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내 퍼붓던 빗줄기가 잦아듭니다
가게 손님도 하나 둘 가시고 모처럼의 시간에 시원함이 그리워집니다
술 한병 허리춤에 차고 육포쪼가리 하나 호주머니에 잡아넣코는
지척의 삼청공원으로 발길을 내딛습니다
한껏 물방울을 지고 앉은 나뭇잎은 바람결마다 물방울을 털어내며 생명력을 자랑하고
습윤한 공기는 시름에 닳은 폐부를 시원함으로 채워줍니다
인적이 없어선가 새벽의 숲은 전등하나 없이 어둠속에서도 움직이는듯 합니다
두려움이 문득 다가옵니다 여자라도 동행했슴 꼭 안아주어야 할것같은 적막감^^
다산선생도 심야탁족을 즐겼다는데
문명속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게 살아가나 생각해봅니다
어느덧 당도한 남탕.. 삼청공원에는 수년전부터 남정네들만 모여 계곡물에 목욕할수 있는 그런곳이 있습니다
이른바 "남탕" 주변에 보이지 않게 가림막을 설치해 놓은 곳인데 복중엔 어르신들이 애용하시는 곳이지요
하지만 나에겐 나만의 명당이 따로 있습니다 골파인 너럭 바위위로 계류가 넘실데 그래서 술상보기도 좋고
오늘따라 저녁내, 내린비로 물소리 시원합니다 신발 벗어던지고 발을 담가봅니다.
이 청량감!! 몇잔 먹었던 술기운이 싹 달아나며 머리가 탁 깨입니다
이내 바지를 벗어 던지곤 아랫도리마저 담구니 쩌릿쩌릿 합니다
단전부근을 간질대며 넘나드는 물살은 너무 짖궂습니다 엉덩이와 불알은 바위가 풍화되어 흘러앉은
굵은석별(마사토)에 박혀서 까칠하지만 기분은 신선입니다
서늘한 한기에 술한병 벌컥 들이키곤 시원히 오줌한번 누고 물기묻은 알몸에 바지만 덜렁 입습니다
젖은몸에 청바지 입기가 보통 어려운건 아니데요...
신발 손에 들고 맨발로 내려옵니다 발이 찌릿합니다.
선사엔 모두 맨발이었을 터인데.........
조선 시대의 세시 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유월조에,
“삼청동 남북 계곡에서 발 씻기 놀이를 한다.” (三淸洞……. 南北溪澗 爲濯足之遊)
는 기록이 있습니다. 《동국세시기》가 당시의 풍속을 기록하고 있는 문헌이라는 점에
비추어 보아 탁족놀이가 일부 특수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 널리 유행했던
여름 풍속 가운데 하나였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일반 서민들에게 있어서 탁족놀이는 단순한 피서의 한 방법에 지나지 않았지만,
선비들에게 있어서는 피서의 차원을 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실제로 즐겼던 피서 방법에는 ‘탁족’ 외에도 ‘물맞이’나 ‘목물하기’등
여러 가지가 있었겠으나,
선비들이 특별히 ‘탁족지유’에 부여하고 있는 의미는 중국 고전인 《초사 楚辭》의 내용과 관련이 깊다합니다.
초사- 어부편을 보면 어부와 굴원(屈原) 사이의 문답을 서술한 마지막 부분에,
“어부가 빙그레 웃으며, 노를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을 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을 것이라고 하면서
사라지니 다시 더불어 말을 하지 못했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이 부분을 특별히 〈어부가 漁父歌〉, 또는 〈창랑가 滄浪歌〉라 이름 지어 불렀는데,
이 노래에 나오는 ‘탁족’과 ‘탁영(濯纓)’이라는 말을 특별한 의미로 새겼습니다.
<창랑가〉가 담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 맹자는,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는다고 하니,
이것은 물 스스로가 그런 사태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淸斯濯纓 濁斯濯足矣 自取之也) 라고 해석을 하였습니다.
행복이나 불행은 남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처신방법과 수양 여부에 달려 있다는 뜻으로 풀이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탁족은 언제든지 강호(江湖)로 돌아가서 살수 있는 선비의 이상향이자
선비 자신의 내면인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옛 어른들은 더위를 이겨내면서도
우주와 세상의 진리, 자신의 내면에 대한 통찰, 지식인의 참다운 책무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지금 현재 창랑의 물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지금 나아가야 할 때 입니까?
아니면 자신의 이상향을 갈고 닦아야 할 때 입니까?
이경윤의 <고사탁족도>
이경윤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은 아주 험악한 시대를 살아왔던 인물입니다.
전쟁으로 무수한 생명을 죽어 가는걸 보았고 실제로 먹을 게 없어
부부간에 부모와 자식간에 죽은 시체를 서로 뜯어 먹는 광경이
심심치 않게 이야기되는 사회는 분명 당시 성리학적 가치를 추구했던 선비에게,
더욱이 자연과 벗 삼기를 좋아했던 이경윤에게는 충격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확실히 깨달았던
이경윤은 세상사는 데는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 즉 이 풍진 세상에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선비가 흐르는 물가에 앉아 있습니다.
얼마나 더운지 웃옷을 풀어 가슴이 휜 하게 드러내놓고 있고 무릎 위까지
바지를 올린 다리는 꼬아 물에 담그고 있습니다. 약간씩 움직이는 다리 때문에
물은 물결이 치고 머리위로는 나뭇가지가 뻗어서 그늘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전란을 힘겹게 이겨낸 어린 동자는 술병을 들고 있고 선비는 그 어린동자를 대견하다는 듯,
한편으로 안됐다는 듯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습니다.
<고사탁족도> 풍진세상에 대한 절망, 자신의 그리운 고향에 대한 동경..
자신의 이상향을 향한 선비의 고귀한 정신
[탁족]은 제게 오늘날 아무리 더워도 마음은 서늘하게 만드는 그 무엇을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댓글 duende님의 글을 읽으면서 마치 산행 후 탁족의 서늘함처럼 가슴에 청량한 기운이 일렁입니다.글이 맑고 소리없이 흐르는냥 잔잔하면서 깊이가 있군요.아침에 좋은글을 대하니 오늘도 분명 행복할 것이라는 최면을 자신에게 걸면서 두엔데님께서도 즐거운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아침에 좋은글을 읽고 갑니다. 두엔데님 글재주도 참 좋으시고 박시하십니다. 부럽네요...
행복이나 불행은 남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처신방법과 수양 여부에 달려 있다.. 아침에 좋은 글 만나 참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
세라피나님 저도 그 대목에 백만하고, 스믈하고, 두표인디...ㅎㅎ
네..박식 다식하시네요..청춘의 시절 연인들에 최고에 데이트 코스로 꼽협던 삼청공원에 이런깊은 속뜻이 있었는지 몰랏네요..감사합니다. 삼청공원을 사랑하고 가끔애용하는 독자가 ......^^
ㅋ 근처에 사시는군요? 삼청동길 같이 걸으면 연애가 이루어지고 덕수궁 돌담길은 이별 하게된다는 전설아닌 전설이 있죠
탁족의 청량함이 ~~~ 그리 좋은가봐요... 앞으론 맑은공기 산새를 접하면 꼭 해봐야겠어요~~ 특히 남자분들이 앉아계시던데... 바로 탁족의 맛을 음미하고 계셨던가~~~님의글로 시원함을 가질수 있어 좋습니다^^
탁족을 하시며 스스로 깨치느것을 추구하시니 님은이미 도인^^
도인이라뇨? 당치않은 말씀입니다.. 아직도 생로병사의 번뇌에서 헤메며 연명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술이 있어 위안을 삼아보는거죠 만약에 혹이라도 내가 깨우침을 얻는다면 아마도 주선일겝니다.
듀엔데님께 이런 모습도.....?! ^^ 왠~지.....특이하고 신비로움이 느껴짐다...... 헤헤~
타인의 기쁨에 제 기쁨 더 실어, 동조가 되는 마음속의 쾌재를 부르는 그런 오후입니다...듀엔데이님 글 잘 읽어보았슴니다요...^L^
와우~~ 정말 멋진 풍류 한 편을 보았습니다. 심히 부럽습니다...^^
삼청 공원!! 거기.. 남자들의 발가숭이 놀이터... 고등학교 때, 거기서 꼬바리 담배 물고 있고 전전하던 곳이었는데.. 삼청공원과 탁족과 창랑정과 삶의 여유라... 진정 풍류객이십니다..
좀 죄송스런 애긴데요 복길님 중삐리 남녀아그들 붙잡아 놓고 교육시켰습니다 ㅎㅎㅎ 계곡 콘크리트관 너머 아지트에서 ..
그럼 그 때... 턱주가리 날리던, 그 까마귀 교복의 형님이... 탐진강님????... 몰라뵀습니다..
담번엔 저도 같이 발당구고 마시죠. ^^;; (에구 요즘 잠이 부족해요~ ㅠㅠ;)
세상사 살면서 발바닥이 하루 이상 제 할일을 못하고 허공을 헤맨다면 살아도 산것이 아니듯, 가끔 신통방통한 발바닥 어루만져 주며 살아 가는 재미도 신통하거늘, 탁족의 여유를긴다면야 이보다 더 좋은 자기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루 일 산을 타다 땀에 젖은 발을 물에 담그는 시원함은 그 어디에 비하리요
"흩날리는 비님이 산새를 맑게 씻어주니 풍광 앞에 넋 나간 이 내 몸과 맘...아! 천지가 내것이로다..." 두엔데님..지두 오늘 산에 가 탁족함서 자작시 한 수 읊조리고 왔슴다...어울리지않게스리~ ㅎㅎㅎ멋진글 자알~ 보고 감다... ^^
글두 잘 쓰네~^^
너무 여유롭게 보이네요. 글을 읽으면서 잠시 쉬어갑니다.
박식하시고 글재주 좋으시고...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