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난한 사랑 노래>(1988)-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서정적, 묘사적, 현실적, 감각적, 애상적
◆ 표현 : 1연 18행의 병렬식 구성
설의법에 의한 동일 구문의 반복
이야기 형식으로 내용을 나열함.
애틋하게 호소하는 듯한 어조
◆ 중요 시어 및 시구 풀이
*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 작품 전체를 통해 동일한 통사 구문이 반복되며, 설의법을 통해 화자인
가난한 이웃의 한 젊은이의 정서가 한층 강조되어 나타남.
*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 희다 못해 시릴 정도로 새파란 달빛이 비치는 도시 골목길의 풍경을 시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외로움의 이미지를 강화함.
* 두 점 치는 소리 → 새벽 두 시를 알리는 소리
*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 불안과 초조감, 쫓기는 심정을 자극하는 소리
* 메밀묵 사려 소리 → 가난하고 소박한 삶의 공간을 환기시키는 쓸쓸한 소리
* 육중한 기계 굴러 가는 소리
→ 도시의 비정한 기계 문명을 상징하며, 도시 공장 노동자인 화자와 같은
사람에게는 위협과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동시에 화자의 삶이
참으로 고단할 것이라는 것도 느끼게 해 주는 소리
* 뇌어 보지만 → 되풀이 하여 보지만
* 새빨간 감 → 그리움의 대상이면서, 따뜻한 인정을 느끼게 해주는 소재
*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 서로 사랑하지만 가난 때문에 서로의 길을 가기 위해 이별해야 하는
가난한 이들의 서러움을 청각적으로 형상화함.
*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가난 때문에 감당해야 할 서러움을 요약적으로 제시해 줌.
가난 때문에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에 젖어 있는 것조차 이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을 뿐 아니라, 한낱 감정의 사치로만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임.
◆ 제재 : 가난(한 삶)
◆ 주제 : 따뜻한 인간애, 인간적 진실성과 아름다움
[시상의 흐름(짜임)]
◆ 1 ~ 3행 : 가난한 이의 외로움(헤어짐)
◆ 4 ~ 7행 : 가난한 이의 두려움(현실)
◆ 8 ~ 11행 : 가난한 이의 그리움(향수)
◆ 12 ~ 15행 : 가난한 이의 사랑과 이별
◆ 16 ~ 18행 : 가난한 이가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안타까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작품으로,
한 가난한 젊은 도시 근로자의 삶을 소재로 인간적인 진실의 따뜻함,
즉 휴머니즘을 노래한 시이다. 물질적으로는 가난한 자들이지만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움과 사랑을 가진 한 인간임을 시인은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가난 때문에 이러한 인간적 감정마저도 외면하고 살아야 하는 한
젊은이의 고통스런 삶을 통해서, 가난하고 소외된 삶에 대한 시인의 깊은
연대의식과 유대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인간은 물리적으로 가난을 겪을 때 '외로움, 두려움, 그리움, 사랑' 등의
정신적 감정이 심화되거나 제한받게 되어 있다. 이 작품은 이러한 이유로
마음 한 구석이 움츠러들고 쓸쓸해 할 이 땅의 젊은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쓴 것이다. 이 시 끝연에서 '가난하기 때문에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인내의 소산일 뿐이며, 인간적 진실성과 아름다움은 오히려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는 강한 역설이 숨어 있다.
집 뒤에 감나무가 있는 농촌 출신인 그는 물질적으로 가난하기 때문에
고향을 떠나 노동자로 생활하지만 생활에 쫓겨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움과
사랑 등을 느낄 여유조차 없다. 그러나 그는 가난하지만 외로움도 두려움도
그리움도 사랑도 다 알며, 또 가난하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않으려는 믿음과 진실됨이 있기 때문에,
그는 자포자기하거나 현실을 비정하게 생각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기에 비극적인
현실이 가난한 사랑 노래로까지 승화되는 것이다.
이 시는 결국 인간적 진실성과 아름다움은 가난에 의해서 결코 변할 수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가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려는 인간적
진실의 따뜻함과 아름다움이 설득력 있게 표현되어 있지만 '가난'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소극적인 것처럼 보인다.
[작가소개]
신경림 : 대학교수, 시인
출생 : 1936. 충청북도 충주
소속 : 동국대학교(석좌교수)
데뷔 : 1956년 문학예술 등단
수상 : 2009년 제19회 호암상 예술상, 2007년 제4회 시카다상
경력 : 2004~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2001 화해와전진포럼 상임운영위원
작품 : 도서, 기타
1936년 4월 6일 충북 충주 출생. 동국대 영문과를 졸업했고, 1955년 『문학예술』에
「갈대」, 「묘비」 등이 추천되어 등단했다.
이후 계속 침묵하다 1965년에 다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73년 첫 시집『농무』를
간행했고, 평론집 『한국 현대시의 이해』 등을 간행했다. 1974년 시집 『농무』로
만해문학상을 수상했고, 1981년 한국문학작가상, 1990년 이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농무』(1973), 『새재』(1979), 『달 넘세』(1985), 『민요기행 1』(1985),
『남한강』(1987), 『가난한 사랑노래』(1988), 『민요기행 2』(1989), 『길』(1990),
『갈대』(1996),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1999) 등이 있고, 평론집에
『한국 현대시의 이해』(1981), 『삶의 진실과 시적 진실』(1983),
『우리 시의 이해』(1986) 등이 있다.
신경림의 등단 작품인 「갈대」, 「묘비」 등은 대상을 농민으로 한정하지 않고
인간 삶의 보편적인 쓸쓸함과 고적함을 주된 분위기로 하고 있다. 첫 시집인
『농무』 이후 신경림의 시는 농민의 삶의 현장을 그린 시로 일관되어 있지만,
등단 초기의 서정성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의 시는 농민의 고달픔을
다루면서도 항상 따뜻하고 잔잔한 감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감동을 준다.
그의 시는 여타의 노동시에 비해 강력한 울분이나 격렬한 항의, 개혁의 의지 등은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이러한 특징은 신경림 시의 장점이자 한계로 지적되기도
하지만, 중간층의 독자를 확보하는 가장 큰 요인이기도 하다.
『새재』 이후에 쓰여진 『민요기행』, 『남한강』, 『길』 등의 시집은 우리 것에 대한
시인의 애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우리 민요와 지리 등을 소재로 하고 있다.
특히 장시집인 『남한강』은 농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우리 역사를 바라보고자 한
시도로서, 서사적인 스케일을 보여주는 방대한 작품이다. 시집으로 『농무』(1973),
『새재』(1979), 『새벽을 기다리며』(1985), 『달넘세』(1986), 『씻김굿』(1987),
『우리들의 북』(1988), 『가난한 사랑노래』(1988), 『남한강』(1989),
『쓰러진 자의 꿈』(1993), 『우리들의 복』(1989), 『저 푸른 자유의 하늘』(1989),
『갈대』(1996),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1998), 『목계장터』(1999),
『뿔』(2002), 『낙타』(2008)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경림 [申庚林]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