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석레인저가떴다]'바위 스카이웨이' 비봉능선…발 후덜덜, 눈 아찔뷰 '스릴'
<12> 북한산②이름 이쁜 족두리봉·향로봉, '뷰봉' 관봉서 서울 한눈에
추사처럼 낑낑 오른 비봉…'작은 문수봉'서 돌아보면 "아~ 삼각산아"
뉴스1코리아 기사 송고일 : 2022-04-01 | 기사 최종수정일 : 2022-04-15
(서울=뉴스1) 신용석 기자
정규 등산로만 100개에 달하고, 샛길은 셀 수도 없이 거미줄처럼 나 있는 북한산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길은 어디일까? 도봉계곡과 북한산성계곡을 통과하는 등산로다. 휴일 오전에 이런 곳은 파도가 들어가듯 사람의 물결로 길이 넘쳐난다.
그렇다면 북한산의 참모습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등산로는 어디일까? 이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답이 다를 것이다. 나는 비봉능선이라고 답한다. 북한산을 가장 넓게 바라보며, 북한산의 브랜드인 암봉들을 가장 잘 조망하고 통과하면서, 산과 도시를 함께 내려다보고, 스릴을 만끽하는 포인트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산행은 비봉능선이다.
비봉능선은 북한산의 남쪽 끝자락에서 북쪽 끝자락을 바라보며, 전체능선의 중간까지 걷는 바윗길이다. 시야가 탁 터져 사방팔방으로 북한산 전체, 한강, 서울, 고양, 멀리 인천과 강화까지 둘러보며 걷는 스카이웨이다. 서울시내는 마치 빌딩의 옥상에서 내려다보듯 가깝다. 비석이 있어 비봉(碑峰)능선이라 부르지만, 하얀 바위봉우리들이 날아다니듯 이어져 있는 비봉(飛峰)능선이라고 부르고 싶다.
◇ 불광역~족두리봉~비봉 4㎞…암릉까지 헉헉, 족두리봉·향로봉서 탁 트인 조망
불광역 9번 출구로 나오면 아파트 빌딩 위로 멀리 족두리봉이 보인다. 보도의 신호등 2개를 넘어 대호아파트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아스팔트 언덕길을 200m쯤 올라, 삼환그린파크에서 왼쪽으로 들어서면 계단 끝에 산이 보인다. 조금 올라가면 둘레길과 등산로가 교차되는 지점이다. 불광역에서 700m, 족두리봉까지 800m 지점이다.
등산로는 처음부터 경사진 바윗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녔는지 반들반들한 암릉 오르막을 조심조심 걷다가 경사가 급한 곳에서는 엎드려 네 발로 올라간다. 이렇게 긴 암릉에서는 쭉 빼지 말고 중간중간 전망이 터지는 장소에서 뒤돌아보며 호흡을 가다듬는 게 요령이다. 족두리봉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마지막 오르막도 매우 미끄러워 바위에 빨간 화살표로 길을 안내하고 있다. 그 길도 반지르르하다.
먼 데서 보면, 큰 바위 가운데에 조그만 바위가 얹혀 있어 족두리봉(370m)이라 부른다. 도시를 벗어난지 얼마 안 되어 도시를 내려다보고, 앞으로 가야할 하얀 봉우리들과 녹색 숲을 조망하니 흡족한 심리상태가 된다. 한 차례 땀 흘려 워밍업을 마친 몸도 부드러워졌다. 등산효과가 시작되는 것이다.
족두리봉은 '돌 지형'의 전시장이다. 암반이 둥글게 파이거나, 발자국 무늬가 있거나, 도랑이 나거나, 종이를 마구 구겨 뭉친 듯한 큰 돌덩어리가 얹혀 있다. 이런 문화재급 지형들은 눈으로만 보고 발길은 닿지 않도록 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급경사 암반의 얇은 마사토에 간신히 붙어 있는 앙상한 나무들도 애처롭고, 족두리봉의 단아한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통신중계탑도 마음에 걸린다.
족두리봉에서 향로봉까지 1.8㎞는 짧고 급한 내리막과 긴 오르막이 이어진다. 탕춘대 갈림길부터 거친 바위와 돌부리 투성이인 깔딱고개를 올라서면 안전사고를 대비하는 국립공원 초소가 있다. 여기서 한숨 돌리고, 향로봉 뿌리를 한참 돌아서 마지막 깔딱고개를 올라서면 드디어 비봉능선의 산마루다. 지척에 있는 향로봉(535m)에 올라서니 북한산의 전체 경관이 한꺼번에 쫘악 펼쳐진다. 바위봉우리의 백화점인 듯 앞줄부터 응봉능선, 의상봉능선, 원효봉능선, 백운대 일대 암봉들의 하얀 봉우리들이 산너울을 이루고 있고, 가까이 관봉-비봉-사모바위-승가봉-문수봉이 또렷하게 도열해 있다. 서울시내, 고양시 등 안보이는 경관이 없다.
향로봉을 내려서서 조금 가면, 등산로 옆에 살짝 비켜나 있는 관봉에 닿는다. 봉우리라기보다는 약간 지대가 높은 마당바위다. 생김새를 따라 관봉(冠峰)이라 하지만, 요즘 단어로 '뷰(view)봉'이라는 애칭을 붙여도 될 정도로 전망이 '끝내주는' 곳이다. 향로봉에서 보았던 북한산 전체 경관이 더욱 또렸하게 한눈에 펼쳐진다. 화려하고 장엄하다. 파라솔처럼 가지를 넓게 펼친 소나무 그늘 밑에 앉아 느긋하게 북한산 최고의 뷰를 즐겨본다.
비봉(560m)이 가까워지면 늘 "그냥 지나갈까? 올라갈까?"의 망설임이 있다. 전망이 깨끗하고 사람이 붐비지 않을 때, 특히 미끄럽지 않을 때 올라간다. 중간의 코뿔소 바위까지는 사뿐하게 올라가지만, 그 위의 정상 비석을 오르내릴 적에는 쩔쩔매는 사람이 많다. 이곳에 올랐던 추사 김정희가 미끄럽고 위험하다 하여 '위봉(危峯)'이라 묘사하기도 했다. '용을 쓰며' 정상에 올라 비석 옆에 서면, 과연 진흥왕이 점령한 한강유역이 훤하게 보인다. 그 위에 건설된 세계적인 대도시도 진흥왕의 업적으로 보인다.
국보 3호인 진흥왕순수비(巡狩碑)는 신라가 한강 유역을 점령했으니 고구려와 백제는 '넘보지 말라!'는 표시다. 이 비석에 대해 나에게는 3개의 의문이 있다. 첫째, 바위에 착 붙는 등산화를 신고도 힘들게 오른 이 바위봉우리를 1500년 전의 사람들은 그 무거운 비석을 지고 어떻게 올라왔을까? 둘째, 세운 지 1260년이 지나 글자 대부분이 마모된 산꼭대기 비석을, 어떤 계기로 '글씨 전문가' 김정희가 올라와 진흥왕순수비라고 판독했을까? 셋째,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이 비석의 진품에 26발의 총탄 자국이 있다는데, 이 바위꼭대기에서 이 귀한 비석을 방어물로 총격전을 벌였단 말인가?
◇ 비봉~문수봉~대남문 2.2㎞…쇠난간 붙잡고 오른 문수봉에 '조각품' 가득, 건너편엔 우람한 보현봉
비봉을 조심조심 내려와, 10분쯤 걸어 사모바위에 이른다. 사모바위는 조선시대에 높은 공무원들이 쓰던 모자(紗帽)와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내게는 모자가 아니라, 갸름한 얼굴로 보인다. 누군가를 간절하게 그리워하는 사모(思慕)바위로 보인다. 비봉능선의 랜드마크이면서 응봉능선의 갈림길인 사모바위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머문다. 널따란 공지가 있어 단체산행 나온 사람들의 점심장소로 애용된다.
문수봉으로 가는 암릉길을 걷다가 봉우리라고 인식하기 어려운 '바위 끝' 승가봉(567m)에 닿는다. 북한산의 공룡능선으로 불리는 울퉁불퉁한 의상봉 능선이 코앞에 있고, 문수봉이 어서오라는 듯 가깝게 조망된다. 조금 더 가서, 두 개의 바위틈 위에 하늘에서 떨어진듯한 낙석이 틀어박힌 통천문을 통과하면 곧 문수봉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 왼쪽으로 쉬운 길, 오른쪽으로 어려운 길이라는 '친절한' 표지가 있다. 거리는 똑같은 400m다.
왼쪽의 쉬운 길은 처음 100m 정도만 평탄할 뿐, 나머지 길은 기나긴 너덜 오르막이다. 청수동암문까지 결코 쉽지 않은 경사라 중간중간 쉬는 사람이 많다. 오른쪽의 어려운 길은 문수봉 입구까지 계속 쇠난간을 붙잡고 올라서야 하는 가파른 바위 날등이다. 낑낑 헉헉, 올라서는 사람은 마지막 힘을 다 짜내는 표정이고, 내려서는 사람은 조마조마해서 근심걱정이 가득한 얼굴이다. 그러나 발걸음마다 두근두근한 스릴을 느끼고, 중간 중간에 아래 세상의 '아찔한' 전망을 즐기는 묘미가 있다. 눈이나 비로 미끄러운 날은 쉬운 길을 택하는 게 좋다. 사고가 나면 크게 나는 급경사 암릉이다.
비봉능선의 정상인 문수봉(727m)은 위험해서 출입금지이고, 그 밑의 '작은 문수봉'에 정상표지가 있다. 햇볕에 쪼인 바위가 따듯해서 앉아있는 사람이 많고, 누워있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 지나온 암릉을 내려다보니, 낑낑댔던 절벽길은 보이지 않고, 하얀 암반과 푸른 소나무와 기기묘묘한 바위조각품들이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내고 있다. 그림의 배경으로, 오늘 지나온 비봉능선의 여러 봉우리들이 녹색 바탕에 하얀 점들을 찍고 있다. 고개를 돌려 북쪽을 보면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노적봉이 성큼 다가와 우뚝하다. 삼각산답게 모두 다이내믹한 삼각형 모습이다.
사찰의 대웅전에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석가모니를 호위하고 있듯이, 문수봉 건너편에 보현봉(715m)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문수봉보다 12m 낮으나, 위치적으로 더 높은 것처럼 보이고, 두껍고 각이 진 생김새에서 강인한 인상을 풍긴다. 서울 중심가에서 북한산을 볼 때 가장 많이 보이고, 가장 높게 보이며, 가장 우람하게 보이는 봉우리가 보현봉이다. 보현봉이 서울을 내려다보는 모습은, 마치 광화문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순신장군과도 같은 위용이 있다.
현재 보현봉 일원은 특별보호구역으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높은 암봉의 독특한 생태계를 보호하고, 무분별한 기도행위로 훼손된 자연을 복원하기 위해서다. 과거에 괴성을 지르며 기도하던 사람들과 새벽까지 대치했던 기억이 있다. 그들이 바위마다 종교표시를 하고, 바위틈을 막아 은신처를 만들며 촛불기도를 해서 산불위험으로 늘 조마조마했다. 얼마 전 레인저들과 함께 보현봉 일대를 점검한 결과 여전히 불법출입 흔적이 많았고, 따라서 자연복원은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었다. 대부분의 탐방객들이 규칙을 잘 지키고 있는 가운데, 이날 적발된 사람들마다 변명은 다 같았다. "몰랐어요, 그냥 왔어요. 주민등록번호요? 그것도 몰라요."
◇ 대남문~대성문~일선사~정릉 3.3㎞…1급수 정릉계곡에서 산행 마무리
비봉능선은 대남문에서 끝나고, 이후부터는 산성주능선이라는 이름으로 성곽을 따라 백운대까지 이어진다. 문수봉을 목표로 왔던 사람들은 대부분 대남문에서 북한산성계곡이나 구기동으로 하산한다. 체력이 되고 경험있는 사람들은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의상봉능선으로 내려가기도 한다. 나는 성곽을 따라 300m쯤에 있는 대성문에서 정릉으로 내려가는 코스를 택한다.
대성문을 내려오면 곧 일선사에 닿는데, 절 초입에 "보현봉 등산길은 없으니 제발 발길을 돌려달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으르렁대는 누렁개까지 있으니 절을 통한 보현봉 출입은 아예 접는게 좋다. 여기서 30분쯤 내려서면 영취사다. 무너진 탑을 주섬주섬 쌓은 듯이 보이는 자그마한 5층 석탑에 어떤 간절함이 배어있어 애착이 간다.
정릉계곡이 가까워지며 물소리가 '졸졸졸'에서 '잘잘잘'로 커진다. 맑은 물에 담긴 깨끗한 모래와 자갈을 보면서 과거의 '흉칙했던' 계곡 모습이 떠올랐다. 계곡을 막은 수영장에서 '소독약을 탄 물'을 그대로 흘려보냈고, 10여개의 영업집에서 배출한 오수로 계곡이 완전히 오염된 상태였다. '국립공원 계곡'에서 물고기 한 마리 살 수 없었다. 그때 '전쟁'을 치렀던 선배·동료 레인저들의 헌신으로 지금은 맑은 물에서 버들치가 놀고 청둥오리가 찾아오는 1급수 계곡으로 돌아왔다. 이 맑은 물이 정릉천으로 내려가면서 주택가와 시장에도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북한산을 국립공원답게, 본래의 북한산으로 되돌리려면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많다. 그 일들의 대부분은 사람의 양보를 필요로 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것처럼, 사람들이 가장 아끼고 사랑한 산으로도 기록되기를 바란다.
북한산 비봉능선 개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