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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입니다
참고말씀: 대하35:20,21; 스1:2,3; 전3:1; 욘3:4-6; 고전10:31; 살후3:2
읽을말씀: 요11:1-57
주제말씀: 요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첫째, 삶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입니다(1-44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요11:4)
예수님은 누가 병이 들어서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베다니 마을의 나사로입니다. 그는 평소 예수님께서 어떻게 여기시던 자였습니까? 사랑하시는 자입니다.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3절) /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5절)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4절 상)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요4절 하)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우리의 질병조차도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가 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삶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그러면서 며칠 더 그 계신 곳에 머무셨습니까? 이틀입니다.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6절) 어째서입니까?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기 때문이요,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전3:1) 하나님의 영광을 극대화하기 위함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며칠 만에 베다니에 도착하셨습니까? 나흘입니다.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17절) 즉 나사로가 죽은 지 4일째 되던 날에 도착하신 것입니다. 사실 이 때는 인간적으로 보면 어떤 때입니까? 절망의 때입니다. 하지만 이 때가 바로 누가 일하실 때입니까?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마중 나온 마르다를 향해 무슨 말씀을 선포하셨습니까? 당신은 부활이요 생명이니 누구든지 당신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살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25,26절)
마리아가 우는 것과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어떠하셨습니까?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이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33절) /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38절 상) 또한 무엇을 흘리셨습니까? 눈물입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35절) 마찬가지로 누구의 형편과 처지를 보시면서도 눈물을 흘리고 비통히 여기시며 불쌍히 여기십니까? 우리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떤 경우에라도 누구만 붙들어야 합니까?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두 자매를 데리시고 어디로 가셨습니까? 나사로의 무덤입니다. 가셔서 무엇부터 명하셨습니까? 무덤의 돌문을 옮겨 놓을 것입니다.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놓으라 하시니...”(38,39절) 괜한 헛수고일 것이라고 말하는 마르다를 향해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자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39,40절)
선(先)감사 후에,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41,42절)
무엇이라고 선포하셨습니까? ‘나사로야 나오라’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43절) 그랬더니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44절 상) 이처럼 주님의 말씀이 들려질 때 죽었던 영혼도 다시 살아날 수 있고 또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모든 것, 심지어 우리의 질병까지도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말씀만 믿고 나아가고 있습니까? 어떤 형편에서라도 오직 예수님만 붙들면서 믿음으로 나아가고 있느냔 말입니다.
둘째, 믿음의 역사에 동참하되, 사탄의 역사에는 참여치 말아야 합니다(45-57절).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만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요11:47,48)
나사로의 소생 사건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으나.”(45절) 그러나 몇몇 사람은 누구에게 가서 이 사실을 고했습니까? 바리새인들입니다.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알리니라.”(46절)
그러자 즉각 무엇이 소집되었습니까? 공회입니다.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47절 상) 그러면서 무엇을 본격적으로 논의했습니까? 예수님을 죽일 방도입니다.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53절) 이는 누구와 전혀 대조적입니까? 나사로의 일로 예수님을 믿게 된 많은 사람들입니다.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살후3:2)
이때 누가 공회 가운데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습니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입니다. 무슨 말을 했습니까? 예수님 한 사람만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끝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중의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50절)
그러나 이는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무엇을 암시한 내용이었습니까?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입니다.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51,52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가 그 해의 대제사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 직분을 맡은 자였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이 같은 의미심장한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51절 상)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습니까? 아무리 악한 자일지라도 직분을 맡았다면 이 직분으로 인하여 (아주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사명을 감당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이방 왕 고레스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는 도구로 사용되었으며,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꼐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스1:2,3)
바로 느고가 요시야 왕에게 하나님의 명으로 경고하였으며, “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성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애굽 왕 느고가 유브라데 강 가의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왔으므로 요시야가 나가서 방비하였더니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내가 오늘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와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 하나.”(대하35:20,21)
선지자 요나가 마지못해서 외친 메시지를 통해 니느웨 사람들 전체가 거국적으로 회개운동에 동참한 것처럼 말입니다.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욘3:4-6)
그러니 우리도 어찌 해야 합니까? 부족한 우리라고 할지라도 소중한 직분을 맡았다면, 이 직분을 삼가 잘 감당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믿음의 역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되, 죄 짓는 자리는 피하고 멀리하고 있습니까? 원컨대 삼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는 앉지 않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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