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의료에서 가장 불합리한 점은, 어떤 사람이 어떤 병원에 언제 병원에 갈것인지를 전문가가 아닌 그 사람 본인이 결정한다는 점이다. 진짜 병원에 자주 가야 할 사람은 안 가고 있고, 병원에 그렇게 자주 갈 필요 없는 사람이 맨날 가기도 한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주치의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통합적 의료"란 개념 자체가 한국에 없다는 게 한국 의료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예컨대 가족력상 모계에 유방암 병력이 있는 여성이 있다 치자. 게다가 나이 40대 이상이며 독신이라면, 반드시 주기적으로 유방 관련 진료를 받으라고 보내야 한다. 주치의가 이렇게 시켜야 한다. 반면 가족력도 없고 젊고 자녀도 많은 여성이라면 그렇게 자주 갈 이유가 없다. 주치의가 이런 사람은 과도한 진료를 받지 않도록 제한해야 한다.
그리고 유방암 관련 진료라는 건 반드시 맘모그램 (X-ray)나 초음파 검사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의사의 문진과 촉진을 말한다. 의사가 촉진상 필요하다 생각하는 경우에 영상검사를 의뢰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무조건 여성들이 1년 간격 심지어는 6개월 간격으로 초음파 검사를 받으러 다닌다. 병의원들이 '행위별 수가제'라는 제도 속에서는 검사를 많이 시킬수록 수입이 늘어나고 환자들은 국가 보험제도와 실손 제도에 따라 본인 부담이 적으니 계속 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1인당 의료비는 세계 최고라 할만큼 빠르게 늘어나고 보험 재정은 극도로 빈약해지고 있다.
위험할 정도로 치솟는 한국 1인당 의료비를 줄이기 위해 가장 시급한 건 따라서 주치의 제도라고 생각한다. 주치의가 모든 '자기' 책임 지역의 환자들에게, 어느 병원을 어느 때에 갈지를 통제할 권한을 줘야만 한다. 이런 제도는 지금껏 물리치료며 과다한 투약을 비롯해 무슨 병원이든 맘대로 가서 하고싶은 건 다 하던 노년 환자들에게 대단한 반발을 사겠지만, 그래도 점진적으로라도 시작해야지 지금 대로 가면 뻔히 파국이다. 둘째는 MRI 초음파 등 스페셜한 검사들 말고, 의사의 문진과 이학적 검사 등, 면담 그 자체의 진료 가격 (장비 없는 진료)을 높이는 것이다. 한국은 장비에 의존한 진료가 지독하게 과잉해 있다. 무조건 검사를 시킨다. 그로 인해 병의원의 운영비도 과잉해지고 서울 지방의 의료 격차가 갈수록 과해진다. 그 이유는 지금 체계에서 첫째 장비없는 진료의 가격 (의사의 노동 그 자체)을 거의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 스페셜 검사를 안 했다가 오진이 생기는 경우 가혹한 댓가가 따르기 때문이다. 의사의 면담 그 자체의 가치를 정당하게 인정해 주고, 스페셜한 검사와 장비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 그리고 업무상 과실치상 치사에 대한 형사 처벌같은 건 없어져야 한다.
건강보험의 붕괴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지금처럼 계속 가면 붕괴 수순인데, 민간 의료에서 모든 보험을 커버하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그때부턴 완전한 의료 재앙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전기 민영화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미국의 오바마 케어가 실패한 이유는 결국 미국의 의료보험을 장악하고 있는 거대 민영 보험사들의 로비 때문인데 한국에서 국민 건강이 보험사들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