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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玄의 사유이미지와 시창작(2)
1. 현의 사유이미지에 대한 단상
1.1. 玄은 道와 名 사이에 처하는 것. 道=大/逝/遠/返/玄/幾/希/微/食母
道(무한) ∥ 名(유한) 玄 |
1.2. 심오한 것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두워져야 한다. 밝아지려는 것, 홀로 빛나려는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밝으면 밝은 것들끼리 빛의 교란이 생겨 정작 보고자 하는 섬광을 볼 수가 없다. 어두워져야 빛을 감지한다. 존재의 가장 깊은 어둠 속에 진리의 섬광이 숨겨져 있다. 冥想은 어둠에 익숙해 지는 일이다. 玄은 名과 名 사이의 경계가 점점 흐릿해지는 무경계로서, 구분과 경계가 점점 희미해지고 어둑어둑해지는 것이다. 현에 도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 놓으면 무한의 세계, 즉 衆妙之門이 열린다.
1.3. 寂然不動이 誠이고 感而遂通이 神이며 활동이 시작은 되었으나 아직 物的 形式으로 나타나지는 않은 有와 無의 未分化 상태가 幾다. 誠은 무한히 순수하며 분명하다. 神은 感應的이며 묘하게 작용한다. 그리고 幾는 미미하며 幽玄하다. 聖人은 誠/神/幾의 상태에 있는 者다. 배워서 聖人이 될 수 있는 요체가 있다면, 마음을 한 가지에 집중시키는 것이다. (주돈이,『성리대전』권2)
1.4. 시의 리듬은 말의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것으로 되돌아가 그 의미를 현재와 융합시키는 기능을 지닌다는 것이다. (오정국 편저, T.S.엘리엇 편,『현대시 창작시론』)
1.5.사람들은 산봉우리, 바다의 무시무시한 파도, 아득히 흘러가는 강물, 대양의 물거품, 그리고 천체의 궤도 등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하여 가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선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F·페트라르카의 이러한 지적과 일갈은 詩作의 이유이자 근간이 된다. 너머와 여기를 잇는 시에는〈나〉에 대한 특별한 언어와 감정이 들어 있다. 그것은 시를 통해서만이 가능한 말과 삶, 앎과 느낌의 방법이다.
1.6.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김훈,「바다의 기별」)
1.7.사실은 나는 20여년의 시작 생활을 경험하고 나서도 아직도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 되지만,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다음시를 못 쓰게 된다. 다음시를 쓰기 위해서는 여직까지의 시에 대한 思辨을 모조리 파산을 시켜야 한다. 혹은 파산을 시켰다고 생각해야 한다. …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詩作은‘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바로 시의 형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 모기 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시작하는 것이다. (「詩여, 침을 뱉어라-힘으로서의 詩의 存在」)
1.8. 신동엽,「시인정신론」
원수성原數性 세계 | 차수성次數性 세계 | 귀수성歸數性 세계 |
잔잔한 해변 | 파도가 일어 공중에 솟구치는 물방울의 세계 | 다시 물결이 숨자 제자리로 쏟아져 돌아오는 물방울의 운명 |
땅에 누워 있는 씨앗의 마음 | 무성한 가지 끝마다 열린 잎의 세계 | 열매 여물어 땅에 쏟아져 돌아오는 씨앗의 마음 |
1.9. 진정으로 새로운 것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은 어떤 사물일 수가 없고 어떤 과정일 수도 없다. 그것은 일종의 비존재(nothingness)이다. 그러므로 새로움의 가능성을 묻는 것은 이러한 비존재가 어떻게, 어떤 형식으로 나타나는가를 묻는 것과 같다. 거기에는 단 한 가지 대답이 있을 뿐이다. 근본적인 새로움은 사건(event)으로 존재한다. 사건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일어나는 어떤 것이다. 하지만 사건은 그것에 대한 원인이든, 이유이든 간에, 주어진 것 속에서, 존재하는 것 속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그러한 방식으로 일어난다.
-르노 바르바라스(Renaud Barbaras),「새로운 것은 무엇인가?」(김상환․장태순․박영선 엮음,『동서의 문화와 창조-새로움이란 무엇인가?』, 이학사, 2016.)
1.10. 조지훈,「승무僧舞」
얇은 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네라.
파르라니 깍은 머리
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아서 서러워라.
빈 臺에 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듯 날아 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개 별빛에 모도우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듯 두방울이여
세사에 시달려도 煩惱는 별빛이라
휘여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合掌이냥하고
이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三更인데
얇은 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네라.
승무는 바라춤과 달리 인간의 춤이다. 깊어가는 봄밤, 지훈의 시‘승무’를 읽고 있으면 탄사가 절로 나온다. 감탄이 가난한-순수한 마음에서 온 거라면, 미적 가치와 경험은 인간 심성의 근원이자 상실과 회의를 넘어선, 생의 경이로움에서 야기된다. 승무의 깊이와 멋은 어디에 있는가? 우선은 옷의 색감(질감)과 춤사위, 배경음에서 찾아진다. 숙고사熟庫紗로 만든 원단은 부드러운 질감이 마치 누에가 나비 되어 공중을 나는 듯하고, 흑백 대비에 붉은 띠를 두른 모습은 태극의 기를 연상시킨다. 긴 장삼을 허공에 흩뿌리는 모습과 치마 끝에서 보일 듯 말 듯한 버선코의 움직임은 승무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춤사위다. 정중동과 동중정의 그것은 경계를 초월한 자태이며, 이는 시간의 흐름과 소리가 있어 가능하다. 승무는 순수한 몰입이다. 관객에 등을 지고 머리에 고깔을 쓴 모습이나 무대와 춤이 분리되지 않은 장場이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고깔은 단군의 신교神敎와 불교가 습합된 문화로서 그 원형 이미지는 뱀의 머리, 즉 삼각형 이미지에 해당한다.“모든 씨앗이나 영혼이 뱀으로 상징되는 빛의 생명 이미지”(정형진,『천년왕국 수시아나에서 온 환웅』)라면, 비밀의 피라미드 고깔 안에는 모든 것이 감추어져 있다. 그리고 이 시가 갖는 우리말(‘나빌레라’,‘파르라니’,‘외씨보선’,‘아롱질 듯’등)의 아름다움과 그로 인한 정서의 깊이 또한 관심의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뿐 아니라, 차분하면서도 안정감이 있고 극적인 변화를 도모하는 이미지 전개는 승무의 과정과도 잘 어울린다. 꿈에도 길이 있다면 춤에도 길이 있다. 춤의 길과 삶의 결을 따라 가을밤 오동잎이 진다. 어린 여승의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달빛에 빛난다. 복사꽃 고운 빰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아름답고 슬프며, 애잔하면서도 서럽기까지 하다.
한 인간의 슬픔과 서러움, 남몰래 흐르는 눈물 방울이 별빛처럼 아름답고 고고하다. 깊은 마음의 바다 한가운데는 거친 세파에도 불구하고 번뇌라는 별빛으로, 보리심菩提心으로 너머와 여기를 가로지르는 무엇이 있다. 승무의 미학은 주름에 있다. 박사 고깔과 소매의 형태 변화(접다→접어 올리다→접어 뻗다)에서도 보듯이, 주름은 고통과 환희의 색실로 짠 아름다운 비단-옷이다. 흑백과 적청의 색조가 갖는 신비감은 물론, 휘어져 감기우며 감추고 드러나는 빛과 소리 앞에서는 그야말로‘거룩한 합장’이다. 그 어떤 슬픔도 서러움도 끈을 놓고 만다. 실솔蟋蟀이 지새우는 삼경, 먼 하늘이 다가서고 눈은 한 점 빛으로 모아진다. 점이 선으로, (춤)길로 이어진다. 맺고 푸는 점과 선에는 신체와 영혼이, 춤이 있다. 줄풍류와 대풍류가 하늘로 가는 꿈의 사닥다리라면, 한국 미학의 특징에는 이런‘신명’과‘멋’,‘신인묘합神人妙合’이 있다.‘접화接化’가 있다(최광진,『한국의 미학』). 이 경우 접화는 사람이 사람을 포함한 만물을 사랑의 감정으로 가까이하여 이치로 변화시키는 특징을 말한다. 이 시의 아름다움은 바로 그‘합장-접화(接化․接和)’에 있다. 승무의 시인 지훈은 말한다.“언어 중에 가장 선지禪旨에 통하는 살아있는 언어 형식으로서 시와 선은 (결코) 다르지 않다 詩禪一如.”
2. 작품 감상
운문 외 2편 / 김상환
배롱나무 근처
그늘에서의 일이다
한여름 오후
법고소리에 개울물이 깨어나면
꽃담에 비친 나는 비非,
아니 나비가 되어버린
나반존자의 하늘
구름은 멀고 체에 거른
바람이 건듯 분다
구름체꽃을 본지 오래
고도리 석조여래입상을 떠나온지 오래
죽은 새를 뒤로 하고 운문을 나서니
시가, 노래가 되는 것은
사이라는 현이다
왜왜
德萬 아버지는 말씀하셨지요
만 벼랑에 핀 홍매가 말없이 지고 나면 무릎을 펼 수 없어 나이테처럼 방안을 맴돌고 물음은 물가 능수버들 아래 외로 선 왜가리가 왜왜 보이지 않는지 먼산 능선이 꿈처럼 다가설 때 두엄과 꽃이 왜 발 아래 함께 놓여 있는지
達蓮 어머니에 대한 궁금은 앵두 하나 없는 밤의 우물가에 몰래 흘린 눈물 이후 단 한 번의 말도 없는 손 다시는 펼 수 없는 축생의 손가락, 산수유나무 그늘 아래 먹이를 찾는 길고양이처럼 길 잃은 나는 왜 먼동이 튼 아침마다 십이지신상을 돌고 돌며 천부경을 음송하는지 좀어리연이 왜 낮은 땅 오래된 못에서 피어나는지 어느 여름 말산의 그 길이 왜 황토빛이고 음지마인지
해맞이공원을 빠져나오다 문득, 사리함이 아름답다는 생각
나무 믹담* -부인사
겨울 산사를 찾았다
부인은 없고
부인과 함께 바라본 느티가 묻는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지?
그럴 땐 나를 봐 무를 봐,
라고 곁에 선 왕벚이 거든다
나무에 새겨진 칼날의 허
공에는 마침내의 도가 있다
한쪽 귀가 깨진 서탑
풍경과 바람과 석등의 비밀이
부인에 있다
대웅전 지붕 끝 치미가
하늘을 오르다말고
산신각 앞에 내려와 앉는다
흠도 티도 없는 절집 아침
마당과 마음을 돌고 도는 나는
포도나무 잎진 자리
떨켜를 생각한다
저잣거리로 내려가는 길
눈의 흰 그림자
생각여우 / 테드 휴즈
나는 상상한다. 이 순간 깊은 밤의 숲;
무엇인가가 살아 있다
시계의 고독 옆에
손가락이 움직이고 있는 텅 빈 페이지 옆에.
창 밖에 별이 없는 것을 봄;
어둠 깊숙한 곳에서 무엇인가가
조금씩 더 가까이
고독 속으로 들어오고 있음;
차갑게, 어둠 속의 눈발처럼 우아하게,
여우의 코가 닿는다, 잔가지에, 잎사귀에;
두 개의 눈이 한 동작에 바쳐진다, 지금
지금, 지금, 지금
나무 사이 눈 속에 아기자기한
무늬를 남기며, 그루터기 옆
움푹 들어간 곳에서 머뭇거리는
신중한 절름발이 그림자
대담하게 숲 속 빈터를 가로질러 온,
그의 육체, 녀석의 눈동자,
넓어지고 깊어지는 푸르스름함,
골똘히, 훌륭하게,
자기의 볼 일을 완수한다
마침내, 뜨거운 여우의 악취가 느닷없이
머리의 어두운 구멍 속으로 들어오고,
창에는 여전히 별이 없다; 시계가 째각인다,
백지는 채워졌다. (김승일 譯)
Thought-Fox / Ted Hughes
I imagine this midnight moment's forest;
Something else is alive
Beside the clock's loneliness
And this blank page where my fingers move.
Through the window l see no stars;
Something more near
Though deeper within darkness
ls entering the loneliness;
Cold, delicately as the dark snow,
A fox's nose touches twig, leaf;
Two eyes serve a movement, that now
And again now, and now, and now
Sets neat prints into the snow
Between trees, and warily a lame
Shadow lags by stump and in hollow
Of a body that is bold to come
Across clearings, an eye,
A widening deepening greenness,
Brilliantly, concentratedly,
Coming about its own business
Till, with a sudden sharp hot stink of fox
lt enters the dark hole of the head.
The window is starless still; the clock ticks,
The paper is printed.
검은 새를 바라보는 열세 가지 방법 / 월러스 스티븐스 (김승일 譯)
1
눈 덮인 스무 개의 산 가운데 Among twenty snowy mountains,
움직이는 단 하나의 것은 The only moving thing
검은 새의 눈동자뿐. Was the eye of the blackbird.
2
난 세 가지 마음을 품었지. I was of three minds,
나무에 있는 Like a tree
세 마리 검은 새처럼. In which there are three blackbirds
3.
검은 새가 가을바람 속을 빙빙 돌았다. The blakbird shirled in the autumn winds.
그건 팬터마임극의 일부분이었다. It was a small part of pantomine.
4.
남자와 여자는 A man and a woman
하나다. Are one.
남자와 여자와 검은 새는 A man and a woman and a blckbird
하나다. are one.
5.
어느 것을 더 좋아해야 할지 모르겠어. I do not know which to prefer,
억양의 아름다움인지 The beauty of inflections
암시의 아름다움인지 Or the beauty of innuendoes,
검은 새가 휘파람을 불고 있거나 The blackbird whistling.
지금 막 불었다. Or just after
6.
고드름이 긴 창문을 I cicles filled the long window
거친 유리로 가득 채웠다. With barbaric glass.
검은 새의 그림자가 The shadow of the blackbird
창문을 가로지르고, 왔다갔다 했다. Crossed it, to and fro.
기분은 The mood
그림자 속에서 traced in the shadow
해석되지 않는 이유를 따라갔다. An indecipherable cause
7.
오 해덤의 가냘픈 자들아, O thin men of Haddam,
어찌하여 황금 새를 상상하고 있느냐. Why do you imagine golden birds?
여인들의 발치를 Do you not see how the blackbird
걸어다니는 Walks around the feet
이 검은 새가 보이지 않느냐? Of the women about you?
8.
나는 고상한 억양을 안다. I know noble accents
명쾌하고, 피할 수 없는 리듬을; And lucid, inseparable rhythms;
그러나 나는 이 또한 알고 있다, But I know, too
내가 아는 것들 가운데 The blackbirds in involved
검은 새가 속해 있음을. In What I know.
9.
검은 새가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When the blackbird flew out of sight,
그것은 수많은 원들 중 하나의 It marked the edge
가장자리가 되었다. Of one of many circles.
10.
푸른 빛을 받으며 날아가는 At the sight of blackbirds
검은 새의 모습 Flying in a green light,
목소리 좋은 뚜쟁이들조차도 Even the bawds of euphony
치찰음 섞인 함성을 지를 것이다. Would cry out sharply.
11.
그는 유리 마차를 타고 He rode over Conneticut
코네티컷을 지나고 있었다. In a glass coach.
한번은, 공포가 그에게 스며들었다, Once, a fear pierced him
그건 그에게 착각이었다. In that he mistook
마차에 실린 장신구의 그림자를 The shadow of his equipage
검은 새로 본 것이었다 For blackbirds
12.
강물이 움직이고 있다. The riveris moving.
틀림없이 검은 새가 날고 있다. The blackbird must be flying.
13.
오후 중 저녁때였다. It was evening all afternoon
눈이 내리고 있었고 It was snowing
계속 내릴 예정이었다. And it was going to snow. 검은 새는 The blackbird sat
삼나무 가지에 앉아 있었다. In the cedar-limbs.
아남 카라 / 존 오다너휴
나는 바다에 숨결을 내뿜는 바람,
나는 대양의 파도,
나는 파도의 속삭임,
나는 일곱 전투의 황소,
나는 바위 위의 독수리,
나는 해의 빛살,
나는 가장 아름다운 풀,
나는 용맹한 멧돼지,
나는 물 안의 연어,
나는 들판의 호수,
나는 지식의 세상,
나는 전투용 창의 끝,
나는 머릿속에서 불을 만들어낸 신이다.
*아남 카라anam cara: 영혼의 벗.
**존 오다너휴 John O’Donohue: 아일랜드의 싱어송라이터.
衆人昏睡我獨坐 (중인혼수아독좌) 모두 깊이 잠든 밤 나 홀로 깨어
細看乾坤靜裏春 (세간건곤정이춘) 천지를 살펴보니 고요한 가운데 어느덧 봄
儻使一時俱閉目 (당사일시구폐목) 만약 한 순간에 모두가 눈을 감는다면
知更數鼓是何人 (지경수고시하인) 시간을 알고 북 쳐줄 이 누가 있겠는가?
-劉因 (1249-1293. 남송 유학자/도학자/시인)
看花 / 錦石 朴準源 (1739~1807)
世人看花色 (세인간화색) 사람들은 꽃의 자태와 빛깔을 보지만
我獨看花氣 (아독간화기) 나는 홀로 꽃향기와 그 기운을 느낀다
此氣滿天地 (차기만천지) 이 꽃의 기운이 천지에 가득하니
吾亦一花卉 (오역일화훼) 나 또한 한 떨기 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