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편을 보면서...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 슬픈 내용도 아닌데...
왜 이리 눈물이 나는 지...
내가 바라던 꿈... 어쩔수 없이 포기했던 꿈이기에...
그래서 그렇게 슬픈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향해...도전하고 싶다고...
나도 할수 있다고 외치고 싶었는데...
성냥개비처럼 활활 타올라...
그렇게...링위에서...사그라들고 싶었는데...
그땐...그게 가장 의미있는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대학가면...자퇴하고 복싱하겠다고...생각했는데...
지금은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난...이영화를 통해 그동안 잃고 있던 날 발견한것 같다...
예고편에서 유오성이..."세상에...권투만큼 정직하고 공평한게 있나?"
"이기는 게 승리가 아니야...자신이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바로 인간챔피언이야"
김득구라는 실존인물을 영화화 했다고...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재혼...이복형제의 불화속에
12살의 어린나이로..서울에 상경 후 동아 체육관 입문
1955년 전북 옥구군 옥산면 팔봉리 출생
1972년 속초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무일푼으로 서울행 버스를 타고 상경
1978년 12월 박명수 선수를 4회 판정으로 누르고 프로 선수로 데뷔
1980년 7월 필리핀 원정에서 토니 후로렌스를 9회 KO로 제압
1980년 12월 이필구를 판정승으로 이기며 한국 라이트급 타이틀 획득
1982년 2월 김광민을 판정승으로 이기며 동양 챔피언 타이틀 획득
1982년 7월 일본 '이시도 다다오'를 5회 KO로 누르며 세계 챔피전 전초전에서 승
1982년 11월 LA에서 맨시니와의 세계 챔피언 타이틀 경기 중 사망.
“나는 이제 그의 이야기를 해야한다...! ” (연출노트)
열일곱살...... TV에서 처음 본 그는 별로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선수였다. 또 누구하나가 이기지도 못할 원정경기를 떠나는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공이 울리고 첫 라운드가 시작되자, 나는 브라운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들것에 실려 마지막으로 링을 떠나는 그의 모습에... 17살이었던 나는 서러움과 분함에 어쩔 줄을 몰랐다. 그리고 뇌리 속에 ‘김득구’ 라는 이름 석자를 박아 넣었다.
‘집념’이라는 말을 주위에서 들어본 지 너무 오래 된 것 같다. 마치 그런 단어는 우리 아버지 세대에나 즐겨 사용하던 말인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 아버지들은 집념이라는 말을 소중히 했다. 그것으로 아내에게 용기를 주었고, 자식들을 먹여 살렸으나 결국 자신의 지친 몸은 조용히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자식들의 함박 웃음속에 씁쓸하고 처연한 미소를 지으며...
김.득.구... 그는 죽지 않았다. 나는 최후의 순간까지 링줄을 거머쥐고 일어나려 애쓰던 그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아들을 낳게 되면 반드시 챔프로 키우겠어요.” 라고 말하던 스물두살 앳된 여성의 바보 같은 순정을 안타깝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나도 이제 서른 여섯살의 아버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