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비가 쏟아지더니 이번 주에는 무더위가 찾아왔습니다. 본격적인 여름으로 접어든 거지요. 여름은 열매의 옛말이기도 합니다. 자연과 더 밀착해 살았던 옛 어른들은 무더위 속에서 실하게 익어가는 열매를 보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번 주 주말매거진에서는 '수확' 여행을 주제로 삼았습니다.
복분자, 자두, 블루베리처럼 제철을 맞은 과실(果實)은 물론 연중 내내 수확하는 버섯 수확 체험여행입니다. 아이들을 데려가면 좋겠죠. 우선 '체험여행 천국' 경북김천의 자두·버섯 수확 체험을 소개합니다.
세포 어느 한구석에 이 과일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었을까. 귀엽고 통통하고 투명하게 푸른 아기 자두와 눈을 맞추는 사이 입에 침이 확 고였다. 올해 신록은 이제 끝인가 했더니 덜 익은 자두 피부가 여린 새싹 빛깔을 똑 닮았다. 때 이른 탐심(貪心)에 빠졌던 마음이 경북 김천 '양각골 자두농원' 최만동씨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 물 올라 곧 '색깔'이 들 자두. 아직은 신록의 연두를 지녔다. 김천 '양각골 자두농원' 최만동씨는 "6월 28일쯤 수확이 가능할 것 같다"고 가늠했다. / 조선영상미디어 김승완 기자 wanfoto@chosun.com
"색깔이 오고 있어. 색깔이…." 도시 사람 눈엔 언제 익을까 싶은 연둣빛 자두 어디에 '색깔'이 오고 있다는 건지 모르지만 최씨는 "일주일 있으면 '대석' 종부터 수확이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자두는 장기 저장이 안 되기 때문에 '제철'에만 맛볼 수 있고 그래서 수확 체험이 더 인기다. 가장 이른 대석 다음엔 홍로센, 포모사, 미금, 피자두가 8월 초까지 순서대로 이어진다.
자두에 홀렸다고, 김천에 자두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김천은 따서 먹는 체험 여행 하기 아주 편한 도시예요. 김천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소비자와 농가를 연결해주는 '사이버 농산물 장터'를 운영 중인데 여기 참가하는 50여 개 농가가 대부분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든요."
김천시 농업기술센터 농업경영담당 전인진씨의 '자랑'을 따라 두 번째 수확 체험을 위해 버섯 농장으로 향했다. 축축한 흙 바닥 위에 나란히 줄 맞춰 앉아 있는 톱밥 원기둥 옆에 주먹 쥔 아기 팔뚝 같은 버섯들이 뽕뽕 솟아 있다. 저마다 갈 방향을 알고 있는지 생동감으로 가득 차 삐뚤삐뚤 하늘로 향한다. 톱밥을 뭉쳐 만든 버섯 배지(培地)를 하나 얻어다 집에서 표고버섯을 키워봤다는 김천시청 새마을문화관광과 김나형씨는 "뻥튀기처럼 금방 자라더라고요."라고 했다.
줄줄이 자라고 있는 표고버섯은 바람 채운 풍선처럼 팽팽했다. 김천시 어모면 버섯 농장 '버섯나루' 이상철씨가 톱밥에 달린 표고버섯을 하나 꺾더니 먹어보라며 건넸다. 작은 조각을 찢듯이 손으로 잘라서 그대로 씹어보라는 것이다. "농약이고 뭐고 없으니 그냥 드시면 됩니다."
백설기 뜯어 먹듯 버섯 갓 한 귀퉁이를 찢어 입에 넣었다. 입 안에서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내며 속살 하얀 표고버섯이 부서졌다. 버섯의 맛은 고소함이 전부. 단순한 맛과 달리 향은 다양하고 강렬했다. 버섯이 빨아들인 참나무 톱밥과 그 아래 흙의 기운이 입안에서 '뻥'하고 터진 듯했다. 향은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목과 코 사이를 맴돌았다.
'버섯나루' 표고버섯은 톱밥―지면(地面) 재배 방식으로 기른다. 통상적으로 표고버섯은 참나무를 잘라 재배하는데 버섯 기르기 적당한 크기의 원목을 구하는 데 품이 너무 많이 든다는 단점을 보완한 방식이다. 이씨는 원목 대신 톱밥으로 배지를 만들어 이를 봉지에 담아 '모조 통나무'를 만들어 쓴다. 쪼그리고 앉아야 하는 땅 위에 톱밥 배지를 늘어놓고 기르는 이유에 대해 이씨는 "땅의 기운을 받아야 버섯이 딱딱하니 잘 큰다"고 했다. 땅 위에 배지를 놓는 '지면 재배' 대신 '시설 재배'를 해봤더니 "맛 없고 매가리 없는 '물버섯'이 너무 많이 나왔다"는 설명이었다. 이렇게 버섯나루 농장 땅에 앉아 제 몸에서 버섯을 '기르고' 있는 배지는 8만5000여 개에 달한다.
깊은 바다 산호를 닮은 '녹각영지버섯'은 가격이 비싸(100g 3만5000원) 체험까지 진행하긴 어렵지만 항암성분으로 알려진 베타글루칸 함량이 일반 영지버섯보다 20배나 많아 사가는 이들이 많다. 물에 넣어 끓여 먹는데 이씨는 "두 개 넣어 끓이면 두 말(약 36L) 넘게 나온다"고 했다.
버섯 수확 체험에 오면 한 사람당 표고버섯 500g 한 봉지를 1만원에 가져갈 수 있다. 나무에 달린 과일을 따거나 땅에 뿌리내린 야채를 뽑는 것과는 방식이 다른, '꺾기' 방식으로 수확한다. 우선 배지를 통째로 들어서 딸 만한 크기의 버섯을 고른다. 배지 하나에 보통 많게는 7개 정도 버섯이 솟아 있는데 그중 '덩치'가 큰 것은 두 개 정도다. 왼손으로 배지를 잡고 덩치 큰 버섯 밑동을 엄지와 검지로 잡은 다음 비틀면 똑 떨어진다. 배지에 종균을 남겨둔 버섯은 몇 주 지나 또 전처럼 자라난다. 이씨는 "갓 지름이 5~7㎝ 정도인 표고버섯이 따기 적합하다"고 했다.
김천에서 바로 따서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은 김천 대표 작물인 포도 자두는 물론 참외 복숭아 살구 고구마 블루베리 호두 매실 사과 오미자 오디 등 30여 종에 이른다. 김천시농업기술센터 기술보급과(054-420-5061)에 전화하면 철 따라 수확 체험하기 좋은 농가를 연결해준다.
자두_ '양각골 자두농원'의 규모는 약 9920㎡(약 3000평) 정도로 크지 않은 편이다. 가족 단위 체험만 받고 있는데 따로 '입장료'는 없고 2㎏ 정도에 1만원을 받는다. 28일 이후 가능. 전화로 확인 필수. (054)434-3480·www.yanggak.com
버섯_ '버섯나루'에선 10명 이상 신청하면 그 자리에서 숯불을 피워 참가자가 수확한 버섯을 구운 다음 참기름에 찍어 먹는 약식 바비큐를 준비해준다. 체험하러 온 사람에 한해 표고버섯 종균(種菌)을 배양한 참나무 배지 한 개를 5000원에 판다. 적어도 한 주 전엔 예약해야 한다. (054)433-7376, 011-535-1530·www.bsnaru.com
복분자_ 삼도봉 복분자 호두 농원(054-437-2431·www.od.or.kr)에선 6월 말까지 복분자 체험 행사(어른 1만원, 어린이 5000원)를 연다.
배_ 오케이농원(054-436-0077· www.okfarm.co.kr)에선8월말부터 수확을 시작하는 배나무를 분양한다. 배나무 한 그루에 10만원. 수시로 가서 돌보고 가꾼 다음 수확 철이 되면 그 나무에서 나는 배를 모두 수확해오는 방식이다. 한 나무에서 40~50㎏(80~100개) 정도의 배가 난다.
자가용으로: [버섯나루 농장]경부고속도로 김천 나들목으로 나와 좌회전→10분쯤 가다 '직지교사거리'에서 '상주' 방향으로 좌회전→15분 정도 가면 오른쪽에 '버섯나루' 간판이 보인다. 주소 김천시 어모면 중왕리 323
[양각골 자두 농장]경부고속도로 김천 나들목으로 나와 좌회전→'직지교사거리'에서 우회전→ '대구' 쪽 고가도로로 올라가지 말고 오른쪽 '거창' 방면 길로 강을 따라가면 오른쪽에 '양각분교' 이정표→양각 분교 지나 50m. 주소 김천시 구성면 양각리 381
대중교통으로: 서울 반포동 서울고속버스터미널(1688-4700)과 구의동 동서울종합터미널(1688-5979)에서 김천행 버스가 떠난다. '버섯나루 농장'은 김천터미널에서 22번이나 222번 버스를 타고 '갈말'에서 내리면 된다. '양각골 자두 농원'은 '구성' 행 버스를 타고 '양각마을 입구'서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