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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onio Vivaldi
Stabat Mater
Alberto Sughi
Chateau de Versailles
Diego Velázquez
Caravaggio, Michelangelo Merisi da
BERNINI, Gian Lorenzo
Poussin, Nicolas
Antonio Vivaldi의 스타바트 마테르 Stabat Mater
지금 나오는 음악은 비발디가 만든 ‘스타바트 마테르 Stabat Mater" 란 곡입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비발디의 곡은 대부분 '사계'와같은 현란하고 밝은 곡이 대부분이지만 이곡에서 보여주는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복잡하고 기교적인 면을 듣다보면 고개가 끄덕여 지실 겁니다.
‘스타바트 마테르 Stabat Mater ’란 라틴어로 ‘어머니가 서 계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달리신 십자가 곁에 비통하게 우시며 성모님이 서 계시네”라는 말로 시작되는 곡이어서 이런 제목이 붙었고
우리말로는 ‘슬픔의 성모’, ‘고통의 성모’ 또는 ‘성모애가(聖母哀歌)’라고 번역합니다.
‘모든 어머니들의 노래’라고 불릴 만큼 애절한 어머니의 심정을 담은 ‘스타바트 마테르’는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특히 음악 부분에서는 잘 알려진 작곡가만 해도 조스캥 데프레, A.스카를랏티, A.비발디 등에 이어 F.J하이든과
F.P슈베르트, J.리스트 등이 있으며 프란시스 풀랑, 아르보 패르트 등 많은 현대작곡가들도 각각 스타바트 마테르를
남겼습니다.
비발디 ( Antonio Vivaldi, 1678- 1741)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비발디는 당시 이탈리아의 3대 음악 명문 중 한집안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바이올린과 작곡의 기초를 배웠습니다.
그는 베네치아 구빈원 바이올린 교사로 근무하였는데 비발디의 음악이 대체로 아름답기는 하지만 다소 나약하다는
평을 듣는 이유가 이 당시 여자아이들을 위해 쓴 곡이 많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는 40여 곡의 오페라를 비롯하여 많은 종교적 성악곡, 가곡 등을 남겼는데 기악곡은 음악사에서 특히 중요한 구실을
하였습니다. 허약한 체질임에도 불구하고 초인적인 창작 활동을 한 비발디는 자신이 명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만큼
독특하면서 화려한 기교가 담긴 바이올린 협주곡들을 만들었습니다.
노래하는 가수의 음색이 이상하시죠? 물론 아시겠지만 카운터 테너라는 남성가수가 부른겁니다.
음역이 여자의 알토파트 아주 높은 부분까지 소화내어야 합니다.(가성을 이용합니다)
이들은 보통 바로크 시대의 오페라를 레퍼토리로 하고 있습니다.
그 바로크 이전과 바로크 시대는 잘못된 종교 교리(여자는 교회에서 침묵할지어다)로 인해 성악부문에서도
남성들이 활약을 했습니다.
한데 문제는 고음의 표현을 남성들은 쉽게 할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고음의 표현을 얻기 위해 변성기가 찾아오지
않은 소년들을 이용하기에는 이들은 아직 성악적 기교가 약했기에. 거세란 그릇된 방법을 동원하여 카스트라토
(거세된자, 음악적 용어로는 거세된 남성으로 소프라노의 음역을 소화할 수 있는 자)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지요.
오늘날에는 많은 여성 성악가들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카스트라토 따위는 더 이상 필요없게 되었지만
많은 음악 애호가들의 또 다른 요구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그 옛시적 작곡가들의 시절의 악기를 사용하여 작곡자가
의도했던 음악을 최대한 재현한 음악을 갈망하는 욕구로 수많은 원전음악가들을 배출하였습니다. 성악부문에서는
팔세토를 주로 훈련하여 대략 알토(정말 엄밀한 말로 여성의 최저음 파트를 알토라 하지 않고 콘트랄토라고 하죠.)의
음역을 소화해 낼 수 있는 카운터테너들이 이때부터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로크음악의 독특한 울림은 확고한 베이스의 선(線)과 그 위에 전개되는 상성부의 선율성이라고 하는
양외성부(兩外聲部:最高와 最低聲部)의 강조에 기초합니다.
바로크 미술에서 볼수 있는 지닌 빛과 그림자의 효과나 대비성은 음악에서는 협주양식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음향체를 협주적으로 어울리게 하는 방법은 바로크음악에 의해서 추구되고 17세기에 기악과 성악의
양면에서 발전하였습니다.
Alberto Sughi의 Stabat Mater
이탈리아의 대표적 contemporary artist
성경에서 볼수있는 마리아의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세상살이 이야기에서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야만 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들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10개월을 자신의 몸속에서 힘들게 길러내 밝은 세상속으로 나오게 만든 모정은 그 아이가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자신의 분신으로 여겨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런 나의 살붙이를 자신보다 먼저 영원의 세계로 떠나보내야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떨할지는
감히 상상도 하긴 힘든 일임이 분명 합니다.
이러한 세상의 모든 슬픈 어머니들을 위한 노래가 바로 Stabat Mater이고
이러한 이야기를 담은 것은 그것이 음악이든 그림이든 보는이를 숙연케 합니다.
여기 한 이탈리아 작가의 슬픈 스타바트 마테르 그림이있습니다.
이여인은 마리아일수도 우리의 어머니일수도 아니 세상의 모든 여인들일수도 있을 겁니다.
Detail from Stabat Mater (2008)
이탈리아에서 1928년 출생한 Alberto Sughi는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으나
현재 20세기 후반의 가장 위대한 이탈리아 화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1950년대 초 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으며, 전후 추상화와 구상화 사이의 논쟁 가운데서 사실주의 화풍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의 그림은 특별한 것도 없는 일상적인 생활의 모습들을 우울한 색조로 담고 있으며, 비평가들은
이러한 그의 그림을 말하길 '실존적 사실주의'라고 정의하기도 합니다.
실존적 현실주의란 '현실의 고발'만큼 거시적인 느낌이 아닌 20세기 유럽이 그러하였듯이 개인을 대상으로 한
실존 철학같은 것입니다. 일상에서 보는 일들의 꾸밈없는 미화시키지 않은 모습. 가끔 빠져들게 되는 도대체
왜 사는가 하는 문제라던가 그저 찾아오는 고독이라던지 순간적 유혹이나 때때로 마주치는 삶의 아이러니같은 것들.
철학이 그 문제를 풀어보려 노력해왔다면 화가들은 그림으로써 자신과 타인들에게 질문을 하거나 그냥 보여주는
작업을 해왔다는게 다르다면 다를것입니다.
Detail from Stabat Mater (2008)
바로크 미술
바로크의 의미
1. 바로크라는 용어는 이탈리아어인 'Baroco'에서 유래한 듯합니다.
이 용어는 중세 철학자들이 구조논리학에서 장애물을 묘사하는 데 쓰였는데요,
이후 이 말은 '왜곡된 생각이나 사고의 복잡한 과정'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2. 또다른 유래는 포르투갈어인 'barroco'(스페인어로 barrueco)에서입니다.
이 용어는 불규칙적이고 불완전한 모양의 진주를 의미하는데 '바로크 진주'라는
보석상들의 용어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으며. 미술비평에 있어서 바로크는
불규칙적이고 화려한 것을 뜻하거나 정형화된 규칙이나 비례로부터 벗어난 것들을 지칭합니다.
19세기 후반까지 바로크라는 용어는 비정상, 기괴함, 과장, 과도한 장식 등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1888에 이르러서야 은근한 경멸적 의미가 아닌 하나의 양식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사용되었고,
바로크 양식의 특징들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가 이루어졌습니다.
Diego Velázquez 1599-1660
Venus at her Mirror
1644-1648
oil on canvas 122x177cm
National Gallery, London
16세기말경 이탈리아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했으나 유럽에서는 대략 17세기, 독일과
남아메리카의 식민지에서는 18세기에 이르러서야 절정에 이르른 미술사조를 말합니다..
바로크 시대 작품의 특징은 양식적인 면에서 혼합적이며 심지어 반항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바로크 양식과 관련된 몇 가지 특징들은
장려함,
감각적인 풍요,
극적 효과,
생동감,
운동감,
긴장,
감정분출,
예술간의 특징들을 흐리는 경향 등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바로크 미술이 출현한 시대적 배경
첫째, 종교 개혁운동의 출현과 그 영토적·지적 지배영역의 확대
종교개혁운동의 기세가 높아지자 기존 카톨릭 교권에서는 그들의 권위확립과
일반 신도들에게 더욱 기존 교회와 친밀해질수 있는 장소와 계기를 만들어 내는것에 치중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더욱 화려고 생동감 넘치며 감동적인 성화와 교회 천정화등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이번 매너리즘
시기의 그림들이 이러한 면을 충족시키지 못한점도 한 이유라고 할수 있습니다.
둘째, 세력 있는 중산층의 등장과 함께 절대왕정의 강화
이들은 곧 예술의 주요한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바로크 궁전들은 중앙집권국가의 권력과 장대함을 과시하기 위해
거대하고 넓은 규모로 세워졌으며. 베르사유 궁과 그 정원이 가장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동시에 중산층의 경제적 상승으로 미술시장이 발달했는데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의 다양한 유파들의 작품에서
셋째, 과학의 발달과 세계탐험에 의해 자극된 자연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지적 지평의 확대
이러한 사실들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미천함, 특히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으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님을 알게 되자
자연세계의 복잡성과 무한성이라는 2가지 새로운 의미를 동시에 부여했습니다.
이시기 이전에는 단지 그림의 배경정도로만 이용되던 풍경이 풍경화라는 독자적 입지를 구축하게 됩니다.
이러한 예술적 특징은 음악 부문에서도 확실히 나타나
비발디,,헨델,,등 다양하고 새로운 음악 양식이 나타나기 시작 합니다.
바로크 건축은 거대함, 기념비적 성격, 움직임, 극적인 공간과 조명의 연속성, 대조적인 표면효과를 이용한 풍부한
실내장식, 생생한 색채, 건축구조의 즉물성을 높이고 관능적인 유희를 자극하는 화려한 소재 등을 강조했습니다.
(아래 사진들은 바로크 양식 건축물의 대표라고도 할수 있는 베르사유궁 입니다)
Caravaggio, Michelangelo Merisi da(카르바지오 ; 이탈리아)
1571-1610
성 마태오의 영감
The Inspiration of Saint Matthew
1602; Oil on canvas, 9' 8 1/2" x 6' 2 1/2"; Contarelli Chapel, Church of San Luigi dei Francesi, Rome
나르시스
Narcissus, Galleria Nazionale de Arte Antica, Rome
성 토마스의 불신
The Incredulity of Saint Thomas
1601-02
Oil on canvas, 107 x 146 cm
Sanssouci, Potsdam
BERNINI, Gian Lorenzo (베르니니 : 이탈리아)
1598~1680
(b. 1598, Napoli, d. 1680, Roma)
BERNINI, Gian Lorenzo 지안 베르니니 1598.12.7~1680.11.28
이탈리아의 조각가·건축가. 초기작 《플루토와 프로세르피나》, 《아폴론과 다프네》은 정교한 대리석 조각으로 유명하다. 교황의 총애로 성당의 조각 제작에 많이 참여하였으며, 산피에트로대성당 건축도 담당하였다.
Poussin, Nicolas (푸생 : 프랑스)
1594-1665
목자들의 경배
Adoration of the Shepherds. 1633. Oil on canvas. National Gallery, London, UK.
푸생 [Nicolas Poussin, 1594~1665.11.19]
17세기 프랑스 최대의 화가이며 프랑스 근대회화의 시조. 신화·고대사·성서 등에서 제재를 골라 로마와 상상의 고대 풍경 속에 균형과 비례가 정확한 고전적 인물을 등장시킨 독창적인 작품을 그렸다. 장대하고 세련된 정연한 화면구성과 화면의 정취는 프랑스회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성바울의 환희
The Ecstasy of St. Paul.
Velázquez, Diego da Silva (벨라스케스 : 스페인)
1599-1660
하녀들
Las Meninas (Maids of Honor)
1656-57 (120 Kb); Museo del Prado, Madrid
Infanta Margarita. c. 1656. Oil on canvas.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Austria
Velázquez, Diego da Silva 벨라스케스 [1599.6.6~1660.8.6]
에스파냐의 화가. 초기의 작풍은 당시의 에스파냐 화가들과 다름없이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은 명암법으로 경건한 종교적
주제를 그렸으나 민중의 빈곤한 일상생활에도 관심이 많았다. 만년의 대작에서 전통적인 선에 의한 윤곽과 조소적(彫塑的)인
양감(量感)이라는 기법이, 투명한 색채의 터치로 분해되어, 공기의 두께에 의한 원근법의 표현으로 대치되었다
물장수
The Waterseller of Seville
1623 (130 Kb); Oil on canvas, 106.7 x 81 cm (42 x 31 7/8 in); Wellington Museum, London
아폴로 두상 습작
Study for the head of Apollo
1630
Oil on canvas, 36,3 x 25,2 cm
Private colle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