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리스 로마 신화
지은이; 이윤기
출판사; 웅진닷컴
열두 살배기 착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이 소녀는 눈에 번쩍 띄게 예쁜 것은 아니지만 귀엽습니다.
집안도 그런대로 살림을 꾸려갈 정도는 됩니다.
아버지는 지위가 높지는 않아도 늘 열심히 일을 하는 분입니다.
어머니는 체중이 조금씩 늘어가는 걸 걸 걱정하지만,
그래도 건강이 나빠지는 것보다는 낫다면서
지나치게 짜증스러워하는 빛은 보이지 않습니다.
소녀는 꽤 행복합니다.
행복하게 살고 있는 소녀에게 어느 날 천서가 와서 말합니다.
"착하게 사는 네가 기특하다.
반드시 들어줄테니 소원을 생각해 두었다 내일 내가 다시 오면 말해다오.
딱 한 가지라는 걸 잊지 말아라."
소녀는 그러겠노라고 대답합니다.
하기야, 천사가 소원 한 가지를 이루어준다는데 싫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나를 무지하게 예쁘게 만들어달랠까?
공부를 무지하게 잘 하게 만들어 달랠까? 입학시험을 없애달랠까......"
그러나 이걸 말하자니 이게 걸리고, 저걸 말하자니 이게 걸립니다.
"......아버지가 돈을 아주 많이 벌게 해달랠까?
엄마의 체중이 불어나지 않게 해달랠까?
커다란 집을 한 채 지어달랠까?
아니, 그러고 보니......"
소녀는 천사에게 말할 소원을 생각하다 깜짝 놀랍니다.
소원을 생각하다 보니,
넉넉하고 행복하게 여겨지던 자기 주위가 초라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밤새 고민하던 소녀는 찬사가 나타났을 때 결국 이렇게 말하고 맙니다.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약속을 거두어 가세요.
천사님 덕분에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어요.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천사님의 약속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약속이 아니라 가장 심술궂은 약속이더라고요."
나는 이 글을 읽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원이 없는 삶, 더 바랄 것이 없는 삶이 반드시 양질의 삶일 리야 없겠지만,
삿된 소원, 삿된 꿈이 우리를 누추하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나의 어머니는 현명하신 분이셨다.
결혼 하기 전에는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았다.
어느 날 어머니는 빨랫감으로 내놓은 내 바지의 주머니를 뒤지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바지 주머니 뒤질 때마다 나는 조마조마하다.
복권 같은 게 나올까봐."
나는 이런 어머니 때문에 로또 복권 같은 것은 사지 않는다.
-본문 중-
신화의 이야기는 삿된 꿈같은 이야기가 많다.
현실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든 삿된 꿈이 신화에서는 잘도 이루어진다.
어쩌면 인간의 그것일지도 모르는 욕망과 현실을 신들을 통해 본다.
이 책은 나온지 얼마 안 된 따끈 따끈한 신간입니다.
원래 이 글의 저자 이윤기씨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은 나오자 마자 바로 사서 보았습니다.
이유가 궁금하시죠?
아래 글은 이윤기의 그리스로마신화 1,2 권을 읽고 쓴 리뷰글입니다.
나는 이윤기씨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외국 생활을 많이 한 교수이기도 하고, 번역가, 소설가이기도 하다.
내가 이윤기씨를 처음 만난 건 학교 때 문학평론을 강의하는 교수가 적어준
'꼭 읽어야할 우리 현대 소설의 목록' 속에서였다.
난 그 때까지 이윤기라는 사람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아는 게 없으니 관심도 없었고, 물론 호감도 없었다.
그저 읽어야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으니까 억지로 읽어야했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처음 느끼는 것은 참 속도가 안난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소설책인데도 불구하고 술술 읽히지 않아
한 자 한 자 되새기며 읽어야했다는 것이다.
마치 교양서나 철학서처럼...... 무지 짜증났다.
이렇게 속도 안 나는 책을 읽느라 죽을 똥을 싸며
나는 그의 책을 다시는 읽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소설이 이렇게 안 읽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번역가이기도 한데 많은 외국 서적을 번역한 때문인지
마치 영어를 그대로 해석(직역)해 놓은 듯한 문체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더우기 현학적이고, 친절하지 못한 그의 소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작품에 이해도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의 소설책, 뿌리와 날개, 나비 넥타이, 하얀 헬리콥터의 3권을 읽고
난 넉다운이 되고 말았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신화에 관한 책이 근 3종류나 되는데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너무 많은 등장인물과 허무맹랑한 이야기구조가
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냥 곰과 호랑이가 마늘을 먹고......
이렇게 쉽게 시작 되는 우리 신화와는 너무나 다른
복잡한 구조와 이해할 수 없는 관습(근친상간 등)이 나를 혼란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면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그 많은 인물들 중에 제우스와 해라 밖에 생각이 안나는 책이
바로 신화에 관한 책이었다.
그럴 때마다 난 내 머리를 쥐어박으며 기억력의 부족을 한탄해야 했다.
그러다 해외의 미술작품을 보기라도 하면 어김 없이 나오는 신화 이야기가
나를 다시 좌절하게 했다.
(그래서 한 때는 시험 보는 사람처럼 이름과 특징을 적은 글을 달달 외워보기도 했지만 그 때 뿐이었다.)
이렇게 나를 수없이 좌절하게 만든 신화 이야기를,
더우기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가의 책을,
꼭 사서 봐야할 이유가 없었다.
보나 마나 또 넉다운이 될 게 뻔했다.
게다가 베스트셀러라는데......
난 당연히 이 책을 보지 않았다.
아니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 추석에 내려간 시골집,
시누의 책상 위에 이 책이 있었다.
나는 그림이나 볼 요량으로 몇 페이지를 읽어보았는데.......
그만 수렁에 빠지고만 것이었다.
단숨에 책이 읽혀지는 것이 아닌가.
난 조금 화가났다.
이렇게 재미있고 쉬운 신화 이야기가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나름대로 나는 신화를 좀 읽은 사람이며,
너무 어렵고 복잡해서 기억 못하는데
누군들 깊이 이해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의 신화에 대한 무지가 합리화 될 수 있었다.
그래도 나는 나은 편이지 하고 (아는 것도 없으면서) 자만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로마 신화 1,2 를 본 40,000,000 명의 사람들은
이제 신화의 세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세상을,
세계를 이해하는 눈이 넓어졌을 것을 생각하니 막 화가 났다.
나만 도태된듯한 느낌도 들었다. - -;;;
더욱 좌절한 것은 2권의 에필로그에 쓴 최하예린의 이야기를 읽고서였다.
이 책을 본 40,000,000 명의 사람들 중 초등학교 5학년인 최하예린이 있다는 것이었다.
(최하예린은 반쪽이 아빠의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이자 반쪽이 아빠의 딸이기도 하다.)
요는 이렇다.
초등학교 5학년이 읽어도 이해가 가능할 정도로
이 책은 신화 이야기를 쉽게 썼다.
그동안 그의 책에서 느꼈던 친절하지 못한 말투와 번역체,
현학적인 글들은 온데 간데 없고,
마치 할머니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써내려간 것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거의 배신에 가까운 기분이었다.
(그동안 많은 신화책들에는 주석이 꼭 필요했는데
이 책은 독자가 잊을만하면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앞 뒤의 이야기를 설명해 두어 글에는 주석이 거의 없다. )
그리고 조목 조목 알기 쉽게 분야별로 구분을 해 놓기까지......
나의 편견이 돌을 맞은 순간이었다.
책이 쉽게 쓰여졌으니
그 많은 신화 속 인물 이름이 자연스레 외워지고,
신화에 감춰진 의미들이 깨달아졌다.
신화를 이해하고 나니 많은 영어의 어원이 찾아지고,
유럽의 수많은 옛날 예술작품들이 무엇을,
왜 그렸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드는 가슴 뿌듯함은
신화의 세계를 정복하고 얻게 된 또 다른 세계를 이해하는 눈 때문이었다.
신화라는 카오스의 세계에 코스모스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동안 너무 까마득하기만 한 신화의 세계를 알고나니 너무 가슴이 뿌듯하다.
지식을 얻어 기쁨을 누리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내가 가진 편견이 나의 눈을 얼마나 멀게 하는지 생각하여 본다.
첫댓글 2년전-_-부터 기다려 왔던 책입니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