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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 은평문화재단 협력전시 《SeMA Collection: 홈, 스윗 홈》
전시장소 : 은평문화예술회관 전시실
전시기간 : 2025.10.16~2025.11.15
관람료 : 무료
관람시간 : 10:00 ~ 18:00
휴관일 : 일요일, 공휴일 휴관
도슨트안내 : 매일 15시 운영
전시부문 : 회화, 사진, 뉴미디어 등
전시장르 : 대외협력
참여작가 : 강홍구 문학진 상희 이상국 이제
작품수 : 12점
주최 및 후원 : 은평문화재단
전시문의 : 심진솔 02-2124-8974
관람문의 : 은평문화재단 공연예술팀 070-4174-1580
전시 소개
집’이라는 공간에 남겨진 흔적과 사라진 기억, 그리고 각자의 소망을 통해 집이 단순한 주거의 개념을 넘어 정체성과 관계, 그리고 시간의 층위를 담는 복합적인 삶의 공간임을 조명합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소장품 대여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은평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한국 근현대 화가 문학진, 이상국의 작품부터 강홍구, 이제, 상희 작가의 포스트 모더니즘적 실험적 작품을 함께 만나볼 수 있습니다.
한국 추상화가 1세대 문학진, 현대미술의 흐름에 응답하다
창간 90주년 특집 기획 | 표지화 이야기④
안현배 예술사학자
여성동아 기사 등록 : 2023. 08. 10.
1933년 ‘신가정’으로 창간한 ‘여성동아’는 올해 90주년을 맞았다. 창간호부터 1981년 3월까지 표지를 장식했던 수많은 그림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동아일보사가 발행한 여성지 ‘신가정’은 일제강점기 부당하게 폐간당했다가 1967년 복간하며 새로운 이름인 ‘여성동아’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일제강점기 시절 고급스럽고 다양한 방식으로 여성들에게 정보와 교양을 전해주려는 목표를 가졌던 ‘여성동아’는 복간 이후 고급화에 힘쓰며 분량도 크게 늘어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표지화에도 나타났다.
‘여성동아’ 시대 표지화는 신인 작가 발굴보다 한국을 대표하는 저명한 화가에게 작업을 의뢰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서양화가들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정도다. 천경자, 박항섭, 김기창, 문학진, 오승우, 김태 등의 화가가 그린, 처음 보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 큰 희열을 안긴다. 이번 호에 소개할 작가는 한국형 추상화가 문학진이다.
1968년부터 1974년까지 문학진은 10여 차례 ‘여성동아’ 표지화를 그렸다. 표지화 속 동양화와 서양화의 중간쯤 어디에 속한 이미지가 작가의 고민을 고스란히 말해준다. 2019년 95세를 일기로 영면한 문학진은 화가로서의 오랜 활동과 업적으로 한국 서양 회화의 기초를 다졌다. 1924년 출생해 1953년 서울대학교 미대 회화과를 졸업한 그는 광복 이후 한국 미술교육 1세대라고 할 수 있다. 1958년에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하고 꾸준히 학교와 화단에서 전통적인 방식의 작업과 경력을 쌓아갔다.
문학진은 1970년대까지 탁상 위에 놓인 토기, 화병, 꽃다발, 과일 등을 그리는 정물화와 그 곁의 소녀를 모델로 한 작품을 발표한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물과 정물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평온한 감정을 표현했는데, 색감이 모두 부드럽고 안정된 것이 특징이다. 이 시기의 그림들은 동양화에서 느껴지는 색의 번짐이 특징이기도 하다.
‘여성동아’ 표지화 작업은 바로 이 작업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잔잔한 색채의 배치와 함께 여성 모델의 매력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 표지화들을 통해 1970년대까지 작가의 힘이 구상미술에 집중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학진을 가톨릭 종교 화가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1982년 한국 가톨릭교회 공식 성인 영정 제1호인 ‘김대건 신부 성인화’와 ‘103위 순교 성인화’ 등 다수의 천주교 성화를 그린 바 있다. 이 그림들은 우리나라 성당에는 거의 다 걸려 있어 문학진 작품 중 가장 많이 알려지게 됐다.
동양화의 부드러운 채색 서양화 기법으로 구현
하지만 문학진은 이런 안정된 환경을 만들어놓고 고민을 시작했다. 문학진의 또 다른 얼굴이 한국형 추상화가인 것은 바로 이 고민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교수로서, 그리고 작가로 왕성히 활동하며 외국 사정에도 밝았던 그는 당시 한국과 선진국 예술의 격차를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문학진의 표지화를 보고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동양화의 부드러운 채색과 맑고 가벼운 분위기가 서양화 기법으로 구현됐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한국화 환경의 전통 속에서 제한적으로 소개되던 서양화 장르는 이렇게 유라시아 동쪽 끝과 서쪽 끝 그 어디쯤에 존재했다는 한계점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였다.
문학진과 같은 시대에 활동한 한국의 서양화가들은 동양화 특유의 기법과 철학을 서양화로 옮기는 방법을 고민했다. 세계관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목표와 함께 재료의 변화에 적응하고 여태까지 연습하지 않았던 새로운 기법들을 익혀야 했다. 동시대 서양의 최신 유행이 유입되고 소개되는 격랑 속에서 주제와 기법, 미학적인 근본을 이해하는 건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작가들에겐 힘겨운 숙제였다. 서양 전통과 한국 전통의 융합에만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을 요구하는 현대미술에 어떻게 응답할지 고민이었을 것이다.
겉으로 평온해 보이는 인물화들을 그리는 동안 문학진은 그 고민에 빠져 있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국전은 경직된 경향을 보였다. 1960년대부터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추상표현주의 바람이 불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문학진 역시 초기 입체파와 추상표현주의 작품들을 접한 후에 자신의 작업에 적용하는 시도에 착수한다.
한계를 넘어 본질에 도달할 때까지
초기 입체파는 제1차세계대전 이후 조르주 브라크와 파블로 피카소 등이 주도해 프랑스에서 전성기를 이룬 미술운동이다. 입체파의 그림은 완벽하게 전혀 다른 이미지가 나타난 것처럼 보인다. 그 속에는 시선의 변화와 종합을 통해서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있다. 한마디로 아이디어의 승리다. 오랜 기간 전통을 지켜오던 서양 미술계에 그들의 제안은 획기적이었다. 다만 이미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입체파를 받아들인 한국은 거기에만 머물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문학진은 고민하고 실행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인물이었던 것 같다. 고민의 결과가 추상회화에 반영되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문학진은 인물과 정물 등 대상을 해체하고 재해석해 새롭게 구성하는 입체주의에 기반을 두는 작업을 시도했다. 또 밝은 색채와 더불어 나이프를 사용한 질감이나 물감의 번짐 효과 등을 작품에 들여왔다. 동양화의 번짐 효과가 서양화에 섞이게 되는 지점에서 그의 색채 추상도 시작됐다.
니콜라 드 스탈(1914~1955)이라는 러시아계 프랑스 작가가 있다. 구상 회화에서 출발했던 그 역시 구상화보다 재료의 느낌과 구성의 미학을 맛볼 수 있는 추상회화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스탈의 그림들은 마치 벽을 옮겨놓은 듯 단단하고 거칠다. 색의 조합에선 리듬감이 느껴진다. 이것은 미술이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고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거나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것을 일깨워주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
문학진 역시 입체파와 마크 로스코로 대표되는 색채 추상 그리고 앵포르멜(informalism·현대 추상회화의 한 경향)을 받아들이면서 이를 융합해야 했다. 1970년대부터 시작해 1990년대까지 이어진 그의 고민은 작품으로 드러난다. 한국형 추상화의 시도와 완성이 이루어진 것이다. 90세가 넘어서도 개인전을 개최하고 작품을 발표하는 원로의 걸음 속에서, 우리는 본질을 찾아 최선을 다한 작가의 집념과 열정을 발견할 수 있다.
“나의 회화적 관심은 대상의 재현이 아니라 형상의 배치에 따른 구성의 아름다움에 있다.”
문학진이 했던 이 말은 구상화에서 벗어나 추상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고백으로 들린다. 하지만 그의 출발이 전통적인 구상화에서 아름다움을 찾아 나섰기 때문에 우리는 문학진의 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초기 정물과 구상, 인물을 그린 ‘여성동아’ 표지화, 후반부의 추상화는 모두 연결돼 있다.
작품은 경험의 결과물이다. 소중한 경험은 일견 연결점이 없어 보이는 수많은 실패가 있기에 가능하다. 한계가 많았던 초기 우리나라의 미술계에서 혼자 시도하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은 그 때문에 소중하다. 여기 문학진의 그림은 그 여정의 한 대목을 보여주고 있다.
안현배는
파리 제1대학교에서 역사학과 정치사를 공부했다. 프랑스 국립사회과학고등연구소에서 ‘예술과 정치의 사회학’을 연구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예술사학자로서 예술을 사회와 역사의 관계 속에서 살핀다. 저서로 ‘미술관에 간 인문학자’ ‘안현배의 예술수업’ 등이 있다.
강홍구 컬렉션 연구조사 가이드
글 | 박영선(사진·매체미학, 독립연구자·작가)
작성일 | 2024.12.13
1. 사전 정보
현대미술가 강홍구(姜洪求, Kang Hong Goo, b. 1956– )는 한국 사회가 후기자본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디지털 기술의 영향 아래 급변하기 시작하던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디지털 매체를 통해 당대 한국 현실 문제에 접근하는 작가들이 드물던 당시, 강홍구는 대중매체에 유통되는 시각 이미지들을 컴퓨터와 스캐너 등 각종 디지털 장치를 써서 재조직한 합성사진 연작을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이후 디지털 사진을 주요 매체로 하고 회화, 영상, 입체, 글쓰기 등 다양한 매체를 중첩적으로 활용하며 작업해 왔다. 2023–2024년에는 수묵적 방법을 현재화하는 새로운 회화 연작을 발표 중이다.
강홍구 작가 연구에서는 세 가지 점이 기본적으로 고려될 필요가 있다. 첫째, 강홍구가 창작 활동 초기에 스스로를 ‘B급작가’라고 호명한 점이다. ‘B급작가’라는 표현에는 한국 사회의 역사적 조건과 개인적 현실에 발 디딘 ‘변방’의 작가로서 자신의 길을 가보겠다는 강홍구의 정치적·미학적 입장과 전략이 함축되어 있다. 이 전략은 이후 30년간 그가 수행한 도전적인 여러 작업들을 관류한다. 둘째, 강홍구의 예술 실천에서 디지털 사진이 중요해지는 맥락이다. 그는 디지털 사진 매체가 한편으로는 글로벌한 차원에서 당대성(contemporariness)을 생산하는 1차적이고 결정적인 ‘대중’ 시각 매체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양미술사가 신화화한 고급미술의 문법으로부터 탈주해 변방으로부터의 미학적·정치적 발화를 시도할 여지가 많음을 간파하고, 디지털 사진을 주요 매체로 선택했다. 셋째, 강홍구는 자본주의, 포스트모던한 일상과 공간 변화, 대중문화와 농경문화, 디지털 사진과 그림의 관계에 대한 감각적 사유를 담은 다량의 글들을 집필해 왔다. 30여 년간 문화비평과 창작 개념이 동시에 담긴 많은 에세이를 여러 매체에 발표해 왔고, 자신의 모든 개인전 도록 서문을 직접 썼다. 10권의 단독 저서(작가 표현으로는 “대중적인 미술 소개서”)를 비롯한 다수의 공저 단행본이 출간되었다. 이 저작들은 그가 30여 년간 생산해온 시각 이미지 작품들과 교직되어 독특한 예술 실천의 장을 이룬다.
강홍구의 예술 실천은 현재진행형이다. 때문에 작가 연구에서 대표작 위주의 접근 방식은 권하지 않는다. 강홍구의 창작 주제와 방법론이 구체적으로 어떤 계기에 따라 생성, 변화하는지를 살피고, 그 운동의 저변을 관류하는 작가적 태도와 사회정치적 입장에 접근하기 위해 시각예술 작품들과 저작들을 교차하며 연구할 필요가 있다. (본 가이드의 ‘4. 작가의 저작 목록’ 참고.)
강홍구, 「포스트모더니즘 연구―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기초이론을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 석사학위논문, 1990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 사회에 수입되어 현저한 영향을 미친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을 연구한 강홍구의 석사 학위 논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발생, 개념, 인식론적 근거, 이데올로기적 성향 등을 모더니즘과의 관련 속에서 조망하고, 이질적 역사 발전 단계들이 중첩되어 있는 한국의 특수한 현실에 입각한 비판적 검토를 시도하고 있다. 1990년 전후 후기자본주의로 진입하는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강홍구가 모색한 작가적 대응의 이론적 단초를 찾을 수 있는 저작이다.
강홍구, 『강홍구 1996-2010』, 원앤제이갤러리, 2010
2010년 원앤제이갤러리에서 개최한 개인전 《그 집》에 맞추어 발간된 도록이다. 1996년부터 2010년까지 발표된 작품 도판들을 선별 수록했다. 대중매체에 떠돌아다니는 시각 이미지와 작가가 스캔한 이미지를 합성한 〈불〉, 〈나는 누구인가〉, 〈도망자〉 등 초기 연작들에서부터 디지털 사진기로 직접 촬영한 이미지를 재구성한 〈그린벨트〉, 〈한강시민공원〉, 〈드라마세트〉, 〈바다〉, 〈부산〉, 〈생선이 있는 풍경〉 연작, 도시 재개발 풍경을 다룬 〈오쇠리 풍경〉, 〈수련자/미키네 집〉, 〈사라지다〉 연작, 그리고 디지털 프린트 위에 페인팅과 드로잉을 더한 사진회화 연작 〈그 집〉에 이르기까지 15년간의 작업 흐름을 개관할 수 있다.
강홍구, 『강홍구 : 사람의 집—프로세믹스 부산: 부산 참견錄』, 고은사진미술관, 2013
고은사진미술관의 연례 기획에 초대되어 2011년 6월 무렵부터 약 1년 반 동안 부산 산동네와 매축지의 생활공간을 찍은 사진들을 발표한 개인전 《사람의 집―프로세믹스 부산》 도록이다. 작가노트, 152개의 사진 도판, 작가와의 대화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동네와 매축지 마을 사람들이 생존하기 위해 지어야 했던 ‘건축가 없는 건축’, 생활상 필요에 따라 변형되며 중층적으로 형성된 문화적 공간의 유일무이한 경관을 기록하기 위해, 작가는 문화인류학적이라 할만한 태도로 접근하고 있다. (본 가이드 ‘2. 이해를 위한 배경 정보’의 ‘프록세믹스’ 항목 참고.) 작품들은 2013년에 고은사진미술관(3.2-5.9), 청주 우민아트센터(5.22-6.29), 서울 원앤제이갤러리와 트렁크갤러리(7.4-7.3)에서 순회 전시되었다.
강홍구, 『강홍구』, 한국현대미술선 036, 헥사곤, 2017
2017년 원앤제이갤러리에서 개최한 개인전 《안개와 서리》에 맞추어 발간된 도록이다. 10년간 촬영한 고양 신도시 개발 풍경 사진 파일을 포토샵으로 재구성한 〈안개와 서리〉 연작 외에 2012년 이후 발표된 사진회화 형식의 〈녹색연구〉, 〈서울산경〉, 〈언더프린트〉 연작의 작품 도판들을 선별 수록했다.
강홍구, 『집, 꽃, 마을—은평 뉴타운의 기억 강홍구 사진전』, 은평역사한옥박물관, 2021
2021년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 개최된 개인전 《집, 꽃, 마을···》의 전시 도록이다. 작가가 2002년부터 2020년까지 은평뉴타운 재개발 과정을 촬영한 사진들을 선별·수록했다. 사진들은 2000년 초 당시 촌락 중심으로 이루어진 농경사회의 공간적 구조가 남아있던 도시 변두리 마을들이 철거되고 고층 아파트 단지가 세워진 2020년까지 약 20년간의 풍경의 변화를 보여준다. 수록된 모든 사진은, 〈그 집〉 연작에서처럼 사진 파일을 가공하고 그 위에 페인팅과 드로잉을 덧입힌 것이 아니다. 모두 그 ‘이전’의, 즉 작품화되기 이전의 디지털 사진 이미지이다. 강홍구의 이전 작품들과 달리, 적극적 정보 재조직 작업을 거의 하지 않고 분절된 프레임들을 붙이는 정도로만 최소한으로 손질된 사진들이다(「은평뉴타운 2002-2021」, 《집 꽃 마을···》 전시 도록).
강홍구, 『신안 바다 2005-2022—강홍구 작품집』, 전남 신안군, 2023
강홍구가 2005년부터 17년 동안 작업해 온 연작 〈신안 바다〉 중 선별한 작품 도판을 담았다. 수록된 작품들은 2022년 서울 원앤제이갤러리, 신안 저녁노을미술관과 암태창고미술관, 그리고 2023년 사비나미술관에서 세 차례의 개인전을 통해 발표되었다. 유년기를 보낸 고향 신안의 아름다운 풍광에 관한 생생한 기억, 그리고 개발과 관광 바람으로 변모한 현재 풍경의 기록 사이에서 생산되는 이미지들을 담고 있다. 작가는 해양 생물들의 삶과 죽음, 마을, 사람, 일 등 변방의 섬에서 영위되는 삶의 총체적 변화상을 인류학적 시선과 자신의 개인적 기억을 충돌/중첩시키며 바라본다. 신안군 섬 지도, 디지털 풍경 사진, 사진 프린트에 드로잉과 콜라주를 더한 이미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강홍구 외, 『강홍구: 어의도에서 은평뉴타운까지 30년, 강홍구의 작품세계』(eBook), 사비나미술관, 2023
작가의 30년 창작활동에서 생산된 작품들과 전시 활동 자료 등 기록 전체를 500여 쪽에 걸쳐 정리한 책이다. 강홍구의 작품세계를 주요 시기별로 나누고 작가노트, 주요 작품 도판, 작품 개요와 비평문, 작가 연보 등을 수록했다. 모든 텍스트는 영역문을 덧붙였다. 현재까지 발간된 강홍구 연구 자료 가운데 가장 총괄적이고 체계적인 판본이라 할 수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2–2023 작가 조사-연구-비평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서, 사비나미술관이 발행했다. 온라인 서점에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다.
2. 이해를 위한 배경정보
강홍구의 삶
1957년 전남 신안군 지도읍에 속한 작은 섬 어의도의 소농 집안에서 출생하여 유년기를 보냈다. 이후 목포중고와 목포교육대를 졸업하고 6년간 미술 교사 생활을 한 뒤 홍익대 서양화과에 다시 입학했다. 재학 시 국내 포스트모더니즘의 본격적 발현으로 평가되는 그룹 ‘뮤지엄’(1987년 최정화, 이불, 고낙범, 홍성민, 명혜경, 노경애, 정승 등이 결성)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1988년 35세에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연구논문으로 홍익대 대학원 서양화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 스스로를 ‘B급작가’로 호명하며 대중문화에서 소비되는 시각 이미지들을 재조직한 합성사진 연작을 발표했다. 이후 21세기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대중문화와 일상성, 도시화에 따른 생활공간 변화를 다층적으로 탐구한 디지털 사진 기반 이미지 연작들을 발표해 왔다. 2018–2020년까지 부산 고은사진미술관 관장을 역임했다. 2022–2023년에는 2005년부터 17년 동안 작가의 고향에 대한 유년 기억과 현실 풍경을 주제로 작업해 온 〈신안 바다〉 연작을 정리해서 세 차례의 개인전으로 발표했다. 2023–2024년에는 고향 신안의 구름과 바다를 현재화된 수묵적 방법으로 그리는 새로운 그림 연작 〈구름, 바다〉를 발표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강홍구는 1988년 홍익대 대학원 재학 시절, ‘한국 포스트모더니즘의 본격적 발현’으로 평가되는 ‘뮤지엄’ 그룹의 《U.A.O.》전에 참여했다. 1990년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연구한 석사 학위 논문을, 1995년에는 포스트모더니즘과 팝아트의 대표 작가인 앤디 워홀에 대한 소개서 『앤디 워홀―거울을 가진 마술사의 신화』를 단행본으로 발간했다. 그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은, 1980–90년대 한국 사회에서 소비자본주의가 본격화하던 격변기에 기존 모더니즘 미술 제도에 저항할 정치적·미학적 전략을 만들어가는 데 참조할 ‘대안의 한 가능성’으로서,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주요 사항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 담론과 실천은, 강홍구 작업의 축인 (‘B급작가’라는 언명에 함축된) 의도적 비속성, 서유럽 모던이 추구한 진리의 일원성에 대한 불신과 조롱에서 나오는 유희적·양가적·다층적·탈주적 태도, 한국적 전통과 서구 근현대 사이의 충돌에 대한 숙고, 소비사회의 일상성에 대한 집요한 관심 등을 이해하기 위해 1차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B급작가
강홍구는 1996년부터 제작한 〈나는 누구인가〉, 〈도망자〉 등의 합성사진 연작을 발표하는 두 번째 개인전 《위치, 속물, 가짜》를 1999년 금호미술관에서 개최했다. 전시 리플릿에 쓴 글 「펄프 픽처」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A급 미술이 아니라 B 아니면 C급 미술이다.” 그는 스스로를 B급미술을 하는 ‘B급작가’라고 불렀다. ‘B급작가’라는 자기 호명에는, 서구 중심 예술사에서 설정한 소수의 천재적 창조자 즉 ‘A급작가’ 신화와 모더니즘적 고급미술의 문법에서 탈주하여, 시각 이미지 생산자 또는 시각 정보의 재조직자로서 자신의 길을 가보겠다는 강홍구의 작가적 태도와 정치적·미학적 전략이 함축되어 있다. 이러한 ‘B급’ 전략은, 그가 자본주의 상품 논리에 따라 쉽게 사라져 버리는 광고사진과 영화 스틸을 비롯한 포르노 이미지·만화·낙서 등 비속한 시각 이미지들과 시각 정보를 재조직하거나, 대중의 평범한 일상을 둘러싼 생활공간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디지털 사진을 주요 매체로 삼아 탐구해 온 그동안의 작업 과정을 관류한다.
일상, 일상성, 공간
강홍구의 30여 년간의 작업 과정에서 소재와 사용 매체, 형식 면에서의 새로운 시도는 자주 발견된다. 하지만 초기 합성사진 연작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전체 작업에서 집요하게 다루어지는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일상생활’ 또는 ‘일상성’이라 할 수 있다. 앙리 르페브르는 『현대세계의 일상성』에서 현대 세계를 ‘소비 조작의 관료사회’로 정의한다. 국가와 자본이 결탁한 익명의 관료적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해, 현대인의 일상은 노동 시간과 그것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여가 시간으로 분리되고, 사회적 자아와 개인적 자아로 분열되며, 이 양자는 시스템에 의해 엄격하게 관리되고 최대한으로 상품화된다. 하지만 이러한 일상의 배후는 거의 의식되지 못한다. 정치적·상업적 광고가 선택의 자유와 행복이라는 환상을 부추기며 대중의 소비 욕구를 조작하는 장이 바로 현대인의 일상이자 현대세계의 일상성이다. 그런데 일상은, 그것을 비일상적으로 접근할 경우 은폐된 국가-자본 권력 관계의 역학이 폭로될 수 있는 변혁 가능성의 장이 되기도 한다. 강홍구는 이러한 일상의 양면성을 간파하고 일상 읽기와 일상 뒤집기와 낯설게 하기를 다층적으로 시도해 왔다. 그의 일상성 탐구는 도시 재개발과 인간-공간 관계에 대한 일종의 사회학적·인류학적 접근을 통해 심화된다.
디지털 사진
강홍구에게 디지털 사진은 세계에 대한 파편적 시각 정보를 산출하고 그 정보를 수월하게 재조직할 수 있는 매체로서 기능한다. 중성적인 그러나 믿을 수 없는 대중 영상 이미지에 후반작업을 가함으로써, 자신의 개인적 시선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개입시키려는 작가의 의도를 실행하기 위해 그는 디지털 사진을 선택했다. 따라서 그에게 디지털 사진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사진을 뜻하지 않는다. 2003년 개인전 《드라마 세트》 전시 도록에서 강홍구는 “사진을 찍고, 사진에 약간의 조작을 가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현실 자체의 죽음, 그러나 죽음이 아닌 다른 것으로 느껴지는 무엇이었다.”고 말한다. 이 죽음 아닌 다른 무엇은 자본주의적 교환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이미지화된 사물, 즉 사용 가치의 구체적 맥락이 제거된 파편적이고 추상적인 상품 형식과 관련된다. 작가는 자신이 제작한 사진 이미지가 “파편화된 세계를 파편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위장”일 뿐이며, 이 위장은 사진의 인증력을 비롯한 사진에 기반을 둔 모든 시각 매체들이 제공하는 정보에 대한 ‘불신’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강홍구의 이러한 매체적 입장은 후기자본주의 대중사회에서 ‘창조’가 아니라 ‘검색’, ‘재조직’, ‘충돌’, ‘쐐기박기’를 수행하는 ‘B급작가’의 미학적·정치적 전략에서 비롯된다.
도시 재개발
한국에서 도시 재개발은 1976년 박정희 유신시대에 도시계획법과 별개로 추진법이 제정되어 그 강력한 법적 지지대를 갖게 되었고, 2000년대 들어 수도권 변두리를 비롯한 전국 군소도시에서 광범위한 도시 재개발이 진행된다. 강홍구는 2000년 전후부터 주로 서울 변두리 지역에 거주해오면서 도시화로 인한 도시 변두리 생활공간의 폐허화와 폭력적인 도시 재개발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이 경험은 각 방법적 차이는 있지만 공간 파괴와 변화를 기록/기억하고 그 기이한 풍경의 배후를 탐구하는 일련의 작업들인 〈오쇠리 풍경〉, 〈미키네 집〉, 〈수련자〉, 〈사라지다―은평 뉴타운에 대한 어떤 기록〉, 〈그 집〉, 〈안개와 서리〉 등을 끌어가는 동력이 된다. 애초에는 전통적인 사진의 기록성에 기댄 작업을 할 생각이 없었으나, 원주민들이 지켜오던 농경문화의 공간 감각과 구조를 지닌 변두리 마을들이 도시 재개발 사업에 의해 순식간에 파괴되고, 원주민들은 세간조차 챙기지 못한 채 대부분 어디론가 쫓겨나가고, 그 대신 외지인들로 채워지는 비싼 고층 아파트 단지가 세워지는 충격적 풍경을 목도하면서 일단은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강홍구는 지금도 진행 중인 은평뉴타운 재개발 과정을 2002년부터 2021년까지 기록한 사진들을 구역별로 정리하여 2021년 개인전 《집 꽃 마을···》에서 발표했다. 은평구 도시 재개발은 강홍구의 30여 년의 작업 과정에 있어 주제와 형식 면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 중 하나로 추정된다. 이후 강홍구의 예술 실천에서 ‘우리 삶을 둘러싼 공간 탐구와 기록’이 큰 축을 이루게 된다.
프록세믹스(proxemics)
‘공간사용법’, ‘공간학’이라고 번역된다. 강홍구가 도시 재개발을 다룬 일련의 연작들에 이어 인간의 생활공간 자체에 대한 진지하고 지속적 탐구를 수행하는 데 영향을 미친 개념으로,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이 저서 『숨겨진 차원』에서 제안했다. 홀에 따르면, 커뮤니케이션은 문화의 핵심이며 삶 그 자체인데, 서로 다른 문화는 노력하면 공유되거나 비슷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가 다른 개인이나 집단은 동일한 감각자극에 대해 서로 다른 감각적 경험을 하게 되며, 인간이 만드는 건축물과 도시환경은 문화의 이러한 선택적 여과 과정이 표현된 결과물이다. 따라서 문화가 다르면 공간이 달라지고, 다른 공간은 다른 사람을 만들어낸다. 문화-공간-경험-사람 간의 순환적 상호작용 때문에 획일적 도시 재개발이나 문화통합은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은 자신의 문화적 패턴에 맞는 적절한 공간을 지키려는 욕구가 있는데, 도시건설과 재개발이 이 근본 욕구를 무시한 채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강홍구는 2013년 개최된 《사람의 집―프로세믹스 부산》 전시 도록에서 사람의 집을 찍는다는 것은 “마을을 이루는 집들이 가지는 건축적 원초성, 혹은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2016년 개인전 《청주―일곱 마을의 도시》에서 청주라는 하나의 대도시를 ‘문화가 다른 일곱 개의 시골마을’로 기술·묘사하는 독특한 방법들, 그리고 2022–2023년에 발표된 〈신안 바다〉 연작의 전체 구성이 총체성을 띠는 측면 등을 프록세믹스의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연작 〈그 집〉
2010년 원앤제이갤러리에서 개최된 동명의 개인전에 발표된 연작의 이름이다. 강홍구의 전체 작업 흐름에서 주목할 만한 형식적 변화를 보여준다. 이 연작에서 강홍구는 전국 각지의 재개발 현장에서 촬영한 디지털 컬러사진 파일을 흑백으로 전환하고 프레임을 이어 붙여 출력한 흑백사진 바탕 위에 사진 이미지를 따라서/지우면서, 포개면서/어긋나게 물감으로 색칠하며 그림을 덧그리는 방법을 썼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사진을 기반으로 한 페인팅과 드로잉 이미지” 연작이다. 강홍구의 일관된 미학적 전략은, 통치의 장치 또는 지배이데올로기라는 배후에 의해 작동되는 사진 기반 대중적 시각 이미지의 공식적 사실성에 작가의 개인적·주관적 시선과 기억을 최대한 충돌시키려는 것이다. 〈그 집〉에서는 이 전략이 합성사진·디지털 사진 연작들에서처럼 디지털 이미지와 정보의 재조직이 아니라, 사진과 그림을 중첩시키는 형식적 시도를 통해 발현된다. 이 중층적 이미지들은 사진도 아니고 그림도 아닌 제3의 이미지로서, 사진과 회화의 매체적 특성들을 교차시키고 한편으로 그 틈새를 증폭시키며 탈주의 여백을 남겨둔다. 이 형식은 〈녹색연구 1, 2〉, 〈언더프린트〉, 〈서울산경〉, 〈신안 바다〉 연작에서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연작 〈구름, 바다〉
2023년부터 발표 중인 새로운 그림 연작이다. 강홍구는 작가 경력을 회화로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 현실에 대한 인식과 ‘B급’ 작가 의식에 따라 후기자본주의의 포스트모던한 대중문화와 부유하는 일상성을 다루기에 적합한 디지털 사진으로 주요 매체를 바꾸었다. 2010년부터는 사진과 회화 매체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숙고하며 중첩시키는 작업들을 본격적으로 해왔다. 2023년 개최된 개인전 《무인도와 유인도―신안바다Ⅱ》에서부터 고향 바다의 풍광을 담은 (사진이 개입되지 않은) 그림 연작 〈구름, 바다〉를 일부 발표하기 시작했다. 2024년 원앤제이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구름, 바다, 무인도》의 발표작들은 거의 전부 〈구름, 바다〉 연작에 속한다. 면으로 만든 캔버스, 아크릴릭 물감과 물을 매체로 수묵적 방법을 현재화하여 고향 풍광에 관한 유년의 기억과 함께 유동하는 신안 바다와 구름의 기운생동을 그려내고 있다.
3. 관련 키워드
B급작가, 변방, 한국적 근대성과 전통, 뮤지엄 그룹, 《U.A.O.》전, 포스트모더니즘, 팝아트, 포스트모던 리얼리즘, 포럼A, 신자유주의와 소비사회, 상품화, 대중매체와 대중문화, 시뮬라크르, 합성사진, 키치, 디지털 사진, 이미지와 정보의 재조직, 유희성/양가성/탈주, 일상성과 공간변화, 포스트모던 사회학, 도시 재개발과 농경문화, 마을, 프록세믹스, 사진적 기록과 개인적 기억, 카메라 아이, 수묵산수와 풍경
투박함 속에 숨어 있는 따뜻한 시선... 이상국이 그린 우리네 풍경
서양화가 이상국 10주기 기념전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17일 개막
허윤희 기자
조선일보 기사 입력 2024.07.17. 00:41
이상국, '공장지대 (구로동에서)'. 1978, 마포에 혼합재료, 59×81cm.
이 작품에는 1970년대 산동네와 공장 지대가 화폭 안에 빽빽하게 모여 있다. 투박하지만 따뜻한 시선이 담긴 삶의 터전이다. 서양화가 이상국(1947~2014)은 소시민의 생활 주변과 자연 풍경을 절제된 형태와 질감으로 표현한 작가. 그의 작고 10주기를 맞아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기념전 ‘그림은 자유’가 17일 개막한다.
생전 이상국은 “일상에서 매일 보던 장면이 주는 감흥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나고 자란 서울 서북부 산동네, 주변에서 만난 이웃, 인근 산과 나무를 쓱쓱 그렸다. 풍경을 원근법적으로 재현한 것이 아니라, 녹록지 않은 현실을 붓질로 어루만지고 치유하고자 했다. 1990년대 이후엔 자연을 해체하고 재구성해, 형상은 사라지고 뼈대만 남긴다. 1991년 인터뷰에서 그는 “1980년대까지 나는 그림을 집짓기처럼 구축하는 과정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풍경화는 해체되는 방식으로 그리고 있다”며 “해체 과정에서 가슴 아픈 느낌과 동시에 새로운 에너지를 느낀다”고 했다.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시기별 대표작 40여 점이 나왔다. 2014년 3월 5일 세상을 떠난 작가가 작고 일주일 전 완성한 미공개 유작 ‘무제’도 처음 공개된다. 전시는 8월 4일까지. 17일 오후 3시에는 김복기 아트인컬처 대표가 가나아트센터 3층 아카데미홀에서 ‘이상국의 삶과 작품세계’를 주제로 특강을 한다.
New Epoch : 영 아티스트 상희와 인터뷰
editor 강예솔
마리끌레르 코리아 2024년 08월 31일
미디어 아티스트 상희의 작품은 그저 바라보는 것, 혹은 한 번의 체험으로 끝나지 않는다. VR, 설치, 게임 등 그는 다양한 매체를 미술 안으로 끌어들이며 동시에 관객과 밀접한 관계를 만들어낸다. 그의 작품 안에서 작가와 관객은 함께 머물며 우리의 세계를 창조해낸다. 보다 넓고 새로운 지금의 미술이 그의 작업에 담겨 있다.
Q.그러니까 방에서 거실로 출근을 하는 거죠? 거실에 작업 공간을 마련해 두었어요.
무조건 작업실이나 다른 공간으로 나가야 작업이 된다고 하는 분도 있던데, 저는 집에서 해도 괜찮더라고요. 제 책들도 다 여기에 있고, 그래서 더 편하게 느껴져요. 테이블, 그 위에 컴퓨터, 옆에는 VR 기계. 이렇게 두고 작업하고 있어요.
Q.미디어 아티스트의 작업실은 아주 미니멀할 수도, 방대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느 쪽인가요?
항상 미니멀을 꿈꾸지만, 맥시멀에 가까워요.(웃음) 일단 제가 기계를 되게 좋아해요. 작업하며 인터페이스 같은 걸 시도하길 즐기거든요. 입력장치도 사서 해보고, 아두이노 같은 피지컬 컴퓨팅(physical computing) 작업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부품으로 점점 채워지더라고요.
Q.필모그래피를 보니 작가로서 첫 활동은 사진으로 시작했고, 이후 VR이나 영상, 설치 등으로 방식이 다양해지고 있어요. 장비가 많을 수밖에 없겠어요.(웃음)
맞아요. (웃음) 2018년쯤에 사진 작업을 시작했는데, 저는 지금도 제 작업이 일종의 사진 같다는 생각을 해요. 인터랙티브 VR 작업인 <원룸바벨>도 라이다 스캐너(LiDAR Scanner)라는 3D 스캐너를 썼는데, 저는 그 스캐너를 처음 봤을 때 카메라 같다고 생각했어요. 빛을 이용해 공간을 스캔하는 건데, 물론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일단 캡처해서 고정된 공간 데이터를 받는 형식이거든요. 그런 지점에서 그 스캐너가 더 흥미롭게 느껴진 것 같아요. 한편으로 사진을 할 때 사진이란 매체는 좋아하면서도, 단지 평면으로 머무는 이미지를 끄집어내거나 확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이유로 다른 매체를 배워보고 싶었고, 그러다 스캐너를 발견하게 된 거예요. 그렇게 VR로 작업이 확장된 거고요.
Q.첫 VR 작품이자 대표작인 <원룸바벨>은 어떤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작업인가요? 원룸과 바벨을 연결 짓게 된 연유가 궁금합니다.
원룸으로 탑을 쌓아보고 싶다, 이런 욕구를 단초로 출발했어요. 누구나 원룸 같은 좁은 공간에 살면 ‘방이 하나만 더 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다음은 투룸을 알아보고, 방 개수를 늘려가는 게 바람이자 삶의 주기이기도 한데요. 각자의 원룸을 이으면 아파트가 되고, 거대한 건물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생각으로 처음에는 확장된 큰 집을 떠올렸어요. 그러다 세로로 계속 쌓아서 탑이 되는 형상이 더 재미있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고요. <원룸바벨>이라는 이름은 수직적인 이미지를 생각하다가 나왔어요. 그리고 배경은 심해로 만들고요. 관객은 VR 기기를 썼을 때 원룸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듣게 돼요. 그래서 마치 그 안의 일을 모두 이해한 것 같고, 알 것만 같은데, VR 기기를 벗으면 그 공간이 사라져요. 그게 바닷속을 잠수하고 나왔을 때와 비슷한 경험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심해를 배경으로 하면서, 해파리를 찾으며 한 층씩 올라오면 모든 공간을 둘러볼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게 됐어요.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실제 원룸에 사는 이들을 인터뷰하고, 이를 통해 획득한 문장들을 작품 안에 남겨두었어요.
인터뷰를 하면서 신기한 점이 23명의 인터뷰이가 각기 다른 경험을 하면서도 공유하는 일관된 정서가 있는 거였어요. 그건 자기 공간에서 나름대로 삶을 꾸려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여기서 계속 살게 될 것 같다는, 이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어요. 그런 게 지금의 청년 세대가 공통적으로 가진 정서가 아닐까 싶었고, 이 정서를 반영한 문장들을 <원룸바벨> 속 4개의 방에 남겨두었어요. ‘내 집은 아직 없는 것 같다’ ‘이곳이 집이 아니라 꾸미지 않고 그냥 산다’ ‘여기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식의 말들을요.
Q.이 작품은 미디어 아트 공모전 ‘2023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Prix Ars Electronica)’ 특별상 수상과 베니스 국제영화제 국제 경쟁 부문에 초청이라는 성과를 이뤘습니다. 어떤 성과를 기대하고 출발한 건 아니겠지만, 이러한 결과들이 작가로서 작업하는 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사실 미술 작업이라는 게 전시가 끝나면 더 이상 보여줄 수 있는 장소가 없잖아요. 작가로선 늘 이렇게 열심히 만들었는데, 보여줄 수 있는 게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싶거든요.(웃음) 심지어 저는 VR 작업이니까 아무리 오래 전시해도 일정 이상의 관객을 만나기 어려워요. 그래서 이 작업을 좀 더 많이 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출품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얻었어요. 어안이 벙벙하달까요. 결과적으로 많은 분의 주목을 받으면서, <원룸바벨>을 선보일 수 있는 전시를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된 게 가장 큰 기쁨이지 않나 싶어요.
Q.다음 시리즈로 <Worlding…>을 발표했습니다. <원룸바벨>을 통해 쌓은 경험을 반영한 작업이라고요.
<원룸바벨>은 헤드셋만 있는 작업이거든요. 그런데 컨트롤러, 즉 손이 없는 상태인데도 관객이 무의식적으로 계속 손을 뻗더라고요. 이를 보면서 VR의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는 손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럼 다음에는 손을 가지고 하는 VR 작업을 해야겠다 싶어서 나온 게 <Worlding…>이에요. <Worlding…>은 플레이어가 거인을 묻는 파수꾼이 되는데요. 방식으로 설명하자면 핸드 트래킹을 써서, 그러니까 주먹을 쥐고 포인팅을 하면서 땅을 파서 쌓아 올려야 해요. 가상 세계에서 실제 신체를 활용해 노동을 하는 거죠. 그리고 그 결과로 지도가 프린트돼요. 등고선 같은 이미지가요. 이렇게 관람객이 플레이어로 참여해 각자 완성한 지도를 전시장에 붙입니다.
Q.가상의 공간에서 어떤 체험을 한 관람객이 물리적 형태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셈이네요.
VR 작품은 대개 한 번의 체험으로 끝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게 휘발되는 게 아니라 전시장에 계속 쌓이는 VR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 체험의 흔적을 고민하다가 지도라는 방식을 떠올리게 된 거예요.
Q.그 지도라는 키워드가 확장된 방식이 다음 작품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에 담깁니다.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는 <Worlding…>에서 다룬 지도라는 키워드를 플레이어의 행위로 만든 작품이에요. 이건 VR이나 디지털 게임이 아니라 오프라인 게임인데요. <원룸바벨>부터 공동 기획한 성훈 작가, 김지연 디자이너가 함께한 작업으로, TRPG라는 보드게임을 차용해 만들었어요. 일반적으로 게임을 하면 내가 안 죽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 그래야 게임을 계속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TRPG는 다 같이 대화하면서 재미있는 얘기를 만드는 게 중요한 게임이에요. 저는 그 형식이 흥미롭더라고요. 함께 무언가를 공동으로 만든다는 경험을 게임에서 한다는 게 미술적이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차용했고, 방식은 다음과 같아요. 성훈 작가랑 제가 번갈아 퍼포머가 되어 관객과 일대일로 플레이를 해요. 1시간 30분 정도 계속 대화하는 거죠. 예를 들어 지금 눈앞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싸우고 있고, 그 둘 뒤에 리어카가 있다. 원하면 리어카를 봐도 되고 아니면 그냥 지나가도 된다. 이렇게 부여된 상황에서 모든 건 관객이 말하는(선택하는) 대로 돼요. 그리고 그 말의 기록으로 전시장 벽에 설치한 거대한 지도가 점점 채워지는 방식이에요. 말하자면 이 작업은 관객이 받아들이기에 따라 퍼포먼스이기도, 게임이기도, 설치 작품이 될 수도 있는 거죠.
Q.관객이 밀접하게 참여하는 형태의 작품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어요. 그렇기에 관객의 반응이 작업에 미치는 영향이 꽤 클 것 같아요.
특히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를 통해 느끼는 바가 컸어요. 미술에서는 작가와 관객이 작업에 대해 터놓고 얘기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대개는 “작업이 어땠어요?” 하고 물으면 “좋았어요” 이러고 도망가는.(웃음) 반대로 생각해보면 제가 관객이어도 그럴 것 같은 거예요. 전시장이라는 공간이 그렇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좋았던 게, 1시간 30분 동안 얘기하다 보니 끝나면 관객과 제가 꽤 깊은 라포를 형성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무척 자연스럽게 이 작업에 대한 소회를 공유하게 되고요. 항상 관객이 작업을 플레이하고 떠나는 경우가 많았고, 퍼포먼스 작업을 해보니 관객이랑 이렇게까지 가까워질 수 있구나 싶었어요. 그 전시의 감상이 꽤 오래갈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Q.VR과 보드게임을 활용한 작업을 하면서 부딪히는 질문이 있을 것 같아요. 이것이 미술인지 아닌지, 창작인지 개발인지에 대해서요.
예술의 역사를 돌아보면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챌린지가 따르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에 대한 증명은 작업하는 작가들이 해내야 하고요. 그것이 예술적 매체라는 걸요. 그런데 한편으론 게임도 그렇고 VR도 그렇고, 이게 예술인지 아닌지 얘기하는 것보다 그 매체로 어떤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집중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 행위가 예술적이면 예술이 되는 거죠. 물론 작가 스스로 납득하는 것도 중요해요. 저도 매번 스스로 ‘이걸 왜 VR로 만들지?’라는 질문을 하거든요. 그에 대한 답이 나와야 작업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Q.다음으로 어떤 작업을 준비하고 있나요? 계속해서 연결되고 확장되는 세계가 어디로 나아갈지 궁금합니다.
늘 작업의 출발점에서 제가 다루고 싶은 키워드나 이야기를 관객이 가장 잘 경험하게 하는 매체를 고민해요. 제 작업과 더 밀접해지기를 바라면서요. 이러한 방향에서 <원룸바벨> <Worlding…>에 이은 VR 작품이 11월에 나올 예정이에요. <언리얼리스트의 유럽>이라는 작업인데, 이로써 VR 3부작을 완성할 계획입니다. 기후 위기로 해외여행이 불가능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일종의 블랙코미디 형식의 작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리고 <원룸바벨> 때부터 협업한 성훈 작가와 컬렉티브 그룹 ‘교각들’을 만들어서 또 하나의 신작을 만들고 있어요. 버추얼 캐릭터의 안팎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작업이 될 것 같아요.
이제 Leeje
화가
이제Leeje는 불확실한 세계 속의 일상적 경험과 몽환적 상상을 현실감 있는 이미지로 그리며, 동시대의 정동을 포착하기 위해 회화의 매체적 확장 가능성을 탐구한다. 그에게 "회화"는 존재의 모호성을 감각하는 사건이자 바깥 현실과 공명하는 접속의 장이며, "회화하기"란 팽창하고 분열하는 세계로부터 잠시 물러나, 다양한 주체들과 그들의 시공간에 접근해 보려는 실천이다.
약력
학력
2004 국민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졸업, 서울, 한국
2002 국민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졸업, 서울, 한국
개인전
2025 《밤의 유산》, MMCA 창동레지던시 전시실, 서울, 한국
2023 《아직 약간의 빛》, 에이라운지, 서울, 한국
2021 《페인팅 기타 등등》, 산수문화, 서울, 한국
2017 《손목을 반 바퀴》, 갤러리조선, 서울, 한국
2015 《폭염》, 갤러리버튼, 서울, 한국
2014 《온기》, 갤러리조선, 서울, 한국
2010 《지금, 여기》, OCI 미술관, 서울, 한국
2009 《꽃배달》, 갤러리킹, 서울, 한국
2006 《풍경의 시작》, 대안공간 루프, 서울, 한국
2005 《우리의 찬란한 순간들》, 조흥갤러리, 서울, 한국
단체전
2024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북서울미술관, 서울
정거장:이미지 커뮤니티, 13회 미디어시티프리비엔날레, 서울
림보, LDK, 서울
2023 최민 컬렉션: 다르게 보기,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22 워키토키쉐이킹, 보안여관, 서울
2020 자연을 들이다 : 풍경과 정물,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
2019 Stranger Than Paradise, 주황 이제 2인전, 보안여관, 서울
회색의 지혜,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파주
2016 트윈 픽스, 하이트컬렉션, 서울
2016 메이디 인 서울, 메이막 아트센터, 프랑스
2014 제4회 APAP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 안양파빌리온, 안양
2014 관람자들, 두산아트센터, 서울
2011 페인터즈, PKM 갤러리, 서울
2010 직관, 학고재, 서울
2010 나는 너를 놓지 않는다, 이솝 이제 2인전, 아트스페이스 풀, 서울
2006 친숙해서 낯선 풍경, 아르코미술관, 서울
2005 Portfolio2005,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04 이야기하는 벽, 아르코 미술관, 서울
2003 물 위를 걷는 사람들,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01 시차, 그-거, 대안공간 풀, 서울
전시 외 활동내역
출판
2024 『부표 01 / 이제 ... 우연과 상상』, 보안북스
2022 『Strangers Than Paradise』, 미디어 버스
레지던시
2025 금천예술공장
2024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 입주작가 2023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수상·선정 및 소장 내역
수상
2019 종근당예술지상
2014 63아트 뉴아티스트
2010 OCI미술관 영크리에이티브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OCI미술관, 한화리조트, 종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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