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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글은 영화 「낙원의 밤」에 대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음을 알립니다.
더불어, 이 글이 영화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고 하나, 그것이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본 관객들에 대한 폄하는 아님을 알립니다.
한국형 느와르의 대가로 불리고 있는 박훈정 감독이 넷플릭스에 신작을 내놨다. 엄태구와 전여빈, 차승원이 나오는 낙원의 밤이 그것이다.
느와르상이라고 불릴만한 얼굴과 음성을 가진 배우들이 주역으로 나온다. 그리고 느와르 덕후가 빚어내는 느와르 영화라면 볼 이유는 충분했다. 브이.아이.피(V.I.P)로 갖은 욕을 다 먹고 반성한다며 마녀를 내놓았던 박훈정이기에 내심 기대감도 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 영화를 보는 내내, 내 표정은 실망감으로 가득찼다. 심지어 그 표정에는 물음표도 군데군데 섞였는데, 영화를 해석하고 싶은 원초적인 궁금함에서 비롯된 건이 아니었다. "대체 이게 뭐야?" 하는 난감한 물음표였다.
두 시간 남짓, 영화를 다 본 뒤에 실소를 감추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평은 어떤지 검색하기 시작했다. 스트리밍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OTT 플랫폼의 특성상,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봤고, 보고 있는 중이고, 보기 위해 '이 영화, 어때?' 하며 타인의 감상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평은 생각보다 여러 개로 갈렸다. '박훈정이 박훈정했다', '전여빈이 시원하게 액션하더라. 특히 마지막 10분은 오롯이 전여빈 하나만을 위해 감독이 바친 헌정과도 같다', '차승원이 캐리한다', '영상미 죽인다.' 대개 긍정적인 평들이 우세했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평에 공감하는 바이다. 그러나 내가 구태여 시간을 들여, 이 글을 작성하는 것은 나로서는 절대 공감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평이 마음에 몹시 걸렸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절대 공감할 수 없는 평은 '박훈정이 이번에 여캐를 정말 잘 썼다'며 마지막 엔딩에 대한 아낌없는 찬사를 늘어놓는 평이었다.
박훈정은 퇴보했다. 마녀를 내놓은 뒤에, 왜 이런 영화를 내놓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아마 영화를 본 이들은 이런 나의 평에 의문을 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 나오는 전여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아, 검색을 통해 이름이 '재연'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총을 잘 다룬다. 재연의 사격 실력은 크게 힘들이지 않고, 한 손으로도 연속적으로 멀리 있는 깡통을 죄다 맞추고도 남는다. 그리고 재연은 울지 않는다. 눈물은 흘리지만 흔히 볼 수 있는, '연약하고 울음소리만 큰' 오열 여캐가 아닌 것이다. 또 이건 어떤가. 재연은 병을 앓고 있지만 병을 앓는다고 해서 아무때나 픽픽 쓰러지거나 남주의 발목을 잡거나 하는 민폐로 전락하지 않는다. 이정도면 어떤가. 합격점이지 않은가.
감독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크게 액션이랄 것은 없더라도 총을 쥐여주고 아낌없이 실력을 발휘하게 만들며, 여캐의 옷을 벗기지 않고 강간당하는 장면을 찍지 않았으니 이걸로 충분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확실히 그렇다. 감독의 전작인 브이.아이.피를 떠올린다면 가히 눈부신 발전이다.
하지만 그건 너무 얕은 생각이다.
영화의 제일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배우 엄태구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것 같은 영화 속 캐릭터 박태구, 일명 태구는 피도 눈물도 없고 독보적인 카리스마를 뿜는 '조폭'의 중간 보스다. 그런 태구는 하나뿐인 어린 조카 앞에서는 딸바보처럼 아낌없이 무너진다. 좋아죽는 표정으로 아이를 안아들고, 조폭이니 칼이니 하는 말을 조카가 듣겠다며 누나에게 역정을 내고 "아,안 돼, 안 돼, 듣지 마." 하며 조카의 귀를 가리기까지 한다.
피도 눈물도 없는 태구의 반전 매력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제 식구는 살뜰히 잘 챙기는 것을 보여주려는지, 손수 택시까지 잡아다 부하를 먼저 돌려보내고 몰래 병원으로 가, 의사의 진료를 받는다. 아픈 누나 몰래 장기를 이식해주려 검사를 했던 것이다.
이런 인간적이고 따뜻한 조폭이 또 어디 있을까! 아이패드를 바친 조카에게 사망플래그와도 같은 저녁 약속을 손도장 콩콩 찍어 하는 깜찍한 삼촌이며, 조카에게 환장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차문이 닫혀도 멈추지 않고 창문 두드리며 삼촌 봐줘~ 애교까지 부릴 줄 아는 사랑스러운 남자이며, 자신에게 하루 빨리 정신 차리고 살라며 구박하는 누나에게 장기 이식까지 해주려는 듬직하고 속이 깊은 남동생이다. 감독은 피도 눈물도 없는 조폭 태구와 누나바보(?) 조카바보 인간 태구를 동시에 그리며, 이 두 가지 설정이 가져다주는 차이로 박태구를 더없이 로맨틱한 남성으로 그리려고 했다.
더없이 안일하고 클리셰적이며, 일말의 고뇌조차 없는 캐릭터의 설정에 손 박수 대신 발 박수를 쳐주고 싶을 지경이다.
그리고 사망플래그를 보여주었으니 그 약속같은 클리셰를 철두철미하게 지켜, 누나와 그 딸인 조카의 목숨을 한꺼번에 빼앗는다. 누구나 지적할만한 문제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남캐 각성을 위해, 희생되는 여캐는 전여빈이 아니다. 낙원의 밤에서는, 영화 시작 10분 만에 목숨을 잃는 누나와 조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의 2시간 20분을 기대할래야 기대할 수가 없게 만드는 이 장면 덕분에, 누나와 조카를 한꺼번에 잃고 굳은 얼굴로 망연자실한 엄태구의 표정은 보이지도 않는다. 차라리 도로 위에 나뒹구는 아이패드 포장 박스가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뭐였을까? 프로4?)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블록버스터 영화 티저를 연상케 하는 이 카피가 이런 데에 쓰이다니 참 유감이다. 낙원의 밤은 까일 건덕지가 몹시도 많은 영화다. 아마 영화 상영시간인 2시간 30분 내내 떠들어도 모자랄 것이라고 자신한다.
영화 도입부를 그렇게 초쳐놓고 태구는 바로 복수를 한다. 참으로 쌈박하고 간단명료한 설정이다. 자신을 탐내던 라이벌 조직에서 자신을 데려가지 못하자, 그 보복으로 가족을 죽였다? 어떻게 된 게 8년 전 영화인 신세계의 도입부와 이렇게까지 똑같을 수 있을까. 컨트롤씨 컨트롤브이 수준이다. 이 이상의 시나리오를 생각해내지 못하는 것은 명백한 감독의 능력부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감독의 능력부족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공식처럼 허무한 생각을 그대로 믿은 태구는 사우나를 종횡무진하며 사람을 족히 서른 명은 베고 제주도로 달아난다.
여기서 잠깐. 또 하나의 당황스러운 점을 짚자면 태구가 속한 조직의 라이벌 조직, 그러니까 손병호가 보스이고 차승원이 중간보스인 그 조직의 이름은 '북성'이다. 순간 쌍팔년도 영화를 보고 있는 착각마저 들었다. 2021년에 개봉한 영화에서 나올만한, 그러니까 퇴근 후에 양말 벗고 발가락 사이사이를 벅벅 긁어가면서 멍한 눈으로 아무 생각없이 지은 듯한 그 작명에 필자는 대단히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하필 짜장면을 먹은 건가? 북성이라...?)
아무튼 제주도로 날아간 태구는 박호산을 철썩같이 믿고 러시아로 튈 준비를 한다. 그 과정에서 재연과 그녀의 삼촌이자, 조폭계의 전설(아이고) 쿠토를 만난다.
전날 사람을 마흔 가까이 도륙내고 온 인간병기 수준의 태구는, 총을 쏘다 말고 제 관자놀이를 겨누는 재연을 보고 몹시 당황하며 그녀의 자살을 말리려 말을 더듬으며 뚝딱뚝딱 다가간다. 누나와 조카의 죽음에 싸늘하게 굳어버린 태구가 다시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는 부분이다. 태구는 왜 이토록 여자 앞에서만 나약해지는 걸까? 태구한테 여자란 존재가 뭘까 생각해보게 되는 대목이다. 사십 명을 눈도 깜짝하지 않고 죽이고 왔으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가 자살하는 건 어떻게든 막으려고 하는 게 개그 포인트마냥 웃기기까지 하다.
재연은 지금 당장 국가대표 진종오와 사격 솜씨를 겨룬다고 해도 될 수준이다. 심지어 나이는 진종오의 반밖에 안 된다. 사격계의 꿈나무나 다름 없는데도 재연은 긍정적인 미래를 그리기는커녕, 최종 발포 목표를 제 관자놀이로 정한 모양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지금껏 살아오며 본 한국영화들로 대충 어떤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을 사연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걸 빨리 알려주지 못해 안달이 났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운전석에서 주삿바늘을 꽂고 있는 재연이 급박하게 병원으로 옮겨진다. 그 장면에서, 레전드로 불리는 쿠토는 대체 왜 레전드로 불리는지도 알 수 없게 마냥 쓸모없이 시크한 재연을 대변하기 위해, 대신 대사를 치는 캐릭터로 전락해버린다.
재연이가 아프다. 우리 재연이 뇌수술 할 거야. 그래서 내가 캐시를 왕창 끌어모으는 중이란다. 우린 여길 떠서 아메리카로 갈 거다. 가서 우리 재연이 살릴 거야. 너무 비싸지만 거지같이 낮은 확률 20%라도 믿고 기다려 보려고.
아주 눈물 없이는 듣지 못할 사연이다. 그리고 박태구는, 조카를 잃어버린 조카바보답게 자신처럼 조카가 소중해서 어쩔 줄 모르는 쿠토에게 이입되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 쿠토의 유지를 받들어, 재연을 지키는 흑기사가 되는 것이다.
영화는 참으로 재미없고 뻔하게 태구가 사랑스러운 남성임을 되풀이해 보여준다. 마치 관객에게 강매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저보다 한참 어린 재연이 반말을 하는 것도 대충 넘어가주고, 자신의 심기를 벅벅 긁는데도 절대 손을 올리지 않는다. 조폭임에도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아픈 그녀가 고통을 못이기고 대뜸 제 손을 피가 철철 나도록 깨물어도 꾹 참고 깨물도록 해준다. 박훈정이 지향하며, 사랑해 마지 않는 조폭이란 무엇인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구린 포인트가 낙원의 밤에는 무척이나 많다. 2시간 30분을 들여 보여주니 많을 수밖에 없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이제 다른 요소는 모두 배제하고 슬슬 전여빈이 맡은 재연의 캐릭터가 갖는 심각한 오류에 대해서 말을 해야겠다.
대체 왜 배경을 제주도로 선택했는지부터 시작해서, '나는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정말 싫어. 왜냐면...' 으로 이어지는 거지발싸개 같은 대사와 물회가 갖는 당최 이해되지 않는 의의를 하나하나 따지다보면, 이 글이 낙원의 밤 각본처럼 길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 그래서 재연 캐릭터가 뭐 어쨌느냐면, 재연에게는 서사가 없다.
재연의 캐릭터는 감독의 전작인 마녀의 김다미를 복사, 붙여넣기한 것이다. 능력을 쓰면 몸이 닳아서 툭하면 쓰러지고 아프지만, 액션 능력만큼은 탁월하다. 그러나 그 다음에 차이가 있다.
마녀는 제목부터 김다미 캐릭터를 원톱으로 밀었다. 김다미가 맡았던 마녀의 캐릭터에는 서사가 있었다. 실험체로 실험당하고 인간병기로 길러지다가 탈출한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처럼 숨어살다가, 자신을 노리는 연구원들을 도리어 제쪽에서 낚는다.
사실 마녀도 대사가 유치했으며 스토리는 뻔한 편이었다. 영화에서는 시종일관 김다미가 얼마나 센지만을 부각시켜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게 여자 캐릭터라서 신선했다. 인간병기로 길러져 감정이 없던 마녀에게 따뜻한 주변사람이 생기고, 그 주변사람이 위협받자 마녀는 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각성한다. 그리고 그 부분이 더없이 마녀를 인간적으로 느끼게 한다. 한마디로 관객들에게 던지는 셀링포인트라는 것이다. 영화 아저씨의 원빈이 갖는 멋진 역할이 김다미에게 주어진 것이다. 파워풀한 여캐는 당연히 성적대상화 되지 않았고 어설픈 멜로를 그리지도 않았다. 흔한 신파도 없이, 그저 주인공의 파워를 가감없이 보여주고 끝난다. 바로 그점이 마녀의 장점이 되었다.
그러나 낙원의 밤의 재연에게는 서사가 없다. 그냥 어느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보니 자신을 뺀 가족 모두가 살해당했고 하나 남은 친척이자 조폭인 삼촌과 함께 살게 되었다, 그게 끝이다.
재연이 그런 삼촌을 증오해왔으며 현재까지도 '조폭'이라는 사람들을 진절머리나게 싫어하면서도, 어째서 삼촌에 대한 감정이 애증이 되었는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삼촌이 조폭이어서 집안이 풍비박산 났는데도 말이다.
(더불어 사격을 누구한테 배웠는지-아마 삼촌에게 배웠을 것 같지만, 조폭이나 총기를 혐오하는 재연이 왜 사격은 배웠으며, 누구보다 재연을 아끼는 삼촌은 재연에게 사격을 왜 가르쳤을까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재연이 자기 목숨은 지켰으면 해서 총을 가르쳤다면, 쿠토는 언젠가 자신이 아끼는 조카 재연에게 위협적인 상황이 일어날 거라는 걸 어느정도 예감했다는 얘긴데, 생존확률이 20%도 안 된다는 수술은 시켜주고 싶어하면서 자명한 위험이 닥쳐오는 건, 왜 그저 당연한 순리처럼 여기고 있을까? 정말 재연이 소중했다면 조폭이고 무기 반입이고 다 때려치우고 한적한 곳으로 가서 재연의 요양에 힘써주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게다가 조폭을 드러내놓고 싫어하는 재연은, 너무도 빠르고 쉽게 조폭인 태구에게 마음을 연다. 태구에 대해 아는 게 쥐뿔도 없음에도 그렇다.
또 있다. 재연은 한없이 쓸쓸하고 지켜주고 싶게 만드는 여캐의 셀링포인트는 다 가진 캐릭터다. 진종오를 능가할 만큼의 사격 실력을 갖추고 있어도 병에 걸려 병약한 여캐는 남자로부터 지킴 받아야 한다는 식이 그런 것이다. 태구는 죽을 날이 머잖았으며 여차하면 자살을 기도하는 재연을 구하려고, 참으로 바쁘게 뛰어다닌다. 빨리 섬을 탈출해, 제 목숨이나 보전하면 다행인 것을 굳이 재연을 살리겠다고 핸들을 꺾어가며 도로를 질주하고 싸움에 뛰어든다.
왜 갑자기 둘이 이만큼 서로가 소중해졌는지 관객에게는 비밀이다. 언제부턴가 둘이 그냥 폴인러브한 셈이다.
게다가 캐릭터 설정에 대한 개연성과 설득력이 눈꼽만큼도 없다. 죽기를 갈망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자기는 곧 죽을 거라며 R=VD하는 수준으로 살고 있는 재연은 혼자 있는 게 싫다면서 운다. 거기서 섣불리 명대사를 하나쯤 집어넣고 싶은 감독에 의해, 괜찮냐 안 괜찮냐의 대사가 쏟아지고 영화는 하염없이 곤두박질친다.
재연의 캐릭터는 이토록 엉망이다. 학살에 가까운 연쇄 살인을 해놓고도, 음주운전은 안 되는 남주를 계속해서 사랑스럽게 그리는 한편, 재연은 무참히 망가져간다. 뒤질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이딴 몸뚱이 아껴서 뭐하냐며, 태구에게 잠자리를 갖자고 말하는 건 박훈정의 퇴보를 공고히 해주는 연출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거기서 태구는 거절한다. 서른이 뭐야, 마흔에 가까운 것 같은 박태구는 재연의 자자는 제안에 몹시 당황하며 뚝딱인다.
그간 멜로라고 부를 수 있는 장면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굳이 여캐 입으로 그런 대사를 하게 만들어서 남주를 순수하고 순진한 소년 캐릭터를 만들고자 하는 감독의 빤한 수법이 단연 엿보이는 연출임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반드시 거기서 남캐는 기대에 걸맞게 '거절'을 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함부로 사랑이나 섹스하지 않는, 나름 보수적이며 건전한 '조폭' 남자. 이런 캐릭터의 설정을 조목조목 따져본다면, 슬슬 오늘 먹은 아침부터 올라오려고 한다.
그렇게 태구를 좋은 캐릭터로 만들기 위해, 재연은 계속 무너진다. 총을 잘 쏘는 재연은, 바꿔 말하면 총이 없으면 무용지물 민폐 여캐나 다름 없다는 걸 보여준다. 삼촌이 죽은 걸 알면서도 그 앞에 앉아서 삼촌이 안 죽었다며 억지 떼를 쓰다가, 태구한테 가볍게 들춰 업혀져 나오는 장면도 그렇거니와 태구가 곧 죽을 상황에 처해있는데도 남자들한테 팔이 잡혀서 "이거 놔!! 놓으라구!!" 대사만 연발하면서 쓸데없이 힘을 빼는 장면도 그렇다.
마지막 사살 엔딩을 제외하고 재연을 바라보자. 재연은 (어느새) 연인이 된 태구가 피떡이 되게 두드려 맞고, 칼을 맞는 동안 그저 팔이 붙잡힌 채 엉엉 울면서 하지 말라는 말만 반복한다. 그게 자그마치 20분이 넘는다. 남자 둘이 온힘을 다해 재연을 틀어막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팔만 붙잡는 게 다다. 재연이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면 팔이 붙잡힌 채로도 바닥을 구르거나 몸을 뒤집거나, 온몸을 비틀어서라도 이 상황을 타개하려고 하는 게 옳다. 그러나 여캐는 그 당연한 개연성에서 배제된다.
차승원이 맡은 마 이사의 독설적이고 유머러스한 대사와 박호산의 비열함과 엄태구의 짠함을 보여주기 위해, 전여빈은 가장 중요한 장면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캐릭터로 전락한다.
그리고 태구가 죽고 건물이 불탄다. 이 영화는 사실, 거기서 그냥 페이드아웃으로 끝나도 별로 놀랍지 않은 영화이다.
그러나 박훈정은 그렇게 영화를 끝내면 또 여캐를 소비적으로 썼네, 어쩌네 하면서 욕먹을 거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부랴부랴 재연을 위한 총기난사씬을 만들어준다. 참으로 시혜적이라 할 말이 없는 부분이다.
총 잘 쏘는 짱짱맨 여캐 만들어놓고, 여캐가 다 죽였으니까 더이상 여캐에 대한 비판이 일지 않겠지? 하는 감독의 안일함이 참으로 잘 느껴진다. 심지어, 재연이 총을 난사하기 전에 재연에게 성희롱 발언을 듣게 함으로써 그 장면이 더 돋보일 거라고 생각했음이 짐작되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언니 다 죽여'. 이거 하나면 여성 서사적으로 쓸모있으며, 페미니스트들이 봐도 거북하지 않은 영화가 되는가? 도대체 언젯적 '언니 다 죽여'인지 모르겠다.
여성들이 소비하고 싶어하는 영화는 그저 주연이기만 한 여자 캐릭터도 아니며, 그저 남자들을 다 쏴죽이면 되는 액션 여캐도 아니다. 박훈정이 무슨 생각으로 마녀를 만들었는지 모르겠으나 그 포인트에서 관객들이 열광했다고 느꼈다면 대단히 잘못 생각한 것이다.
여자가 다 죽인다고 해서, 여캐를 잘 활용했다고 볼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숱하게 봤지 않은가. 그중 대표적인 작품이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다. 서영희가 영화 내내 핍박과 무시와 숱한 강간을 당하다가 드디어 미쳐돌아서 다 썰어죽여서 피칠갑이 되는데 이게 과연 여자가 다 죽이니까 여성 관객들이 꼭 볼 만한, 여성 서사적이고 소비하기 좋은 영화인가?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보다는 낙원의 밤이 훨씬 낫다. 최소한 재연의 캐릭터는 자기 입으로 자자, 라든가 봐도 돼~ 어차피 볼 것도 없어~ 식의 성적인 농담을 치지 않는 한은 성적대상화 되는 부분이 크게 없다. (막판 성희롱 발언을 듣는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이미 필자는 한 차례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에 대한 비판을 다뤘던 바가 있고, 따라서 '언니 다 죽여' 식의 영화가 왜 여성 서사 영화가 아닌지에 대해 말한 바가 있으므로 그에 대한 얘기는 길게 다루지 않을 것이다.
낙원의 밤은, 누가 봐도 박훈정식의 느와르 영화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신세계에 마녀 비스무레한 걸 뿌려놓고 멜로를 그리고자 했으나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신세계에서는 신선함이 돋보였던 각본과 까리함이 낙원의 밤에서는 찾아 볼 수도 없으며, 심지어 대사는 마녀 때보다 한층 더 구려졌다. 그렇다고 멜로를 잘했냐. 그것마저 못했다. 어설프게 하다 만 멜로는 안 하느니만도 못하게 됐다.
죽어가는 태구에게 재연이 필사적으로 기어가, 멜로틱한 연출을 보여줄 때 마 이사가 뒤에서 "너네 둘이 뭐냐? 사귀냐?"는 대사를 치고, 재연이 "사귀면 뭐. 뭐 보태준 거 있어?" 식의 대사는 웃기지도 않고,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지치게 만든다. 남이사, 보태주지 않을 거면 말라는 식의 유치짬뽕 대사가 2021년 한국형 느와르에서 나오다니. 한국 느와르는 이제 다 죽은 모양이다. (차라리 거기서 마 이사가 발리에서 생긴 일에 나오는 조인성처럼 "너네 뭐냐? 너네 러버냐?" 그랬다면 웃기기라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영화를 다 보고 난 감상은 '그냥 마녀2나 만들지. 하다못해, 신세계 프리퀄이나 만들지.'가 되어버렸다.
아무튼, 느와르 장르를 이렇게나 구리게 만들어놓고 대충 영상미로 퉁치려는 이 영화에 다시 한 번 아낌없는 발 박수를 보낸다. 어찌되었든 낙원의 밤의 음울하고도 푸르뎅뎅한 그 분위기 하나만큼은 느와르다웠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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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언급된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비판글
▶ https://m.cafe.daum.net/ok1221/9Zdf/2317156?svc=cafeapp
첫댓글 진짜 맞음 스토리나 대사가 똥이어서 문제인것도 많지만 전여빈 캐릭터 역할이나 서사 진짜 미미함 마지막씬때문에 전여빈이 다했다 여자가 제일 쎄다 이렇게 평가 받는데 절대 아님 영화 속에서 전여빈 캐릭터가 하는거 진짜 없고 캐릭터 성격도 이상하게 소비함 영화 진심 별로야
이거 기대했는데 별로구나... 아쉽다 스포 있어서 본문은 못 보겠네
다읽었는데 볼필요없겠네 ㅋㅋ
방금봤는데 정말 딱 이거임 정말 한문장도 빠짐없이 내가느낀바임
글 너무 잘쓴다 필사같은거하면 이렇게 조리있게 쓸 수 있나!?ㅜ
안봐야지... 내가 남감독이 만든 한국영화 잘 안보는 이유..
영화 끝까지 보지도 못했어 엄태구 캐릭터 전형적이고 역겨워서ㅋㅋ리뷰 너무 좋다
헐 나 첨에 읽고 영화 평론가가 쓴 글인 줄 알았어 계속 공감하면서 읽었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을 좋아하면서도 찝찝했었는데 이 글 읽으니까 내가 왜 그런 감정 느꼈는지 알게 됐어 전체적으로 영화가 기승승승 이거였던 거 같아 특히 태구 죽는 씬은 진짜 지루했어 느와르 장르를 마녀랑 불한당만 봐서 잘 모르기는 하는데 원래 이렇게 사망 플래그 잘 보여 주나 싶고... 개인적으로 마녀는 재미있게 봤는데 낙원의 밤은 진짜 배우들 연기력 빼고는 남는 게 없었던 거 같음
처음부터끝까지 공감
글 진짜 잘 쓴다..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 공감
진짜 다 ㅇ ㅈㅋㅋㅋㅋㅋㅋ왜봤는지 후회했음
진짜 보면서 엥? 엥? 엥? 에엥? 거리면서 봄...
보태준거 있어? 이 대사에서 그냥 웃음만 나왔음... 얼마나 고민 없이 썼는지 알 수 있었던 각본
난 보다가 엄태구랑 전여빈 서로 펜션 의자에 앉아서 뭐 얘기하는거보고 걍 ㅈㄴ노잼이라서 껐는데 ㅋㅋㅋ 뭔가 좀 별로인 구석이 없지않아 있엇는데 이건듯 ㅈㄴ 잘 꼬집었어
아 중간에 서른이뭐야, 마흔웅앵 뚝딱인다 이 부분 개웃김
보면서 헛웃음 나온 장면이 한 두 개가 아니었는데 다 찝어줬네 ㅋㅋ 글 진심 잘 쓴다..남캐에만 개연성, 서사 주는거 언제까지 할래 진짜;; 전여빈 땜 ㅁ에 의리로 끝까지 봤다,,
미친 진짜 영화 너무 잘 보고 너무 잘 써 주신 평론이다!! 전여빈 빼면 다 남캐인 것도 마음에 안 들었고 마지막 10분이 진짜 멋있긴 했으나 그 외의 장면들에 민폐 캐릭터로만 썼다는 점에서 이 글이 표현한 바랑 내가 생각하는 게 똑같아.. 진짜 짜증 나고 어이 없었음.. 여캐 나오면 다 여성 서사가 되는 줄 아는 거 너무 구려.. 여자한테 총 쥐어 주면 다 여성 서사냐;
글 진짜 잘 쓴다
심심할때 보기 딱 ㄱㅊ은 영화긴했음
근데 본문은 ㅇㅈ
배우들때매봄 진짜 그리고 마지막10분만 느와르 영화에 남을 장면인듯,,, 전여빈이랑 태구 살줄알았어 솔직히 둘 실력이면 살만 하잖아,,? 근데 처참하게죽는게 좀 그랬다
리뷰 진짜 잘 썼다
진짜 싹 다 인정
그래도 넷플 1위길래 새벽에 동생이랑 밤새서봤는데 진짜 욕나오게 재미없음.
밤새서 학교 수업들으러간 동생이 시간아깝다고 차라리 잘걸하면서 빡쳐하던 영화.
보면서 대사도 촌스럽고 서사? 풀거면 제대로 풀던가 진짜 억지...;
보면서 엥? 만 몇번했는지 모르겠음
뻔한 클리셰...응... 진짜 지루
영화 좋아해서 웬만한 영화는 재밌게보는편인데도 이거는 진짜... 진짜 최악의 영화였음
진짜 존나인정ㅋㅋㅋㅋㅋㅋ마녀보다 퇴보했다는거 ㅇㅈ 진짜 예전 촌스러운 클리세 다 갖다박아놓고 남주한테만 서사몰빵ㅋㅋㅋ마지막에 여자한테 총쥐어주면 끝? 그거빼고는 그냥 여주는 남자 들러리밖에 안되는 존재감이던데
폭력성 짙은 영화 싫어하는데 진짜 의미 없는 폭행장면 너무 많고 정신에 해로울 지경.. 대사도 스토리도 없고 애드립대사로 이어지는 그런느낌 심지어 조명?도 망해서 얼굴까지 퍼렇ㄱ ㅔ 나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