겪게 된 기막힌 섭리로 인해 이 야곱의 자손들이 모두 이집트로 가게 되었는데, 사백 년이 넘는 기간(탈출 12,40 참조) 동안 불어난 인구는 하나의 민족을 이룰 만큼 큰 무리로 불어나게 되지요. 그리하여 이집트를 탈출할 당시에는 스무 살이 넘는 장정만도 육십만 명이 넘었습니다(탈출 12,37; 38,26 참조). 이집트에서는 종살이를 하느라고, 또 이집트를 탈출한 후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이민족들과 부대끼느라고 이 백성은 평안한 나날을 살 수 없었습니다.
과연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이사 41,13)고 하느님의 약속을 전해 준 이사야의 예언대로,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서 ‘벌레’ 같이 고생하며 ‘구더기’ 같이 무시당하던 하느님의 백성을 도와주러 오셨습니다. 세례자 요한도 먼저 와서 그분의 길을 닦았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도우심을 실행하러 온 이 요한과 예수님께 대해서 사두가이들과 바리사이들 같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은 반가워하기는커녕 박해를 가했습니다. 거짓에 기반한 자신들의 권위가 들통나는 것이 두려워서 거침없이 요한과 예수님에 대해서 폭행을 가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정이,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마태 11,12)는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독서와 복음 말씀을 전제로 하고 성자의 강생을 이끄시고 부활을 완성하시는 성령 하느님께 관하여 묵상하자면 이렇습니다. 이사야는 예언자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선명하게 메시아를 내다본 인물입니다. 무려 5백 년의 시간 간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장차 오실 메시아가 ‘고난받는 주님의 종’이시리라고 예견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사 안에서 가장 암울한 시대로 여겨진 예수님 당시에 대다수 유다인들이 다윗이나 솔로몬 임금처럼 강력한 권세를 지닌 현세적인 메시아를 갈망했었던 바를 감안하면, 이사야의 예언자적 혜안이 얼마나 독창적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예언자적 상상력은 이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창세기에 이미 예견된 구세주의 강생을 내다보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뱀의 유혹에 빠져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어 버린 아담과 하와에게 하신 말씀, 즉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창세 3,15)는 전승에 따라서, 동정녀에게서 메시아가 탄생하리라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성령 잉태를 예언하였고 마태오는 이를 기억하여 복음서에 성령 잉태와 동정녀로부터 출산된 구세주 성탄을 해석해 놓았습니다(마태 1,23).
과연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사 7,14) 이라던 이사야의 예언대로, 천사 가브리엘은 요셉과 정혼한 직후에 마리아를 찾아가서 메시아 탄생의 전갈을 알렸습니다(루카 1,26-27).
여인이 남자 없이 아기를 잉태하는 일도 하느님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기적에 버금갈 일이거니와 하필이면 요셉과 약혼한 직후에 천사를 보내셨다는 것도 아브라함 이래 특히 야곱이 자신의 넷째 아들인 유다에게 내린 축복의 역사성을 보증하시고자 유다 지파에 속하는 요셉의 법적 아들로 구세주를 보내심으로써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신 이스라엘과의 약속에 충실하시려는 하느님의 구원의지를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는 탄생 후 여드렛 날에 요셉과 마리아에 의해서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헌되셨고(루카 2,22-24), 하느님의 총애 속에서 자라나셨습니다(루카 2,40). 서른 살이 되셨을 무렵에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셨는데, 이때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그분 위에 내려오셨습니다(루카 3,22).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습니다(루카 4,1-2). 이때 받으신 유혹이 빵과 권세와 영광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는 고스란히 공생활 내내 그분이 받으실 유혹을 미리 받으신 예방주사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악마의 유혹에 대해서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겨내신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에서도 그러하셨습니다. 당신의 가르침을 듣던 군중이 굶주릴 지경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그 많던 군중을 빵의 기적으로 배불리 먹이시면서도 당신이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시라고 신원을 밝히셨습니다(요한 6장). 또 신성모독과 성전모독이라는 억울한 혐의를 뒤집어쓰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바리사이를 비롯한 유다인들은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또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마태 27,40; 루카 23,35) 하며 조롱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말없이 십자가 죽임을 받아 들이셨습니다. 그분은 이미 겟세마니 동산에서 이마마한 유혹을 미리 예상하시고 세상의 죄를 없애시려는 하느님 섭리에 순명하시기로 작정하신 다음이었습니다(루카 22,39-46).
성령께서는 십자가에서 숨지신 예수님을 사흘 만에 부활시키셨습니다. 천지 창조 이전부터 계시던 하느님 자리로 원대복귀(原隊復歸)시키신 것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충격과 좌절, 공포와 불안에 휩싸여 숨어 지내던 제자들을 찾아가시어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요한 20,22-23)이라고 말씀하시며 당신의 십자가 현장에 나타나지도 못하고 비겁하게 숨어 지내던 제자들의 죄를 용서해 주심은 물론이거니와 사죄권까지도 통 크게 위임하시는 결단으로 성령을 받도록 자비를 베푸신 것이었습니다.
이 자비는 제자들에게만 주어진 은총이 아니라 그들이 사도가 되어 세워진 교회와 그리스도인들 모두에게도 똑같이 주어진 값진 그리고 너무나 귀한 은총입니다. 그것은 제자들이나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자격이 충분해서가 아니라, 메시아로서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당신이 시작하신 인류 구원의 사명을 이룩하기 위하여 과분하게 베풀어주신 은총인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강생의 신비와 부활의 신비를 이끄셨습니다. 이는 “벌레 같은 야곱,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자비였으며,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하는” 데 대한 성령의 대책이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성자 하느님의 강생과 부활을 이끄시고 완성하신 이 같은 성령의 이끄심이 인류 역사의 신기원을 이룩하였기에, 세상에서는 이전의 역사를 기원 전이라고 매기고 이후의 역사를 기원 후라고 매기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325년에 열린 니케아 공의회에서 삼위일체 하느님께 관한 교리를 믿을 진리로 확정하고 반포하였습니다. 이단 사상들과의 치열한 논쟁 후에 이룩한 쾌거였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부들은 성령의 이끄심으로 성자의 강생과 부활의 신비가 비로소 완성되었으며, 천지 창조에 버금가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가 시작되었음을 확신하고는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권고한 바 있습니다.
“오소서 성령님! 저희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저희 안에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주님의 성령을 보내소서. 저희가 새로워지리이다. 또한 온 누리가 새롭게 되리이다. 하느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 마음을 이끄시어 바르게 생각하고, 언제나 성령의 위로를 받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