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해야 되서 일찍 출근했는데 이 짓하고 있군요;;;
론 하퍼를 기억하시나요? 사실 시카고 불스의 스타팅 포인트가드였던 론 하퍼는 과소평가받으면서 과대평가받는 특이한 선수였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조던, 피펜 외에 불스 주전 1" 정도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조던에 버금가는 득점력을 지녔음에도 득점본능을 죽이던 특급 수비형 포인트가드"로 기억되죠.
제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면 하퍼가 한때 대단한 득점력을 지닌 것은 맞지만 (커리어 하이가 22.9점인 선수가 조던에 버금간다는 건 좀 오버지만요) 예전의 폭발적인 운동능력을 잃은 "불스의 하퍼"라면 그리 큰 득점위협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그는 포인트가드역할을 전혀 하지 않았죠. 수비가 뛰어난 건 맞지만 올수비팀 수준은 아니었으며 작고 빠른 가드들 (아이버슨이라든가, 아이버슨이라든가, 아이버슨이라든가...)에게 정신없이 털린 흑역사도 있습니다. 사실 하퍼의 수비성과는 본인의 기량보다는 불스 시스템하에서 극대화되었다고 보는게 맞지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농구에 통달한 도사처럼 영리하게 농구를 하고, 부상이 꽤나 잦은 몸임에도 열심히 몸을 날리고, 외곽슛이 특출나진 않았지만 가끔 쏠쏠하게 득점을 해주고, 속공시 그 긴 팔을 쭉 뻗어 레이업같은 덩크를 꽂아넣는 모습을 보는 불스 팬들은 하퍼에 열광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슈퍼스타는 아니었지만 fan favorite이라고 할까요?
그런 하퍼도 나름 이름을 날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클리블랜드 시절, 팀의 에이스는 아니었지만 수준급의 득점력을 보이며 마크 프라이스, 브래드 도허티를 도왔죠. 비록 캐브스가 세 명의 올스타를 내보낼만한 팀은 아니기에 동료들에 밀려서 올스타전에 출전한 적은 없지만 이때 하퍼는 분명 올스타급이었습니다. ESPN의 마크 스테인은 올스타에 뽑힌 적이 없던 선수중 가장 뛰어난 기량을 지녔다고 평가한 론 하퍼와 데릭 하퍼의 이름을 따서, 해당 시즌 올스타 선정에 실패한 선수들중 가장 뛰어난 선수들을 뽑는 "올-하퍼팀"을 선정하기도 하죠.
잡설이 너무 길었군요;;
1988년 시카고와 캐브스는 플레이오프에서 맞붙게 됩니다. 당시 불스와 캐브스는 얼추 비슷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두 팀 모두 젊은 선수들이 주축이 되었죠.
1차전 당시 하퍼는 발목 부상으로 결장했고, 이때 불스의 슈퍼스타 마이클 조던은 하퍼를 대신해 출장한 크렉 일로 (다들 아시겠죠? ^^;;)를 상대로 50점을 퍼붓고 불스는 104대 93으로 승리합니다.
경기 후 조던은 당시 일로의 수비가 하퍼보다 더 까다로웠다고 언급합니다.
하퍼는 조던의 코멘트에 약간 놀랐는데, 그들은 바로 전주에 시카고 식당에서 같이 식사할 정도로 친한 사이였기 때문이죠.
여기서 하퍼는 "글쎄, 마이클은 나를 상대론 50점 넣은 적이 없는걸요?"라고 맞도발을 시전했고, 이에 조던은 "뭐든지 처음이 있는 법이지"라고 응수했습니다.
하퍼는 이어 "마이클에 대해 걱정은 안해요. 만약 그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좋습니다. 그에게 50점을 내준 선수가 제가 처음은 아니고, 마지막도 아니겠죠. 그는 엄청난 선수입니다. 하지만 우리 팀이 이기기 위해 그와 맞붙어야 한다면 그렇게 할겁니다. 마이클과 나는 서로를 싫어하는게 절대 아니지만요"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조던의 동료이던 찰스 오클리는 하퍼에게 "마이클에게 얘기를 할때는, 판사에게 얘기한다고 생각하고 해야되. 몇년 징역형을 받을 각오 해야할걸 (Better be ready to do some time.)"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참고로 당시 불스 감독 덕 컬린스는 하퍼와 일로의 수비스타일이 다르며, 일로는 조던이 자리를 잡는걸 방해하거나 원하지 않는 위치에 가도록 하는게 능하며, 하퍼는 스틸을 노리는 도박성 수비를 더 많이 한다고 평했습니다.
그리고 1차전 후 연습에서 조던은 오른쪽 햄스트링을 다쳤는데, 불스의 샘 빈센트는 "플레이오프는 사나이들의 시간"이라며 조던의 부상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클리는 조던이 "60점을 노릴지도 모른다"고 했죠.
하퍼는 자신과 조던의 친분이 승부에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라면서, "코트 위에 있을때는 우리 우정에 대해 논하지 않습니다. 코트 밖에서는 다시 친구가 되는거죠"라고 말했습니다
훗날 불스에서 재회한 두 선수의 우정은 실제로 경기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은 걸로 보입니다. 가벼운 도발을 시전했던 하퍼는 2차전에서 매치업 상대였던 조던에게 55점을 얻어맞았고, 불스는 5차전만에 승리, 조던은 생애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 진출합니다.
두 팀과의 악연은 그 다음 시즌 플레이오프로 이어졌고, 역시 최종 5차전까지 이어진 이 시리즈에서 캐브스는 너무 유명해서 그냥 "그 샷(The Shot)"으로 불리는 조던의 샷을 얻어맞고 탈락해버립니다.
참고 기사: http://articles.chicagotribune.com/1988-05-01/sports/8803130519_1_bulls-domination-craig-ehlo-solitary-confinement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둘이 원래 친분이 있었군요. 글을 읽으면서도 느껴지는 조대인의 쪼잔함이란....
하퍼보다 일로가 더 노련하고 뛰어난 수비수였음에도 한창때의 조던을 막을땐 운동능력이 좀 더 나은 하퍼가 그나마 약간 더 효과적이었던 것 같네요. 물론 결과적으로는 둘 다 털렸지만... 조던 1차 은퇴 후 나름 그 공백을 메워주기를 바라고 영입했으나 형편없는 모습을 보이며 끝내는 피트 마이어스에게조차 밀리는 모습을 보여준 하퍼였는데 (클리퍼스 시절 스탯은 좋았지만 하위권팀 에이스 몰빵으로 인한 거품끼가 있었죠. 지난 시즌 필라에서 에이스노릇하다 인디와서 아무것도 못해준 터너 생각하시면 될듯...) 필 잭슨 감독이 1번으로 깜짝 컨버전을 시키며 성공적인 롤플레이어로 정착했죠. 한 팀에서 대장노릇하다 갑자기 강팀의
일개 퍼즐 노릇하는게 맘처럼 쉬운 게 아니었을텐데 욕심 안내고 묵묵히 자기 임무에만 충실하던 훌륭한 베테랑이었습니다.
당시 클립은 그래도 91-92(45승), 92-93(41승)2년 연속 플옵에 올랐던 팀으로 작년 식서스에 비하면 나름 괜찮았던 팀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에이스는 대니 매닝이었구요
@kb8/24 제 비유가 좀 잘못된 측면이 있었군요. 지적 감사드립니다.
전주에 시카고 식당이 도대체 어딘가 했는데.. 지난주였군요.....
ㅋㅋㅋ 저도 0.5초정도 생각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저만 그런게 아니군요 ㅋㅋㅋㅋㅋ
저만 그런게 아니었군요 ㅋㅋ 전 한번 더 생각했습니다. 시카고에 전주식 식당에서 둘이 만났나? ㅋㅋㅋ
띄어쓰기를 빼먹는 실수 때문에 의도치 않게 개드립을 ㅋㅋㅋㅋㅋㅋㅋ 웬지 웃기니까 수정은 안 하겠습니다 ㅋㅋ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저만그런게 아니었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전주에 있는 식당이 뭔지 한참 생각했네요ㅎ
아 무슨 얘긴가 했네요 ㅋㅋㅋ 전주 식당 "시카고"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외롭지 않네요...
이분은 무슨 전래동화처럼 무용담도 많네요!
하퍼가 클리블랜드가 리즈였나요? 전 클리퍼스에서 매닝과 원투펀치 이룰때가 더 좋아보였는데..
이런 비하인드가 있었군요,ㅋㅋ 글 잘 봤습니다~
재밌게 잘 봤습니다..이런 뒷이야기가 재밌죠
"과소평가받으면서 과대평가받는..." 지금까지 본 글 중에 하퍼에 대해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한 문구같습니다^^ 저도 마지막 쓰리핏 시절의 불스를 떠올려 봤을 때 하퍼의 모습은... 예상치 못한 속공과 꽤나 열심히 했던 수비? 기대하지 않았던 장거리슛? 뭐 이정도 말고는 기억에 없지만, 그래도 스티브커나 랜디브라운 보다는 하퍼가 있을 때 믿음직스러웠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도 한때 20점대의 스코어러였었다는 기억을 갖고 있었지만, 왜 안쏘는지 못쏘는지는 별로 관심밖이었습니다.
무릎 부상 이후로 사실상 이전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고 불스로 이적하고 난 후에도 조던 복귀 전까지 극심한 부진을 거듭하며 지역 언론의 호된 비판에 시달렸죠. 조던 복귀가 론 하퍼에겐
오히려 인생 역전의 기회가 된 셈입니다.
조던이 5경기 평균 45점을 넣은 시리즈이지요.
실제로 조던은 아직까지 하퍼와 하퍼 가족들을 잘 챙겨준다고 하네요. 조던 용품 등등
와... 부럽
@참크래커 도움 없이도 충분히 준재벌 수준으로 살수 있울것 같은데...
@Zach Lavine 마음 씀씀이겠죠. 빌 게이츠라고 남이 정성으로 챙겨주는 물건이 고맙지 않을린 없을테니까요.
하퍼는 운동능력이 짱짱하던 시절엔 오히려 주목을 못 받고, 운동능력이 쇠퇴한 이후 불스에서의 조력자 역할로 주목을 받네요. 저는 하퍼가 붕붕 날라다니던 시절때 좋아했다가 불스에서의 느려지고 낮아진 모습에 실망을 한 케이스라;;
역대급 굴욕짤의 보유자 그렉일로 ㅋㅋㅋ
여담이지만 중딩때 조던과 하퍼를 구분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지요.
알찬 이야기 감사합니다^^
조던이 한창 젊은 시절에는 심리적으로 가학적인 면이 좀 심했는데, 그런 특유의 성향이
경쟁심리와 맞물려서 종종 동료나 특히 상대 선수들에게 투영됐죠.
처음에 그걸 두고 참거나 고분고분하면 그대로 상하관계로 가는 거고
빌 카트라이트나 바클리 같이 맞대응하면 그 다음부터는 친해지거나 전보다는 존중해주던
그런 특유의 심리적 메카니즘 같은 게 있었습니다.
하퍼도 저때 조던의 발언에 정중하게 대응하고 나름 실력을 보여줬으니
나중에 불스에서 하퍼 만나서 피펜이랑 같이 브렉퍼스트 클럽 멤버로 잘 지냈고
은퇴 이후에도 교류가 이어지는 데는 그런 요인이 좀 있습니다.
실력으로 승부해라 이런 느낌인 것 같아요~ 롤플레이어든 스타 플레이어든 정해진 위치에서 실력으로 증명하면 인정해주는 느낌입니다.
@WhaT? 도장깨기하는 고집불통 에고이스트 검객 같은 느낌이 있었죠.
실제로 조던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가 웨스턴 걸작 용서받지 못한 자고,
동료 복이나 라이벌 전력 같은 거 무관하게 자기 힘으로 모든 걸 끝장내려는 투쟁심이 강했습니다.
일전에 버드나 매직, 배드보이스 상대할 때도 경기에 지면 서럽게 울다가 전년보다 조금씩 단점을 보완하고
별다른 스타 영입 없었던 시절에도 불스 말년까지 구단에게 선수 보충을 딱히 요구한 적도 없었고
그냥 있는 동료들을 몰아붙이면서 약팀으로 시대를 대표하는 왕조를 만들었으니
애초부터 승부욕이나 곤조가 남달랐던 부분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