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년이었던가,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입을 했습니다.
그곳의 멤버들은 대개 책을 좋아하며 감성적인 4,50대 여성들과 정년 퇴직한 선생님(남자)들이 주류를
이루어 열댓 명이 도서관을 중심으로 모인 곳이었습니다.
읽어야 할 책을 선정하고, 그것을 읽고 나서 느낌을 얘기하고 때론 글을 써서 평가도 하는 분위기 속에서
서로 조금씩 친해졌습니다. 난 퇴직한 선생님들 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이가 나보다 적은 여성 회원들과 더
편하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처음 보는 이들과 공동의 관심사로 어울리는 재미가 쏠쏠했기에 그 모임을
즐겼고 많은 것을 얻는 시기였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조금 독특했습니다.
독서량이 엄청나서 책을 일 년에 백 권 이상 읽는다는 그녀는 아주 밝았고 티없는 모습이 마치 소녀
같았는데, 기억력과 내용을 정리하는 데는 엉망이라서 많은 책을 읽고도 늘 버벅거렸습니다.
그리고 모임이 있을 때면 거의 대부분 어떤 남자가 큰 차로 태워오고 태워갔는데 그때의 표정은 평소와
달리 밝지 않아서 부부 사이가 편치 않은가 생각했습니다.
그럭저럭 시간은 흐르고 모임도 익숙해져서 가끔 회식도 하고 함께 술도 마셨는데, 그때마다 책이야기와
함께 자연스레 서로의 일상사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그녀는 함께 읽은 책의 내용을 거의
기억하는 내가 신기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시 몇 개를 외우고 있는 나를 외계인 보듯
하면서도 서로 유쾌한 농담을 적지 않게 주고 받았지만 피차 깍듯이 예의를 지켰습니다.
그 해 겨울 송년회 겸 일년을 정리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녀가 평소와 다르게 찢어진 청바지에 야구
모자를 쓰고 나타나서는 2차 노래방에서 백지영의 ‘총맞은 것처럼’ 을 불렀습니다.
평소와 다르게 얼마나 열정적이고 야성적인지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마치 영화처럼 눈이 펑펑 내리던
날이었는데 그녀는 숨겨놓은 끼를 마구 발산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를 데리러 온 남자에게 끌려가듯
일행들과 헤어졌고 이후론 모임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마 여자를 믿지 못하고 심하게 단속을 하는
남편이 아니었나 추측할 뿐이었습니다.
어쩌다 가수백지영이 부른 그 노래 ‘총맞은 것처럼’을 들으면 그 사람이 떠오릅니다.
티없이 맑고 밝던 모습과 함께 ‘총맞은 것처럼’을 미친듯 불러대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읽은 책의 내용과 많은 대화들은 시간을 따라 흩어졌지만 노래만은 그녀의 상징으로 남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총맞은 것처럼 정신이 너무 없어~ 웃음만 나와서 그냥 웃었어 그냥 웃었어~♬”
누군가에게 노래나 詩, 혹은 즐거움으로 기억이 된다면 축복이 아닐까요.
스쳐간 많은 인연들에게 나는 어떤 이미지로 기억될까 생각합니다.
2019. 07. 22
첫댓글 얼마나 머리속에 각인이 되었으면... 하기야 그런 경우가 많지요.
여름 더위 잘 넘기세요. 이제 얼마 남지않은 것 같기는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