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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위선(僞善)-이무영
[1]
낡은 오버, 털 자켓, 원피스, 양말, 구두, 양복천, 심지어 자동차니 트럼프 같은 아이들 장난감들을 온 방안에 늘어놓고 이것은 싱싱하니 팔아야겠다는 둥 팔면 얼마는 받을 거라는 둥 얼마만 돈이 되면 얼마는 떼어서 무엇을 하고 또 얼마로는 큰 녀석 스케이트를 사주고, 어디 곗돈이 얼마니까 그것은 어떻게 하고 스무날 계는 깨어질 염려가 있으니까 눕혀두는 것이 좋겠고, 이렇게 곰살궂은 셈을 챙기고 있는 아내를 번듯이 누워서 쳐다보며 훈은 아내도 변했구나 생각하는 것이었다. 변했어도 이만저만하게 변한 것이 아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백팔십도니 어쩌니 하지만, 지금 훈은 그런 용어쯤으로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송두리째 변했다.’ 이런 말도 입속으로 중얼거려본다. 그러나 그 말에서도 훈은 실감을 못 느끼던 것이다. 벌써 이십 년을 같이 살아오는 아내다. 이 이십 년 동안에 이렇게나 변할 수 있는 소질이 아내한테 있었음을 전혀 모르고 살아온 훈이었었다. 인간의 정체를 내장까지 홀딱 뒤집어 보인 저 6·25 때에도 그런 아내가 아니었다. 석 달 동안 밀기울에 호박을 넣어 끓여 먹고 살면서도 어렸을 적에 교우였던 동무가 맡겨둔 옷 보퉁이에 손도 대어보지 않던 아내다. 자 가웃 석 자의 큰 트렁크였다. 교회 일도 보려니와 남편이 미국까지 갔다 온 목사여서 해방이 되면서부터는 활개를 치며 살았었다. 집도 신당동에 세 채나 있었고, 무슨 상사 회사를 만들어 사장 자리에 앉아 있었다. 상사 회사라야 무슨 물건을 드다루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외국 사람과 점심도 먹고 저녁도 같이 하고, 그런 눈치가 보이면 여자 친구들도 소개해주기도 하고 하면 저절로 장사가 된다던 것이다. 그렇게 살던 봉임이었다. 그 봉임이가 6·25가 터지던 바로 그 날 저녁 지프차에 실어다 맡기었던 것이었다. 서울서 백리 길이나 남쪽일뿐더러 철도에서 시오리 길이나 들어간 산밑 농촌인지라 훈네 집이면 안전하리라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물론 어렸을 적 동무기는 하지만 그런 것을 맡기고 맡고 할 만큼 자별히 지내 온 사이도 아니다. 해방 전에는 양식이 달리니까 가끔 찾아 왔었지만 해방이 되고는 그런 동무가 수원에 살고 있다는 것조차도 잊고 살았을지도 모르는 봉임이다. 그런 봉임이가 갖다 맡긴 물건이, 귀중품이야 아니었겠지만, 값 나가는 옷감들일 것은 짐작이 간다. 치마 한 감에 겉보리 한 되 얻어먹재도 갖은 궁상을 떨어야만 할 때다. 이십 년간 눈 가린 말처럼 중학교 선생 노릇을 한 훈의 살림에서 보리쌀을 너말 푼수나 옷가지와 바꾸어먹었으니 갈아입을 것도 만만치 않았다.
"내 외투 안 살까?"
나중에 1·4후퇴가 또 한번 있으리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한 훈이었었다. 아니 알았었대도 별수는 없는 형편이기도 했다.
"이 한복 중에 외투는 누가 사겠다구."
"그래두 누가 알아? 이 참봉넨 광에 아직두 벼가 들이채었다면서?"
"그이네가 외투가 없어서 그 갓이 다 닳아빠진 외툴 금 같은 곡식하구 바꾸겠수? 금가락지 한 짝에 쌀 한 말씩 바꾸는 것두 큰소리치던데요."
하기는 그랬다. 아무리 금이 좋다고 하지만 금반지를 삶아 먹을 도리는 없다. 다이아 팔찌와 호박 한 개와도 바꿀 처지다.
그래도 외투는 보리쌀 두 되가 되었다. 큰 선심을 쓰는 체하지만 세상이 바로잡힐 때를 생각한 장삿속이었다.
외투마저 나가고 보니 정말 없었다. 어린것들의 옷가지가 제일 세가 난 터라 초벌에 모두 내어갔던 것이다. 다락 속과 장 안이 몇 번인가 들거우려졌다. 그러나 만 두 달을 들고났으니 남아난 것이 있을 리 만무다.
"봉임이네 트렁크엔 많을 거야?"
부잣집 아이 떡 먹는 것을 보고 와서 제 부모한테 넌지시 일깨워주는 그런 심정에서였을 것이다. 훈은 이렇게 아내를 쳐다보았었다. 그도 꼬장꼬장한 사람이었다. 나이 오십을 바라보건만 일찍이 단 한 번 뉘 집에 선사를 해 본 일도 없거니와 받아본 일도 없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였다. 그러나 역시 사실이다. 그 훈이가 다락 속에 있는 봉임이네 트렁크에 구미가 동했을 정도로 절박했었다.
"원, 별소릴 다."
훈은 찔끔했다. 무색했었다. 결국 산밑에 있는 훈의 집도 타고 말았었다. 그들이 건진 것은 알몸뿐이었다.
"우리 것 태운 건 할 수 없지만 봉임인 후회할 거야요. 저희들 집은 혹 안 탔는지 알우?"
이 아내가 어린 고아들한테 온 구제품을 빼어 팔아먹자는 것이니, 훈이가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크리스마스의 선물이었다. 전쟁으로 고아가 된 어린것들을 위해서 미국에 있는 동포들이 정성껏 걷어 보내온 그야말로 붕정만리 길을 온 귀한 선물인 것이다.
[2]
택시 문이 좁아서 두 개로 나눈 보퉁이를 좁은 방안에 펴놓았으니 방으로 하나래도 풍이 아니다. 그것은 외투는 외투대로 내복은 내복대로 갈라놓았고, 같은 외투도 상·중·하로 다시 나누어놓자니 훈의 허리에도 몇 가지의 옷이 걸쳐지는 것이다. 대부분이 겨우살이였다. 어른 아이들의 외투가 비교적 많았고 자주, 빨강, 남, 초록, 등 가지각색의 쉐타가 이삼십 개는 되는 성싶다. 넥타이, 양말, 갓난애의 턱받이 같은 것이 있는가 하면, 칠피 여자 구두도 튀어나온다. 아무리 새것들이라고 하지마는 이름이 구제품이다. 훈은 넝마전처럼 벌여놓은 방안을 휘돌아보면서 아내가 변하기 시작한 것이 어느 경부터던가?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이었다. 6·25가 끝날 때까지에도 아내한테는 별로 변한 데가 없었던 것 같았다.
‘9·28 이후엔 어떻게 했었던가?’
9·28 후에도 별로 아내한테서는 변한 데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다만 이런 일은 있었다. 9·28 직후였을 것이다. 집을 태웠던지라 하루는 봉임이를 찾아가 본다고 서울로 올라왔던 일이 있다. 훈은 수복과 함께 서울에 와서 있었다. 학교에는 미군이 들어 있었다. 수업은 없었지만 민물고기가 바다를 찾아갈 도리가 없었다. 집만 시골이었지, 그의 친구가 거의 전부가 서울에 있었다는 것이다. 학교가 어찌 될 것인가 눈치만 보며 지낼 때였다.
"봉임이가 집이 세 채나 있었으니까 상하지만 않았다면 우선 머리를 좀 디어밀어 볼까 하는데요? 봉임인 혹 솔깃이 들을지 모르지만 남편이 어찌도 이악스러운지!"
이런 이야기다.
쓸데없는 소리다 싶었다. 그렇다고 달리 말할 자료도 없는 그때의 훈이었었다. 다행히 만나본 결과는 그가 예상했던 대로다. 다행히 집은 과히 상하지는 않았지만 다 들어 있어서 어쩔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또 그렇기도 했을 것이다. 지금 세상에 비어 있는 집이 있을 까닭도 없었다. 9·28에서 1·4 후퇴까지를 훈은 서울로 떠돌았었다. 가족은 통근하던 농촌에서 방 한 개를 얻어 가지고, 열 식구가 비벼대고 있었다. 그러다가 1·4후퇴의 명령을 받아 부산으로 밀렸던 것이다. 부산서의 반년도 6·25의 석 달만 별로 못지않은 곤경 속에서 지냈다. 그동안에도 훈은 아내한테서 별로 변한 구석은 발견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변했다면 서울 수복 이후였을 것이다. 서울로 수복해온 어느 날이다. 훈은 후암동 친구의 집을 빌려 들고 있었다. 완전히 평화가 되어야 할 것이니 집을 보아달라는 청이었다. 안성맞춤이었다. 그 어느 날 아내는 갑자기 교회에를 가겠다던 것이다.
"아아니, 이십 년이나 떼어 엎은 교회엔 갑자기?"
"그럴 일이 있어요."
아내는 모르는 체하라는 말투다.
"그런 일이라께?"
"글쎄, 그저 다녀볼까 해요. 너무 주께 죌 많이 진 것 같아서. 뭐 당신까지 끌고 가진 않을 게니 안심하시구요."
6·25 때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대부분이 교회를 도로 찾아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훈은 다행히 한 사람도 잃지 않았었다. 불행에 대한 위압에서 아내가 교회 문을 다시 두드리는 것 같지도 않다. 물론 훈이가 교 자체보다도 교인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겠지만 결혼을 한 후에도 수차 아니 무려 수십차나 권유를 받았을 때도,
"박훈 씨 교가 있으니까?"
이렇게 웃어버린 아내였었다.
그 아내가 갑자기 교회에 다닌다고 나선 것이다.
사실 훈은 아내의 이 교회 출입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할 수 있었다. 첫째 그의 취직부터가 그랬다. 교회에 일류 미션스쿨의 교장 부인이 있어서 말이 쉽게 되었고, 만환 밖에 못 되는 박봉으로 열한 식구가 입에 풀칠을 한 것도 이 교회 덕분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내가 고아원의 책임을 맡게 된 것도 교회 목사님의 힘이었다. 구호미도 곧잘 날라왔었고, 의복가지도 얻어다 입었었다. ‘백만인의 식량’이란 상자며 우유 같은 것은 시장에 내어다 팔아서 가용도 쓰는 눈치였다. 그뿐이 아니다. 교회는 이 나라 정치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도 있었다. 교회 안에 수십 개의 다노모시계가 생긴 것이다. 이때는 돈을 융통하는 기관이기도 했지마는, 모모 하는 사람들의 부인이요 딸이요 며느리요 해서 과장자리 쯤은 부인들끼리의 협상으로 떼기도 하고 붙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내년 봄이면 어쩌면 조그만 집이라도 한 채 사 가지고 나가게 될지두 모르겠어요."
어느 날 밤 훈이가 아이들의 중간시험 성적을 매기고 있는 옆에서 아내는 이런 소리를 하던 것이나, 훈에게는 이 기쁜 소식이 슬프게만 들렸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훈한테는 모두가 마땅치 않았었다. 외출도 그랬고 교회도 그랬고 계란 것도 그랬다. 완고해서가 아니다. 한 주부는 가정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훈의 지론이었다. 여성이 직업을 가진다는 것은 되도록이면 미혼 여성이거나 미망인에 국한되기를 바라는 훈이다. 교회만 해도 그렇다. 훈은 교 자체보다도 교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벽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막연한 반감이 아니다. 일생에 그는 많은 사람으로 괴롬을 받아오고 있었다. 대부분이 터무니없는 오해였다. 그렇듯 그를 괴롭힌 사람의 거의 대부분이 우연히도 교인이었던 것이 훈에게는 불행이었다.
"교인에게 비율로 보아서 옳지 않은 사람이 많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 목사님이나 신부님들이 옳지 않은 짓을 하라고 권할 리는 없다. 평생 두고서 듣는 이야기가 전부 옳고 바르고 남을 사랑하라 할 것이다. 그렇건만 그런 설교를 한 번도 듣지 않은 사람들보다 강박하고 인색하고 이기적이고 남을 해치기도 한다는 것은 도무지 모를 일이다."
그런 일을 당했을 때마다 훈은 혼자서 생각했던 것이다. 십 년을 두고 생각을 해도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다. 훈은 자신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는 단 한 번 설교를 들은 일이 없었다. 성서를 읽은 일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 남을 해친 일은 없다 했었다. 자기 도취도 아니었다. 사실 그는 평생을 두고 그 자신 예물을 들고 누구를 찾아가 본 일도 없었다. 또 받아본 적도 없는 훈이었었다. 삼십 년이 지났다. 수수께끼가 풀린 것 같았다. 잠이 오지 않아서 눈 버언히 뜨고 있다가 휙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여보, 좀 건너오오."
훈은 아내를 불렀었다. 그가 교인이 아니면서도 악할 줄 모른 까닭을 이제야 깨우쳤다는 것이다. 9·28 후 봉임의 남편을 처음 만나던 날 밤이다.
"왜 그래요?"
아내도 웃고 있었다.
"그것은 종교란 모두가 후세를 낙원시한 때문일 것이오. 불교도 사후에 극락, 예수교도 사후에 천당이 아니오? 그러나 우리 무종교 도당은 사후보다도 이 생에서 그 악에 대한 재앙을 받는다는 수천 년래의 신앙 때문에 생전에 선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못된 짓을 하면 벼락을 맞는다든가 자식을 못 기른다든가, 심지어 태중에 남의 호박순을 자르면 손가락 없는 아이를 낳는다든가 하는? 남의 자식 흉을 보면 꼭 그런 자식을 낳는다지 않아?"
"원, 난 또 무슨 큰 발견이나 하셨다구!"
마침 어린 것이 울기도 했었지만 이렇게 일어서 나가는 아내의 얼굴에서 훈은 불쾌해하는 기색을 엿 보았던 것이다. 자랑하다가 뺨 얻어맞은 것 같은 무안이었다. 그러면서도 훈은 마침 그날 고아원 일로 아내를 찾아왔던 목사님에게서 받은 불쾌감에 자설을 고집했던 것이다. 훈은 9·28 직후에 우연히 노상에서 봉임이 남편을 만났었다. 집 태운 이야기를 듣고 그가 훈한테 한 인사란 이런 것이었다.
"아, 그럼 우리 트렁크는? 그 안에 아내의 값진 옷감만 골라서 넣었었는데요? 내 양복도 한 벌 들었을 게요. 꼭 한 번 입고 만 양복이지요. 미국서 나올 때 꼭 한 번 입고 말은!"
"통일이 되면 맨 먼저 김일성이한테 변상하도록 제가 소청하겠습니다."
이러고 헤어졌었다. 그 때의 불쾌가 사 년이 지나도 아직 머리에서 가시지를 않는다. 그날 이후로 훈은 천당과 극락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때가 가장 행복된 세상이니라 했다. 그래야 한다 했다. 그때라야 종교 없이도 인류가 살 수 있느니라 했었다. 훈의 아내가 고아원 원장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훈이가 못마땅해한 것은 아내와 교회가 관계를 맺은 이후로 아이들이 줄줄 따라가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도 종종 그런 일은 있었다. 일요일이나 교회에서 무슨 이름이 있는 날이면 몰려가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어린것들을 가지 못하게 할 만큼 철저한 반 종교인도 못 되는 훈이다. 훈이가 교회를 싫어하는 것은 교회에 많은 사람이 모이기 때문이었다. 개중에는 하느님의 거룩한 가르침을 들으면서도 교파를 따지고 남을 모해할 궁리를 하는 사람이 없으란 법도 없다. 남을 위한 내가 아니고 나를 위한 남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없으란 법도 없다. 기도를 올리면서 취리를 생각하는 위선자가 없으란 법도 없다. 혹여 그런 사람과 자기의 자녀가 사귀일까 겁이 나는 것이었다. 신도가 아닌 사람 중에도 얼마든지 그런 사람은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신도 중에서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어린 것들의 환멸은 더 클 것을 걱정한 것이다. 보통 사회에서 악을 발견할 때보다 더 무서운 타격을 받을 것만 같았던 것이다. 교회에 갈 때마다 연보를 달라는 것이 또 더없이 싫었다. 일곱 살 난 계집애는 안내면 이름이 적힌다고 짜알짜알 울고 섰는 것이다. 한번은 쥐어박은 일까지도 있었다. 만오천 환짜리의 초라한 교원한테 일곱 놈이 손을 내어 밀면 신교의 부담도 컸던 것이다. 그것도 올라서다. 월급이 오른 대신에 물가는 몇 곱이 뛰었고 연보도 올랐었다. 보통날은 십환 한 장은 주어야 가는 것이다. 한 번에 팔십 환이다. 팔십 환어치 좋은 말을 듣고 오는지가 의문이었다. 아내는 백 환씩이라는 것이다. 아내도 그렇다. 집에 들어앉아서 살림을 보살피고 어린것들의 시중을 들고 할 때보다 백 환어치만큼은 좋은 주부가 되어 오는지 의문이라 했었다. 당장 지금만 해도 그랬다. 훈은 아내가 교회에 나가지 않았을 때는 맡겨둔 옷감에도 손을 대지 못하던 아내가 지금 그 불쌍한 어린것들한테 주어야 할 구제품을 따돌리고 있는 것이다. 훈한테는 백 환씩 내고서 만 환어치만큼이나 양심을 빼앗기고 오는 아내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3]
‘다노모시’란 계만 해도 그렇다 했다. 계가 아내의 품을 높여주지는 못하느니라 한 것이다. 훈은 그런 장면에 직면했던 일까지도 있었던 것이다.
지난 토요일이었다. 훈은 몸이 괴로워 두 시에 돌아왔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도 모르고 있다. 그럴밖에, 방안에는 십여 명의 부인들이 모여서 악다구니를 하는 판이었었다. 누가 곗돈을 깔자고 한 모양이었다. 누가 나서서 안 된다고 반대를 하니까, 그럼 사흘만 참아달라는 것이다. 그것도 안 된다고 앙파드기 내라고 졸라대고, 없는 것을 어쩌느냐고 또 앙탈이었다.
훈도 흔히 듣던 이야기다. 또 있음직한 일이었었다. 훈의 아내도 한번 곗돈을 못 물어서 봉변을 당하는 것을 보았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봉임이었었다. 봉임이는 새벽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연사흘을 두고 하루에 두세 번씩 와서 앙파드기 졸라대어서 겨우 받아가는 것을 보았었다.
곗돈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돈인 것을 훈은 그날서야 알았었지만, 오늘의 이야기는 훈의 아내와 봉임의 경우와도 또 달랐다. 여자들 사이의 언니 소리는 거리의 선생님 소리만큼이나 흔해진 소리지만, 형부가 끌려 나오고 어머니 소리가 들리고 하는 것이, 악다구니를 하고 싸우는 두 여자는 친형제임에 틀림이 없었던 것이다.
"글쎄, 언니두 그렇게 악지만 쓰지 말구 내 말을 좀 들어봐요. 언니두 급하니까 그러시겠지만 어머니가 천안 가신 것 언니두 알지? 알지요? 그러구 어머니가 모레 오신다는 것 알지? 그럼 내가 어머니한테 팔만 환 받을 것 있는 줄두 알지요?"
"그건 스무날 곗돈으루 까지 않았나?"
"그게 어디 팔만 환이우! 그건 육만 환이지. 접때 김 장로 댁에서 내가 탈 차례가 아니었었수! 그때 어머니가 칠만 환을 까셨거든요. 한 달에 일할 오부니까 만 오십 환 아니우. 어머니가 이자 해서 물어주신댔으니까 팔만오십 환이지 뭐냐 말예요! 그건 주시는 대로 언니 드린다는데 내가 뭐 두구서 안 주는 줄 알아요?"
정말 무서운 이야기였다. 딸이 어머니한테 일할 오부 이자를 쳐 받고 어머니는 또 물어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형과 아우가 싸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훈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훈은 며칠 전에 아내한테서 돈 오천 환을 둘러쓴 일이 있었다. 그때 아내가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이거 곗돈이어요, 그런 줄이나 알고 써요."
훈은 무심코 들었었다. 그러고 보면 아내도 이자 이야기를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자기한테서 일할 오부를 쳐 받자는 생각까지는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아내는 받지를 못할 자리지만 그런 계산을 하고서 주었던지도 모른다 했던 것이다.
이 형제의 싸움에서 보아도 그 결과에 훈은 더욱 놀랐던 것이다. 형이 아우한테 지불증을 요구한 것이었다. 그것도 사흘 동안의 이자가 붙은 지불증이란 것이다.
"내가 직접 쓸 돈이란다면 너한테 뭐 그런 것까지 받냐? 지금 가다가 누굴 줘야 할 돈이니 그 사람이 이잘 요구하지 않으면 몰라두 안 달랄 리두 없잖으냐. 그러니 이것이라두 갖다 주구 입을 틀어막아야잖냐?"
이론은 그럼 직도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도 싶었다. 언니의 말대로가 사실일지도 모르기는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꼭 그런 결말을 지어야만 한다는 법도 없지 않은가? 훈은 자기 아내가 그야말로 악사들의 구혈 속에 뛰어든 것 같은 놀람을 느끼었던 것이다. 형과 아우가, 어머니와 딸이 꼭 이렇게 살아야만 한다는 법도 없을 것 같았다. 모녀간의 천륜이 이자로서 연결이 되고, 형제의 우애가 일할 오부 이자로 귀결이 난다면 여기에 우정이 있을 리 만무한 노릇이었다.
그러면서도 훈은 숨김없는 인간의 본체를 본 것 같았다. 돈 팔만 환을 놓고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고 있는 이 삼 모녀가 정말 인간의 본 자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휘갑이 되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었다. 위선자는 자기라 했다. 인간 사회가 복될 수 있는 세상이란 인간의 위선이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때가 아니라, 도덕이니 도의니 하는 위선이 없어지고 인간이 자기네 본래의 자태로 돌아가는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동태처럼 빳빳이 얼어 다니는 자기가 구제품이라고 해서 눈을 가리려 드는 것이 반드시 자기의 본능은 아니라고 했다. 추워 떠는 인간이 외투를 보고 물욕을 일으키는 것이 되레 정직한 인간이 아닐까? 지금 훈이가 고아원에 갈 구제품들을 돌려 빼고 있는 아내를 제지 시키지 못하고 바라다보고만 있는 것도 이때문이었었다. 본능을 죽이는 것이 양심이냐, 속이는 것이 양심이냐? 속이는 점에서는 같지 않으냐 했다. 양심이란 본능을 속이는 것이요, 본능은 양심을 속이는 것이었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느 쪽 위선자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본능을 위선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본능이 위선이 아니란다면 양심이란 것이 본능에 대한 위선이 되고 마는 것이 아닐까? 본능에 대한 위선, 양심에 대한 본능의 위선?’
훈은 담배만 뻐억뻐억 빨고 누워 있다. 무엇이 무엇인지 분간할 도리가 없었다.
훈은 아무 말도 않고 자기 방으로 건너왔다. 이론은 어쨌든 아내의 오늘 행동을 제지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었다. 그러나 그것을 제지하자면 이 위선의 정체가 좀 더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자기 방으로 건너와서도 훈은 같은 생각에 잠겼었다. 아내로 하여금 이번 행동을 단념시킨다면 그 자신 그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자기의 외투도 외투였지만 도합 아홉이나 되는 어린것들의 내복 걱정만은 양심보다도 먼저 생각해야 할 아비의, 아니 인간의 양심이라 했다. 쉐타니 외투는 엄두도 안 났지만 내복만은 있어야느니라 했다. 자기 것까지면 내복만도 열 벌이었다. 다섯 놈의 신발이 없다. 그것만도 다섯 켤레가 아닌가. 신발만 있으면 되는가. 양말도 하불하 열 켤레는 있어야 했었다. 이런 생각에 몰리는 훈의 눈앞에 셋째 년의 손이 떠오른다. 얼어 터져서 피가 질질 흐르고 있는 손이다. 장갑도 사자면 그년만 사줄 수는 없다 싶다.
젖먹이는 뺀대도 여덟 켤레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노라니 훈은 양심이 어쩌고 어쩌고 한 자신이 정말 양심이 있는 인간인가 했다. 아비와 자식과의 정은 그만두고라도 인간으로서 그것을 차마 보고 있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아침이었다. 훈은 셋째 년을 몹시 나무랐었다. 몸에 걸친 것이라고는 그것밖에 없는 단벌 옷을 피투성이를 만들었던 것이다. 터진 손에서 흐른 피가 여기저기 묻어서 지르잡을 수도 없이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성순아! 너 그 옷이 그게 뭐냐?"
"나도 모르게 묻었어요! 엄마가 지르잡아주신다고 그랬어요. 손을 씻어두 터져요."
열 살 먹은 년이었다. 손을 안 씻어서 그렇다 할지도 모르는 아비의 말문까지를 막으며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것이다. 얼어 터져서 피가 질질 흐르는 어린것의 손에 구제품 장갑을 끼워주는 것이 위선이었다면 그것을 보고도 못 본 체하는 것은 본능에 대한 위선이 아니냐?
훈은 벌떡 일어났다. 안방으로 건너갔다. 아내는 구제품을 정리해놓고 가짓수를 새는 중이었다.
"여보, 거 아무거나 외투 한 개 주우. 좀 나갔다 오겠소. 뉘 차지가 되든지 잠시 빌립시다."
훈은 아내가 입혀주는 외투를 걸치고 나오는 것이었다.
‘빌려 입는 것이니까!’
훈은 신발 끈을 매면서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려도 보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아내의 옳지 않은 일을 보지 않음으로써 위안을 받자는 것은 또 하나의 새로운 위선이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귀가 에이는 것 같은 강추위다. 그래도 몸은 포근히 더워 오는 것 같았다. 외투깃을 세우고 거리에 나서니 그는 오십 평생 처음으로 인간 노릇을 하는 것처럼 어깨가 넓어지는 것이 속일 수 없는 감정이기도 했었다.
〈「현대문학」 2호, 1955년 2월〉
<재편집: 오솔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