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망은 산행의 운수 – 지리산(백무동,장터목,제석봉,천왕봉,중산리)
1. (제석봉에서 바라본) 멀리 왼쪽은 반야봉, 가운데는 만복대
산등성을 따라 천왕봉을 가리키며 동쪽으로 나아갔다. 산에는 바람이 아주 거세어서 나무들이 다 구부정하였다.
나뭇가지들은 산 쪽을 향하여 휘어져 있고 이끼 낀 나무들은 엉클어져 있어서 마치 사람이 머리를 풀어 헤치고 서
있는 것만 같았다.(…) 마침내 지팡이를 짚으며 천왕봉에 올랐다. 봉우리 위에는 판잣집이 있었으니, 곧 성모사(聖母
祠)이다. 사당 안에는 흰옷을 입은 여인의 석상 하나가 안치되어 있었다.(…) 이날은 비가 그치고 날이 활짝 개었다.
흐릿하게 떠돌던 구름 기운이 사방에서 걷히니 광활하고 망망한 세상을 눈 닿는 곳이면 어디든 바라보는 데 거침이
없었다. 마치 하늘이 명주 장막을 만들어 이 봉우리를 위해 둘러친 듯했다. 시야를 가로막은 한 덩어리의 언덕조차
없었다.(…)
아! 덧없는 인생이 가련하구나! 항아리 속에서 태어났다 죽는 수많은 초파리 떼는 다 긁어모아 본들 한 움큼도 채
되지 않거늘 그럼에도 저들은 시시콜콜 자기를 내세우며 옳으니 그르니 기쁘니 슬프니 하면서 살아간다. 이것이
어찌 크게 웃을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오늘 본 것으로 생각해 보자면 이 천지 또한 한 개의 손가락일 뿐이다.
하물며 이 봉우리야 하늘 아래 하나의 작은 물건에 불과할 뿐이거늘 이곳에 올라서 높다고 여기는 것이 어찌 거듭
슬퍼할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저 안기생(安期生)과 악전(偓佃)의 신선 무리가 난새와 학을 타고서 9만 리를 날아가
며 아래를 내려다본다면 이 산을 어찌 미세한 새털 정도로만 보지 않겠는가!
―― 묵호자 유몽인(黙好子 柳夢寅, 1599~1625),「유두류산록(遊頭流山錄)」에서, (유몽인, 최익현 외 지음, 전송열,
허경진 엮고 옮김, 『조선 선비의 산수기행』(돌베개, 2016))
▶ 산행일시 : 2024년 11월 30일(토), 무박산행, 산정은 아침에 잠깐 맑고 흐림
▶ 산행코스 : 백무동,참샘,아래소지봉,소지봉,장터목,제석봉,통천문,천왕봉,천왕샘,개선문,법계사,로타리대피소,
망바위,칼바위,중산리
▶ 산행거리 : 도상 12.2km
▶ 산행시간 : 8시간 42분(03 : 21 ~ 12 : 03)
▶ 교 통 편 : 다음매일산악회(21명) 버스 이용함
▶ 구간별 시간
23 : 40 – 양재역 1번 출구 200m 앞 스타벅스 앞
01 : 48 – 덕유산휴게소( ~ 02 : 05)
03 : 07 – 백무동(白武洞) 주차장, 산행준비( ~ 03 : 21), 산행시작
04 : 46 – 참샘 쉼터
05 : 12 – 소지봉(燒紙峰, 1,290m) 쉼터
06 : 35 – 장터목대피소(1,653m), 휴식( ~ 07 : 20)
07 : 46 – 제석봉(帝釋峰, 1,808m)
08 : 14 – 통천문
08 : 35 – 천왕봉(天王峰, 1,915.4m)
09 : 02 – 천왕샘
09 : 21 – 개선문
10 : 07 – 법계사(法界寺)
10 : 21 – 로타리대피소(공사중)
10 : 50 – 망바위
11 : 33 – 칼바위삼거리 쉼터
12 : 03 – 중산리(中山里) 탐방지원센터, 산행종료, 점심과 휴식( ~ 14 : 25)
16 : 28 – 신탄진휴게소( ~ 16 : 40)
18 : 15 – 양재역
2. 장터목에서 바라본 여명과 일출, 저 그믐달을 보고 오늘이 그믐인 줄 알았다
▶ 장터목대피소
아마 엊그제 폭설 때문이리라. 여느 때 주말이면 무박산행을 떠나는 버스와 등산객들로 북적이던 양재역이 썰렁하
다. 고속도로도 썰렁하고 도중에 들른 덕유산휴게소도 썰렁하다. 하긴 북한산과 도봉산도 폭설로 전면 통제되었다.
내 알기로는 북한산과 도봉산이 폭우로는 종종 통제되었지만 폭설로 통제된 것은 처음이 아닌가 한다.
한잠 푹 자고 일어나니 백무동이다. 몇 곳의 안내산악회에서 온 등산객들이 등산준비로 보건체조를 하고 있다. 앞서
거니 뒤서거니 동행할 등산객들이라서 반갑다. 백무동에서 하동바위골 등로는 0.2km 정도 가야 백무교 건너고 그
출입문이 있다. 동절기 입산시간은 04시라고 한다. 지금시간 03시 21분이다. 설악산 한계령처럼 통제할까? 아니면
등산객들 자율에 맡기는 걸까? 무리지어 마음 조이며 간다. 아, 열렸다! 씩씩하게 들어간다.
엊그제 갑작스레 지리산을 간다고 결정하면서 갈등이 없지 않았다. 나 혼자라도 한신계곡으로 해서 세석평전을 올
라 장터목으로 갈까 하고. 그래야 내 체면도 서고, 무박산행답게 산행거리와 산행시간이 얼추 맞지 않을까 해서다.
그런데 막상 현지에 당도하고 보니 마음이 달라진다. 캄캄한 밤이겠다, 눈은 쌓였고(얼마간 오르면 등로는 눈에 덮
여 알아볼 수 없으리라), 통제구간이고, 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 생각을 접어 마음고생을 던다.
백무동(白武洞)의 지명유래가 궁금했다. 백무동 종합안내판에는 “천령지(天嶺誌)에서는 백무동 (白舞洞, 白霧洞)을
흰 안개가 춤을 추는 신선이 사는 마을이라 하였고, 현재 백무동(白武洞)은 1914년 행정 개편에 따라 지어진 이름이
다.”라고 한다. 천령지(天嶺誌)는 1656년에 정수민(鄭秀民, 1577~1658)이 수년간 수집한 함양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료를 모아 편찬하고 1888년에 후손들이 간행한 향토지이다.
한편, 국토지리정보원 지명사전에는 “옛적에 상사감들이 살았다 하여 백무동이라 제정하였다 함”이라 하고, 비고로
“옛날에 천민들이 살았다 하여 백무동이라 하였다.”라고 한다. 상사감은 듣도 보도 못한 말이다. 국어사전에 없는
말이다.
하동바위골 외길이다. 눈은 희끗희끗 보이고, 어둠 속 계류는 힘차게 소리 지르며 흐른다. 예전에 두어 번 오른 길이
지만 낯설다. 밤에 오르는 건 처음이다. 백무동은 대개 당일 산행으로 날이 밝을 때 오지 무박산행으로 오는 경우는
드물다. 널찍한 돌길이다. 고도를 점점 높임에 따라 눈이 밟히기 시작한다. 이때는 바람 한 점 없어 덥다. 겉옷 벗는
다. 가쁜 숨 고르려 걸음 멈추고 하늘 우러르면 별들이 총총하다.
가파른 오르막의 연속이다. 평소처럼 이 시간에는 변의가 느껴져서 등로 벗어나서 다른 사람들의 헤드램프 불빛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로 올라갔다. 그리고 배낭을 벗어놓고 불을 끈 플래시(나는 플래시를 켜고 왔다)와 장갑을 배낭
위에 올려놓았다. 잠시 후 배낭이 잘못 놓여 있었는지 기우뚱하더니 수 미터 아래로 굴러갔다. 일을 마치고 더듬거
려 배낭을 찾았다. 천만다행인 것이 배낭 속에는 비상용의 헤드램프와 털장갑이 있다. 플래시는 찾을 수 없고 장갑
은 젖었다. 비상용을 사용한다.
5. 일출 직전. 가운데는 하동 금오산
6. 일출 직후. 연하봉 남동릉
7. 중간이 지리 남부능선
8. 멀리 가운데는 반야봉, 그 뒤 왼쪽은 노고단
11. 앞은 연하봉, 그 뒤 오른쪽은 촛대봉
12. 멀리 가운데는 광양 백운산 상봉, 그 오른쪽은 똬리봉과 도솔봉
13. 맨 왼쪽은 흰듬등, 그 오른쪽 뒤는 노고단
15. 제석봉의 아침
프랑스 산악인 모리스 에르죡(Maurice Herzog, 1919~2012)이 생각난다. 그는 인류 최초로 8000미터급 고봉인
안나푸르나를 올랐다. 그가 구술하여 쓴 책 『최초의 8000미터 안나푸르나』(최은숙 옮김, 수문출판사, 1997)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나는 별 뜻 없이 배낭을 풀어 헤친다. 그러자 갑자기 …
‘어! 내 장갑!’
잡을 틈도 없이 장갑이 눈비탈 위를 굴러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멈출 생각은 않고 떼굴떼굴 굴러 내려가는 장갑을 눈앞에서 뻔히 보면서도 어쩔 수 없어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있었다.
이 장갑의 움직임이 내겐 마치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숙명처럼 느껴졌다. 장갑을 잃은 사실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
‘모리스, 아니 그런데 자네 손이 이게 웬일인가?’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나는 장갑을 끼지 않고 있다는 사실마저 잊고 있다가 그의 말에 손을 들여다보니 내 손가락들이 얼어서 검푸르고
창백할 뿐 아니라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동료들은 절망한 기색으로 내 손을 들여다보았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모리스는 이때 열 손가락과 열 발가락을 잘라야만 했다. 그는 나중에 프랑스 체육부장관과 샤모니 시장 등을 역임했
다. 그가 안나푸르나를 내려와서 병원에서 치료받는 중에 회상하는 장면이다.
“나는 죽음과 직면해 있다. 죽음이 어서 오기를 애원한다. 그러자 불현듯 인간들의 삶이 눈앞에 펼쳐졌다. 죽은 자들
은 결코 외롭지 않다. 나를 지켜보는 산에 기대어 여태껏 못 본 지평선을 발견한다. 저 아래 넓은 평야엔 수많은
인간들이 본의 아닌 운명을 살아가고 있다. 죽어가는 자의 초자연적인 힘이 나로 하여금 세상과 일치감을 느끼게
한다. 산은 능선 위를 스치고 풀잎들을 쓰담는 바람과 대화를 나눈다.”
하동바위를 모르고 지나쳤다. 가파른 오르막이 수그러지더니만 참샘 쉼터다. 무인대피소 건물이 마련되어 있다.
건물 안에 들어가 아이젠과 스패츠를 맨다. 눈길 오르기가 한결 부드럽다. 거칠었던 오르막은 소지봉(아래소지봉
1,290m) 노천 쉼터를 지나고부터 완만해진다. 일단의 젊은 등산객들의 뒤를 쫒는다. 그들이 쉬면 나도 쉰다. 쉰다
고 해보았자 가던 걸음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는 것이다. 설원을 헤드램프 불빛 비추면 눈의 결정이 여기저기서
다이아몬드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상고대 눈꽃이 움트는가 싶었는데 고개 드니 어느새 산호초를 닮았다. 소지봉 망바위(1,499.1m)도 몰라보고 지나쳤
다. 예전에도 이랬던가? 제석봉 아래 가파른 설사면을 길게 돈다. 멀리 장터목대피소 건물이 보인다. 잰걸음 한다.
장터목대피소 화장실 앞을 지난다.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어 닥친다. 얼른 대피소 건물로 들어간다. 너른 대피소
건물 안에는 스무 명 남짓한 등산객들이 이미 왔다. 몇몇 등산객들은 컵라면을 먹으려 버너에 물을 끓인다.
나는 컵라면은 종이 씹는 맛이 나서 싫어한다. 다만 신가이버 님이 낙지 넣고 끓인 컵라면은 좋아한다. 오늘 아침은
샌드위치와 인절미 대신한다. 식후 보온병에 담아온 물로 커피를 타서 마신다. 동녘 하늘은 금세 해가 뜰 듯이 붉은
띠를 길게 둘렀다. 오늘이 그믐이다. 반공에 가는 붓으로 살짝 터치하여 그린 듯한 눈썹이 보인다. 그믐달이다. 딴은
요염하다. 수시로 문을 열고 나가 일출상황을 점검한다. 오늘 일출시각은 07시 18분께이다. 아직 멀었다. 그래도 못
미더워 대피소 건물 아래 너른 설원까지 내려가 본다. 더러 일부 등산객들은 제석봉을 향하지만 나는 해가 뜰 때까
지 긴 휴식한다.
대피소 건물 밖에서 와! 하는 함성소리가 나기에 서둘러 나가보니 일출이 시작되고 있다. 금방 눈 못 뜨게 부시다.
첫 햇살은 건너편 연하봉을 온통 황금색으로 도색한다. 손 시린 줄 모르고 부지런히 카메라 셔터 누른다. 오늘 나의
가장 따뜻한 동반자는 무어니 무어니 해도 핫팩이다. 두 개를 준비하여 양쪽 호주머니에 넣고 연신 조몰락거리니
그 온기가 온몸에 퍼진다. 이러면 안나푸르나인들 못 오르랴 하고 간다.
16. (제석봉에서 바라본) 멀리 맨 왼쪽부터 억불봉, 상봉, 똬리봉, 도솔봉
17. 멀리 광양 백운산 연릉 앞은 지리 남부능선
18. 멀리 가운데는 하동 금오산
19. 멀리 맨 왼쪽부터 억불봉, 상봉, 똬리봉, 도솔봉
20. 제석봉의 아침, 멀리 가운데는 남해 금산
21. 멀리 가운데는 만복대
22. 멀리 오른쪽은 만복대
23. 멀리 왼쪽은 남해 금산
24. 멀리 가운데는 반야봉, 그 앞 오른쪽은 명선봉
25. 멀리 맨 왼쪽부터 억불봉, 상봉, 똬리봉
26. 제석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 제석봉(帝釋峰, 1,808m), 천왕봉(天王峰, 1,915.4m)
이를 앙다물고 문 열고 제석봉을 향한다. 거센 바람은 키 큰 나무 끝을 훑지만 그 요란한 소리에 지레 놀라 구부정하
여 간다. 가파른 돌길이다. 장터목대피소를 올 때와는 다르게 제석봉을 오르는 사람이 뜸하다. 숲속 길을 벗어나
설원에 올라선다. 바람에 등 떠밀려 오른다. 뒤돌아보면 길고 긴 설릉 끄트머리에 반야봉이 돌연 우뚝 솟았다. 그 뒤
좌우로 노고단과 만복대가 시위한다. 열 걸음에 아홉 걸음은 뒤돌아본다. 그러고도 제석봉 전망대에 오른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몸 가누기가 힘들다. 전망대 난간 붙들고 전망 살핀다. 남해 금산, 하동 금오산, 광양 백운산
연봉 연릉, 가깝게는 지리 남부능선 등을 알아본다. 천왕봉 오르는 길도 걸음걸음 경점이다. 등로 주변의 일목일초
도 화려하게 눈꽃을 피웠다. 천왕봉에 오르면 지금과도 다른 경치가 펼쳐질 것이다. 덕유산 그 장릉이 보고 싶다.
그런데 통천문을 지나기도 전에 북쪽에서 먹구름이 덮쳐온다. 통천문 가기 전에 덕유산 쪽으로 수렴이 잠깐 걷혔다.
덕유산 그 장릉을 보고야 만다. 남덕유산에서 삿갓봉, 무룡산, 향적봉이 뚜렷하다. 그 앞으로 장안산, 백운산, 할미
봉, 월봉산, 괘관산, 거망산, 황석산, 그 오른쪽 뒤로 금원산, 기백산 등등. 마치 비행기에서 알프스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다. 통천문을 오르자 개벽하였다. 사방은 먹구름에 닫혔다.
조망은 산행의 운수다. 오늘 조망은 일출 때부터 겨우 45분간이다. 만약에 백무동탐방지원센터에서 입산시간을 04
시로 강제했다면 완전한 무망일 뻔했다. 운수 좋은 날이다.
통천문에서 천왕봉까지 0.5km이다. 데크계단의 연속이다. 등로 수 미터 내외의 설경이 볼거리다. 바람에 비틀거리
며 오른다. 엎드려 바위 붙들고 오르다 고개 드니 천왕봉 정상이다. 사방은 먹구름에 가렸다. 천왕봉 정상 아래 바위
벽에 기대어 휴식한다.
옛 사람들의 눈을 빌려 이곳의 조망을 상상한다. 미수 허목(眉叟 許穆, 1595~1682)은 대마도와 제주도를 보았다.
그의 「지리산기(智異山記)」 일부이다.
“군자사 남쪽 벼랑을 따라 백모봉(白母峯)과 제석봉(帝釋峯)에 올랐다. 그 위가 천왕봉(天王峯)이니 1만 4000길이
어서 최고봉이 되는데, 몹시 추운 날이 많아 나무가 자라지 못하며, 8월에도 세 차례나 눈이 내린다. 이곳에서의
전망은 동쪽으로 해 뜨는 곳까지 다하여 근해의 검매(黔魅)ㆍ욕지(蓐芝)에서 그림자가 끊어지고, 그 밖은 대마도
(對馬島)로 일본(日本)의 왜(倭)이다. 그 서쪽은 연(燕)과 제(齊)의 바다이고, 큰 육지가 천 리를 뻗어 있다. 최남단
은 탐탁라(耽乇羅 제주도)이고, 그 너머는 눈으로는 볼 수 없다.”
ⓒ 한국고전번역원 | 김내일 (역) | 2006
주) 검매(黔魅)와 욕지(蓐芝)는 섬 이름이다.
묵호자 유몽인은 그의 「유두류산록(遊頭流山錄)」에서 말하기를, 대구의 팔공산, 현풍의 비슬산, 의령의 도굴산,
밀양의 운문산, 광주 무등산, 영암 월출산, 정읍 내장산, 담양 추월산, 부안 변산, 나주 금성산과 용구산, 곤양 소요
산, 광양 백운산, 순천 조계산과 돌산산, 사천 와룡산, 안음 덕유산, 전주 모악산, 성주 가야산, 대마도 등을 심안
아닌 육안 보았다.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 1431~1492)은 함양군수로 재직(1470~1475)할 때 천왕봉을 올랐다. 그는 크게 조망
하였다. 내가 오늘 제석봉에서와 통천문을 오를 때 본 경치와 흡사하다. 그의 「두류산을 유람하고 기행시를 쓰다
(遊頭流紀行)」 중의 ‘재차 천왕봉에 오르다(再登天王峯)’ 일부이다.
今朝忽淸霽 그런데 오늘은 갑자기 맑게 개이니
神其諒吾衷 신령이 내 마음을 살펴준 것이로다
遂忘再陟勞 마침내 재차 오르는 노고를 잊고서
絶頂窺鴻濛 절정에 올라 천지자연을 엿보고
浩浩俯積蘇 광대하게 겹겹이 쌓인 경관을 보니
如脫天地籠 천지의 울안을 벗어난 것 같구나
群山萬里朝 뭇 산들은 만 리 밖에서 조회하는 듯
眼底失窮崇 눈 밑에는 높은 것이 하나도 없어라
ⓒ 한국고전번역원 | 임정기 (역) | 1996
한편, 옛 사람들이 천왕봉을 오른 그 발걸음과 지금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청파 이육(青坡 李陸, 1438~1498)
은 아마 중산리에서 오른 듯하다. 그의 「유지리산록(遊智異山錄)」의 일부이다. 살천 마을은 지금의 산청군 시천면
신천리라고 한다.
“살천 마을에서 20여 리를 가면 보암사(普庵寺)가 있는데,(…) 보암사(普庵寺)에서 곧장 올라 빨리 가면 하루 반에
천왕봉에 당도할 수 있다. 그러나 돌비탈이 험준하여 오솔길을 찾기 어렵고, 또 느티나무ㆍ회나무가 하늘을 가려
있고, 아래는 멧대가 빽빽이 들어차고, 혹은 나무가 천 길의 비탈에 비껴 있어, 이끼가 부스러져 떨어지고 또 샘
줄기가 멀리 구름 끝에서 날아와 그 사이를 가로질러, 아슬한 밑바닥으로 쏟으니 나아가려고 해도 발뒤축을 돌릴 수
없고, 돌아서려고 해도 뒤가 보이지 아니한다. 수십 그루의 나무를 베어내야 비로소 조금 하늘을 볼 수 있다.
일 꾸미기를 좋아하는 자가 왕왕 돌덩이를 주워서 바위 위에 두고, 노정을 표시하며 골짝에는 얼음과 눈이 여름을
지나도 녹지 아니하고, 6월에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며, 7월에 눈이 내리고, 8월에는 얼음장이 깔리고, 초겨울을
당하면 눈이 심하여 온 골짝이 다 편편하니 사람이 오고 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산에 사는 자가 가을에 들어가면,
이듬해 늦봄에야 비로소 산을 내려오게 되며, 혹 산 밑에서는 크게 뇌성하고 비가 쏟아지더라도, 산상은 청명하여
구름 한 점 없으니, 대개 산이 높아 하늘과 가깝기 때문에 기후가 자연 평지와 더불어 엉뚱하게 다른 모양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김달진 (역) | 1969
27. 멀리 가운데는 남해 금산
28. 멀리 오른쪽은 하동 금오산
29. 통천문 가는 길에서
30. 멀리 맨 왼쪽부터 억불봉, 상봉, 똬리봉, 도솔봉, 그 앞은 지리 남부능선
32. 통천문 가는 길에서, 앞 왼쪽은 영원산, 가운데는 삼정산, 멀리 가운데 오른쪽은 삼봉산과 법화산
33. 멀리 왼쪽부터 남덕유, 삿갓봉, 무룡산, 향적봉, 남덕유 앞은 장안산과 백운산, 중간 가운데는 월봉산, 거망산,
황석산, 그 오른쪽 뒤는 금원산과 기백산
34. 통천문에서, 이때부터 날이 흐려졌다.
35. 천왕봉 오르는 길
36. 천왕봉
37. 천왕샘 쪽으로 내리는 길에서
▶ 법계사(法界寺), 중산리(中山里)
천왕봉에 드리운 먹구름이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만 하산한다. 데크계단 섞인 가파른 돌길 내리막이다.
산행마감시간은 14시 30분이다. 당초에는 산행시작을 04시 30분으로 예정했는데 그보다 훨씬 빠른 03시 21분에
시작하였다. 그 빠른 시간은 회원들의 이익(?)으로 배려했다. 하여 늘어진 걸음이다. 천왕봉에서 0.3km 내리면
천왕샘이다. 높은 절벽 아래 샘이 있다. 절벽의 고드름과 절벽 위 나무숲의 상고대 눈꽃이 장관이다.
조망 트이는 데 나오면 꼬박 들른다. 광양의 백운산 연봉인 억불봉, 상봉, 똬리봉, 도솔봉과 그 앞 지리 남부능선을
보고 또 본다. 하동 금오산은 올망졸망한 뭇 산들을 거느린 그곳 맹주로 보인다. 개선문을 지나면 동쪽으로도 조망
이 트인다. 써래봉 남릉이 유장한 장릉이다. 법계사 가기 전의 철책 두른 완만한 슬랩은 일대 경점이다. 남해 금산이
한층 가깝다. 법계사에 들른다. 법계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 1,450m)에 있는 절이라고 한다.
고려 초기 작품으로 추정하는 삼층석탑은 보물 제473호이다. 법계사 본전인 적멸보궁의 현판과 주련은 서예가 인전
신덕선(仁田 申德善, 1946 ~ )의 글씨다. 특히 주련은 해서체의 생동감 있는 일필휘지로 아름다워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불심을 느끼게 한다. 일주문 현판 ‘智異山法界寺’는 여류 서예가인 월사 박영숙(月史 朴英淑)의 글씨다.
역시 해서체로 단정하고도 엄숙하다.
조선 중기의 학자인 부사 성여신(浮査 成汝信, 1546~1632)은 78세 때 법계사를 거쳐 천왕봉을 유람하였다고 한다.
그 나이이면 지금도 대단한 노익장일 텐데 거의 500년 전임에야. 다음은 그의 「법계사에 오르다(上法界寺)」이다.
‘뭇 바다는 아득히 먼 밖에 술잔처럼 보이고(杯看衆海蒼茫外)’는 극락전 앞에서 바라보는 남해가 과연 그러하다.
超然身世出人寰 초연하게 이 몸이 인간세상 벗어나니
隨處仙區景物閒 가는 곳마다 신선 구역 경물이 한가롭네
松碧巖邊烈士氣 바윗가의 푸른 솔엔 열사의 기운 서려 있고
楓丹壁裏醉人顔 절벽의 단풍은 취한 사람의 얼굴 형상일세
杯看衆海蒼茫外 뭇 바다는 아득히 먼 밖에 술잔처럼 보이고
塊視諸山杳靄間 여러 산은 뿌연 안개 속에 흙덩이처럼 보이네
嗅取仙童來駕鶴 선동을 불러서 타고 갈 학을 데려오게 하여
明朝上謁紫皇還 내일 아침에는 옥황상제께 알현하고 돌아오리
ⓒ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남명학연구소 | 정현섭 김익재 (공역) | 2015
법계사 바로 아래 로타리대피소는 공사 중이라 많은 등산객들이 법계사 일주문 앞에서 휴식한다. 로타리대피소에서
중산리탐방안내소까지 3.3km가 나에게는 마의 구간이다. 아무런 조망이 없는 숲속 가파른 돌길 내리막이라서 그렇
다. 눈꽃도 졌다. 목책 너머 세존봉 문창대 쪽 눈길은 조용하다. 그 눈길을 건들지 않는다. 등로 옆 망바위는 오르기
도 고약할 뿐더러 거기에 오른다 한들 망(望)할 경치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양다리가 후들거리는 가파른 돌길 내리막은 칼바위삼거리에서 잠잠해진다. 장터목대피소 4.0km 그쪽으로도 등산
객들이 오간다. 조금 더 가면 이곳 탐방로의 랜드 마크라고 하는 칼바위(刀岩)를 만난다. 계류 물소리 들으며 큰
소리가 나면 기웃거려 본다. 중산 두류 생태체험장 아치문을 나서고 임도다. 임도 따라 산자락 0.2km 돌아내리면
중산리주차장이다. 너무 일찍 산행을 마쳤다. 산행마감시간까지 2시간 20분이 남았다. 용소계곡 중산 두류 생태탐
방로나 다녀올까(주로 데크로드로 왕복 3.2km이니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으나 요새 부쩍
게을러졌다. 에라, 하산주나 마시자 하고 거북이식당에 들어간다. 멀리 천왕봉 산정은 구름에 가렸다.
38. 천왕샘 쪽으로 내리는 길에서
39. 천왕샘 바위 위쪽
40. 천왕샘 아래 쉼터에서
41. 법계사 가는 길에서
42. 앞은 연하봉 남동릉, 그 뒤는 지리 남부능선
43. 앞 가운데가 중산리 탐방지원센터
44. 앞에서 두 번째 능선이 국수봉 능선
45. 법계사 가는 길에서, 앞은 연하봉 남동릉, 멀리 왼쪽이 하동 금오산
46. 지리 남부능선
47. 앞 가운데가 중산리 탐방지원센터
48. 앞은 연하봉 남동릉, 그 뒤는 일출봉 능선, 멀리 왼쪽이 하동 금오산
49. 법계사 삼층석탑, 보물 제473호이다.
첫댓글 햐~ 모처럼 멋진 지리산 설경을 봅니다!
전날이 더 좋았네요
지리의 조망이 아름답다 못해 장엄합니다. 저도 날 잡아 게으름을 떨치고 한번 가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