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종일 원고 찾고 치고 한다고 쎄가 빠졌습니다.
일을 미루고 있다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금, 토요일 집회 나갔다 오니 슬슬 몸이 이상해 지더니 그만 독감 명현반응에 꼼짝없이
잡히고 말았습니다.
월요일 겨우 학교 갔다가 조퇴하고
화요일은 결근해야 했습니다.
내 생전에 아파서 결근하기는 처음이지 싶습니다.
(물론 술에 곯아떨어져 결근하기는 있지.........)
진고 아이들 글 박스 하나는 잃어버렸는데 어떻게,
<바람직한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 관한 글은 다른 봉투에 넣어 둔 덕에
오늘 이런 글이라도 건졌습니다.
보냅니다.
[글1]
바람직한 선생님
부산진고 1학년 김주일
작년, 그러니깐 중3때 나에게 최악의 선생이 있었다. 그 이름하여 박미경. 그 선생에게 불만이 많은 건, 아니 나는 특별히 더 불만이 많았지만 불만이 없었던 학생들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중3 초기, 2학년 때 친했던 친구들은 모두 3반과 4반에 거의 몰려 있었다. 그런데 나는 7반이어서 항상 3반에 가서 점심을 먹고는 했다. 그렇게 그날 하루도 3반에서 친한 친구들과 점심을 다 먹고 내 반이었던 7반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3반의 담임이었던 그 선생이 나에게 뒤에 있는 휴지 하나를 줍고 가라고 했다. 나는 그걸 줍고 쓰레기통에 버린 뒤 나갔는데 친구가 나에게 뭐라뭐라 (지금은 생각나지 않지만 내가 휴지 줍는 모습을 보고 놀리는 말이었다) 했다. 난 그 소리를 듣고 손을 들고 공격하는 듯한 몸짓, 그러니깐 '죽을래?' 이런 식의 몸짓을 지었고, 내 앞에 그 선생이 있는 줄도 몰랐다.
어쨌든 그렇게 내 반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그 선생이 나를 저 멀리서 불렀다.
"야! 야! 거기 앞에 물통 들고 가는 놈!"
물통? 나를 말하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하며 뒤를 돌아보며 그 선생에게 말했다.
"저 말임까?"
그 선생이 답했다.
"그래 니, 이리 와봐"
영문도 모른채 나는 그 선생에게로 갔고 그 선생은 나를 벽 쪽에 몰은 뒤 꿇어앉게 했다.
"저, 선생님 왜 그러시...."
짝! 짝짝짝! 짝짝짝짝.... 열 대도 넘게 맞았다. 영문도 모른 채 나는 뺨을 열 대고 스무 대고 맞은 것이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왜 때리는 겁니까? 제가 믄 잘못을 했다고요!!"
그 선생이 바로 대답했다.
"왜 때리는 줄 몰라서 묻나? 니 방금 무슨 짓 했노? 내 뒤에서 손들고 뭐 하는 짓이야! 사람 안 본다고 뒤에서 욕하다니 그게 얼마나 나쁜 건지 알고 있나?
당황스러웠다. 정말 황당해서 말이 안나왔다.
"무슨 소립니까! 제가 언제 선생님 욕했는데요? 혹시 제가 이렇게(팔을 들며) 한 거 보고 말하는 겁니까? 그건 제 친구에게 한 겁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내가 그 말을 믿겠나? 니 진로 상담실로 당장 따라와!"
진로 상담실에서 나와 내 친구는 그 때 상황을 선생께 설명하며 해명했고 그 선생은 나에게 미안하다며 그만 교실로 가라고 했다. 이 말이 없었다면 난 그 선생에 대한 감정이 더 이상 나빠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다음부터는 사람 뒤에서 욕하고 그런 짓 하지 말거라..."
"선생님 아까 제가 그런 게 아닌데 다음부터 그런 짓 하지 말라뇨."
그 선생은 풋 하며 비야냥거리고 못 믿겠다는 말투로 답했다
"그래그래, 니가 안 했다. 그만 교실로 돌아가라"
그렇게 교실로 돌아갔고, 그 선생은 5교시 마치고 나를 부르고, 6교시 수업이 종료된 후에도 나를 불러 나에게 진짜 안 했냐는 둥, 했으면 했다고 솔직히 말해라 말하면 봐주겠다는 둥, 그런 소리를 끝없이 늘어놓았고 나는 그 일이 있은 후로부터 그 선생과 사이가 나빠졌고 그 다음부터도 끝없는 악연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었던 것 같다.
그 일이 일어나고 몇 주 뒤.
참고로 그 선생은 도덕선생이며 도덕시간의 수업 방식은 선생이 다음시간에 할 문제로 약 6문제를 내면 학생들은 그 문제를 풀어와서 여덟 조 중 한 조가 주 단위로 돌아가며 나와, 먼저 학생들을 지적시켜 책을 읽히고 문제를 읽은 뒤 학생들을 발표, 지적하며 문제를 풀고 선생은 마지막에 책에 줄을 그어준다.
수업종이 울리고 오늘 발표할 조는 아이들을 일으켜 책을 읽게 하였다.
"주일이 책 읽어라"
친구의 말에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때 그 선생은 아이들이 숙제를 했는지 안 했는지 돌아다니며 검사하고 있었다. 내가 책을 막 다 읽었을 때 내 옆을, 그 선생은 내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그 선생과의 두 번째 큰 사건이 발생하였다.
"주일이 니 왜 책을 안 펴고 있노?"
나는 그 말에 방금까지 책을 읽고 있었고 책을 다 읽은 후 책을 책상에 먼저 놔두고 의자를 앞으로 당기며 앉는 중에 책상에 놓아두었던 책이 덮어져 버렸다고 말했다. 역시나 믿지 않았다.
"선생님, 왜 못 믿으시는 겁니까?
"니 그때처럼 거짓말 하는 거 아니가?"
"그때처럼 이라니요! 그때도 말했듯이 거짓말이 아닙니다!"
"솔직히 그걸 어째 아는데? 니가 친구랑 짜고 말했을지..."
"혹시 그때 일 땜에 내한테 괜히 나쁜 감정이 있는 거 아닙니꺼? .....그렇다면 그런 식으로 날 대하지 말지요. .....그때 제가 선생님을 욕한 게 아니었다 안 했습니까......내 잘못한 거 하나도 없슴다."
솔직히 말은 안 했지만 그때 그 일이 있은 뒤 수업시간 중 종종 나를 째려보는 그 선생의 눈빛은 여러 아이들의 입과 눈으로 확인된 바 있다.
"이...이... 그럼 니가 지금 잘했다는 거가?"
"지금 제가 선생님한테 대드는 건 잘못했다 칩시다. 하지만 원인을 제공한 건 선생님입니다!!"
"니...... 하! 이기! 교무실 내 자리 앞에 가 있어라!"
"제가요? 제가 왜요? 무슨 잘못을 그렇게 크게 했다고요?!"
나는 있는 대로 고함을 질러버렸다.
"당장 가있지 않으면 부모님을 부르겠다!"
치사하게 부모님을 부른다니 어쩔 수 없어 난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나간 후 세게 문을 닫았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내가 교무실로 가 있었을 때 그 선생은 그 수업시간 내내 그때 일과 나의 험담을 했다고 한다.
"띠리디딩"
마치는 종소리가 들리고 조금 뒤 그 선생이 교무실로 내려와 나를 데리고 교무실 중앙에 있는 작은 간이 회의실에서 상담을 하기 시작했다. 상담내용은 그 때 일에 대한 마무리와 이번 일 그리고 나에 대한 처벌들이다. 나의 처벌은 일단 그 선생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한 뒤에, 반성문을 써서 반 아이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읽는 것이었다. 나는 '나도 자존심이 있습니다. 정확히 누가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저 혼자만 사과를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교무실 한복판 많은 선생님과 학생들이 있는 이곳에서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무릎을 꿇고 사죄한 뒤 그 다음 도덕시간에 반 친구들 앞에서 반성문을 읽었다. 그 때 나의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 후로도 그 선생과의 자잘하고 큰 충돌은 수십 번이 있지만 양이 너무 많이 쓰지 않겠다.
그 선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학생들과의 '믿음'이다 교사가 교단에 서서 학생을 믿지 못한다면 누구를 믿는다는 말인가? 난 그런 선생이 어떻게 도덕선생이 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선생에게 배워서는 도덕적인 삶을 살 수 없다는 것도 나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알고 있었다.
바람직한 선생은 학생을 믿어 주는 선생이라고 생각한다.
-"바람직한 교사 학생의 관계"에 대한 토론 뒤 쓴 글 / 이상석 지도
[글2]
제목; 잊지 못할 중3 담임 선생님
부산진고 1학년 박준태
중학교 2학년2학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난 학교 아이들과 선생님으로부터 '일진'이란 이름이 붙어져 '양아치'라고 소문이 났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런 아이들이 죽이고 싶은 만큼 싫었고 그렇기 때문에 때리고 선생님들께 일부러 반항을 하였다.
첨부터 나도 그렇진 않았다. 동네에 아는 형님들 선배가 있어 난 좋았다. 하지만 매일 돈을 모아 라고 했고 난 그런 형님들이 조금씩 싫어졌다. 한번은 모으지 않고 아니 더 이상 모을 돈도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빌리다가 아이들이 안주면 때리고 협박을 해서 돈을 모아주었다. 내가 모으지 못했을 땐 냉정하게 때리고 미치게 했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선생님께 말씀드려 해결되었다
그리고 며칠 뒤 내랑 같은 대우를 받고 있는 '일진'이란 친구들이 학교에 오자마자 흥분을 해 후배 한 명을 불렀다. 내 생각엔 때릴 분위기였다. 후배가 다른 학교 아이들한테 "우리 학교 선배는 좃밥이라서 쓰레기라"하고 다녔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열이 받아 그 후배를 미치듯이 때렸다
난 그 후배랑 좀 친했는데 그 후배가 내게 도와달라고 하였다. 참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하지만 후배보다는 친구니깐, 난 아이들에게 그만 하자는 말만 꺼냈다. 그 말을 꺼내자마자 아이들은 내게 흥분을 하며 욕을 하였다. 그 상황은 진짜 말릴 분위기가 아니었다. 난 그래서 화도 나도 짜증나서 밖으로 나왔다. 그때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올라오셨다. 그래서 후배를 때린 8명과 나까지 포함해서 9명은 교무실로 갔다. 선생님들은 무조건 우리에게 욕을 하고 때리셨다. 우리가 아무리 잘못을 했어도 앞뒤 이야기는 들을 보고 때리는 게 아니까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학주 선생님은 우리보고 큰 충격을 주었다. 우리에게 너거 같은 놈들은 인간 쓰레기라며 욕을 퍼붓고 때리셨다. 우리는 열이 받아 진짜 눈물을 1시간이 넘도록 계속 울었다. 한참을 울다가 난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근데 이상했다 친구 한 명이 보이질 않았다. '중앙중 대가리'라고 소문난 내 친구가 없었다. 후배가 그 친구는 무서웠나 선생님께 말하지 않았던 거 같다. 아이들과 난 배신감과 흥분이 미칠 듯 터져 나가려고 했다. 그때 선생님께서 1명씩 남자휴게소로 들어오라고 했다. 내가 먼저 들어갔는데 선생님은 "어퍼"이라면서 내 허벅지를 마구 내려쳤다. 정신 없이 맞았기 때문에 숫자도 세울 수 없이 맞았다. 미칠 거 같았다. 그 선생님을 죽이고 싶은 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나와 같이 맞고 복도에 무릎꿇고 앉아 있었다.
그렇게 3일 동안 지냈다 .4일째 되는 날 우리는 전날과 같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가 도저히 못 견디고 각자 반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가지고 오라고 시켜 우리는 공부시간종이 치고 바로 도망을갔다. 그때 기분은 날아가도록 좋았고 자유로웠다. 우리는 한 명 씩 담을 넘고 바로 부산역으로 갔다. 다같이 가출을 하고 부산을 뜨기로 하였다. 기차시간을 보고 우리는 부산역 앞에서 비둘기랑 놀았다 .정말 즐겁고 행복했다. 학교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진짜 보통 아이들과 똑같이 순하게 놀았다. 난 한참을 놀다가 계단에 앉아 있었다. 아이들을 보니 눈물이 저절로 났다.
이렇게 착한 아이들이 왜 학교에서 관심도 받지 못하고 학교아이들과 똑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할까? 선생님들은 우리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짓을 하면 우리면 불량하게 보고 욕을 하셨다
방학 때 염색은 왜 하면 안되나? 하면 안되더라도 똑같이 혼을 내야하는데 우리와 같이 염색을 한 아이들은 혼나지 않고 우리만 혼이 났다. 너무 차별이 심했다. 우리는 선생님들께 잘 보이려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시험을 좀 잘 치면, "잘 쳤네!" 이 말이 아니고 "누구꺼 빼겼노?" 이 말부터 들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우리는 더욱더 삣나갔다. 그래서 아이들이 문제애들이 된 거 같다. 조금만 학교에서 관심을 가져주고 좋게 봐주고 했음 우리가 이렇게 까지 되었겠는가?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렇게 난 아무 추억 없이 악몽들로 2학년을 마쳤다. 우리는 3학년 때도 똑 같을 거라고 생각했고 어떻게 다니지 생각을 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3학년이 되어 3학년 첫날이 되었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다 바뀌었고 우리반 선생님은 내가 학교에서 딱 한 명 좋아하는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 선생님이 걸린 것이다. 난 진짜 좋았다 행복했고 어느 때 보다 좋았다. 그 선생님이 나에게 와서 이제 선생님이랑 잘해보자며 격려해주셨고, 이제 선생님이 니 사람 만들 거라고 하시며 안아주셨다. 처음이었다. 선생님이 이렇게 잘 해준 건. 그래서 나도 그 날부터 반항하지도 않고 선생님말씀을 들으며 지냈다.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선생님이 있을 때 우리 담임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반 선생님은 진짜 최고였다. 같이 욕을 하며 우리를 이해해주셨다. 시험을 잘 치면 "와~ 준태 이제 정신차렸네."하며 말씀해주셨고 반 아이들에겐 "준태랑 너거랑 차별할 거닌깐 불만 있으면 전학 가라"하고 농담을 하며 내편이 되어주셨다.
선생님은 우리가 말하는 대장이었고 우리편이 되어주셨다.
우리가 다른 선생님께 혼나고 있으면 말려주시고 우리를 그냥 데려가 주셨다.
우리 반 선생님은 학교에서 제일 높은 자리였다. 동부교육청에서도 알아주는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나는 3학년 때 행복이 시작되었다. 그러다 보니 성적도 올라가고 선생님들께 반항하지 않았다. 학교를 자퇴 쓰려는 친구들도 그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학교를 재미있게 다녔다. 난 1, 2학년 때 못한 것을 다 했고 공부도 열심히 했고 학교행사에도 참가하였다. 그렇게 행복한 시간도 잠시 졸업날이 왔다. 난 졸업식 때 지금까지 살면서 참 많이 울었던 거 같다.
두 가지 때문에 울었는데 졸업식 때 엄마와 아빤 오지 않으셨다. 부모님들께서 싸움을 하셨다고 했다. 누나와 누나 남자친구가 와주었다. 그래서 난 졸업식 시작할 때부터 기분이 좋지않았다. 졸업식이 마치고 반에서 선생님과 인사하는 시간이었는데, 아이들이 한 명씩 나가서 선생님과 인사를 하였다. 하지만 나는 부르지 않으면서.....
난 마지막에 부르셨다. 아이들과 인사할 때 웃으면서 하시던 선생님이 내가 나오닌깐, 통곡을 하며 눈물을 흘리셨다. 아이들 부모님들도 다 계셨는데 우셨다. 나도 울었다. 선생님과 안고 눈물을 흘렸다. 선생님은 귓속말로 고등학교 가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달라며 니가 마지막 내 담임을 하는데 니를 우리 아들로 삼아서 행복했다며 30년 동안 담임을 하면서 올해가 젤 행복했다며. 즐거웠다며 하셨다. 난 소름이 나고 미친 듯이 울었다. 선생님이 너무 고마웠다. 우리선생님은 지금 마지막이라고 하셨다. 이제 내년 8월달에 은퇴를 하신다고 했다. 난 한참을 그렇게 선생님과 안고 있다가 자리로 돌아갔다..
난 3학년 선생님을 정말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고등학교 가서는 담배를 꼭 끊겠다고 선생님과 다짐해 놓고, 아직 까지도 실천을 하지 못하고 있다.....
-"바람직한 교사 학생의 관계"에 대한 토론 뒤 쓴 글 / 이상석 지도
[글3]
<똥>
수학 시간이 끝나려고 할 때다. 갑자기 1분단 아이들이 크게 소리쳤다.
"똥이다! 야, 저기 똥 있다."
"어디에? 어디에?"
친구들이 그 쪽으로 몰려갔다. 정민규 뒷자리 땅바닥에 갈색 설사똥이 손바닥으로 쫘악 발라 놓은 것처럼 펴발라져 있었다.
"으~ 똥 냄새!"
호영이가 얼굴을 찌푸리며 코를 잡았다. 꾸리꾸리한 냄새가 났다.
선생님께서 밀대 걸레로 스윽스윽 닦으셨다.
'교실 끝에까지도 냄새가 나는데 선생님은 코도 안 막고 어떻게 치우셨을까? 숨을 안 쉬셨을까? 똥을 싼 아이가 미안해 할까봐 선생님은 누군지 알아도 말씀을 안 하신 게 아닐까?똥을 싼 아이는 누구일까? 참 궁굼하다. 선생님이 아시면 그 아이가 안 부끄럽게 나한테만 살짝 이야기해주시면 좋겠다. 그래도 안 해주시겠지?'
똥을 치워도 수업을 하는데 가끔씩 똥냄새가 났다. 그래도 꾹 참고 공부를 했다.
'똥을 싼 아이는 아마도 배탈이 나서 그랬나 보다. 안 됐다.'
(2003. 9. 18. 목. 부산 남성초등. 1년. 이지연)
<노포동 장>
지수오빠, 우리 오빠, 나, 어머니, 고모, 윤지와 함께 범어사에 가서 놀았다. 범어사에서 놀다가 밥도 먹고 나서 할머니를 모시러 노포동 장에 갔다.
장터에 가 보니 귀여운 강아지들을 팔고 있었다. 강아지들은 추워서 서로 꼭 붙어서 옴크린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사달라고 졸라도 어머니는 안 된다고 하셨다.
옆에는 닭을 팔고 있었다. 닭들의 발목에는 끈이 묶여져 있었다. 아저씨가 닭 한 마리를 고르더니 살아있는 닭의 목을 칼로 찔렀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저씨는 끓는 물에 바로 넣고 털을 뽑았다. 너무 끔찍했다. 묶여 있던 닭들 가운데 한 마리가 갑자기 슬금슬금 슈슈슉 사람들 없는 틈으로 구멍같은 데로 도망쳤다. 아무도 못 보고 나만 봤다. 차에 안 부딪치고 멀리멀리 도망치면 좋겠다.
(2003. 12. 7. 일. 부산 남성초등. 1년. 이지연)
<용호동 시장>
우리 학교에 들어올 동생들이 추첨을 하는 날이라 3교시를 마치고 집에 왔다.
점심을 먹고 나서 버스를 타고 용호동 시장으로 갔다. 가자마자 오뎅을 먹었다.
양말 파는 가게 앞에서 재미있는 아저씨를 보았다. 재킷을 찢어서 바지로 입고 여자 스타킹을 신었다. 얼굴에 반쪽은 하얗게 칠하고 나머지 반은 시커멓게 칠했다. 어떤 할머니가
"옷이 와 그렇노?"
하고 물으시니 그 아저씨는 애교부리듯이 어깨를 씰록씰룩하며
"엄마, 추워잉~!"
하고 아기처럼 말했다. 처음 보는 할머니께 친한 척 하니 우스웠다. 그 아저씨가 나한테 풍선으로 백조를 만들어 주셨다.
양말 가게를 선전하려고 그랬는데 어른들은 한 두명 밖에 없고 아이들만 모여든다.
'선전은 잘 될까?'
걱정된다.
(2003. 12. 12. 금. 부산 남성초등. 1년. 이지연)
첫댓글 샘예, 어제 늦게서야 선생님이 남기신 음성을 들었습니다. 편찮으신데도 이렇게 챙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복 받으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