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 퇴임식 “모든 허물은 제 탓”
6년 임기 마쳐… “재판 지연 해결해야”
24일 6년 임기를 마무리하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2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을 마친 후 직원들의 배웅을 받고 있다. 뉴시스
24일 6년의 임기를 마치는 김명수 대법원장(64)은 22일 퇴임식에서 “국민이 재판에서 지연된 정의로 고통을 받는다면 우리가 추구해 온 가치들도 빛을 잃게 된다”며 ‘재판 지연’ 문제 해결을 강조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사법부의 저력은 최근 사법부에 제기되고 있는 ‘재판 지연’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발휘될 수 있어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지난해 전국 법원 민사, 형사 합의부 1심 평균 처리 기간은 각각 420일, 204일로 2018년(297일, 148일)에 비해 40% 가까이 늘어났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후임인 김 대법원장은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로 떨어진 사법부의 신뢰 회복이라는 개혁 과제를 안고 2017년 9월 25일 대법원장에 취임했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 6년간 국민으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는 사법부로 거듭나고자 대법원장으로서 최선을 다했지만, 저의 불민함과 한계로 인해 국민 여러분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을 저는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허물은 저의 탓으로 돌려 꾸짖어주시되 오늘도 ‘좋은 재판’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법부 구성원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김 대법원장은 임기 중 성과로는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축소’를 꼽았다. 그는 “사법 행정의 재판에 대한 우위 현상은 사법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됐고 법관의 내부적 독립도 한층 공고해졌다”고 자평했다.
김자현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218번 강조한 ‘좋은 재판’
‘속도에 매달리지 말라’며 재판 지연 자초
추상적·자의적 표현 반복하며 관리자 역할 등한시
“김명수 대법원에선 빨리 사건을 처리하라고 압박하는 일이 사라졌다. 오히려 야근을 하거나 사건을 많이 처리하는 판사들이 같이 일하기 힘들어할까 봐 배석판사나 법원 직원들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지방의 한 부장판사는 김명수 대법원 6년 동안 달라진 게 있는지 묻자 이렇게 답했다. 야근이 줄고 일하기 좋은 법원이 됐다고도 했다. 그런데 그게 과연 국민들에게 좋은 걸까.
대법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김명수 대법원장은 취임 후 공개석상에서 연설을 91차례 했다. 여러분, 국민 등 의례적 단어를 빼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좋은 재판’이었다. 무려 218번 나왔는데 이는 연설당 2.4회다.
그렇게 입이 닳도록 강조한 ‘좋은 재판’은 뭘까. 김 대법원장은 한마디로 ‘양질의 재판’이고 ‘국민을 중심에 둔 재판’이라고 했다. 또 임기 초 판사들에게 “재판은 계량화된 수치로만 평가할 수 없다. 속도에만 지나치게 매달리지 말고 재판의 질적 수준을 끌어올려 달라”고 주문했다. 좋은 재판의 토대는 ‘좋은 법원’이라고도 했다. “구성원이 즐겁고 넉넉한 마음으로 업무에 임할 때 국민 만족이 높아지고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향상된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속도에 매달리지 않을 것’과 ‘즐겁고 넉넉한 마음’을 주문한 결과는 재판 지연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헌법 27조는 국민에게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한다. ‘신속함’은 공개성 등과 함께 헌법에서 규정한 몇 안 되는 재판의 요건이다. 김 대법원장은 좋은 재판의 요건으로 투명하고 공정할 것, 적정하고 충실할 것, 쉽고 편안할 것 등을 강조했지만 정작 이런 내용은 헌법에 없다.
재판 지연은 법관 3000여 명, 법원 직원 1만5000여 명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계량화를 등한시한 대가이기도 했다. 김 대법원장이 강조한 적정성과 충실성, 투명성과 공정성 등은 듣기에 그럴듯하지만 추상적이고 자의적이어서 평가의 잣대로 삼기 어렵다. 이런 지적에 김 대법원장은 여러 차례 “어떤 재판이 좋은 재판인지는 국민만이 온전히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측정할 수 없다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는 조직운영의 상식과 정반대였다. 결국 그가 6년 내내 강조한 ‘좋은 재판’이 어떤 건지, 어느 정도 실현되는지 법원 내부에서 누구도 답하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법원 일각에선 ‘어쩔 수 없었을 것’이란 옹호론도 나온다. 사법농단 논란 국면에서 임명된 대법원장이다 보니 재판 개입 논란을 피하는 게 우선이었고, 그러다 보니 일부 판사들의 태업과 도 넘은 언행에도 개입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취지다.
하지만 재판 개입과 관리자의 적법한 관리는 전혀 다르다. 헌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그게 관리자의 당연한 역할을 포기하는 근거가 될 순 없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좋은 재판에 대해 “독립된 법관이 공정하고 충실한 심리로 정의로운 결론에 이르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올 초 신년사에선 “독립된 법관이 충실한 심리를 통해 적시에 정의로운 결론에 이르는 것”이라며 ‘적시성’을 강조했다. 임기 마지막에야 좋은 재판에 대한 견해를 바꾼 것이다. 22일 퇴임식에서도 재판 지연을 거론하며 “국민의 기대에 못 미쳤다는 점을 받아들인다”며 고개를 숙였다.
김 대법원장 임기가 24일 끝나는 만큼 이제 공은 다음 대법원장에게 넘어갔다. 다음 대법원장이 정당한 관리자의 역할을 하면서 헌법에 명시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국민들에게 돌려주길 기대한다.
장원재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