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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헌신은 이런 것입니다!
읽을말씀: 요12:1-50; 요11:4
주제말씀: 요12: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첫째, 참된 헌신이란 주님께 기념이 됩니다(1-1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요12:7)
예수님은 유월절 엿새 전에 어디에 이르셨습니까? 나사로의 동네 베다니입니다.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1절) 예수님이 이르시자 나사로의 집에서 무엇이 열렸습니까? 예수님을 위한 잔치입니다.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2절 상)
나사로의 두 누이는 각각 어떻게 헌신했습니까? 마르다는 주방에서 식사 대접을 위해 헌신했고, “...마르다는 일을 하고...”(2절 중) 마리아는 귀한 향유를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닦아 드렸습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3절 상)
특히 마리아의 이 같은 헌신으로 무엇이 온 집안에 가득 찼습니까? 향유 냄새입니다.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3절 하) 마찬가지로 참된 헌신은 무엇을 충만하게 합니까? 온 교회입니다. 원컨대 우리도 각자의 헌신들로 온 교회를 충만하게 채울 수 있기를 원합니다.
물론 이 같은 헌신은 인간적으로 보면 무엇처럼 비춰질 수 있습니까? 낭비입니다.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4,5절) 하지만 이는 단순한 낭비가 아니라 무엇입니까? 주님을 위한 거룩한 낭비입니다. 원컨대 우리도 때로는 주님의 몸인 교회를 위해 거룩한 낭비도 할 줄 알기를 원합니다.
또 이 같은 헌신은 주님께 무엇이 됩니까? 기념입니다. 즉 마르다의 이 같은 헌신이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기념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의 참된 헌신도 언제든지 주님께 기념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7절) 원컨대 우리의 헌신도 늘 주님께 기념이 되기를 원합니다.
다음날 예수님은 어디로 가셨습니까? 예루살렘입니다.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서 무엇을 타고 가셨습니까? 한 어린 나귀입니다.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14,15절)
이 때 누가 나와서 예수님을 맞았습니까? 명절에 온 큰 무리입니다.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지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12,13절)
그러나 제자들은 이 날의 예수님의 행동을 언제나 돼서야 깨달을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영광을 얻으신 후입니다.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 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16절)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성경의 모든 사건과 진리들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믿어질 때 비로소 깨닫고 이해되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에 보혜사 성령이 강림하셨는데, 진리의 영이신 이 성령님을 통해서 모든 것을 비로소 깨닫고 이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편, 본문의 큰 무리가 예수님을 이렇게까지 맞이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의 나사로 소생 사건을 많은 이들이 증언했기 때문입니다.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한지라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17,18절)
그런데 이는 무슨 말씀의 성취였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얻게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요11:4)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참된 헌신을 통해 온 교회를 충만하게 하며, 주님께 기념이 되고 있습니까? 또한 우리의 모든 삶, 심지어 고난이나 질병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고 있느냔 말입니다.
둘째, 참된 헌신은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것입니다(20-50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말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12:24,25)
명절에 누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왔습니까? 헬라인 몇 사람입니다.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20절) 그들은 누구를 통해 예수님 뵙기를 청했습니까? 사도 빌립입니다. “그들이 갈릴리 뱃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21절)
이를 통해 예수님은 무엇을 깨달으셨습니까? 당신이 영광을 얻으실 때가 임박했다는 점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23절) 그러면서 무슨 비유를 말씀해주셨습니까? 한 알의 밀 비유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말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24,25절)
이는 곧 무엇을 가리키시는 말씀이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입니다. 즉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모든 사람들 (이방인들을 포함해서) 구원으로 이끄시게 될 것입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32,33절)
예수님은 이 같은 대속을 통해 누구를 영광스럽게 하시기 원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27,28절)
성부 하나님도 어떤 음성으로 화답하셨습니까?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실 것입니다.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28절 하)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참된 헌신이란 예수님처럼 한 알의 밀로 땅에 떨어져 죽어지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원컨대 우리도 우리가 속한 가정과 교회, 일터에서 날마다 한 알의 밀로 죽어지기를 원합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많은 표적을 행하셨어도, 유대의 바리새인들이나 종교 지도자들은 왜 그분을 믿지 못했습니까?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37절)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것처럼, 그들의 눈이 멀었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38-41절)
또한 관리 중에도 믿는 자가 많았으나 왜 드러내지 못했습니까? 출교를 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42절)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43절)
한편, 예수님을 믿고 보는 자는 결국 누구를 그리한 것입니까? 성부 하나님입니다.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44,45절)
그러니 무엇이 우리를 마지막 날에 심판하게 될 것입니까? 예수께서 하신 말씀들입니다.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47,48절)
어째서입니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성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49절) / “...그러므로 내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50절 하) 이 말씀은 곧 우리에게 무엇을 줍니까? 영생입니다.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50절 상)
그러니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참된 헌신은 한 알의 밀처럼 땅에 떨어져 죽는 것임을 깨닫고, 날마다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있습니까? 즉 이 말씀이 영생임을 깨닫고서 이를 힘써 듣고 지켜나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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