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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의 결혼과 자녀들
호 1:1-9
1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3 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4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5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6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7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8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호 1:1-9 / 이것은 여호와께서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을 내릴 때에 유다에서는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대를 이어서 다스리고, 이스라엘에서는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다스렸다. 2) [배신한 이스라엘의 모형 고멜]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처음 말씀을 시작하실 때 이렇게 이르셨다. `너는 가서 창녀와 결혼하여 그 어미와 똑같이 음행하는 자식들을 낳아라. 내 백성이 나를 떠나 창녀처럼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다.' 3) 그리하여 호세아가 디블라임의 딸 고멜과 결혼하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4-5) 이때에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말씀하셨다. `그 아이의 이름을 ㄱ) 이스르엘이라고 지어라.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예후의 왕조를 벌하여 예후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한을 풀어 주겠다.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군대를 궤멸시켜 그 나라를 없애 버리겠다.' (ㄱ. `하나님이 씨를 뿌린다'는 뜻) 6)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자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말씀하셨다. `그 아이의 이름은 ㄴ) 로루하마라고 지어라. 내가 더 이상 이스라엘에 긍휼을 베풀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용서하지도 않을 것이다. (ㄴ. `긍휼을 받지 못한 자'라는 뜻) 7) 그러나 내가 유다 지파에게는 긍휼을 베풀겠다. 그들의 군대나 무기를 쓰지 않고 내가 직접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서 해방시키겠다.' 8) 로루하마가 젖이 떨어지자 고멜이 다시 임신하여 이번에는 아들을 낳았다. 9) 여호와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 아이를 ㄷ) 로암미라고 불러라. 이스라엘은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아니다. (ㄷ. `내 백성(자식)이 아니다'라는 뜻)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호세아의 가정을 사용하십니다. 고통스러운 순종의 과정이지만, 선지자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호세아를 부르신 때(1) 호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던 시대가 설명됩니다. 호세아는 남 유다의 웃시야(주전 790-740), 요담(주전 750-731), 아하스(주전 735-715), 히스기야(주전 729-686)와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주전 793-753)가 통치하던 시대에 활동했습니다. 그는 북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대략 40년(주전 753-715)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시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정치·경제적인 풍요로움이 아닌 영적인 부요함에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호세아에게 이르시되(2-3a)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이유로 이스라엘의 타락을 말씀하십니다. 호세아는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이지만,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그대로 순종합니다. 호세아는 고멜을 아내로 맞이하는데, 디블라임의 딸 고멜은 실제 인물로 결혼하기 전부터 창녀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결혼은 역사적 사건임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호세아와 고멜과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설명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가 가지고 있어야 할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내 줍니다.
호세아 자녀들의 이름(3b-9) 고멜이 낳은 세 자녀의 이름은 예언적이고 상징적인 성격을 갖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이름을 통해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의 변화를 설명해 주시고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호세아는 첫째 아들의 이름 이스르엘은 '하나님께서 흩으신다'와 '하나님이 심으시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흩으실 것이라는 심판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둘째 딸의 이름은 로루하마로 '사랑을 받지 못한다'의 뜻이 있습니다. 셋째 아들은 로암미로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자녀들의 이름은 순서대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가 점차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은 두 가지에서 실패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은 경고의 메시지를 듣고도 회개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둘째, 이스라엘은 유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멸망당하게 되고, 하나님의 예언은 성취됩니다.
적용: 하나님은 다양한 이미지나 상황을 통해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 주십니다. 당신은 삶에서 듣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놓치지 않는 영적인 민감함을 유지하고 있습니까?
시골 교회에 믿음이 독실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군에서 제대하고 시골에 머무르면서 쇠퇴해 가는 농촌과 시골 교회를 위하여 미력을 바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일거리를 찾던 중 야산을 헐값에 매입하여 그것을 개간하였습니다. 그곳을 개간하는데 삽이 다섯 자루나 낡아버렸습니다. 청년은 그 개간지에 콩과 깨를 심었습니다. 그해 우로혜택(雨露惠澤)이 좋아 가을에 가서 큰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결국 그는 큰 밑천을 마련했고 그 개간지에 과수 묘목을 심어 수년 후에 큰 부농이 되었습니다. 청년은 빈약한 농촌 교회를 위하여 큰 몫을 담당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청교도인들의 정신만 있으면 어디서나 또 누구나 다 성공을 할 수 있습니다.
< 설 교 >
호세아서의 배경과 메세지
호 1:1-11 / 피영민 목사
서 론
소선지서는 내용이 중요치 않다는 말이 아니라, 분량이 작다는 말입니다. 소선지서의 특징은 작은 분량을 가지고 간결하며 명확한 메시지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저는 설교자로서 강해설교를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강해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증거하는 설교이기 때문입니다. 4세기에 ‘황금의 입’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콘스탄티노플의 유명한 설교자 존 크리스톰(John Chrysostom)도 강해설교를 했습니다. 또한, 16세기의 위대한 종교개혁가인 존 칼뱅(John Calvin) 역시 강해설교를 했습니다. 제목설교도 가끔 필요하지만, 설교자의 개인적인 생각이 개입될 여지가 많기 때문에 저는 강해설교를 좋아합니다. 또 강해설교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증거하기에 가장 적합한 방식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강해설교를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고 또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입니다. 솔로몬 시대에 스바 여왕은 솔로몬이 성전과 왕궁을 지었으며 지혜가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보기 위해 수천 킬로미터를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솔로몬보다 수천, 수만 배 더 지혜로우신 예수님을 만나러 잠깐 차를 타고 오면 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는 축복된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며 묵상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큰 행복 중의 행복이며 특권 중의 특권입니다.
I. 예언자 호세아와 그 아내 고멜
호세아 1장은 호세아서의 서론입니다.
첫째, 호세아는 “구원자”를 뜻합니다. 호세아는 여호수아와 이름이 같습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헬라어로 예수님과 이름이 같습니다. 여호수아와 호세아는 히브리어이고 예수는 헬라어입니다. 이것은 모두 구원자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시는 가운데서도 구원하신다는 것을 증거하는 선지자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져 있을 때 북 왕국 이스라엘을 향해서 예언을 했습니다. 예언자들 가운데서 북 왕국 이스라엘을 향해 예언한 선지자는 호세아, 아모스, 요나, 나훔 이렇게 네 명입니다. 그리고 남 왕국 유다를 향해서 예언한 선지자는 예레미야, 하박국, 스바냐, 이사야, 예레미야 애가, 요엘입니다. 예언서가 어려운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공부를 안 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읽지 않아서 어려운 것입니다. 공부하고 읽으면 예언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둘째, 호세아는 여로보암 2세(B. C. 793-753)가 통치하던 시기에 북 왕국 이스라엘을 향해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가 왕이 될 때까지 예언활동을 계속했으므로 아마도 B. C. 721년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할 때까지 예언활동을 계속했을 것입니다.
셋째, 북 왕국의 죄는 정치적 혹은 문화적 반항이 아니라 “영적인 반항”이었습니다. 호세아서의 내용은 북 왕국이 하나님께 반항했기 때문에 망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반항의 죄는 세 가지입니다.
1) 배은망덕의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시켜주시고 가나안이라는 큰 땅을 공짜로 주셨는데 감사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다 잊어버린 것입니다.
2) 어리석음의 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을 섬길 때는 모든 것이 잘되었지만 반대로 우상숭배에 빠졌을 때는 모든 것이 잘못된다는 것을 수천 년 동안 경험했으면서도 계속해서 우상숭배에 빠집니다.
3) 우상숭배의 죄입니다. 우상숭배는 영적으로 간음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배은망덕하고 어리석었으며 음녀와 같았던 것이었습니다.
넷째, 호세아의 사명은 죄에 대한 심판을 자기 가정을 무대로 해서 가시적으로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호세아의 사명은 매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좋은 일에 앞장서는 것도 어려운데 심판의 메시지를 증거하는 일에 앞장서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호세아는 하나님의 심판을 증거하는 이 어려운 사명에 앞장서서 증거할 뿐만 아니라 자기 가정을 무대로 해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섯째, 호세아의 아내는 “고멜”(완전함의 의미)이었습니다. 이름의 뜻은 좋았지만, 고멜은 결코 완전한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학자들은 고멜이 결혼 전부터 음행을 했는지 아니면 결혼 후에 바람이 났는지 이것을 두고 논쟁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고멜이라는 여자를 통해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음행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택하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멜이라는 한 여자의 타락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전체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영적으로 음행했다는 것에 관심을 둬야 합니다.
Ⅱ. 고멜의 자녀들
호세아가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아내로 취하여 낳은 자녀는 2남 1녀로서 하나님께 신실치 못한 인생의 비극을 예시화했습니다.
첫째, 장남의 이름은 “이스르엘”로서 하나님께서 흩어버리신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르엘은 원래 골짜기 이름입니다. 사사기 6장 33절에 나오는 이스르엘 골짜기는 기드온이라는 사사가 미디안 군대를 격파한 곳입니다. 또 예후라는 사람이 우상숭배에 빠져 있던 아합 군대를 쓸어버린 곳입니다. 북 왕국을 세운 사람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입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백성을 지혜롭게 다스리지 못하자 여로보암이 열두 지파 중 열 지파를 이끌고 북 왕국 이스라엘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자신의 아들 나담만 왕으로 세우고 왕조가 끝나버립니다. 그 뒤 바사라는 사람이 나담을 죽이고 왕이 되는데 오래가지 못하고 시므리에게 왕위를 빼앗깁니다. 여로보암, 바사, 시므리 왕조 이후 네 번째 왕조가 오므리 왕조입니다. 오므리 왕조는 북 왕국 이스라엘 왕조 가운데 가장 악한 왕조입니다. 오므리 왕조에 속한 네 왕은 오므리, 아합, 아하시야, 요람입니다. 이 중에서도 아합이 가장 못된 왕인데 그는 이세벨과 결혼했습니다. 이세벨은 결혼하면서 바알신과 아세라 목상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이세벨이 바알신을 가지고 들어오자 여호와를 섬기던 제사장들은 다 쫓겨나고 바알신을 섬기는 제사장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에 선지자 엘리야가 이들과 함께 진짜 신이 누구인지 대결했던 때가 바로 아합 왕 시대입니다. 이와같이 오므리 왕조가 너무도 악하여 하나님께서 예후라는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오므리 왕조를 멸망시킬 것을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 명령을 받은 예후는 군사를 모집해서 이스르엘 골짜기로 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아합의 아들 70명을 모두 죽입니다. 오무리 왕조의 마지막 왕인 요람을 죽이고 아합의 아내 이세벨은 성 밖으로 던져져서 그 피를 개가 핥아 먹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죄지은 사람은 언젠가 죗값을 치르게 됩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시고 죄를 멀리하시기 바랍니다. 예후는 오므리 왕조뿐만 아니라 바알 선지자들도 완전히 제거합니다. 하지만, 예후는 오므리 왕조가 우상숭배로 망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우상숭배를 합니다.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왕하 10:29) 예후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예후 왕조는 예후,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 2세, 스가랴 이후 살룸이라는 자가 스가랴를 죽이므로 4대 만에 끝나게 됩니다. 이후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 호세아를 마지막으로 B. C. 721년 앗수르에 의해서 북 왕국은 멸망합니다. 예후 왕조에서 북 왕국 이스라엘을 가장 경제적으로 번영시킨 사람은 여로보암 2세입니다. 여로보암 2세는 B. C. 793년부터 753년까지 40년 동안 정치, 경제, 외교적으로 너무나 잘 통치하였습니다. 하지만, 신앙적으로는 가장 부패했습니다. 돈이 많고 부유하다고 해서 복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진짜 복입니다. 여로보암 2세 때는 배부른 시대였지만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신앙적으로 가장 부패했었기 때문에 호세아와 아모스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한 것입니다. 오무리 왕조를 멸망시킨 예후 왕조도 신앙적으로 타락하자 하나님께서는 예후 왕조의 군사적 본거지인 이스르엘 골짜기를 치십니다. 예후 왕조가 세워진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다시 이들을 흩어버리시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곳에서 복을 받았다더라도 하나님을 떠나면 복 받은 그 자리가 다시 하나님께서 치시는 자리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둘째, 딸을 낳았는데 이름을 로루하마라고 지었습니다. 로루하마는 ‘사랑받지 못한다.’, ‘긍휼을 입지 못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가 쳐들어와서 B. C. 721년 망하게 됩니다. 앗수르는 여세를 몰아 남 왕국 유다까지 공격하는데 당시 유다의 왕은 히스기야였습니다. 앗수르 군대가 하나님을 모욕하며 히스기야를 약 올리자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자신들을 구원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루 밤사이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포위하고 있던 앗수르 군대 18만 5천 명을 모두 물리치셨습니다.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호 1:6-7) 남 왕국 유다는 긍휼히 여김을 받았지만 북 왕국은 망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불쌍히 여기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셋째, 마지막으로 아들을 낳아 로암미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로암미는 내 백성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식을 낳고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이름을 짓겠습니까? 하지만, 호세아는 그렇게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름을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한 것입니다. 이 백성은 더 이상 내 백성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무런 보호도 해주지 않겠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북 왕국 이스라엘 백성을 흩어버리시고 긍휼도 베풀지 아니하시며 자식으로도 삼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Ⅲ.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언약(10-11)
만약 호세아서가 심판의 메시지로 끝나버린다면 구원자라는 호세아의 이름은 무색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도 소망을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에 죽을만한 자리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호 1:10-11) 소망의 약속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고 둘째,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의 구별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한 두목 아래서 통일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이 통일된 적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북 왕국 이스라엘은 통일되기 전에 역사 속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언약은 신약시대에 영적으로 실현되었습니다. 에스겔 37장의 “두 막대기 예언”처럼 신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하지 아니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나라를 이루시겠다는 예언입니다.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9:25-26) 바울은 호세아 1장 10-11절을 인용하면서 하나님께서 이제는 유대인과 이방인, 북 왕국과 남 왕국, 남자와 여자, 종과 자유자 등 아무런 구별도 하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모두 구원하신다는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통일시킬 두목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참 두목으로 해서 아무런 구별 없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호세아와 에스겔은 모두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회복을 목전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시대의 위대한 구원역사를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결 론
호세아서는 인간이 아무리 죄로 인해 심판을 받고 멸망을 받아야 할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참된 두목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오면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참 두목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인간은 조금 의로운 사람이나 많은 죄를 지은 사람이나 모두 똑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지옥 가기에 아주 넉넉한 죄를 지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모두 동일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도 참된 두목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으면 그때부터 인생이 달라집니다.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얼마나 의로운지 아니면 얼마나 죄인인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어차피 오십보백보입니다. 누구를 두목으로 삼고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두목이라는 말은 지도자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누구를 두목으로 삼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두목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두목으로 삼으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람은 자꾸 변화하는데 나쁘게 변하는 사람도 있고 좋게 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면 우리의 인생에 항상 좋은 변화만 일어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떠나면 나쁜 변화가 일어납니다. 변화가 필요하십니까? 예수님을 두목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좋은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호세아가 예언하던 시대는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물질적으로 매우 번영했던 때입니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가장 부패했었습니다. 돈이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며 행복한 일입니다. 하지만, 돈은 많은데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없으면 그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먼저 번영해야 그다음 물질과 건강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물질적으로는 번영했는데 영적으로 후퇴했다면 그것은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호세아서를 통해 올해는 물질 번영도 좋지만 무엇이 번영해야 하겠습니까? 영적으로 번영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오게 됩니다. 2011년도에는 두목되신 예수님을 붙들고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육신도 강건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얼마나 안타까우셨을까
호 1:2-9 / 황광민 목사
어느 목사님이 아들에게 편지를 보낸 이야기입니다. 아들이 공부를 싫어하자 편지를 보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나 못하는 아이나 한때는 공부하기가 죽도록 싫어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 목사님의 아들도 공부와 씨름을 하다가 도무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편지 "공부하기 싫으면 하지 말아라. 그러나 네가 앞으로 공부하며 사는 길을 피해가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라고 썼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아들은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속뜻을 이해하였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때로는 부모님의 사랑도 역설적으로 나타납니다. 사랑을 접겠다는 말 같지만 사실은 깊이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있습니다. 이런 부모의 사랑은 자식을 낳아서 키워봐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랑으 이해할 수 있으면 철이 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이와 같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호세아서 1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역설적인 사랑입니다. 오늘은 이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떠나도 너무 멀리 떠났다.
호세아가 예언하던 시대는 여로보암 2세때입니다. 여로보암 2세는 북왕국의 왕으로서 예후의 증손자였습니다. 여로보암 2세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여로보암 1세처럼 나라의 부강을 위해 힘을 썼습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호황을 누리던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국가의 영토는 넓혀졌습니다. 북왕국 200년 옂사에 가장 황금기였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아주 어두운 시기였습니다. 여로보암 2세는 여로보암 1세 못지 않게 나라를 크게 부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면에서도 여로보암 1세 못지 않게 백성들을 우상숭배에 빠뜨렸습니다. 여로보암 1세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세운 후 예루살렘으로 제사하기 위해 올라가는 백성들을 막으려고 벧엘과 단에 우상의 제단을 만들어 대신 섬기게 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많은 산당을 지었고 평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아 말씀이 없는 기복신앙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 2세도 여로보암 1세와 똑같이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우상숭배에 빠지게 했던 것입니다.
당시의 이러한 영적 상태를 오늘 봉독한 1장 2절의 말씀이 암시해 줍니다. "여호와게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 호세아는 이 말씀에 따라 고멜이라는 창녀와 결혼을 했습니다. 호세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창녀 중에서 배우자를 찾아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고멜은 자신의 버릇을 어쩌지 못하고 호세아를 떠나 행음하였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호세아의 심정을 통해 하나님을 자꾸만 떠나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한지를 백성들에게 알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은 보통의 일반적인 생각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확실하게 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호세아를 택하셨습니다. 고멜이라는 음녀를 택하여 결혼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꾸만 호세아의 품을 떠나 다른 남자에게로 달려가는 고멜로 인해 찢어지는 호세아의 아픔마음으로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외치게 하셨습니다. 이로서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으며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 호세아의 순종도 대단합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명을 다하기 위해 어러운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호세아가 원래 고멜을 좋아했으나 창녀였기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로 인해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그래 그게 바로 내 심정이다" 하시면서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랬다면 호세아는 괴로울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언급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창녀 중에서 아내를 선택하여 결혼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매를 드셨다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가 어떠한지, 이를 바라본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한지를 알리셨습니다. 그리고 돌아서지 않으면 곧 매를 드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매를 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하나님은 사랑 이시지만 때가 되면 매르 드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다가 비로서 호세아를 통해 매를 드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호세아의 자녀들의 이름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의 첫째 아들을 이스르엘이라 이름짓게 하셨습니다. 그 뜻이 4-5절에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의지가 호세아의 첫째 아들의 이름을 통해서 선포되었습니다.
이스르엘은 멸망을 암시하는 이름입니다. 아합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강제로 피흘리게 했던 곳이며, 그곳에서 우상숭배에 빠져있던 아합왕이 예후에게 멸망당한 곳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스라엘의 피를 예후에게, 즉 예후의 증손자인 여로보암 2세와 이스라엘 족속에게 갚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아합이 예후에 의해 멸망당했던 것처럼 예후의 증손자 여로보암이 멸망당하겠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호세아의 둘째 아이는 딸이었는데 이름을 "로루하마"라고 짓게했습니다. 이는 6절에 있는 말씀처럼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암시하는 이름입니다.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더 이상 긍휼히 여기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7절에 보면 유다족속은 긍휼히 여겨 여호와로 구원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긍휼히 여기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께서 유다는 긍휼히 여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유다에는 히스기야가 왕이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25세에 왕이 신앙부흥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산당을 허물고, 주상들을 깨뜨리고, 우상숭배의 제단물을 부셨습니다. 그는 하나님만을 의지하였는데 유다 여러 왕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참고:열왕기하서 18장). 그러기에 히스기야가 통치하는 유다를 하나님은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상숭배에 빠져있는 여로보암 2세와 이스라엘 족속에 대해서는 긍휼히 여기지 않겠다고 하셨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호세아가 세 번째로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로암미라고 부르게 했습니다. 이느 9절의 말씀처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약을 파기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면서 멀리멀리 떠나가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견책하셨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매를 드시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우셨을까 ?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매를 드시겠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무서운 심판을 예고하시는 하나님의 본심에는 여전히 사랑이 있습니다. 오직 안타까운 심정으로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우셨으면 그렇게 말씀하셨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비록 무서운 심판의 말씀을 하고 계시지만 사실은 어서 빨리 돌아오라는 역설적인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어른들은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 호적에서 이름을 파내겠다"는 말을 잘 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그렇게 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안타까운 나머지 빨리 정신차리라는 역설적인 사랑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그런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포기할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런 말들이 필요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얼마나 섭섭하셨으면 그렇게까지 말씀하셨겠습니까 ? 그것이 본심은 아닙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께로 하루 빨리 돌아오라는 역설적인 사랑의 표현입니다. 오해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안타까워 하시는 심정을 이해하고 빨리 돌아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돌아오라
호세아의 주제는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호세아 6장 1절을 보십시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아멘. 하나님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늦기 전에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때가 되어 심판을 당하기 전에 빨리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돌아오면 더 큰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호세아 1장 10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돌아오면 이루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같이 되어서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 아멘.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도 아니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곳에서 자신의 자녀라고 인정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또한 무궁한 발전과 부흥도 약속하셨습니다.
11절의 말씀도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돌아오기만 하면 통일도 시켜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함께 봉독하십시다.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두목을 세우고 그 땅에서 올라오리니 이스라엘의 날이 클 것임이니라" 아멘. 얼마나 귀한 약속입니까 ? 당시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처럼 남북이 분단되어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죄 값으로 남북이 갈라지고 오랫동안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갈라졌던 남북을 하나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 그러나 실제로는 그들이 돌아오지 않았고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예고는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여로보암 2세는 그런대로 잘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 외아들 스가랴가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었으나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모반하여 백성들이 보는 가운데 처형당했습니다. 듣고 돌아왔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돌아오지 않아 무서운 재앙이 이스라엘에 내렸습니다. 그후 정국이 계속 혼란한 가운데 혁명이 계속 일어나더니 얼마 후에 앗수루에게 멸망당했습니다.
우리도 이 말씀을 들었으니 여호와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한국의 기독교인 먼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IMF도 이길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통일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사는 길이 여호와께 있습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오늘도 이 민족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야 하겠습니다.