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칼로 깍다가 연필깍이가 나오고 열광을 했다.
그 다음 샤프펜슬이 나왔다.
연필을 깎는다.
이건 매일 하는 일이 아니다. 연필심이 무뎌졌을 때 아주 가끔씩 해보는 일. 잠시나마 미세한 집중을 요하는 신비로운 경험. 연필을 깎을 때마다 나는 초등학생이 되는 것 같다.
“손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라.”
어머니의 말씀이 귓전에 들릴 것 같다.
사각사각 눈 밟는 소리 들으며 연필을 깎는다는 건 연필로 써야 할 문장들을 미리 다듬는 일. 칼날에 깎여나가는 나무는 주로 미국이 원산지인 삼나무나 연필향나무라고 한다.
잘 깎이는 건 목질이 순하고 고르기 때문인데 향기는 덤이다.
첫아이를 키울 때 증기기관차 모양의 수동 연필깎이를 사준 적이 있었다.
아비 된 자로서 얼마나 흐뭇했는지. 예리한 칼로 연필 깎던 시절을 보내고 연필깎이의 진화를 보는 듯했다. 한 후배는 학교 다닐 때 그 연필깎이를 가지지 못해 속이 상했다 한다.
훗날 문구점에서 하나 구입 해서 책상 위에 올려두고 바라본다고 했다. 그렇게라도 결핍을 보상받고 싶은 마음을 이해한다. 손잡이를 손수 돌려야 하는 수동 대신에 자동 연필깎이의 시절이 도래하였다.
연필을 구멍에 넣기만 하면 저절로 깎아주는 재주 좋은 녀석이 등장한 것이다. 문구점에 가봤더니 제품의 디자인도 각양각색이다.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연필깎이가 진화하면서 아이들의 손이 퇴화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다.
연필을 예쁘게 깎을 줄 아는 아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어른들의 과잉보호가 지나친 건 아닐까?
편리한 게 능사는 아닌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