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 조선왕조 실록(158편)
사냥, 그 끝없는 유혹! 下.
도승지 주재하에 ‘국왕전하 매 사냥을 위한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아침
댓바람부터 광화문 육조거리 한편에서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런 불행한 소식을 전해드려서 죄송합니다만.다뭐, 다들 알고 있을 겁니다.
전하께서 이번에 사냥을 가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휴.어이구야.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낮은 탄식과 한숨들.
아니 사간원 놈들은 그동안 뭘한 거야 이런 일 막는 게 지들 일인데.
이미 일은 터졌습니다.
지나간 일 가지고 떠들 시간은 없고,
당장 사냥을 어떻게 치룰 건지 그걸 의논합시다.
혹시 사냥터는 결정 하신 곳이.
아마도 경기도 겠죠.
아니 툭하면 경기도입니까.
만만한 게 경기도라고.
아니 평안도도 있고,
충청도도 있는데,
왜 하필 경기도 입니까.
관찰사 아저씨, 머리는 악세사리임까? 평안도나 충청도 까지 행차한다면,
그 비용은 어쩔 겁니까.
그나마 경기도니까 당일코스는 아니어도 대충 1~2주일 정도로 끝이 나는 거지.
그래도 맨날 우리만.만만한게 홍어X이라구.잡설은 집어치우고, 형평을 맞추기 위해 이번에는 경기도 이천으로 사냥터를 압축했으니.대충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일단, 전하를 호위할 내금위에서 1천 명 정도의 호위 병력이 차출될 거고, 5위에서 3천 명 정도가 외곽 호위를 맡기 위해 차출될 겁니다.
그리고, 몰이꾼이 문젠데…
경기도 쪽에서 계속 사냥터를 제공하느라 고생이 많으니까
몰이꾼은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평안도에서 각자 알아서 차출하는 걸로 합시다.
저번 사냥 때 보니까.
몰이꾼이 못 잡아도 5천 명 정도는 있어야 하는 거 같던데, 각 도에서 1천2백 명 정도 차출하면 될 거 같슴다.
아니, 그래도 무슨 몰이꾼이 그렇게 많이 필요합니까.우리가 지금 골프치러 갑니까?
전하가 사냥을 하겠다는데! 지금 반항하는겁니까.아닙니다.준비하겠습니다.우리도 머리아파 죽겠다니까.
당장 행정부 쪼게야지, 경호계획 세워야지, 병력 동원해야지.우리 쉽게 쉽게 갑시다.웬만한 건 얼굴 붉히지 말고, 대충 이해하고 넘어갑시다.
누군 뭐 사냥가고 싶어 이러는지 아십니까.아.알겠습니다.이리.하여 ‘국왕전하 매 사냥을 위한 관계기관 대책회의’는 이렇게 끝이 났다
문제는 이 다음부터 였는데, 각 도의 관찰사들과 사냥터로 지정된 곳의 수령은 그때부터 죽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이! 지금 당장 이천의 수령한테 전화 때려! 3일 줄테니까. 지금 당장 가을 걷이를 끝내라고 그래.
그.그게 아직 곡식이 다 여물지도 않았는데.너 이 자식 개념을 바겐세일 했냐 당장 추수하지 않으면, 1년 농사를 그냥 다 들어먹게.
그 수많은 병사들이 짓밟고 돌아다닐텐데, 반이라도 건지고 싶으면 지금 당장 추수를 끝내라고 그래!
이천 수령은 자기 고을이 사냥터로 지정되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이천을 사냥대비 비상근무 체제’로 만들고 ‘민관 확대 기관장 회의를 열게 되는데.
일단 3일 안에 추수를 다 끝낸다!
그리고, 추수 끝나자마자 모든 백성들은 사냥터로 쓰일 야산과 들판의 풀을 모조리 싸그리 다 깎는다!
어이 호방! 넌 지금 당장 창고문 열고 1만 명이 7일간 먹고살 수 있는 식량을 확보해!
이방! 너는 당장 마을에 있는 아줌마들 다 끌어 모아서 급식조 편성하고! 이것들이.어쭈 발 보인다!
그랬다.이 당시 사냥터로 지정된 고을의 수령은 임금의 사냥을 100% 후방지원하기 위해 전시체제로 전환하게 되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사냥터로 쓰일 곳의 풀을 다 베어버리는 것이다
혹시 모를 임금의 낙마사고 예방과 동물이 은폐엄폐할 공간을 없애기
위한 조처였던 것이다.
여기에 몰이꾼 으로 차출된 각도의 백성들까지 가세하면서 경기도 이천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임금의 사냥길 한번은 백성들의 피눈물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딱 보면 알겠지만, 임금의 사냥이란게 왕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에게는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왕들은 지루한 일상과 궁궐안의
무미건조함을 탈출하기 위해 수시로 사냥을 나섰으니.
오늘날 대한민국 위정자들의 골프회동 정도는 애교로 넘어가 줄만 하지 않을까.
엽기 조선왕조 실록(160편)
중전과 후궁의 결정적 차이
갑작스런 왕의 죽음으로 조선은 비상체제로 움직이는데.
그래도 한나라의 왕좌를 비워 둘수는 없는 법.세자가 황급히 용상의 자리를 채우는 사이,
궁궐 한 켠에서는 중전과 후궁들 사이의 ‘왕 사망 이후의 후궁들.
생계대책에 관한 대책회의’라는.듣기만 해도 머리에 쥐내리는 회의가 열리고 있었으니.
중전마마.아니 대비마마, 이렇게 저희를 찾으신 연후가.
뭐 딴거는 없고, 대행왕(죽은 왕을 일컫는다) 도 갔으니까.대충 족보를 정리해야 할 거 같아서 말야.
이게 또 우리 세자가.아니 이제 주상마마가 되셨으니까.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서 말야.
그.그게 무슨 말씀이시온지, 불상사라뇨.혹시 모르잖아.아들은 아버지를 닮는다고, 지 아부지가 좋아하던 여자인지도 모르고 덤볐다간 이야기 골치 아파지잖아.
저기, 마마.설마 그럴 일이 있겠사옵니까.
일단 셔터 마우스! 이것들이 말야 대비가 말하면 그러려니 하고 들어야지.
어디서 말대꾸야? 세컨드 주제에 말야.마마, 말씀이 지나치신 거 아닙니까.
세컨드라뇨 이래뵈두 대행왕의 후궁들이었습니다!그래서 어쩌라고 첩은 첩이잖아.
본처는 나구 어쭈,지금 조강지처 한테 단체로 개기는 거야.
그런게 아니라.시끄러워! 일단 말야.
내가 제조상궁한테 울 남편이 죽기 전에 건드린 애들 목록 뽑아 보라고 했거든 업소용.
그러니까 기녀들 제외하고, 궁 안에 있는 애들만 대충 추렴한 거니까,출석 부르면 힘찬 목소리로 대답해,알았지.
일단 승은만 받은 승은상궁.어디보자.내 남편이지만 진짜 너무 하네.11명이 뭐야,11명이
말자,봉자,경자,혜정이,장숙이,인혜,미숙이,미자,미동이,연희,영은이,숙자! 그래, 네들 할 말 없지.그러게 부지런히 해서 아들이나 하나 낳지 그랬어
승은상궁.임금에게 승은은 받았으나,특별히 어떤 귀여움을 받은 건 아닌 상태.거기다 자식도 못 낳게 되면,후궁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저 상궁으로 만족해야 했다.
죽을때까지 승은 한번 못 받은 거 보다는 낫겠지만, 그저 하룻밤 풋사랑으로 인생을 끝내야 하는.어찌보면 궁녀들 보다 못한 처지가 바로 승은 상궁이었다.
네들은.어쩔 수 없겠다.걍 정업원으로 가라
대.대비 마마!어쭈,그럼 네들 어쩌려고 방법 있어.그래도 한때 왕의 여자였던 몸으로 다시 시집을 가겠냐.
아니면 궁궐에서 버티겠냐.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잖아.네들 팔자가 그런거라 생각하고 넘어가자.
그리고,박숙원, 정귀인, 최숙의.이거 참 어쩌냐.네들 다 아들 못낳지.
마마! 설마 저희들 보고 정업원 으로 들어가란 소리는 아니지요.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도 있잖아.그리고 툭 까놓고 말해보자.
네들 정업원 아니면 갈데 있어.
왕을 모셨던 몸으로 말야.
뭐 아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야.
솔직히 네들 궁에 있어봤자 천덕꾸러기 취급 받고, 그냥 조용히 정업원 가서 우리 남편한테 기도나 해라.
그게 서로를 위해 편해. 알았지.대비마마! 이러실수는 없습니다!지랄을 랜덤으로 떨어라.하루 줄테니까, 알아서 짐 싸서 들어가라~.서로 험한 꼴 보지 않게, 조용히 떠나야 한다.
그랬다.조선시대 중전과 후궁의 결정적 차이.그건 왕이 죽은 뒤의 대접이었다.
중전은 본처라는 막강한 배경 덕분에 대비라는 새 직함을 받고, 왕실 어른의 자리에 올라섰지만.
후궁들은 왕이 죽은 뒤에는 정업원(고려후기 개경에 창건된 절로, 조선 개국후 한양으로 옮겨졌다.
공민왕의 후비였던 안씨가 공양왕 시절 이성계의 압력으로 고려의 옥새를 이성계에게 넘기고는 정업원의 주지가 되었다
이후 단종의 비였던 정순왕후 송씨나 왕의 후궁들이 들어와 노후를 보내는 후궁 전용 절이 되었다.
그러나 숭유억불을 컨셉으로 잡은 조선의 선비들에 의해 정업원 타파 의견이 모아져 몇 번의 철거와 재건을 반복하다. (선조 때 완전히 문을 닫게 된다)
정업원으로 쫓겨 나야 했다.
남은여생 동안 우리 남편 극락왕생이나 빌어라.그게 세컨드의 한계지.
쯧쯧.보면 알겠지만, 처와 첩의 차이.
이 작지만 큰 받침 하나의 차이가 왕의 사후 이들의 운명을 갈라놓았던 것이다.
그나마 왕자라도 한명 있으면 대충 눈치 보다가 왕자에게 몸이라도 의탁하거나 할 수 있을 터인데.
역시 본처와 첩의 차이는 작지만 큰 차이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