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건설업체들이 치열한 수주 경쟁을 벌였던 지방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이 애물단지 신세다.
재개발ㆍ재건축 후 들어설 새 아파트 대신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대한 가치만큼을 현금으로 챙겨 조합에서 빠져나가길 원하는 조합원이 전체 조합원의 70~80%에 달한다.
서울에선 재개발ㆍ재건축을 하면 조합원들이 돈을 버는데 지방에선 되레 손해 볼 수도 있어서다.
반면 업체 측은 조합원들의 현금청산 요구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현금을 받고 조합원이 빠져나가면 업체 측은 그 자리를 일반분양분으로 메워야 한다. 하지만 가뜩이나 미분양이 넘쳐나는 마당에 이를 원할 업체는 없다.
이 때문에 현금청산 문제를 놓고 업체 측과 조합원간 마찰을 빚고 있다. 사업성이 불투명해 재개발ㆍ재건축 추진을 보류하는 곳도 나오고 있다.
“제발 현금 주세요”
대구 북구 복현시영아파트 재건축 사업장. 지난달 말부터 조합원들로부터 새 아파트 분양신청을 받고 있지만 신청률은 30%대에 그치고 있다. 최근 조합원 분양신청을 받은 부산진구 양정1구역 재개발 사업장도 신청률이 20~30%선이었다.
롯데건설 이경희 부장은 “올 초까지만 해도 30~40%선을 유지하던 부산지역 재개발 사업장 현금청산 비율이 최근 70~80%선으로 급증했다”고 전했다.
이 같이 현금청산이 급증하는 이유는 지방의 경우 주택시장 침체로 기존 아파트값이 맥을 못추고 있어서다. 조합원 분양가가 기존 아파트 시세보다 최고 2배 가량 비싸게 책정되기 때문에 조합원 입장에선 새 아파트를 배정받더라도 투자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실제 대구 복현시영의 경우 현재 49㎡형(15평형)에 살고 있는 조합원이 재건축 후 105㎡형(32평형)을 배정받으려면 2억170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대한 평가분(현금청산액) 7500만원을 제외하더라도 1억4000만원 가량의 돈을 새로 내야 하는 것이다.
주변 중개업소 관계자는 “복현동 내 기존아파트 105㎡형의 시세가 1억3000만원대에 불과하기 때문에 새 아파트를 배정받기보다는 현금청산 금액에다 자기 돈을 보태 기존 아파트를 사는 게 이익이라고 판단하는 조합원들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부산 양정1구역도 마찬가지다. 3단지 109㎡형(33평형)의 조합원 분양가가 2억6000만원대로 같은 면적 대 기존아파트 시세(백조아파트 109㎡형 1억3000만원대)의 두 배 가량이다.
업체 측은 현금청산 비율을 낮추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조합원들과 1대1 개별 상담을 통해 설득에 나서는가 하면 현금청산 산정가 자체를 최대한 낮추려 한다. H건설 관계자는 “요즘에는 기존 집에 대한 감정평가금액에도 못 미치게 현금청산액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주택시장이 회복될 때까지 업체나 조합 측이 최대한 사업시기를 늦추는 경우는 흔하다. 심지어 아예 사업을 포기하는 사례도 나온다. 5년 이상 재개발사업 준비를 해온 대구 수성구 황금2동 재개발사업, 남구 대명동 재개발사업 추진위원회가 최근 추진위를 해산했다.
대구시 수성구청 건축과 관계자는 “사업속도가 빠른 다른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지에 현금청산이 속출하는 지금 상황에서 서둘러 재개발을 추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주민들이 많아 추진위가 해산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분양 악순환 우려
현금청산은 지방 주택시장 악순환의 시발점이 된다. 조합원이 빠져나간 만큼 일반 분양분이 늘어나 또 다른 미분양의 원인 제공을 하는 셈이다.
최근 부산 금정구 장전동에서 재개발 아파트 301가구에 대해 일반 청약을 한 현대건설의 경우 202가구나 청약에서 미달됐다. 금정구 구서동 쌍용예가 역시 80%가량 모집가구수를 채우지 못했다.
사업지연에 따른 분양가 상승도 우려된다. 업체 측은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 조합 측에 인허가비용ㆍ설계비 등을 대여해주고 조합원에겐 이주비를 주고 있는데 사업기간이 길어지면 금융비용 부담이 늘어난다. 결국 이런 비용 부담이 나중에 고스란히 분양가에 포함되게 마련이다.
일부에선 이런 상태 대로라면 지방 재개발ㆍ재건축을 하겠다고 나서는 업체가 없어 3~4년 뒤 지방 재건축ㆍ재개발 사업이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올 초 조합원 보상가액 등을 문제삼아 조합원 총회를 통해 현대산업개발의 시공자격을 박탈시킨 부산 북구 만덕주공 재건축 조합의 경우 지금까지 새 시공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영산대 부동산연구소 최영관 연구위원은 "일반 분양보다 훨씬 좋은 조건이 주어지는 조합원 분양에서 외면받은 아파트들이 제대로 분양될 리 없다"며 "미분양 홍수 속에 재건축ㆍ재개발시장 발 지방 주택시장 침체현상은 더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금청산=재건축ㆍ재개발 사업지의 원주민(조합원)들이 해당 지역에 지어질 새 아파트 입주권 대신 자신이 살던 집에 대한 평가액(감정평가업자 2인 이상이 평가한 금액을 산술평균해 산정한 금액을 기준으로 업체와 조합원이 협의해 결정)만큼을 현금으로 받아 조합에서 탈퇴하는 것.
자료원:중앙일보 2007. 1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