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를 먹는 저녁
조미희
둥근 냄비는 꼭 지구 같다
토독토독 저녁이 불화했던 한낮을 끌고
냄비 안으로 들어간다
양파, 감자, 당근, 닭고기,
채소와 고기는 다른 종
지구촌의 어떤 사람들처럼 등을 돌리고
주머니에 총을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
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
진보가 좋아
보수가 좋아
상상만으로도 피곤한
사람들의 언쟁이 빗소리에 섞이는 저녁
카레를 끓인다
채소와 육식 덩어리가 쪼개지고 쪼개져
멀리 인도에서 건너온 카레 가루에 섞여
조화는 이런 거라고
노랗게 명랑하게 하루를 돌린다
김을 쉭쉭 내 뿜으며 화를 토하던 사람들이
경건히 숟가락을 들고 아, 아,
입을 벌려 지구의 구멍 속으로 고요히 카레를 밀어 넣는다
눈 1
공원으로 길을 낼래요
작년에 떨어진 나뭇잎과 가지들
당신이 앉아 있던 벤치 위
따뜻한 엉덩이의 감촉을 기억하며
반짝이던 음성을 어루만질래요
온 세상이 미끄럼틀이 되어도 걱정 없는
아이들의 작은 발과 살랑거리며 눈밭을 뛰는
강아지의 천진스러운 발바닥이 될래요
저녁의 비탈진 퇴근을 걱정하는
가난한 당신의 뒤꿈치를 포근하게 받쳐주는
세상의 가장 깨끗한 솜이불이 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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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를 먹는 저녁 / 조미희
김명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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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2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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