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의 날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마태 6,33
우리의 풍습에는 위 아랫 사람들 모두 서로 인사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윗 사람에게 인사하는 것 뿐 아니라 부모와 조상에게 예절. 제사도 지냅니다. 누가 집을 방문하거나 떠나면 가족과 함께 맞아주고, 모두 가족이 배웅합니다. 누구의 집을 방문해도 빈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도움이 되는 것을 들고 갑니다. 누군가가 우리집을 방문하고 떠날 때는 조금의 종이돈을 쥐어주어 여비라도 하라고 하였습니다. 종종 주고 받는 것이 과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우리의 미풍양속입니다.
우리 민족의 풍습은 나눔이 있고 보탬이 있습니다. 꼭 많이 주어서가 아니라 서로 만남과 관계를, 더불어 공동의 삶을 함께 살고 있습니다.
예전에 부억에서 설겆이를 마치고 마당, 텃밭에 물을 주거가 뿌릴 때 어머니는, '워이~~" 하고 소리를 냈습니다. 텃밭의 생물들이나 새들이 물 뿌림에서 피하도록, 어머니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지금은 플라스틱 행주를 쓰고, 종이, 좋은 면 행주를 사용하지만, 얼마전 까지만해도, 윗 내의를 잘 삶아서 행주를 만들어 쓰기도 했습니다. 양말도 구멍이 나면 그대로 버리기 보다는 양말을 기워서 사용하였습니다. 단지 절약의 의미만이 아니라, 자연과 생명을 보호하고, 덜 사용하면서 하느님의 창조 생명을 보호하고자 하는 보탬과 더함이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의 생활 쓰레기는 엄청납니다. 차량, 가전 제품, 생활 용품, 음식 가게의 일용품, 과도한 포장재, 갖가지 수많은 용품들을 쓰레기로 버립니다. 더구나 세제나 물의 사용은 얼마나 극심한지 알 수 있습니다. 생활용 물이 내려갈 때, 얼마나 하천을 공해물로 만드는지 모릅니다. 하천을 정화하는 시설을 하고 있지만, 더 자연과 창조와 삶의 보탬과 더함의 노력과 수고가 필요합니다. 알프스나 높은 산의 빙하가 사라지고, 남북극의 빙하가 녹아서 해수면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낮은 지역과 섬나라들이 물에 잠기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을 찾으라. 고 하였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나의 보탬과 더함으로, 곧 나의 사랑과 자비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진리와 정의의 바탕으로한 애덕에 의하여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이, 가정이나 사회, 교회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꺼번에 성장하지 않습니다. 그의 삶과 여정이 다르고, 조건과 환경이 달랐습니다. 그 삶의 가치가 다릅니다. 그가 나의 마음과 뜻에 합일되기를 바라지만, 바로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의 일, 복음일 조차도 바로 합일의 마음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 나라는 선의로 끊임없이 이어가고 나서는 길입니다.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은 점진적으로 함께 주고 받으며, 함께 연대에서 선을 이루는 일입니다. 그 선의의 나눔과 베품으로 이루어집니다. 끝까지 나의 보탬과 나눔과 더함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도 아픈이, 불편한이, 어둠에 묶인 이에게 다가가셨고 그드를 고쳐 주었습니다.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나그네 되고 병들고 감옥에 갇힌 이들에게 보탬과 더함과 나눔으로 그들을 충족하게 하고 풍성하게 하였습니다.
주님, 하느님 나라는 보탬, 채움, 그리고 나눔임을 분명히 깨닫게 하소서. 그 애덕의 실천이 한두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가 선의 열매을 맺을 때까지 이루어짐을 믿고 살게 하소사.
이재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