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개정안이 나왔다. 상속세가 5년간 18.6조원이 줄어든다. 대신 부가가치세는 1.7조원이 늘어난다.(부가세 늘어나는 부분은 합리적이긴 하다.)
상속세 감액에 찬성하는(세법을 배우지 않은) 일부 사람들의 논리는 '이중과세'라는 거다. 소득세를 내고 형성한 자산에 왜 상속세를 또 내냐는 거다. 심지어 어떤 분은 과거 소득세 탈세가 심할 때 걷지 못한 소득세를 상속과정에서 쎄게 과세하는 건데 이제는 소득세 탈세가 줄었기 때문에 상속세를 낮춰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그런데 상속세는 절대로 이중과세가 아니다. 소득세와 상속세 납부 주체가 다르다. 소득세를 낸 건 부모고, 상속세를 내야 하는 사람은 아들내미(또는 딸내미)다.
소득세를 낸 돈으로 설렁탕집 사장에 돈을주고 설렁탕을 사먹는다. 설렁탕집 사장은 사업 소득이 생긴다. 당연히 설렁탕 집 사장은 소득세를 내야 한다. ㅇㅈ?
소득세를 낸 돈으로 아들내미에게 돈을 준다. 상속받은 아들내미는 상속 소득이 생긴다. 당연히 상속받은 아들내미는 상속세를 내야 한다. 노동을 해서 번 돈에 세금을 내야 하는 것처럼 상속으로 번 돈에도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 이상한가?
과거 모 진보정당에서 상속세율을 소득세율보다 올리는 토론회에서 강력 반대한 적이 있다. 형평성을 추구하는 진보 진영이라면 노동소득보단 불로소득에 더 높은 과세를 하는 것을 바랄 수는 있다. 이를 테면 배당소득, 임대소득, 상속 소득같은 거 말이다.
그러나 나는 조세중립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각종 소득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이나, 배당소득이나, 부동산임대소득이나 상속 소득이나 동일하게 과세하는 것이 가장 시장 친화적이라고 생각한다.
시장 원리를 어기고 상속 소득에 노동 소득 보다 더 높은 과세를 하면 '암시장'이 형성되고 시장에 비효율이 생긴다. 경제적 실질은 증여이나 법적 형식은 소득과 같은 사모펀드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소득세 최고세율은 49.5%다. (지방소득세 포함) 상속세 최고세율(50%)과 사실상 같다. 불로소득에 높은 세율 과세를 하지 않아 형평성이 최대는 아니지만, 노동 소득과 상속 소득의 한계 세율이 같아지니 현재 세율은 가장 효율적이다.
그래서 자칭 자유시장 주의자라면 현 소득세 최고세율과 같은 현 상속세 최고세율을 좋아해야 하는게 정상이다.
그런데 갑자기 정부는 상속세 최고세율을 40%로 내린다고 한다. 아니, 자유시장 경제를 그다지 좋아하는 사람이 왜 노동소득 세율과 상속소득 세율을 달리하나?
왜 합리적 경제주체들이 가능하면 노동소득을 피하고 상속소득을 추구하도록 시장을 왜곡할까?
여기에 대해선 기재부가 지속적으로 반대를 해왔다. 왠만하면 기재부가 강력 반대하면 대통령실은 기재부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기재부 말만 들으면 중간은 하고, 기재부가 그렇게 하면 큰일난다고 말하면 그걸 무시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정부는 기재부 말도 그냥 완전히 무시한다. 나는 올해 세법개정안을 보고 세수 감소가 걱정되기 보다는(어차피 국회에서 통과 안된다) 정부 거버넌스 구조가 가장 걱정이 되더라.
기재부가 정책적으로 안된다고 하고, 어차피 국회통과도 불가능하다고 청와대 참모가 말하면 아무리 대통령이 하고 싶어도 참모와 관료의 말을 듣고 물러나는 것이 정상적인 거버넌스다.
그런데 기재부와 참모가 말안해서(최상목 부총리에 대해 들은바가 많으나 나중에 기회되면...) 대통령에게 고독한 결단을 하게 해도 문제고, 말을 했는데 완전 멍멍이 무시하고 실행해도 문제다.
정말 거버넌스 구조가 완전히 무너진 것 같아 걱정이다. ㅠㅠ
참고로 단군이례 최악의 세수결손이 발생한 작년보다 올해 관리재정수지 목표치가 더 나쁜 -92조원이다. (23년 -87조원). 나는 최근 올해 세수결손이 얼마 예상되냐는 기자분들 질문 받을 때마다. 세수결손 규모를 묻는 질문은 다소 한가한 질문이라고 대답한다.
세수결손이 없는 상태에서의 목표치가 -92조원인데 세수결손이 9조원 생길지 10조원 생길지 보다 세수결손이 없는 상황에서의 -92조원 어쩔꺼냐란 질문이 더 본질적인 질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92조원 상황에서 상증세만 5년간 -18.6조원 감면하는 이 강심장은 참 대단하다.
모 어차피 국회 통과는 안될테니 덜 걱정해도 되지만... 국회통과 안될 방안을 그냥 내놓는 거버넌스 부재는 더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